[민음사]

 

 

 

정체성. identity.

나의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까?

 

구직 사이트에 이력서를 저장한 후, 자신을 어필하는 한 줄 문구를 고민해 본 경험은 대부분 있을 것이다.

성실하고 꼼꼼함, 밝고 친절함, 친화적인 사람, 믿음직하고 끈기 있음, 센스 있고 적응력 최고 등등 업무 직종에 적합할 듯한 자신에 대한 광고를 걸어놓는다.

 

에릭슨의 발달 이론에 따르면 청소년기(12-18세)에 정체감과 역할 혼미의 과정을 겪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는데, 타고난 성정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환경, 현실과의 상호 작용, 성공과 실패 등의 경험을 겪으며 한 개인의 고유한 정체성이 확립된다.

 

개인이 청소년기에 확립한 정체성은 하나의 브랜드 광고 문구처럼 나를 잘 드러내 줄 수 있을까? 

사람 잘 안 변한다는 말처럼 한 번 확립된 정체성은 바뀌지 않는 단단한 그 무엇일까?

 

나의 정체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기회를 준 책이다.

 

 

 


 

 

 

밀란 쿤데라의 책은 표지 그림이 말해주듯,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두 주인공 샹탈장 마르크의 이야기이다.

 

성년기의 문턱을 넘어설 무렵 샹탈은 '장미 향, 팽창하고 정복하는 향기'가 되어 남자들의 인기를 차지하고 싶다는 막연하고 서정적인 꿈이 있었다. 그러나 결혼 후 아이의 죽음과 이혼의 과정을 거치고 연하인 장 마르크와 동거를 하면서 꿈은 잠들어 버렸다.

 

"남자들이 더 이상 나를 돌아보지 않아." 어느 날 느낀 샹탈의 좌절감.

 

연인인 장 마르크는 그녀의 우울과 열패감을 안타까워하며 의기소침해진 그녀를 회복시켜 줄 의도로 익명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나는 당신을 스파이처럼 따라다닙니다. 당신은 너무, 너무 아름답습니다."

 

샹탈은 처음에는 불쾌한 감정이 들었지만, 정중함과 진실함이 느껴지는 지속적인 편지로 삶에 생기마저 돌게 된다.

반대로 장 마르크는 자신임을 속이고 보낸 편지가 연인을 흥분시킬 수 있다는 사실에 질투심을 느끼면서도 이 일을 당분간 지속하게 된다.

 

결혼 생활 동안 맘에 들지 않았던 시댁살이에도 착하고 고분고분했던 샹탈, 아이의 죽음 후 자유의 몸이 되어 시누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쏟아부었던 그녀, 직장에서의 차갑고 사무적인 그녀, 장 마르크와 있을 때의 그녀, 익명의 편지에 반응하며 달라진 그녀는 모두 달랐다. 순종? 위선? 무관심? 절도? 그 무엇이건 말이다.

 

당신이 내가 상상하는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어. 당신의 정체성에 대해 내가 착각을 했다는 생각. (장 마르크)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진다. 우리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그에 맞는 가면을 갈아 쓰며 살아가고 있다.

어떤 얼굴, 어떤 마음, 어떤 상황의 모습이 진짜 나인지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면서 말이다.

 

내겐 두 얼굴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두 얼굴을 갖는 것에서 어떤 재미를 찾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두 얼굴을 갖는 것은 쉽지 않아. 노력을 요하고 규율을 요구하는 거야! 내가 하는 모든 일이 싫건 좋건 간에 내겐 잘하고 싶은 야심이 있다는 것을 알아줘.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 완벽하게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 일을 경멸하는 게 아주 어렵지. (샹탈)

 

 

요즘처럼 SNS가 관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대에서 정체성의 혼란은 더 심해 보인다.

우리는 저마다 ID라는 가면을 한 개씩 혹은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면전에서 하지 못할 욕설이나 비방글, 쉽게 드러내기 어려운 정치적인 성향, 심지어 누군가에게 따뜻한 칭찬글을 쓸 용기도 생기게 된다.

대면에서의 가면은 나를 감추는 가면, 비대면에서 익명의 가면은 나를 드러내는 가면 같아 보인다.

 

 

 

 


 

 

 

결국 샹탈은 편지를 보낸 주인이 장마르크임을 알게 되고 그가 자신을 염탐해 떠날 구실을 찾고 있었다고 오해하게 된다. 연상인 샹탈은 연애의 약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을 빼고 난다면 경제력과 능력을 쥐고 있는 샹탈이 우세했다. 그녀는 그를 떠날 결심을 하고 무작정 런던행 기차를 탄다.

샹탈은 기차역에서 우연히 직장 동료들을 만나 합류하게 되고, 장 마르크는 그녀를 찾기 위해 헤매다 같은 열차를 타게 된다. 

 

(기차 안에서) 그녀는 명랑했고 그것이 그를 괴롭혔다. 그는 그녀에게서 본 적 없는 생동감에 가득 찬 그녀의 몸짓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하는 말은 들리지 않았지만 위아래로 정열적으로 움직이는 그녀 손이 보였다. 이 손이 그녀 손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의 손이었다. 샹탈이 그를 배신했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그건 별개다. 그녀는 더 이상 그를 위해 존재하지 않으며 다른 곳으로, 다시 만난다 해도 그녀를 바라볼 수 없는 다른 생으로 가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자신을 떠난 그녀의 모습이 명랑한 것에 대한 질투와 속상함 등으로 엉망이 된 장 마르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그녀가 인생의 전부와도 같았다.

