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연말 공연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학전 소극장이 내년 초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맘이 좋지 않다.

고 김광석의 천회 공연을 그 좁은 공간에서 봤었고, 남편과 연애 초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봤던 곳.

시간이 흘러서도 대학로에 들릴 때면, 김광석 흉상을 보기 위해 매번 찾았던 곳.

 

언젠가부터 아이들 연극 포스터가 걸려있어, 쉽사리 가게 되지 않았던 그 지하의 좁은 공간.

 

 

 

 

 

94년에 초연이 있었고, 우리는 95년 6월 24일 공연을 봤었다.

공연 중 대학로 일대 전기가 나갔고, 극을 멈추어야 했던 상황이었음에도, 어둠과 정적 속에서 배우들이 열심히 스텝을 밟으며 춤을 췄던 그 기이한 순간이 기억난다. 우리는 기다렸다 다음 공연을 봤었다.

 

그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아침 이슬>의 김민기, 학전 소극장,  그리고 쓸쓸했던 시절 지하철 1호선을 탔던 소외된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해져 <지하철 1호선>을 깊이 기억하게 되었었다.

 

 

 

 

 

28년이 지나 학전의 마지막 소식을 접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 공연을 보았다.

''6시 9분 서울역~'' 오프닝 곡이 울리자 마법같이 노래가 기억나며 심장이 두근, 

무수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동, 또 감동이었다.

 

 

 

 

 

이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픈 마음에 우리 부부는 대학로에 더 오래 머물렀다.

학전 소극장의 구제를  간절하게 소망하며......

 

 

 

20대 꿈과 같던 시절, 50대가 된 지금.

거의 30년 세월의 촘촘한 사연들 사이에서 <지하철 1호선>의 추억은 묘한 끈으로 나의 인생을 이어주고 있었다.

 

 

23년 연말, 대학로 거리에서의 추억이 또 포개진다. 따뜻한 눈처럼.

 

 

 

 

 

 

 

 

 

 

크리스마스이브.

한 해의 마무리로 선택한 연극은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다.

어쩌다 보니 대학로를 자주 가고 있지만, 크리스마스에 이보다 좋은 장소 찾기가 쉽진 않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 일찌감치 도착한 인도커리 전문점, 니로사 레스토랑.

연말답게 날이 정말 추웠고, 오픈 시간 전에 도착한 우리는 미처 따뜻해지지 않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시금치 커리에 고소하고 달콤한 두 가지의 난과 밥을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추위를 피해 한 카페로 들어갔다.

스며드는 따스함이 고마운 2층 창가에서 극장을 내려다보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뮤지컬은 최고였다.

이층으로 꾸며진 무대, 강렬하게 시작한 음악과 노래, 배우들의 진심이 담긴 연기, 소외된 계층에 대한 메시지, 삶에 대한 연민 등 정말 감동적이었다. 1막이 끝나고 2차 관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래> 뮤지컬 음원이 있어 다운로드하여 듣고 있다. 모든 곡들이 참 좋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뮤지컬 <빨래> 중 빨래

 

 

 

 

 

해를 보내고 설 연휴 첫날,

이번에는 온 가족이 빨래를 관람했다. 

 

주연 남녀 배우만 바뀌고 대부분 같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

모두 연기와 노래를 정말 잘한다. 다시 봐도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아들도 딸도 각자의 생각과 느낌대로 재미있게 뮤지컬을 보았다.

 

 

 

대학로에서 자녀들과 함께 한 하루는 벅찼다.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좋은 연극을 보고, 우리 부부가 늘 가던 카페에서는 특별히 케이크도 주문했다. 아들이 추천한 즉석 떡볶이도, 딸이 좋아하는 카페에서 과일이 넘치도록 담긴 빙수도 먹었다.

 

어둑한 대학로 거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 행복했다.

 

 

 

 

 

 

 

 

 

경교장.

이름도 생소한 이곳은 있는 곳도 낯설다.

응급차가 수시로 도착하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링거를 꽃은 채 돌아다니는 강북 삼성병원 내에 위치한다.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 장소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오랜 세월 경교장은 잊혔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경교장을 위협하고 있는 듯 병원 건물이 뒤에 바짝 서 있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입구를 들어서자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 건장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해방 후, 친일파 사업가 최창학은 자신의 저택을 김구 선생에게 빌려주었고, 이곳이 대한민국 임시청사로 사용되었다.

