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층은 무대 중앙, 2층은 무대 좌우 화면에서 한국어 자막이 나왔다. 2층 앞쪽에서 관람했는데 자막을 읽으려니 무대 퍼포먼스에 집중이 되지 않아 자막은 대충 보면서 공연에 집중했다. 잘 알려진 내용과 배우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니 자막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다.
플라멩고 춤이 정말 인상적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스페인 플라멩고 댄스팀이 함께 했다고 한다. 유럽 배우들의 피지컬이 좋고, 동작마다 힘이 있어 인상적이었고 노래 역시 실력 있었다. 특히 돈주앙 역할을 맡은 지안 마르코 스키아레띠 배우의 연기가 좋았고, 마리아 역의 레테시아 카레레의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사랑, 그대는 바로 악의 신이로다.
돈주앙이 기사에게 받은 저주는 진정한 사랑이다. 사랑이 저주라니...
방탕한 생활을 했던 돈주앙은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사랑은 사람을 변화시킨다더니 배우가 그 감정을 잘 표현한 것 같다.
마침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고 있었고 사랑으로 고통받는 테레사를 생각했다. 사랑과 질투, 축복과 저주, 행복과 고통은 함께 존재한다.
돈주앙과 토마시의 방탕함은 인생을 가볍게 만들었지만, 진정한 사랑을 만난 이후 그들의 삶은 무거워졌다. 무엇이 좋은가? 가벼운 것이? 무거운 것이?
응급차가 수시로 도착하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링거를 꽃은 채 돌아다니는 강북 삼성병원 내에 위치한다.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 장소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오랜 세월 경교장은 잊혔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경교장을 위협하고 있는 듯 병원 건물이 뒤에 바짝 서 있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입구를 들어서자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 건장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해방 후, 친일파 사업가 최창학은 자신의 저택을 김구 선생에게 빌려주었고, 이곳이 대한민국 임시청사로 사용되었다.
경교장의 원 모형이 축소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주차장과 병원 건물들로 분주한 저택의 외부에는 원래 정원과 한옥이 있었다고 한다.
지하부터 2층까지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곳곳에 있는 사진 자료들과 비교하며 천천히 둘러보니, 오랜 세월 다른 곳으로 이용되었지만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해 놓은 듯했다.
1층에 있는 귀빈 식당은 그의 서거 후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1층 관람 후, 지하로 내려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과, 임시정부 요인들 그리고 그의 생전 자료들과 유품 등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아 고요해서인지 알 수 없는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한 자 한 자 차분하게 읽어보니, 파란만장했던 경교장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피로 물든 그의 저고리가 세월과 함께 색이 바래고 흐려져 있다.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겼을 그가, 같은 민족의 손에 허무한 죽음을 맞다니 정말 비통할 뿐이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 당일, 서로 맞바꾼 회중시계를 김구 선생은 늘 지니고 다녔다 한다.
"우리 지하에서 만납시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는 그렇게 결연하고 슬프게 현실이 되었다.
온전한 독립을 꿈꿨고, 부강한 나라보다는 아름다운 나라를 바랐던 그의 소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부와 힘, 결코 부리지 않은 욕심,그 당연하고 소박한 꿈은 정녕 이룰 수 없는 것일까?
반복되는 역사를 바라보며 잡을 수 없는 그 빛에 가슴이 무너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양 쪽으로 두 군데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암살자 안두희가 올라갔는지 궁금했다.
그의 침실 창 옆으로 책상 하나. 이곳에 앉아 있는 김구를 향해 육군 소위 안두희는 4발의 흉탄을 발사한다.
뒷 유리창에 새겨진 흉탄의 흔적을 선명히 볼 수 있었는데 사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음이 무거워졌던 2층 전시를 끝으로 경교장을 나왔다.