 

당신을 알고부터 모든 게 달라졌어. 내 하찮은 일이 예전보다 흥미로워진 것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우리 대화 소재로 삼았기 때문이지.
샹탈은 자신의 희극적 상상에 몰입했고, 반면 장 마르크는 자기와 세계가 맺고 있는 유일한 감정적 관계가 그녀라고 생각했다.
그녀를 사랑하기 시작한 후부터 상탈의 죽음은 항상 그의 곁에 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어디서부터가 꿈인지, 누구의 꿈인지 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결국 그 소란스러운 소용돌이 끝에서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더 이상 당신으로부터 눈길을 떼지 않을 거야. 쉴 새 없이 당신을 바라보겠어. 
내 눈이 깜박거리면 두려워. 내 시선이 꺼진 그 순간 당신 대신 뱀, 쥐, 다른 어떤 남자가 끼어들까 하는 두려움. 
그냥 당신을 보기만 할 거야. 밤새도록 스탠드를 켜 놓을 거야. 매일 밤마다. 

 

 

 


 

 

 

이춘수의 시 <꽃>이 생각났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나는 너에게로 너는 나에게로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의미가 되고 싶다.

 

 

남편에게 장난처럼 "당신의 정체성이 뭐야?"라고 물으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하고 장난으로 받아친다.

정체성은 어쩌면 타인이 정의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떠어떠한 이미지로 다르게 기억되기 때문이다.

 

 

오래전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던 영어동화책 A Color of His Own(By Leo Lionni)의 내용은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쥐고 있는 듯하다.

 

모든 동물들은 자신만의 고유한 색이 있다. 

그러나 카멜레온은 그들이 가는 곳마다 색이 변한다. 노랑, 보라, 줄무늬로.......

자신의 고유한 색을 갖고 싶어 했던 카멜레온은 초록 나뭇잎 위에 계속 머물렀다.

가을이 오자 나뭇잎은 노랑으로 바뀌었고 카멜레온도 변했다. 다시 그 잎은 빨강으로 변하고 카멜레온도 그랬다. 

겨울이 되자 떨어지는 잎과 함께 카멜레온도 떨어졌다.

 

우울한 겨울을 보내고 봄이 되자 그는 다른 카멜레온을 만나게 되었다.

"Won't we ever have a color of our own?" (우리 자신의 색을 가질 순 없을까?}

"I'm afraid not" (유감이지만 가질 순 없을 거야) 

"But, why don't we stay together?" (그렇지만 우리 함께 지내면 어떨까?)

 

지혜로운 카멜레온의 제안으로 둘은 함께 머물며 어디를 가든 언제나 같은 색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의 고유한 색이 생긴 것이다. 

 

And they lived happily ever after.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행복했다.)

 

 

 


 

 

 

광고란 삶의 단순한 물건을 시로 변형한다는 거야. 그 덕분에 일상성이 노래하기 시작했다나. 

 

샹탈의 상사가 했다는 이 말은, "단순했던 존재의 이름을 불러주고 사랑을 주면, 생기 있고 명랑한 사람이 되어 현재를 즐기는 행복감을 맛볼 수 있을 거야"라고 들렸다.

 

 

우리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여러 가지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함께 할 누군가가 있을 때 나는 소중한 사람이 되며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

 

현재 나의 곁에 누가 있는지 돌아보자.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우리는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아닌 고유한 색을 지닌 나 자신이 될 것이다.

 

 

 

 

 

 

 

한가족 

숯불닭갈비

 

 

김유정문학촌 길 건너 보이는 식당으로 향했다.

철판에 볶아 먹는 닭갈비 대신 오늘은 숯불에 구워 먹는 닭갈비다.

 

 

 

 

 

식당 마당에는 아기자기한 분재와 소품들, 조형물이 있어 문학촌의 연장인 듯 보였다.

 

 

 

 

 

뼈를 잘 발라 여러 군데 칼집을 내고 달고 매운 양념을 한 닭고기를 철판 위에 올렸다.

타지 않도록 계속 뒤집다가 어느 정도 익었을 때 먹기 좋게 자른 후, 그제야 떡을 올리고 다시 구워주며 떡이 말랑해지기를 기다렸다.

 

 

 

 

 

먹음직스럽게 익은 고기를 상추와 깻잎에 싸서 쌈장과 고추를 넣어 먹으니 맛있다.

꼭 돼지갈비를 먹는 듯한 느낌과 맛이다. 

 

 

 

 

 

고기 몇 조각이 남았을 때 적당히 배가 불렀지만 막국수와 볶음밥을 주문했다.

매운 양념이 올려진 막국수도, 철판에 볶아먹는 그 맛과 같았던 밥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Cafe 

이디오피아 벳(집)

 

 

춘천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 단어들이 있다. 그중 공지천과 이디오피아는 한 세트다.

오늘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카페 이디오피아에서 커피 한 잔의 기회가 주어졌다. 

 

 

 

 

 

빨간 물이 든 나무에 고드름처럼 걸린 조명이 밤이 되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로스터리전문점이라는 이곳은 1968년이 시작이다.

입구부터 걸린 그림의 주인공은 이디오피아의 황제였던 하일레 슬라세 1세다.

 

6.25 전쟁 당시 UN 참전국이었던 이디오피아의 황제는 힘없는 한국을 돕기 위해 황제 근위병인 '킥뉴'부대를 파병했다.

