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리고 저녁]에 이어 읽은, 욘 포세의 두 번째 소설이다.
이전 소설이 한 인간의 탄생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면, [샤이닝]은 한 인간이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이다.
주인공의 이름, 나이, 어떤 서사도 나오지 않지만 몇몇 글들로 그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혼자 사는 사람 / 내가 젊었을 때, 아주 오래전 / 죄 많은 나의 한평생 / 사실 누군가 마지막으로 나를 방문한 게 언제인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 나는 그들을 단 한 번도 어머니와 아버지라 불러본 적이 없다
주인공은 어느 정도 나이 들었을 것이고, 부모의 풍족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을 것이고,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외로운 사람일 것이다.
p.7 나는 차를 타고 벗어났다. 기분이 좋았다. 움직이니 기분이 좋았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는 몰랐다. 단지 나는 운전을 할 뿐이었다. 나를 덮친 것은 지루함이었다.
그를 둘러싼 외로움과 지루함, 어떤 고통들로 인해 그는 삶의 방향을 잃었다. 충동적으로 차를 몰고 나와 일상으로부터 달아나려 한다. 그러나 이러한 선택은 오히려, 공허함과 두려움으로 자신을 몰고 간다.
p.9 내가 두려움을 느낀 건 바로 그 때문이리라. 나는 차를 타고 가다가 숲 속의 막다른 길에서 꼼짝도 못 하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차를 돌릴 수도 없었으니까. 사실 이 숲길에 들어선 후 차를 돌릴 만한 곳을 지나온 기억도 없었다. 그럴 리는 없었을 것이다.
p.17 도대체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토록 깊숙한 숲 속으로 차를 몰았을까.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차를 몰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는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그렇다,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지금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내 차를 빼내줄 수 있는 사람, 트랙터나 차를 소유한 사람을 찾아 나서야 한다. 한데 문제는 바로 그거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도와줄 사람이 절실하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이상하기만 하다. 그를 도울 누군가를 혹은 무엇을 찾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부터 멀어지고 있다. 설상가상 눈은 점점 더 많이 내려 쌓이고, 어둠이 밀려든다.
p.21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최대한 빨리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런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더 깊은 숲 속으로 들어왔을까, 이처럼 깊은 숲 속에서 정말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수는 없었다.
헤어 나올 수 없는 공포의 순간 따스한 손 내미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달랐을까. 아니 어쩌면 도움을 주려하는 사람들을 애써 피하며 숨어버리는 나약함이었을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도움을 줄 수 있는 존재는 인간 세상에 도무지 없는 것일까.
p.21 나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 깊은 숲 속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 그것을 생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옳지 않다, 그것은 문득 떠오른 무엇, 일시적인 충동이라든가, 뭐 비슷한 것이었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너무 바보 같은 일이었다. 멍청했다. 그보다 더 멍청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p.25 어쩌면 내가 숲 속으로 들어온 것은 얼어 죽고 싶어서였을까. 아니,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왜 죽고 싶은 것일까.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차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결국, 어둠 안에 숨고 갇혀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진퇴양난의 지경에 처한 인간은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쉽지 않다. 심지어 죽음을 생각해 보기도 한다. 고통스럽고 두렵다.
이 책은 열린 결말이다. 주인공이 죽음에 이르렀는지, 아니면 살아남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그가 죽음에 이르는 어떤 과정을 지나갔음을 느낀다. [아침 그리고 저녁]에서 요한네스는 죽음 직전에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샤이닝]의 주인공은 순백색의 형체와 부모님을 만난다.
어둠 속에 나타난 하나의 하얀 형체, 밝은 빛을 내뿜는 존재, 완전히 순백색의 알 수 없는 형체, 어떤 윤곽이라기보다는 하얗고 선명한 공간에 가까운, 사람의 형체를 닮은, 강렬하지만 눈이 아프지 않은 기분 좋은 빛, 편안한 빛, 그 하얀 존재와 나.
죽음이 그나마 조금이라도 따스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이 순백색의 빛 때문이다. 어둠과 추위의 한가운데서 빛을 만난 주인공은 더 이상 춥지 않았다. 온기를 느꼈다. 누군가의 팔이 따뜻하게 어깨를 감싸는 것 같은 빛.
