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서울역사를 개조해 문화의 공간으로 만든 문화역 서울 284를 가보기로 했다.
남대문정차장, 경성역, 서울역을 거쳐 지금의 문화공간이 탄생하기까지 100년간의 역사여행이자, 돔 형태의 지붕과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 투어이며, 현재 전시하고 있는 '익숙한 미래' 관람까지 일석 삼조의 나들이다.
광화문 근처 카카오 T 주차장에 차를 두고 꽤 걸었다. 다음 목적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까지 고려한 위치다.
붉은 벽돌과 돔이 보이니 목적지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수많은 노숙인들과 건물 앞에 마련된 코로나 선별 진료소.
화려한 빌딩들과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역시나 오픈 시간(10시) 전에 도착한 우리는 건물 외관을 구경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벽돌과 청동색 돔은 신비로웠고, 마치 유럽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파발마'라는 이름의 외부 시계는 한국전쟁 기간 3개월 정도를 제외하고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건물 옆길을 따라 뒤로 이동해보니 경의선 전철을 타는 공간이 나온다. 시간이 오래돼 녹슨 듯한 초록빛 돔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눈에 띄었다.
마침 지나가는 KTX와 화물열차를 볼 수 있었는데 혼자 지하철을 타는 것조차 아주 드문 일이 된 지금은 이런 풍경도 새롭고 좋다.
문화공간 바로 옆에서 진짜 서울역을 발견했지만 '서울역' 하면 떠오르는 북적거리고 정겨운 풍경은 연출되지 않았다.
MT로 들떠있는 대학생들, 고향을 방문하려는 사람들, 각각 배낭을 짊어매고 여행을 가려는 커플들, 홀로 기차여행을 떠나려는 낭만객들도 볼 수 없었다.
텅 빈 계단에서 볼 수 있었던 건 근처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온 노숙인들과 그 앞을 오고 가는 몇 명의 사람들이 전부였다.
온라인 사전예약을 하고 입장했다. 관람요금은 무료다.
전시의 방향과 의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형 스크린이 눈에 띈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 편리한 삶을 위한 디자인, 배려와 협력, 소통과 혁신을 표현하는 디자인?
처음에는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를 본 후에는 우리 생활 곳곳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시설들과 소품들에 이런 디자인이 숨어있었다.
장애가 있어도 없어도 놀 수 있는 무장애 놀이터. 노인들의 손가락 운동을 담당하는 운동 기구 디자인.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폭염대비 그늘막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벤치들.
걸어서, 수원!
도시 안내 정보 체계를 통합하고 개선해 보행자 중심으로 읽기 쉽고 찾기 쉽게 안내해 주는 안내판.
횡단보도에 설치된 노란 발자국과, 횡단보도 진입부 바닥부터 벽면까지 노란색의 원뿔 형태로 설치되는 옐로 카펫.
조도를 높인 가로등과, 마을 진입로 안전 에티켓 사인, 골목에 설치된 안전 비상벨, 친근한 담장 철장 디자인.
이동하는 시민들을 안내해 주기 위한 안전 색체와 정보 디자인 등 배려가 담긴 공공 디자인.
버려지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친환경적이고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드는 플리츠 마마.
이 외에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놀랍다.
누군가의 배려와 따뜻한 생각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수많은 고민으로 결과를 맺는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감사한 이들이 많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전시들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담고있는 신비로운 건물 구석구석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두 개의 박물관을 동시에 구경하 듯 눈과 생각이 바쁘게 움직였다.
중앙홀 내부의 대형 시계.
중앙홀 천정 스테인드글라스.
최초의 양식당으로 운영되었던 그릴.
높은 천장 아래 매달린 샹젤리제와 은촛대, 은그릇의 화려함이 있었다던 식당이다.
1,2등 대합실을 이용하는 손님들 중 여성 고객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부인 대합실.
작지만 고급스러웠다.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와 거울이 있는 이곳은 귀빈실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지방 출장 시 그리고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갈 때도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근처에 자주 왔지만 건물 내부를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을 늘 차창 밖으로 아니면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오늘 뭔가 큰 일을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람의 끝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얻은 굿즈, 스티커와 배지.
별 기대 없이 간 전시는 그 어느 관람보다 의미 있었다. 전시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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