경교장의 원 모형이 축소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주차장과 병원 건물들로 분주한 저택의 외부에는 원래 정원과 한옥이 있었다고 한다.

 

 

 

 

 

지하부터 2층까지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곳곳에 있는 사진 자료들과 비교하며 천천히 둘러보니, 오랜 세월 다른 곳으로 이용되었지만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해 놓은 듯했다. 

 

 

 

 

 

1층에 있는 귀빈 식당은 그의 서거 후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1층 관람 후, 지하로 내려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과, 임시정부 요인들 그리고 그의 생전 자료들과 유품 등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아 고요해서인지 알 수 없는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한 자 한 자 차분하게 읽어보니, 파란만장했던 경교장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피로 물든 그의 저고리가 세월과 함께 색이 바래고 흐려져 있다.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겼을 그가, 같은 민족의 손에 허무한 죽음을 맞다니 정말 비통할 뿐이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 당일, 서로 맞바꾼 회중시계를 김구 선생은 늘 지니고 다녔다 한다.

 

"우리 지하에서 만납시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는 그렇게 결연하고 슬프게 현실이 되었다.

 

 

 

 

 

온전한 독립을 꿈꿨고, 부강한 나라보다는 아름다운 나라를 바랐던 그의 소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부와 힘, 결코 부리지 않은 욕심, 그 당연하고 소박한 꿈은 정녕 이룰 수 없는 것일까?

 

반복되는 역사를 바라보며 잡을 수 없는 그 빛에 가슴이 무너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양 쪽으로 두 군데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암살자 안두희가 올라갔는지 궁금했다.

 

 

 

 

 

그의 침실 창 옆으로 책상 하나. 이곳에 앉아 있는 김구를 향해 육군 소위 안두희는 4발의 흉탄을 발사한다.

 

 

 

 

 

뒷 유리창에 새겨진 흉탄의 흔적을 선명히 볼 수 있었는데 사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음이 무거워졌던 2층 전시를 끝으로 경교장을 나왔다.

해방 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저택을 빌려주었을 친일파 최창학, 누군가의 사탕발림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협박으로 침묵했을 안두희, 그 모든 것을 조장했을 엄청난 배후세력.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삶의 노선을 정한 사람들이 그때도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한여름 더위가 시작된 듯 햇살이 따가웠다.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홍난파 가옥

근린공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머지않아 <고향의 봄> 작곡가 홍난파가 생의 마지막 6년을 보낸 집이 보였다.

내부 관람은 할 수 없었지만, 담쟁이로 덮인 적벽돌 2층 가옥은 아담하고 예뻤다.

독립운동에서 친일로 이어진 그의 생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죽은 자에 대한 모든 말은 확인받을 방법이 없다.

 

 

 

 

 

딜쿠샤

 

감각적인 현대식 아파트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큰 은행나무 근처 붉은 벽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페르시아어로 딜쿠샤(DILKUSHA)는 '기쁜 마음'이라는 뜻이다.

미국인 테일러 부부가 머물던 공간이다. 앨버트 W. 테일러는 광산 기술자 아버지를 돕기 위해 조선에 입국한 후, 광산과 상회를 경영하기도 했다. 1919년 연합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고종 국장, 3.1 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취재하였다고 한다. 1942년 외국인 추방령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한 후 테일러 부부는 늘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다른 집, 세 곳을 보았다. 경교장, 홍난파 가옥, 딜쿠샤.

1930년대 어느 시기에는 머지않은 곳에 사는 이웃이었을 최창학, 홍난파, 테일러 부부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들만의 사연들이 있을 법도 하다.

 

 

 

 

Cafe Loco Fefe

병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 꿈길에나 볼 법한 Cafe들이 연이어 있고 꽃과 화분으로 치창된 화원이 있는 공간이 있다. 그중 초록 문의 한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는 맛있었고 가격도 적당했다. 

 

 

잠깐의 휴식과 함께 여러 가지 감정과 많은 생각을 부른 시간여행을 마무리했다. 

 

 

 

 

 

 

 

 

 

 

 

애타게 기다리는 누군가가 돌아오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

연극 <돌아온다>. 

결국 다시, 올 것이라는 확신에 찬 기운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초여름 예술의 전당은 푸르고 맑았다.

오페라하우스, 한가람미술관, 서예박물관, 음악당 등 전시공간과 야외무대를 갖추고 있는 이곳은 정말 거대했다. 수십 가지의 목적을 가지고 왔을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은 저마다 행복해 보였다.