6천 명 이상이 참전하여 춘전 일대에서 253회 전투에 참여하였다. 수백 명이 부상을 당하고 목숨을 잃었지만 단 한 명의 전쟁포로도 없었던 용감한 부대였다.

 

전쟁이 끝나고 1965년 군 철수를 하기까지도 우리나라의 전쟁고아들을 도우며 한국을 위해 희생했다고 하니 정말 고마운 나라요 황제요 부대였다.

 

 

 

 

 

춘천 시민들이 '킥뉴'부대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이디오피아 참전기념비를 세웠고, 1968년 춘천을 방문한 황제는 이디오피아의 문화를 알릴 수 있는 기념관 건립을 요청하여 그 해 반 지하 형태의 이디오피아 집이 탄생하게 되었다. 

 

이디오피아 벳(집)이란 이름과 현판도, 황제가 즐겨마시던 이디오피아 황실의 커피 생두도, 황제의 상징인 황금 사자모양의 사용도 모두 하일레 슬라세 황제의 배려였다.

 

 

 

 

 

온통 갈색으로 치장된 카페는 옆으로 공지천 일대를 감상할 수 있는 뷰를 가지고 있다.

중간에 문을 달아 더 길게 느껴지는 카페는 마치 배를 탄 듯 물 위에 떠있는 느낌이 들었다.

 

 

 

 

 

카운터 옆에서는 익숙한 이름의 커피 원두와 더치커피 등을 판매하고 있었고, 위로 다양한 메뉴들이 걸려있었다.

 

 

 

 

 

비엔나(7.0)와 바닐라라테(6.0)를 주문했다.

 

 

 

 

 

이디오피아 벳이라는 문구와 황금사자 문양은 잔과 쟁반에도 새겨져 있었다.

역사가 담긴 이 로고는 다른 카페의 그것들과는 달리 엄숙함마저 느껴졌다.

 

 

 

 

 

1974년 이디오피아가 공산화되며 황제는 폐위되었고, 여기저기 자신의 마음이 담긴 이곳을 방문할 수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되었지만, 그가 뿌린 씨앗이 지금은 이디오피아 수상부터 관광객들까지 찾는 명소이자 이디오피아 돕기 사업과 두 나라의 국제교류를 이어가는 끈이 된다고 하니 정말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다.

 

 

카페 앞으로 돔 지붕의 이디오피아 참전기념관과 기념탑을 바라보며 꿈만 같았던 일박 여행을 마무리했다.

돌아가는 길은 늘 그렇듯 뿌듯함과 아쉬움이 공존한다.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 생가를 보기 위해 온 이곳은 그야말로 작은 마을이다.

생가를 비롯해, 김유정 기념 전시관, 김유정 이야기집, 민속공예 체험관, 야외무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유정 생가

 

매표소에서 표(2,000)를 구입하면 생가와, 전시관, 그리고 김유정 이야기집 모두를 관람할 수 있다. 

문을 들어서면 김유정 생가가 자리하고 오른쪽이 김유정 전시관이다.

김유정 생가는 조카 김영수 씨의 기억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증을 통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작은 연못과 정자였다. 나름대로 다리도 놓고 구색을 갖추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대지주였던 김유정 일가는 소문난 부자였다고 한다.

 

 

 

 

정자 쪽에서 바라본 초가지붕 아래 커다란 집은 그 당시 지주들의 가옥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와지붕 건물은 김유정 기념전시관이다.

 

 

 

 

마당에 <동백꽃> 소설 속 장면을 동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점순이가 주인공 몰래 닭싸움을 붙이는 장면이다.

 

 

 

 

언덕을 오르니 전시관 옆으로 김유정 동상이 서있다. 얼핏 봐도 훈훈한 문학도의 모습이다.

 

 

 

 

당시 보기 드물었다는 'ㅁ'자 형태의 규모 있는 한옥이다. 기와 골격에 초가지붕을 한 건물은 낯설었다.

 

 

 

 

짚이나 갈대 등으로 이엉을 엮어 얹은 이유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집의 내부를 가리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전해진다.

굴뚝이 낮게 위치한 이유 중 하나도 밥 짓는 연기가 높게 올라가지 않도록 하여 끼니를 거르기 일수였던 이들에 대한 배려의 의미도 있었다고 하니 부자로 사는 것도 온전히 편안하고 행복한 일은 아닌 듯하다.

 

 

 

 

초가지붕 덕분인지, 최근 많이 보았던 조선의 궁궐과 양반가옥에 익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대지주의 건물이 정말 소박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가옥 옆 마당에서 <봄봄> 작품 속, 장인과 주인공이 점순이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강자와 약자의 갈등 관계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묘미가 있다. 그래서 비극적이기보다는 애잔하다.

 

 

 

 

구석에 자리한 우물과 지붕 아래 매달린 두레박도 볼 수 있었고, 디딜 방앗간 안에는 농기구들이 빼곡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방앗간 옆으로 외양간도 있으니 정말 없는 게 없다.

 

 

 

 

남편이 파노라마 기능으로 생가 일부를 담았다.

 

부족함 없는 소문난 부잣집임에도 보기 싫거나 거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안채에 걸려있던 겸허라는 글씨처럼 그들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슬픔, 실연의 고통, 투병 중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간 그의 열정, 이른 나이에 세상을 마감한 작가의 삶에 대한 아쉬움 등이 시끄럽게 머릿속을 떠 다녔다.

 

 

 

 

 

김유정 기념전시관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책 조형물에 봄봄의 첫 페이지가 적혀있다.

아담한 전시관이었지만 벽면을 두른 그의 생의 업적들과 이야기들은 방대했다.