해방 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저택을 빌려주었을 친일파 최창학, 누군가의 사탕발림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협박으로 침묵했을 안두희, 그 모든 것을 조장했을 엄청난 배후세력.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삶의 노선을 정한 사람들이 그때도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한여름 더위가 시작된 듯 햇살이 따가웠다.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홍난파 가옥
근린공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머지않아 <고향의 봄> 작곡가 홍난파가 생의 마지막 6년을 보낸 집이 보였다.
내부 관람은 할 수 없었지만, 담쟁이로 덮인 적벽돌 2층 가옥은 아담하고 예뻤다.
독립운동에서 친일로 이어진 그의 생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죽은 자에 대한 모든 말은 확인받을 방법이 없다.
딜쿠샤
감각적인 현대식 아파트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큰 은행나무 근처 붉은 벽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페르시아어로 딜쿠샤(DILKUSHA)는 '기쁜 마음'이라는 뜻이다.
미국인 테일러 부부가 머물던 공간이다. 앨버트 W. 테일러는 광산 기술자 아버지를 돕기 위해 조선에 입국한 후, 광산과 상회를 경영하기도 했다. 1919년 연합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고종 국장, 3.1 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취재하였다고 한다. 1942년 외국인 추방령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한 후 테일러 부부는 늘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다른 집, 세 곳을 보았다. 경교장, 홍난파 가옥, 딜쿠샤.
1930년대 어느 시기에는 머지않은 곳에 사는 이웃이었을 최창학, 홍난파, 테일러 부부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들만의 사연들이 있을 법도 하다.
Cafe Loco Fefe
병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 꿈길에나 볼 법한 Cafe들이 연이어 있고 꽃과 화분으로 치창된 화원이 있는 공간이 있다. 그중 초록 문의 한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는 맛있었고 가격도 적당했다.
매해 연말, 하나의 공연으로 한 해를 잘 살았다는 상을 주곤 했던 일이 코로나로 두어 해 어려웠었다.
여전히 폭발하는 확진자 속에서 사람들은 살 길을 찾고 있었고 공연계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공연 관람을 위해 대학로를 찾았다.
대학로
늘 무엇에 홀린 듯 멈춰, 고 김광석을 추억하게 되는 학전 소극장엔 오늘도 어린이 연극 포스터가 내걸려 있었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대형 트리가 아직 남아있어 반가웠다.
늦은 감이 들었지만, 트리 앞 빨간 조끼와 같은 색 모자를 쓴 눈사람 사이 벤치에서 사진도 찍었다.
밤이면 불을 밝힐 라이트 박스에는 힘들게 한 해를 보낸 시민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들이 새겨져 있었다.
공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이화장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저인 이곳은 그의 동상과 역사자료, 사용했던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2022년까지 예정된 안전시설 설치공사와 전시관 신축공사로 입장할 수는 없었다.
아이띵소 아카이브
ithinkso Archive
여느 Cafe와 다른 분위기에 소심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이곳은 지하는 전시장, 1층은 카페, 2층은 가방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쇼룸이었다.
좌석은 창가 자리뿐이었고 커피머신에서 추출되는 단출한 메뉴는 Cafe라고 하기에는 어색했지만, 은은한 색감의 원목과 여유롭게 꽂혀있는 책들, 곳곳에 놓인 푸른 식물들과 다양한 소품들의 조화는 여유로운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책, 향초, 액세서리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아기자기했고, 해외여행 시 신비로운 소품샵을 방문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연신 감탄하며 둘러보았고, 남편은 폰카메라를 부지런히 눌렀다.
친절한 직원분 덕에 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전시가 열릴 때는 지하 1층도 관람 가능하지만 오늘은 전시가 없는 날이었다. 2층 쇼룸으로 올라가 보았다.
편안하게 샘플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심플한 디자인의가방과 파우치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었다. 가방을 들어보고 메 보기도 하니 세련돼 보였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커피는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3,000원이었고 우리는 단 하나의 창가 자리에 운 좋게 앉을 수 있었다.
밖으로 방송통신대학교의 붉은 건물과, 안으로 초록 정원을 바라보며 마시는 라테의 맛이 무척 좋았다.