 

 

 

 

둥근 오페라하우스 옆, 음악분수 근처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계의 두 바늘이 겹쳐지자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분수쇼는 시작되었고, 음악의 클라이맥스 부분과 마지막에 거대한 물줄기가 솟구쳐 올랐다 떨어졌다.

 

주위의 모든 것들이 영화에서나 볼법한 세련되고 여유로운 풍경처럼 느껴졌다.

 

 

 

 

 

CJ 토월극장

 

 

 

오페라하우스에 자리한 CJ 토월 극장 로비에는 연극을 홍보하는 거대한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기둥마다 출연자들의 얼굴이 담긴 포스터가 둘러져 있었다.

 

 

 

 

출연진들의 연기가 담백하고 좋았다. 주연 조연의 차이 없이 모두 감동적인 연기를 보여 주었고, 무거운 이야기임에도 중간중간 유머 코드가 극을 지루하지 않게 만들었다.

 

"여기서 막걸리를 마시면 그리운 사람이 돌아옵니다."

막걸리를 파는 한 식당 벽에 걸린 글씨에 의지해 매일같이 이곳을 찾는 사람들.

이들은 사랑하는 이를 극적으로 만나기도 하고, 기다리던 이가 영영 돌아오지 않기도, 오히려 그를 떠나보내기도 한다.

 

 

 

 

 

기다리던 아들의 제대 소식이다. 

 

'기다린다'가 이제 이번 주말이면 '기다렸다'로 바뀐다. 

입대 초기, 슬프고 아픈 기다림이었다면 지금은 행복하고 설렌다.

 

아들의 제대 후, 또다시 무언가를 향한 기다림은 계속되겠지만, 기다림과 그리움이 있기에 우리의 삶은 빛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다리는 모든 사람들에게 '돌아온다'라는 메시지는 희망이요, 행복이다.

 

 

 

 

 

 

연이틀 대학로를 찾았다.

달달한 초콜릿을 아예 안 먹으면 몰라도 하나 먹으면 자꾸 손이 가는 것처럼, 오래 잊고 있었던 연극을 하나 보니 그 매력에 이끌려 또 찾게 된다. 오늘도 유료주차장에 종일 주차를 신청해 두고 낙산공원 쪽으로 올라가 보았다.

 

 

 

 

허름하고 인적이 드문 거리는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소박하고 정겹다.

 

 

 

 

흐렸던 하늘은 점차 여린 하늘빛을 띄었고, 벽화 마을답게 건물 벽 군데군데 칠해진 선명한 페인트의 색은 거리를 특별하게 만들어 주었다.

 

 

 

공원 쪽으로는 계단으로도 성곽길로도 올라갈 수 있다.

천천히 오르다 보니 벽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천사 날개가 파란색의 벽에 그려져 있었다. 옆으로 주택들이 많았는데 눈이 많이 오면 어떻게 다닐까 걱정스러웠다.

 

 

 

 

지난해 낙산 공원 가는 길에 들렸던 개뿔 카페는 갤러리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

7,000원 음료 교환권을 구입하면 음료는 물론, 연결된 모든 박물관 관람이 가능했다.

지난번 방문했을 때, 카페라기에는 박물관 느낌이 더 난다고, 이곳에서 커피만 마시기는 아깝다고 생각했었는데 주인장의 부지런함과 아이디어가 결실을 맺은 듯하다.

 

 

 

 

낙산공원 조망지점까지 올라가 숨을 한번 가다듬고 대학로 쪽으로 내려왔다. 차가운 아침의 바람과 공기가 상쾌했다.

 

 

 

 

 

생일에 받았던 모바일 쿠폰을 쓰기로 하고 들어간 스타벅스.

공간은 작았지만 3층으로 올린 건물이라 앉을만한 자리가 꽤 있었고, 우리는 대학로 거리가 내려다 보이는 2층 통유리 창 곁에 자리를 잡았다.

 

어느새 겨울이 지나가고 있는지 두꺼운 외투를 벗어 들거나, 얇은 겉옷을 입은 젊은이들이 명랑하게 지나다녔다.

그들의 웃음이, 서투름이 참 보기 좋다 라는 생각을 하며 한동안 눈을 뗄 수 없었다.