 

 

 

 

이런 작품이 있었구나. 그의 지인들은 이랬구나. 연신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생가 대문을 나와 김유정 이야기집 쪽으로 이동했다.

 

 

 

 

 

김유정 이야기집

 

김유정 이야기집은 다양한 매체와 전시를 이용해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하게 공간을 꾸민 곳이다.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이야기를 듣는 듯 그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김유정 이야기집'.  딱 그렇다.

 

 

 

 

'들병이 사상'이 궁금해 검색해 보니 남편 있는 여인이 주막으로 돌아다니며 술과 몸을 팔는 것을 '들병이'라고 했단다.

들병이가 윤리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 살기 위해 행해졌던 이 일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나.

 

김유정은 소설 속에 지식인을 등장시켜 계몽을 외치지 않았다. 단지 지옥 같은 삶을 살아내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처절한 노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사실감 있게 그려낼 뿐이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최후는 가난 그리고 병과의 투쟁이었다. 결핵으로 투병하면서도 원고료 때문에 수필을,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 피를 토해내면서도 글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었다. 안쓰럽고 안타깝다.

 

 

 

 

3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업적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꽉 차있었는지 열정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이름을 붙인 책방과, 시청각실에서 상영되고 있는 작품 애니메이션 등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관람객을 위한 배려가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실레마을은 김유정 문학관이 있는 춘천시 신동면 일대를 칭하는 말로 그의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동네이다.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교과서에 실려 읽었을 <봄봄>과 <동백꽃> 외 다른 작품들도 감상한 후, 따뜻한 봄날, 정겨운 그림지도를 손에 들고, 여유롭게 마을을 걸어다니고 싶다.

 

 

 

 

 

 

 

 

 

비발디 파크

홍천

 

 

양평 용문사와 구름 정원 빵집을 들린 후 숙소로 향했다. 

 

휴가 철마다 아이들과 자주 왔었던 이곳은 콘도 내 부대시설이 다양해 늘 믿고 왔었던 곳이다.

단둘이 온 여행이 편하고 여유롭기도 했지만, 금세 아이들과 깔깔대던 그때가 생각난다. 

 

노래방에서 입을 벌려 노래하던 아이들, 탁구를 치며 땀을 흘리고, 볼링공이 옆으로 빠져 풀이 죽곤 했던 아이들.

숙소에서 과자와 라면을 먹으며 편한 차림으로 TV 시청을 하고, 늦게까지 자지 않으려 졸린 눈꺼풀을 억지로 들어 올렸던 그 모습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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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자리는 D동 9층이다.

 

D동 11~13층은 반려견들과 함께 숙박할 수 있는 소노 펫이었다.

체크인을 할 때부터 반려견들이 많이 보였는데 귀여운 강아지부터 세련되고 멋진 개들까지 정말 다양했다. 

E동은 전체 객실이 소노 펫이라고 하니 트렌드에 맞춰 가는 콘도의 부지런함이 놀라울 뿐이다.

 

 

 

 

짐을 내려놓고 콘도 주변을 산책했다.

여기가 단풍 맛집이다. 용문산의 황량함을 보고 콘도 역시 기대하지 않았는데 붉은 단풍이 아직 살아있다.

 

 

 

 

나뭇가지에 남아있는 단풍잎도 예뻤지만, 이미 떨어져 바닥을 덮고 뒹구는 붉은 낙엽들도 멋스러웠다.

여기저기 단풍꽃을 보기 위해 애를 쓰지만 예상치 않았던 곳에서 보석을 발견한다.

 

 

 

 

온통 붉은 잔디와 하얀 철제 벤치 그리고 부드러운 색의 하늘이 낭만적인 풍경을 완성해주었다.

 

 

 

 

둥근 모양으로 정리한 이 커다란 나무는 어울리지 않게 머리카락을 다듬은 듯 어색해 보였다.

 

 

 

 

 

지하 볼링장과 탁구장은 이미 빈 자리가 없었고, 범퍼카와 회전목마 등 놀이기구를 타려는 아이들, 스포츠 게임을 즐기는 성인들, 쇼핑을 하거나 식사를 하려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른 저녁을 먹기로 하고 그나마 거리두기가 되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동해횟집

 

모둠초밥(20.0)과, 대구탕(13.0)을 선택하고 둘만의 여행을 기념하며 맥주 한 병도 주문했다.

내내 빵만 먹었던 속이 뜨끈한 국물과 담백한 생선을 먹으니 편안해졌다.

 

 

 

 

식사 후 밤의 풍경도 담아보았다. 여기저기 번쩍이는 조명을 받은 콘도의 모습은 낮과는 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늦가을의 낮과 밤을 모두 볼 수 있어 행복한 하루였다.

 

 

 

 

9층에서 내려다 보이는 잔디는 반려견들이 뛰노는 운동장이다.

운동장에서는 사회자의 진행 소리와 함께 강아지들의 레이스가 이어졌고, 옆으로는 장작불을 태우며 도란도란 앉아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는 모습도 보였다.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장소처럼 보였지만, 조용한 여행을 기대하였던 다른 층의 사람들은 올라오는 장작 냄새와 반려견들이 짖는 소리가 그리 유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이 생을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각자 개인 취향에 따른 이러저러한 생활방식과 취미 그리고 여가활동들. 

멀리 오션월드가 보이는 콘도는 이 모든 사람들의 필요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주는 대단한 장소인 듯하다.