빛과 온기가 삶일 수도 있지만, 죽음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 죽음이 나를 위로하며 어깨를 두드려 주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를 찾아 나선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목소리를 듣는다. 또한 검은 양복을 입은 알 수 없는 형체도 본다.
p.56 그들은 내게 대답해야 한다, 나는 적어도 그들이 낳은 아들이 아닌가, 나는 말한다 : 제가 뭘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셔야죠, 대답해 보세요, 거기 가만히 서 계시지만 말고 무슨 말이라도 해주세요, 제게 대답을 해주시란 말이에요- 내 귀에 들리는 내 목소리는 애원하는 듯하다, 불쌍하고 처량한 데다, 완전히 울먹이고 있고, 무기력하게 들리기까지 한다.
p.66 어머니는 내게 변한 것이 없다고 말한다, 나는 항상 그랬다고, 언제나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했지 어머니가 원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예나 지금이나 다른 사람의 말은 들은 적이 없다고, 그러니 자, 이제 그 결과가 어떤지 한번 보라고, 그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았는지,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어머니는 이대로는 안 된다고, 너무 추워서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는지 나는 궁금하다, 하긴 아버지는 언제나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p.74 그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다. 이제 나를 그만 좀 바라보면 안 될까. 왜 그들은 나만, 다른 것은 보지 않고 오직 나만 바라보고 있을까. 이제 다른 걸 좀 쳐다보면 안 되는 걸까.
가장 가깝고 사랑해야 할 존재들이 어떤 상황들로 멀어져 회복할 수 없는 관계가 된다. 언제 도움이 필요한지 무엇을 도와야 할지 알 수 없다. 도움을 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가 안타깝고 슬프다.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 그가 떠올릴 수 있었던 사람은 부모님이었다. 여러 감정이 들었던 부분이다.
지루함에서 시작된 그의 충동적인 여정은, 공허와 두려움, 후회와 번민, 텅 빈 무(無)의 세계, 결국 죽음에 이른다.
p. 8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또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든, 항상 다른 무언가로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 80 문득 나는 그 빛나는 존재가, 순백색의 반짝이는 존재가 우리 앞에 서있는 것을 본다, 그가 따라오라고 말하고,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간다, 아주 천천히, 한 발짝 또 한 발짝, 한숨 또 한숨, 검은 양복을 입은 얼굴 없는 남자, 나의 어머니, 나의 아버지, 그리고 나, 우리는 맨발로 무의 공간 속으로 들어간다, 한숨 또 한숨, 어느 순간 숨이 사라지고, 그곳에 있는 것은 오직 호흡하는 무를 빛처럼 뿜어내는 존재뿐이고, 어느새 숨을 쉬고 있는 것은 우리다. 각각의 순백색 속에서.
짧지만 어렵고 철학적인 이 소설은 작가의 의도도, 독자들의 다양한 해석도 있을 것이다.
나에게 주인공의 죽음은 자살처럼 여겨졌다. 그리고 소설의 제목(Shining)처럼, 반짝이고 빛나는 순백색의 존재 때문에 그의 죽음이 더 애처롭고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다.
외로운 삶의 끝에서 만난 따뜻한 빛, 도움을 주고 싶어 하는 부모님, 맨발로 말없이 동행하는 검은 양복을 입은 누군가의 존재. 죽음의 순간 그것들과 함께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삶 속에서 내내 그렇게 살 수 없음이 마음 아프다.
p. 38 여기 누구 없나요 / 나는 여기 있습니다, 나는 항상 여기 있고, 여기에는 항상 내가 있습니다.
우리의 곁에는 항상 누군가가 있다. 그것은 내가 믿는 신일수도, 사랑하는 가족 혹은 친구, 이웃일 수도, 또 그저 타인을 도울 준비가 되어있는 누군가 일 수도, 그것도 아니면 어떤 희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삶과 죽음이 내내 빛날 수는 없겠지만, 내 어깨를 살포시 두드리는 무언가의 위로를 받으며 살 수 있기를, 또 그런 사람이 되어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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