 

 

 

 

 

뷰티풀 라이프

JTN 아트홀 4관

 

어제오늘 간 극장은 소극장이 아니다. 단독 건물을 사용하고 한 건물에 여래 개의 공연장이 있어 마치 영화관을 방불케 한다. 1층에는 감각적인 외관의 카페도 있다. 

 

 

 

 

표를 사기 위해, 혹은 입장을 위해 좁은 골목에 서서 한참 줄을 섰던 풍경 대신, 넓은 Ticket Box에서 예매한 표를 교환하고 준비된 의자에 앉아 대기할 수 있었다. 

지난주 끝난 공연, <바람이 불어오는 곳> 포스터가 아직 화면에 걸려 있었다.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를 제일 앞 열에서 부담스럽게 보고도, 오늘 볼 연극도 1열 중간으로 예매한 우리가 우스웠다.

 

 

 

 

오늘의 캐스팅은 정경식, 김효진 배우다.

 

 

 

 

4관 구석 대기실에 마련된 포토존이다. 연극의 한 배경이라고 해서 사진을 남겼다. 실제 무대의 대포집과는 차이가 있었지만 세심한 배려와 이벤트에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연극이 끝난 후, 무대에 밤이 내려앉았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청춘들이 사랑을 시작하고, 수많은 사연을 겪으며 그 사랑을 지켜내고 노년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재미있게도 감동적으로도 그린 연극이다.

 

 

 

 

 

오해와 이별, 서운함과 다툼, 위기와 시련이 반복되지만 그 인생을 추억하며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통스러운 삶이었지만 아름다운 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사랑의 기억, 사랑의 추억, 모든 시련을 견딜 수 있게 하는 사랑의 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연 후, 배우들의 모습을 담을 수 있었다.

일인 다역을 열심히 소화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고, 젊은 두 배우가 20대부터 70대까지 연기할 수 있다는 게 정말 놀라웠다.

 

큰 웃음도 잔잔한 감동의 눈물도 준 연극.

Beautiful Life.

 

 

 

 

 

 

 

 

매해 연말, 하나의 공연으로 한 해를 잘 살았다는 상을 주곤 했던 일이 코로나로 두어 해 어려웠었다.

여전히 폭발하는 확진자 속에서 사람들은 살 길을 찾고 있었고 공연계 또한 다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공연 관람을 위해 대학로를 찾았다.

 

 

 

대학로

 

늘 무엇에 홀린 듯 멈춰, 고 김광석을 추억하게 되는 학전 소극장엔 오늘도 어린이 연극 포스터가 내걸려 있었다.

 

 

 

 

마로니에 공원에는 대형 트리가 아직 남아있어 반가웠다.

늦은 감이 들었지만, 트리 앞 빨간 조끼와 같은 색 모자를 쓴 눈사람 사이 벤치에서 사진도 찍었다.

밤이면 불을 밝힐 라이트 박스에는 힘들게 한 해를 보낸 시민들을 응원하는 메시지들이 새겨져 있었다. 

 

 

 

 

 

공연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어 이화장으로 향했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사저인 이곳은 그의 동상과 역사자료, 사용했던 유품 등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2022년까지 예정된 안전시설 설치공사와 전시관 신축공사로 입장할 수는 없었다. 

 

 

 

 

 

아이띵소 아카이브

ithinkso Archive

 

 

여느 Cafe와 다른 분위기에 소심하게 문을 열고 들어간 이곳은 지하는 전시장, 1층은 카페, 2층은 가방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는 쇼룸이었다. 

 

 

 

 

좌석은 창가 자리뿐이었고 커피머신에서 추출되는 단출한 메뉴는 Cafe라고 하기에는 어색했지만, 은은한 색감의 원목과 여유롭게 꽂혀있는 책들, 곳곳에 놓인 푸른 식물들과 다양한 소품들의 조화는 여유로운 정원을 거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책, 향초, 액세서리 등을 전시 판매하고 있었는데 모든 것이 아기자기했고, 해외여행 시 신비로운 소품샵을 방문한 듯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나는 연신 감탄하며 둘러보았고, 남편은 폰카메라를 부지런히 눌렀다.

 

 

 

 

친절한 직원분 덕에 건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전시가 열릴 때는 지하 1층도 관람 가능하지만 오늘은 전시가 없는 날이었다. 2층 쇼룸으로 올라가 보았다.