 

TV 시청과 주전부리를 먹으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내일의 일정이 기대도 되었지만 지나가는 하루가 아쉽기도 했던 밤이다.

 

 

 

 

 

 

 

또 한 번의 가을과 헤어지는 중, 일박 여행을 다녀왔다.

오색의 나무들이 군데군데 남아있고, 떨어져 카펫처럼 깔린 낙엽도 멋스럽지만 쓸쓸한 겨울 느낌이 스며있다.

 

 

 

용문산

용문사

 

 

용문산 관광단지는 볼거리가 다양하다.

친환경 농업박물관을 들려 전시를 보아도, 벽화 마을 쪽으로 가서 천천히 거닐어도 좋을 듯하다. 

우리는 천년 이상 살았다는 은행나무를 보기 위해 용문사로 향했다.

 

 

 

 

겨울 패딩을 챙겨 입으니 쌀쌀한 바람에도 춥지 않다. 오히려 맑은 날씨에 낮 기온이 오르면서 덥게 느껴졌다.

 

 

 

 

용문사로 향하는 입구로 들어서니 등산로가 이어진다.

 

 

 

 

경사가 급하지 않은 오르막이라 그리 힘들지 않다.

산길을 걸으며 느끼는 상쾌함과 고요함. 그 사이로 들리는 물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나뭇잎들이 거의 떨어져 황량해 보였다.

간혹 남아있는 손가락 모양의 붉은 잎들과 가지 끝에 걸린 마른 잎들마저 반가웠다.

천백 년 이상 되었다는 은행나무의 노란 빛깔도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했다. 

 

 

 

 

 

30분 정도 올랐을까. 머지않아 가지만 남은 나무가 눈에 띈다.

노란 잎을 남김없이 떨어뜨린 거대한 나무는 떨어진 열매들의 특유한 냄새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나무줄기 아래쪽에 혹처럼 큰 돌기가 나있다.

조선 고종이 세상을 떠났을 때 큰 가지 하나가 부러져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을 때 이 은행나무만 타지 않았는 이야기도 모두 신기하다. 천년 이상을 살며 용문사를 수호하고 있는 천왕목은 정말 신비로웠다.

 

 

 

 

노란 잎의 향연을 보지 못해도 아쉽지 않았다.

고목의 기둥과 굵은 가지, 잔가지들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수많은 가지들이 고상하게 뻗어있는 나무는 오히려 더 거대하고 웅장해 보이기까지 했다. 

 

떨어지는 어마어마한 양의 열매를 쉽게 걷기 위해 그물망이 깔려 있었고, 벼락으로 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한 피뢰 철탑도 세워져 있다.

 

 

 

 

사찰 뒤로 가을과 겨울 느낌이 공존하는 용문산, 그 위로 파란 하늘과 한 조각 떠 흘러가는 구름이 눈이 부셨다.

같은 길을 따라 내려가는 길, 맑은 물이 흐르는 소리는 여전히 청량했다.

 

 

 

 

 

Cafe

구름 정원 제빵소

 

용문사 근처에서 간단한 점심을 먹기로 하고 찾아간 베이커리 카페.

3층 건물 카페는 이름처럼 외관도 예쁘고, 야외에 마련된 좌석들도 분위기 있다.

 

 

 

 

좀 이른 감이 있지만, 문 옆에 마련된 크리스마스트리는 2021년도 끝에 거의 다다랐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한쪽 창가를 차지한 빵들은 종류가 정말 다양하고 맛있어 보였다. 영종도 한 빵집에서 줄이 길어 사지 못했던 연탄 빵의 맛도 궁금했다. 이럴 때 선택은 도무지 어렵다. 

몇 가지 Best Menu 중 쫀득쫀득한 구름 식빵이 먹고 싶었지만, 결국 비주얼이 화려한 크림빵을 골라 들었다.

 

 

 

 

이층 창가 좌석이 비어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고 조금 시간이 흘렀을 때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여유로운 테이블 간격 때문인지 그리 번잡하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길고 큰 테이블도 마음에 들었다.

 

 

 

 

베이커리 빵집임에도 음료의 가격이 싸지는 않다. 아메리카노(5.0)와 에이드(7.0)의 맛은 평범했다.

통단팥의 달달함과 코코넛 가루의 고소함이 좋았던 모카 코코넛 브레드(6.5).

단호박 요리 모양의 허니 치즈크림빵(10.0)은 겉 부분이 질긴감이 있고 치즈와 크림이 듬뿍 들어가 있다.

레몬향이 감도는 산뜻한 맛이 더해져 크림의 느끼함을 잡아주었다.

 

빵은 맛있었지만 둘이 먹기엔 양이 너무 많았다.

다른 손님들도 무리하게 고르고 남기는지 1층 입구 쪽에 셀프 포장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크림빵 포장이 어려워 보여 카운터에 부탁을 하니 케이스에 담아 종이봉투에 넣어 주셨다. 

내일 숙소에서의 아침식사다. 뿌듯했다.

 

 

일박 여행은 반나절 여행, 하루 여행과 다르다.

서두를 필요도 돌아갈 걱정도 없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좋다.

 

남편이 미리 예약해 둔 숙소로 가서 시간을 보내기로 하고 홍천 소노벨 비발디파크로 향했다.

늘 계획하고 신경 쓰는 남편이 고맙다.

 

살아가면 갈수록 삶은 쓸쓸하고 고통스러운 것임을 깨닫지만,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이 무엇인지도 알아가게 된다. 소소하고 잔잔한 평화로움. 순간순간 느끼는 찰나의 특별함을 잡아두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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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에 실린 소설 중 하나이다.