연극 공연에 앞서 좋은 전시를 본 느낌이 들었다.
늘근 도둑 이야기
유니플렉스 극장 3관
오늘의 하이라이트 연극 관람이다.
박철민 배우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대가 되었다.
2열이 제일 앞자리다. 이 연극의 앞자리 관객은 각오를 해야 했다. 배우들은 공연 중 수없이 눈을 마주치며 관객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었다. 다행히 젊고 발랄해 보이는 사람들이 양 옆으로 많이 있어 우리는 부담스러운 참여는 피해 갈 수 있었다. 무대가 한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연극은 앞자리에서 보는 묘미가 있다.
대통령 취임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더 늙은 도둑(노진원)과 덜 늙은 도둑(박철민)이 노후 대비 마지막 한 탕을 하다 붙잡혀 수사관(이호연)에게 조사받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 극이다.
큰 줄거리 없이 배우들의 대사와 애드리브 그리고 관객의 참여로 이루어진 연극은 배우들의 열정과 연기력이 정말 대단했다. 오랜만에 배꼽이 아플 정도로 웃어봤다.
대사에 나오는 정치 풍자와 사회적 이슈 등은 유쾌함을 가릴 정도의 진지함보다는 스치듯 지나가며 잊지 않게 기억을 더듬어 주었다. 생각해 보니 코미디 장르에 그 정도가 최선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문화역 284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걸었다. 뒤로 고가도로를 개조해 만든 보행공원 서울로 7017이 보인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서소문 역사공원 팻말과 함께 목적지를 알리는 화살표가 반갑다. 선명하고 강렬한 붉은빛의 벽돌은 이곳이 성지임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이 장소는 조선시대 성리학에 반하는 이들과 천주교도들의 공식 참형지였다. 그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금의 박물관은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선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넓은 길로 들어서자 좁은 길이 나온다.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환한 빛이 네모진 문에 가득하다.
길의 끝가지 와서 돌아보니 다시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신비롭다.
박물관 입구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순교자의 칼'과 '수난자의 머리'.
시작부터 고개를 숙이게 하는 분위기에 절로 경건해졌다.
건물을 들어서니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안내하시는 분들마저 차분하시다. 낮은 천장 아래 넓은 홀을 여유롭게 차지한 작품들은 더 고귀해 보였다.
브론즈에 새겨진 글들을 읽으니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는 삶의 무거움이 느껴져 잠시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는데,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련되고 절제된 인테리어가 멋스럽다. 이제껏 보았던 다른 장소들과는 색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한 층을 내려가 보았다.
특별전시로 정희우 작가의 <풍경이 된 기호>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 종로거리와 서울역 부근의 풍경을 기록한 이 전시는 주로 탁본으로 이미지를 뜬 작품들이었고 담벼락이나 간판 그리고 표지물들의 이미지를 기록하여 잊혀져가는 시간을 담고 있었다.
서울역 주변의 모습을 담은 수묵채색화도 만날 수 있었는데 정겹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새롭고 특별한 전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Consolation Hall로 내려가 보았다.
위로와 위안의 방 답게 어두운 조명이 비추고, 사방을 둘러싼 대형 스크린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이 은은한 소리를 내며 상영되고 있었다. 성인 다섯 분의 유해를 모신 곳 위로 빛이 어루만지 듯 비추고 있고 기다란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거나 조용히 쉬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요히 앉아 계절이 지나가듯 흘러가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야외광장이 보인다. 광장으로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서있는 사람들은 순교하신 분들의 형상일 듯 하였다.
같은 층의 상설전시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미래의 모습을 그린 <더 기버> 같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간이다. 역시나 넓은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절제된 전시 내용은 여느 박물관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천주교의 역사뿐 아니라 서소문 지역의 이야기 등 다양한 전시 내용을 만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검을 중심으로 외벽에 새겨진 년도 1801, 1839, 1866.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며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교인들을 가슴에 새겨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한국 천주교 최대의 순교성지인 이곳,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한 번쯤 꼭 방문해야 할 장소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