 

 

 

 

편안하게 샘플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심플한 디자인의 가방과 파우치는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들이었다. 가방을 들어보고 메 보기도 하니 세련돼 보였고,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구입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커피는 종류에 상관없이 모두 3,000원이었고 우리는 단 하나의 창가 자리에 운 좋게 앉을 수 있었다.

 

 

 

 

밖으로 방송통신대학교의 붉은 건물과, 안으로 초록 정원을 바라보며 마시는 라테의 맛이 무척 좋았다.

연극 공연에 앞서 좋은 전시를 본 느낌이 들었다.

 

 

 

 

 

늘근 도둑 이야기

 

유니플렉스 극장 3관

 

 

오늘의 하이라이트 연극 관람이다. 

박철민 배우의 연기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기대가 되었다.

 

 

 

 

2열이 제일 앞자리다. 이 연극의 앞자리 관객은 각오를 해야 했다. 배우들은 공연 중 수없이 눈을 마주치며 관객의 호응과 참여를 이끌었다. 다행히 젊고 발랄해 보이는 사람들이 양 옆으로 많이 있어 우리는 부담스러운 참여는 피해 갈 수 있었다. 무대가 한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연극은 앞자리에서 보는 묘미가 있다.

 

 

 

대통령 취임 특사로 감옥에서 풀려난 더 늙은 도둑(노진원)과 덜 늙은 도둑(박철민)이 노후 대비 마지막 한 탕을 하다 붙잡혀 수사관(이호연)에게 조사받는 과정을 그린 코미디 극이다.

 

큰 줄거리 없이 배우들의 대사와 애드리브 그리고 관객의 참여로 이루어진 연극은 배우들의 열정과 연기력이 정말 대단했다. 오랜만에 배꼽이 아플 정도로 웃어봤다. 

 

대사에 나오는 정치 풍자와 사회적 이슈 등은 유쾌함을 가릴 정도의 진지함보다는 스치듯 지나가며 잊지 않게 기억을 더듬어 주었다. 생각해 보니 코미디 장르에 그 정도가 최선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연극을 보니 잊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며 또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내친김에 내일 다시 대학로를 방문하기로 했다. 

 

예매한 연극은 뷰티플 라이프다.

 

 

 

 

 

 

 

김유정 문학촌

 

 

김유정 생가를 보기 위해 온 이곳은 그야말로 작은 마을이다.

생가를 비롯해, 김유정 기념 전시관, 김유정 이야기집, 민속공예 체험관, 야외무대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김유정 생가

 

매표소에서 표(2,000)를 구입하면 생가와, 전시관, 그리고 김유정 이야기집 모두를 관람할 수 있다. 

문을 들어서면 김유정 생가가 자리하고 오른쪽이 김유정 전시관이다.

김유정 생가는 조카 김영수 씨의 기억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고증을 통해 복원되었다고 한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작은 연못과 정자였다. 나름대로 다리도 놓고 구색을 갖추었다.

일제강점기 시대 대지주였던 김유정 일가는 소문난 부자였다고 한다.

 

 

 

 

정자 쪽에서 바라본 초가지붕 아래 커다란 집은 그 당시 지주들의 가옥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와지붕 건물은 김유정 기념전시관이다.

 

 

 

 

마당에 <동백꽃> 소설 속 장면을 동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점순이가 주인공 몰래 닭싸움을 붙이는 장면이다.

 

 

 

 

언덕을 오르니 전시관 옆으로 김유정 동상이 서있다. 얼핏 봐도 훈훈한 문학도의 모습이다.

 

 

 

 

당시 보기 드물었다는 'ㅁ'자 형태의 규모 있는 한옥이다. 기와 골격에 초가지붕을 한 건물은 낯설었다.

 

 

 

 

짚이나 갈대 등으로 이엉을 엮어 얹은 이유는 당시 가난한 사람들이 많아 집의 내부를 가리고,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전해진다.

굴뚝이 낮게 위치한 이유 중 하나도 밥 짓는 연기가 높게 올라가지 않도록 하여 끼니를 거르기 일수였던 이들에 대한 배려의 의미도 있었다고 하니 부자로 사는 것도 온전히 편안하고 행복한 일은 아닌 듯하다.

 

 

 

 

초가지붕 덕분인지, 최근 많이 보았던 조선의 궁궐과 양반가옥에 익숙해져서인지 모르겠지만 대지주의 건물이 정말 소박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가옥 옆 마당에서 <봄봄> 작품 속, 장인과 주인공이 점순이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는 장면도 볼 수 있었다.