 

토니 다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정말로 토니 다키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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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코드 더미를 완전리 정리해버리고 나자, 토니 다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반복해 읽어 보았다.

토니 다키타니는 그저 토니 다키타니. 삶은 그저 고독과 외로움. 

그 사실은 변함없고 피해 갈 수 없다는 단호한 말로 들렸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

흑백영화에 안개가 더해진 느낌의 뿌연 화면은 원작의 쓸쓸함과 고독함이 실감 나게 전달되었다.

무엇보다 무채색 화면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과 삶의 소리들이 유난히 큰 소리로 다가왔다.

기차소리, 발걸음 소리, 문 닫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자전거 페달 돌리는 소리, 휘파람 소리..............

누군지 알 수 없는 내레이터의 음성은 소설을 그대로 읽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과 영화는 일치했다. 

 

 

토니 다키타니

 

그가 태어나고 사흘 만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미국식 이름 때문에 어려서부터 놀림을 받으며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았고,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잦은 연주여행으로 혼자일 때가 많았다.

그는 그런 사실을 특별히 괴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건 그에게 있어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굳이 말하자면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전제 조건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습관으로 고독에 익숙해진 토니 다키타니.

소설의 주인공이기에 특별한 인물처럼 보였지만 한참을 생각해보니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나마 상황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부와 명성을 얻게 된다. 

외롭고 고독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본인의 선택대로 그저 그런 인간관계를 맺고 지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현실적인 레벨을 넘어서는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또한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무실에 온 거래처 직원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섯 번째 만남에서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만 오래된 남자 친구가 있는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며 토니는 처음으로 고독이라는 것을 느낀다.

고독이 돌연 알 수 없는 무거운 압력으로 그를 짓누르며 고뇌에 빠지게 했다. 고독이란 감옥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을 둘러싼 벽의 두꺼움과 차가움을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그녀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난 이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공기처럼 따라다녔던 고독을 잊고 지냈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이후 고독했음을,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고독은 막을 내린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작스러운 그녀의 교통사고로 그는 또다시 고독한 방에 갇히게 된다.

이따금 그는 그 방에 들어가,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하니 있곤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물끄러미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죽은 사람의 그림자의, 그 그림자가 있었다. 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지나감에 따라 그는 차츰 예전에 그곳에 있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없게 되어갔다.
기억은 흔들리는 안개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모습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그것은 그림자의 그림자의, 또 그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리고 손에 만져지듯 느껴지는 것이라곤 예전에 존재했던 것이 뒤에 남기고 간 상실감뿐이었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의 그림자의 그림자, 그 그림자의 그림자, 또 그 그림자의 그림자.............

시간이 흐르며 기억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희미해져 갔다. 

 

 

 

토니의 아버지는 고독을 잊기 위해 떠돌이 트럼펫 연주자가 되었을까.

토니의 아내는 고독을 잊기 위해 수많은 고급옷과 구두를 사들였을까.

죽은 아내의 옷을 입고 근무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그녀는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 명품 옷들을 입어보며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고 고독했다는 것을 깨닫고 울음을 터트렸을까.

그가 아내를 만나며 느끼고, 아내를 잃고 느꼈던 고독처럼...........

 

 

우리는 '고독이 밀려왔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고독은 어쩌다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 아니고, 고독하지 않다는 착각의 시간들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텅 빈(사실은 고독으로 가득 찬) 푸른 방에 제아무리 살림살이를 들여놔도 그 방의 빈틈들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으리라.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_신형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것이 인생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억지로 그것을 떼어놓으려 하지도, 뭔가로 채우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이.

순간순간 고독이 밀려나는 찰나를 즐기며 그냥 사는 것이다.

 

토니 다키타니는 진짜 토니 다키타니이니까.

 

 

 

 

 

 

 

 

 

 

11월 초.

해마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이 즈음이 단풍 절정인 듯하다.

오늘은 조금 멀리 충남 독립기념관 내에 조성된 단풍나무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죽 대부

목천점

 

 

기념관에서 그리 머지않은 식당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

어죽? 이름만 들었을 때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모양과 맛이었다.

보양어죽(9.0) 두 그릇과 민물새우전(13.0)을 주문했다.

 

 

 

 

반찬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워 주었고, 대나무 채반에 담긴 전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새우가 아낌없이 들어간 전을 한 입 베어 씹으니 바삭거리는 식감과 새우 특유의 짜고 고소한 맛이 정말 별미다.

 

 

 

 

이어 나온 어죽은 추어탕과 비슷해 보였다. 국물을 떠먹어보니 비린맛이 전혀 없다.

얼큰한 짬뽕, 고소한 추어탕, 혹은 고추장찌개 등의 맛이 섞여 있었다. 맛있다.

수저로 휘저어보니 넉넉하게 들어있는 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죽이라기보다는 말은 느낌의 밥알이 들어있었다. 

국수를 먼저 건져 먹고, 수제비를 먹은 후 마지막으로 죽을 먹었다. 양이 무척 많아 밥은 조금 남겼지만 남편은 싹싹 비웠다. 특별하고 맛있는 식사에 정말 만족스러웠다.

 

 

 

 

 

 

독립기념관

 

 

주차를 하려는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미 길가에 세워 둔 차의 길이도 상당했다. 

주차장에 간신히 주차 후 들어서니 높게 치솟은 하얀 겨레의 탑이 보인다. 

탑을 지나 옆길로 단풍나무길이 이어진다.

 

 

 

 

 

단풍나무길

 

가을 단풍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한 시간 남짓, 혹은 조금 더 걸리는 이 반원의 길을 같은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양 옆으로 단풍나무가 간격을 맞추어 서 있다. 이런 곳은 처음이다. 

 

붉은 단풍이 눈을 자극하다가도 노란 은행잎과 갈색의 쓸쓸한 잎들이 연이어 지나가고, 상록수들이 초록을 뽐내며 어우러져야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온통 붉다.

단풍잎이 마르지 않고 색이 더 선명했다면 불 속에 뛰어든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직 채 물들지 않은 잎들과 간혹 보이는 초록의 잎들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경사진 길이 한참 이어지는 예상치 않았던 등산으로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길의 끝이 조금 반갑게 느껴졌다.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단풍나무길을 나와 조금 더 내려가면 뼈 아픈 역사현장이 나온다.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세운 조선총독부는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이었다.

광복 50년 만에 이 건물을 허물어 일재의 잔재를 없애고, 이곳 독립기념관에 그들의 만행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공원을 조성하였다.

 

 

 

 

기념관 서쪽에 자리한 이곳은 지는 해처럼 일본의 제국주의도 패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부서져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부자재들도 그들의 몰락을 상징한다.

 

 

 

 

갈수록 움푹 파인 구조에 반 매장되어있는 첨탑을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곳을 본다면 넓은 공간에 석조물을 전시해 놓은 근사한 곳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전시의 의도를 제대로 알고 엄숙하게 지켜봐야 할 장소이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공원을 떠났다.

맑은 하늘 아래로 청와대를 떠올리게 하는 파란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겨레의 집

 

 

독립 기념관의 상징건물인 이곳을 마주하니 오래전 아이들과 왔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때는 아이들과 전시실을 두루두루 다니며 관람하고 체험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십 년 전 그때와는 많이 다른가보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본 후 입구 쪽으로 향했다. 아직도 사람들은 넘쳐난다.

 

간혹 군복을 차려입은 아들들이 눈에 띄었다. 휴가 중 이곳을 방문하면 하루 휴가를 더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혹한다. 막상 군인들은 하루 버리고 하루 얻기 느낌인가 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광개토 대왕 비

 

나오는 길에 광개토대왕 비가 서 있어 의아했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거대한 비석을 이곳에 재현해 놓은 것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 대왕비. 중국까지 가서 이 비석을 보기는 어렵다.

주변국들이 이 비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현실도 우려스럽다.

이런 이유에 대응하고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고자 설립되었다고 한다.

 

 

 

단풍나무로 뒤덮인 숲길, 버스킹 하는 가수들의 소리, 독립 기념관답게 곳곳에 전시된 역사의 현장들, 맑은 하늘과 늦가을답지 않게 따뜻했던 날씨가 오늘을 의미 있는 하루로 만들어 주었다.

 

위드 코로나가 실감 나게 곳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니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상을 조금씩 찾아간다는 생각에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다.

 

지나가는 가을이 아름답다.

 

 

 

 

 

 

 

 

독립기념관 근처에 있는 천안 커피

 

Coffee Works

 

 

 

 

 

심플하고 깨끗한 외관은 외딴곳에서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카페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입구를 들어서니 모던하고 깔끔하다.

 

 

 

 

 

커피머신에 붙은 노란 리본이 한눈에 띄었고, 흰 벽에 붙은 '커피 플레이보 휠'도 반갑다.

카페의 외관과 카운터부터 마음에 들었다.

 

 

 

 

 

한쪽 코너에는 갤러리 느낌의 작은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천장에서 다른 길이로 내려온 알록달록한 한복 조각들, 작은 소녀상과 빈 의자에 걸린 세월호 리본, 스틸 그릇에 담긴 배지와 영문으로 쓰인 메시지.

 

예사롭지 않은 카페다.

 

 

 

 

 

카운터 앞 쪽으로 놓인 긴 테이블 위에는 아담한 사이즈의 커피 원두와 장애 아동들이 그린 그림이 담긴 엽서를 전시 판매하고 있었다. 

 

 

 

 

 

한쪽 벽면을 차지한 소박한 책꽂이에는 눈에 익은 책 몇 권이 전시되어 있었다.

인테리어나 소품, 전달하는 메시지가 확실해 보이는 이 카페가 더 궁금해졌다.

 

 

 

 

 

복층으로 되어있는 카페 1층은 중간에 긴 테이블, 창 옆으로 소파 자리, 편안하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어 다양한 매력을 준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다락방 느낌의 공간에 아담한 창과 몇 개의 테이블이 더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도 아늑하고 좋다.

 

 

 

 

 

나는 계절이 느껴지는 단풍 라테를(5.5), 남편은 갈증을 해소시켜 줄 자두 에이드(5.5)를 주문하고 야외 테라스로 나갔다.

찬 가을바람이 아직은 견딜만해 자리를 잡았다.

 

 

 

 

 

낮은 담 울타리 너머로 보이는 시골 풍경이 너무 좋았다.

모내기 후 싱싱한 초록의 논도 예쁘고, 추수 전 풍요로운 황금 들판도 멋진 풍경이었으리라.

 

황량한 논 중간중간 세워져 있는 대형 마시멜로 모양의 곤포 사일리지.

볏짚에 발효제를 뿌린 후 돌돌 말아 비닐에 꽁꽁 싸 둔 곤포는 발효 후 배합사료에 섞어 소먹이로 쓰인다고 한다.