그의 작품에는 강자와 약자의 갈등 관계를 해학적으로 풀어내는 묘미가 있다. 그래서 비극적이기보다는 애잔하다.

 

 

 

 

구석에 자리한 우물과 지붕 아래 매달린 두레박도 볼 수 있었고, 디딜 방앗간 안에는 농기구들이 빼곡하게 보관되어 있었다. 방앗간 옆으로 외양간도 있으니 정말 없는 게 없다.

 

 

 

 

남편이 파노라마 기능으로 생가 일부를 담았다.

 

부족함 없는 소문난 부잣집임에도 보기 싫거나 거만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안채에 걸려있던 겸허라는 글씨처럼 그들의 삶이 그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슬픔, 실연의 고통, 투병 중에도 작품 활동을 이어간 그의 열정, 이른 나이에 세상을 마감한 작가의 삶에 대한 아쉬움 등이 시끄럽게 머릿속을 떠 다녔다.

 

 

 

 

 

김유정 기념전시관

 

전시관 안으로 들어가니 거대한 책 조형물에 봄봄의 첫 페이지가 적혀있다.

아담한 전시관이었지만 벽면을 두른 그의 생의 업적들과 이야기들은 방대했다.

 

 

 

 

이런 작품이 있었구나. 그의 지인들은 이랬구나. 연신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기도 했다.

 

생가 대문을 나와 김유정 이야기집 쪽으로 이동했다.

 

 

 

 

 

김유정 이야기집

 

김유정 이야기집은 다양한 매체와 전시를 이용해 아기자기하면서도 화려하게 공간을 꾸민 곳이다.

천천히 둘러보다 보면 이야기를 듣는 듯 그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김유정 이야기집'.  딱 그렇다.

 

 

 

 

'들병이 사상'이 궁금해 검색해 보니 남편 있는 여인이 주막으로 돌아다니며 술과 몸을 팔는 것을 '들병이'라고 했단다.

들병이가 윤리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 당시에 살기 위해 행해졌던 이 일을 누가 나무랄 수 있겠나.

 

김유정은 소설 속에 지식인을 등장시켜 계몽을 외치지 않았다. 단지 지옥 같은 삶을 살아내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의 처절한 노력과 끈질긴 생명력을 사실감 있게 그려낼 뿐이었다.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그의 최후는 가난 그리고 병과의 투쟁이었다. 결핵으로 투병하면서도 원고료 때문에 수필을, 소설을 쓸 수밖에 없었다. 피를 토해내면서도 글에 대한 열정을 놓을 수 없었다. 안쓰럽고 안타깝다.

 

 

 

 

30세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그의 업적은 하루하루가 얼마나 꽉 차있었는지 열정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이름을 붙인 책방과, 시청각실에서 상영되고 있는 작품 애니메이션 등 작가를 사랑하는 마음과 관람객을 위한 배려가 동시에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실레마을은 김유정 문학관이 있는 춘천시 신동면 일대를 칭하는 말로 그의 작품의 무대가 되었던 동네이다.

 

다시 올 기회가 있다면,

교과서에 실려 읽었을 <봄봄>과 <동백꽃> 외 다른 작품들도 감상한 후, 따뜻한 봄날, 정겨운 그림지도를 손에 들고, 여유롭게 마을을 걸어다니고 싶다.

 

 

 

 

 

 

 

 

 

 

 

경희궁에서 나와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걸었다. 박물관 뒷마당은 자연스레 궁과 연결되는 동선이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온라인 예매를 해두면 편하다.

 

 

 

서울 역사박물관

 

인상적인 색감의 건물과 역사가 담긴 조형물들이 고풍스러운 나무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후문으로의 출입이 통제되어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온라인 예매를 해 두어 QR 체크 없이 체온계의 울림을 듣고 입장했다.

넓은 계단과 높은 천장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탄성이 절로 났다.

해외여행 시 방문했던 한 박물관 느낌이 나기도 했다.

 

 

 

 

야외마당과 4층 건물 안에는 다양한 전시와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한 두 가지만 둘러보기로 했다.

1층 로비에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같은 층에서는 '여의도'라는 주제의 기획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국회의사당과 63 빌딩, KBS가 있는 한강 사이의 섬' 정도로 알고 있었던 곳.