힘들었을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하고, 볏짚까지 정리해 둔 농부들의 안도와 편안함이 느껴졌다.

추수를 끝낸 논을 바라보는 것 또한 즐겁다.

 

 

우유가 들어간 음료였음에도 커피 원두 맛이 좋다는 느낌이 들었다.

카페 메뉴로는 낯선 자두 에이드를 남편은 연신 맛있다며 마셨다. 

 

음료의 퀄리티도, 다양한 매력의 공간도, 카페의 참여와 연대도, 계절마다 변할 시골 풍경도 좋다.

단풍나무길을 걷는 것도 좋았지만 천안에서 마신 커피도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계절>

 

 

저자는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일했었고 지금은 독서교실을 운영한다.

어린이들과 생활하며 경험하고 느낀 생생한 후기이다.

 

제목처럼 어린이들은 하나의 세계다. 그들만의 독특한 세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우리도 그 시절을 지나쳐 왔지만 그들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기억이 나지도 않거니와 세상이 많이 변했기 때문이다.

 

 

 

어린이가 '피어 보지도 못했다'는 표현이 있었다. 글을 쓴 분의 안타까워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는 틀린 비유라고 생각한다. 내가 아는 삶은 그런 게 아니다. 삶의 순간순간은 새싹이 나고 봉우리가 맺치고 꽃이 피고 시드는 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지나고 보면 그런 단계를 가졌을지 몰라도,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은 똑같은 가치를 가진다. 내 말은 다섯 살 어린이도 나와 같은 한 명의 인간이라는 것이다. (p.163)

 

위의 글을 읽는 순간 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메시지라는 느낌이 들었다.

살아 있는 한 모든 순간이 똑같은 가치를 지니듯, 어린이도 청소년도 어른도 모두 동일한 인격체라는 것. 

다수자던 소수자던 누구 하나 소홀히 대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 모두를 존중하고 대접해야 한다는 것 말이다.

각자의 세상에는 비밀스럽게 고귀하고 아름다운 것이 있다. 

 

 

 

 

아동을 놀리기 좋은 상대로 바라보고, 울리고 싶어 하며, 감상하며 즐거워하는 태도를 우리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심지어 TV 프로그램에서 조차도 말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바르게 자랄 수 있도록 보듬어주고 교육하고 지켜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나보다 약하고 부족하며 한 수 아래의 존재라고 생각하는 어른은 미숙하다. 

 

나 역시도 매일의 삶 속에서 어린이들을 만난다. 

한 존재 한 존재를 얼마나 존중하며 대하고 바라봤는지, 나는 미숙한 어른이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그들만의 세계를 존중하고 느긋한 어른이 되도록 기다려주며 나 또한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야겠다.

 

책 말미에 <내가 바라는 어린이날>에 대한 작가의 생각은 참신하다.

 

어린이들에게는 서운한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어린이날이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날에 그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어린이가 '해방된 존재'가 맞는지 점검하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방된 사람들답게 자유로운지, 안전한지, 평등한지, 권리를 알고 있으며 보장받고 있는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점검하고 잘못된 것을 고쳐 나가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어린이날은 지금보다 훨씬 거창한 하루가 되어야 한다. (p.239)

 

이런 하루를 위해 작가가 제시한 예들은 훌륭하다.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잘 정리해 실행해도 좋을 것 같다.

 

그 시작은 어린이날 어린이들 가슴에 달릴 커다란 새싹 모양 배지다.

 

 

 

 

 

 

 

 

오랜 친구들을 만났다. 코로나 이후 처음이다.

여기저기 흩어져 살아 중간지점인 강남에서 만나곤 했었다.

 

2년 만에 탄 빨간 좌석버스는 그새 요금도 올랐고 좌석 앞에 핸드폰 충전장치까지 생겼다.

편안한 자세로 등을 맞춘 후 차창으로 지나치는 가로수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설렌다. 

 

친구들과의 만남도, 시야 가득 물들고 있는 가을도, 좌석버스에 기댄 나의 모습도, 이어폰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도, 목적지가 강남인 것도 모두 나를 설레게 했다. 

 

 

 

 

남양성모성지

다음 날은 남편과 화성시 남양 성모성지를 찾았다.

불타는 듯한 단풍나무, 노란 은행나무, 갈색으로 물드는 느티나무, 미처 물들지 않은 초록잎들이 어우러져 화려하다.

 

 

 

 

어찌 이리 다른 색감으로 물드는지 사람과 같다.

다른 색, 다른 속도로 물들어 간다. 다른 모양 다른 속도로 떨어진다.

 

 

 

 

다채로운 봄꽃도 화려하고, 여름의 초록잎도 싱그럽지만, 적색, 황색, 갈색 꽃이 최고다.

나무 전체에 피는 강렬한 꽃을 당해낼 수 없다.

 

아카시아 꽃잎이 떨어지듯, 단풍이 떨어진다. 

하늘거리며 떨어지는 잎이 외로워 보이고, 낙엽들의 바스락 거림이 쓸쓸하다.

강렬한 꽃은 남김없이 떨어져 나무는 더 외롭다.

 

 

 

 

오랜만에 만나 소식을 들은 친구들의 안부는 예전보다 더 공감되고 마음이 쓰인다.

세월의 후반으로 함께 달려가는 동지 같은 느낌이다. 

 

성지에서 돌아오는 차창 밖으로 커다란 갈색 꽃이 나린다.

쓸쓸하고 외로워 보여 눈가가 붉어졌다. 

 

차고 쓸쓸하지만 가을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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