높은 빌딩 구경과 방송사 견학을 어린 나의 아이들과 갔었고, 높은 건물 아래층에서 시댁 식구들과 근사한 코스요리를 먹은 기억도 있다. 

 

서울의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았던 여의도의 역사를 되짚고 전시를 하니 의미가 있다. 특별하고 다시 보인다. 

사람이던 사물이던 자세히 들여다 보고,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하면 그럴 것 같다. 

 

 

 

 

기증유물 전시 5실에서는 '정범태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타이틀의 사진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오십여 년 동안 서울의 현장을 목격하고 담은 한 사진작가의 흑백사진들이 따뜻한 색의 벽면에 걸려있었다.

 

 

 

 

또 다른 기증유물 전시실에서는 단체나 개인에게서 받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를 보다 보니 집에 버리지 않고 모아 둔 물건 몇 가지가 생각났다.

참 옛날 사람이구나........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야외 전시에는 흥선대원군의 조부와 아들, 손자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었고, 마지막 전차 381호의 모형과 다양한 전시물들도 볼 수 있었다.

 

 

 

 

가을과 함께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나무의 열매는 언제 보아도 예쁘다. 단순하지만 화려하다.

잎이 크고 열매가 굵직하며 색감의 대비가 강렬하다.

 

 

 

경희궁의 쓸쓸한 분위기와 서울 역사박물관 마당의 신비로운 모습이 이 계절과 잘 어울렸다.  

 

 

 

 

 

 

 

 

 

 

문화역 284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걸었다. 뒤로 고가도로를 개조해 만든 보행공원 서울로 7017이 보인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서소문 역사공원 팻말과 함께 목적지를 알리는 화살표가 반갑다. 선명하고 강렬한 붉은빛의 벽돌은 이곳이 성지임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이 장소는 조선시대 성리학에 반하는 이들과 천주교도들의 공식 참형지였다. 그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금의 박물관은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선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넓은 길로 들어서자 좁은 길이 나온다.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환한 빛이 네모진 문에 가득하다.

 

 

 

길의 끝가지 와서 돌아보니 다시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신비롭다.

 

 

 

박물관 입구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순교자의 칼'과 '수난자의 머리'.

시작부터 고개를 숙이게 하는 분위기에 절로 경건해졌다.

 

 

 

건물을 들어서니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안내하시는 분들마저 차분하시다. 낮은 천장 아래 넓은 홀을 여유롭게 차지한 작품들은 더 고귀해 보였다. 

 

 

 

브론즈에 새겨진 글들을 읽으니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는 삶의 무거움이 느껴져 잠시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는데,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련되고 절제된 인테리어가 멋스럽다. 이제껏 보았던 다른 장소들과는 색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한 층을 내려가 보았다.

 

 

 

특별전시로 정희우 작가의 <풍경이 된 기호>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 종로거리와 서울역 부근의 풍경을 기록한 이 전시는 주로 탁본으로 이미지를 뜬 작품들이었고 담벼락이나 간판 그리고 표지물들의 이미지를 기록하여 잊혀져가는 시간을 담고 있었다.

 

 

 

서울역 주변의 모습을 담은 수묵채색화도 만날 수 있었는데 정겹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새롭고 특별한 전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Consolation Hall로 내려가 보았다.

 

 

 

위로와 위안의 방 답게 어두운 조명이 비추고, 사방을 둘러싼 대형 스크린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이 은은한 소리를 내며 상영되고 있었다. 성인 다섯 분의 유해를 모신 곳 위로 빛이 어루만지 듯 비추고 있고 기다란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거나 조용히 쉬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요히 앉아 계절이 지나가듯 흘러가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야외광장이 보인다. 광장으로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서있는 사람들은 순교하신 분들의 형상일 듯 하였다.

 

 

 

같은 층의 상설전시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미래의 모습을 그린 <더 기버> 같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간이다. 역시나 넓은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절제된 전시 내용은 여느 박물관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천주교의 역사뿐 아니라 서소문 지역의 이야기 등 다양한 전시 내용을 만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검을 중심으로 외벽에 새겨진 년도 1801, 1839, 1866.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며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교인들을 가슴에 새겨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한국 천주교 최대의 순교성지인 이곳,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한 번쯤 꼭 방문해야 할 장소인 듯하다.

 

 

 

구 서울역사를 개조해 문화의 공간으로 만든 문화역 서울 284를 가보기로 했다.

 

남대문정차장, 경성역, 서울역을 거쳐 지금의 문화공간이 탄생하기까지 100년간의 역사여행이자, 돔 형태의 지붕과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 투어이며, 현재 전시하고 있는 '익숙한 미래' 관람까지 일석 삼조의 나들이다.

 

 

 

광화문 근처 카카오 T 주차장에 차를 두고 꽤 걸었다. 다음 목적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까지 고려한 위치다.

 

 

 

붉은 벽돌과 돔이 보이니 목적지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수많은 노숙인들과 건물 앞에 마련된 코로나 선별 진료소.

화려한 빌딩들과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역시나 오픈 시간(10시) 전에 도착한 우리는 건물 외관을 구경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벽돌과 청동색 돔은 신비로웠고, 마치 유럽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파발마'라는 이름의 외부 시계는 한국전쟁 기간 3개월 정도를 제외하고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건물 옆길을 따라 뒤로 이동해보니 경의선 전철을 타는 공간이 나온다. 시간이 오래돼 녹슨 듯한 초록빛 돔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눈에 띄었다.

 

 

마침 지나가는 KTX와 화물열차를 볼 수 있었는데 혼자 지하철을 타는 것조차 아주 드문 일이 된 지금은 이런 풍경도 새롭고 좋다.

 

 

 

문화공간 바로 옆에서 진짜 서울역을 발견했지만 '서울역' 하면 떠오르는 북적거리고 정겨운 풍경은 연출되지 않았다.

MT로 들떠있는 대학생들, 고향을 방문하려는 사람들, 각각 배낭을 짊어매고 여행을 가려는 커플들, 홀로 기차여행을 떠나려는 낭만객들도 볼 수 없었다. 

 

텅 빈 계단에서 볼 수 있었던 건 근처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온 노숙인들과 그 앞을 오고 가는 몇 명의 사람들이 전부였다. 

 

 

 

온라인 사전예약을 하고 입장했다. 관람요금은 무료다. 

 

 

 

전시의 방향과 의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형 스크린이 눈에 띈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 편리한 삶을 위한 디자인, 배려와 협력, 소통과 혁신을 표현하는 디자인?

 

처음에는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를 본 후에는 우리 생활 곳곳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시설들과 소품들에 이런 디자인이 숨어있었다.

 

 

 

장애가 있어도 없어도 놀 수 있는 무장애 놀이터. 노인들의 손가락 운동을 담당하는 운동 기구 디자인.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폭염대비 그늘막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벤치들.

 

 

 

걸어서, 수원!

도시 안내 정보 체계를 통합하고 개선해 보행자 중심으로 읽기 쉽고 찾기 쉽게 안내해 주는 안내판.

 

 

 

횡단보도에 설치된 노란 발자국과, 횡단보도 진입부 바닥부터 벽면까지 노란색의 원뿔 형태로 설치되는 옐로 카펫.

 

 

 

조도를 높인 가로등과, 마을 진입로 안전 에티켓 사인, 골목에 설치된 안전 비상벨, 친근한 담장 철장 디자인. 

 

 

 

이동하는 시민들을 안내해 주기 위한 안전 색체와 정보 디자인 등 배려가 담긴 공공 디자인.

 

 

 

버려지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친환경적이고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드는 플리츠 마마.

 

이 외에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놀랍다.

누군가의 배려와 따뜻한 생각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수많은 고민으로 결과를 맺는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감사한 이들이 많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전시들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담고있는 신비로운 건물 구석구석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두 개의 박물관을 동시에 구경하 듯 눈과 생각이 바쁘게 움직였다.

 

 

 

중앙홀 내부의 대형 시계.

 

 

 

중앙홀 천정 스테인드글라스.

 

 

 

최초의 양식당으로 운영되었던 그릴.

높은 천장 아래 매달린 샹젤리제와 은촛대, 은그릇의 화려함이 있었다던 식당이다.

 

 

 

1,2등 대합실을 이용하는 손님들 중 여성 고객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부인 대합실.

작지만 고급스러웠다.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와 거울이 있는 이곳은 귀빈실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지방 출장 시 그리고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갈 때도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근처에 자주 왔지만 건물 내부를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을 늘 차창 밖으로 아니면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오늘 뭔가 큰 일을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람의 끝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얻은 굿즈, 스티커와 배지.

별 기대 없이 간 전시는 그 어느 관람보다 의미 있었다. 전시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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