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소식을 감동적으로 마주하고, 12월 10일 시상식을 기다리며 나는 무척이나 설레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희랍어 시간>, <작별하지 않는다>, <흰> 등 그녀의 작품은 읽을 때마다 슬프고 고통스럽다. 4년 전, <채식주의자>를 읽고 썼던 글을 보니 나는 이 작품을 많이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12월 7일 스톡홀름에서 진행된 노벨 문학상 수상자 강연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수수한 얼굴과 차림새, 차분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로 천천히 원고를 읽어나가는 그녀의 강연은 한 편의 서사시를 듣는 듯했고, 어느새 나의 눈가는 젖어있었다.
사랑이란 무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수상자 강연 중)
그녀가 여덟 살 때 썼던 시의 한 연처럼 그녀의 삶과 작품, 과거와 현재, 사람과 사람은 연결되어 있었다.
기자 회견 중, <채식주의자>에 대한 작가의 언급은, 이 책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채식주의자는 질문으로 가득한 소설이며, 제목이 채식주의자인데 주인공은 한 번도 자신을 채식주의자로 명명한 적이 없다." "신뢰할 수 없는 화자라는 문학적 장치가 이 소설에 있고, 그렇게 신뢰할 수 없는 화자가 이야기할 때 문장마다 아이러니가 발생하기 때문에 그걸 생각한다면 흥미롭게 읽으실 것이다."
책을 다시 읽었다.
주인공 영혜는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육식을 거부하고 물 외의 어떤 것도 먹으려 하지 않으며 폭력적인 세상으로부터 자신을 구원하려고 한다.
43.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으론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도,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_<채식주의자>
종내 식물이 되었다고 믿는 영혜는 서슬 퍼렇게 도사리고 있는 폭력으로부터 자유롭지도, 완전한 존재가 되지도 못한다. 그녀는 살기 위해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는 아이러니 안에 있다.
세 편의 연작 소설로 이루어진 채식주의자는 하나의 소설인 듯 연결되어 있다. <채식주의자>의 화자 영혜의 남편, <몽고반점>의 화자 영혜의 형부, <나무 불꽃>의 화자인 영혜의 언니 인혜는 모두 신뢰할 수 없는 화자이다. 그들은 영혜가 거부하려고 했던 것이 결국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과 감정대로 영혜를 생각하고 추측하고 판단하고 연민한다.
기이하게도 각 단편의 화자들은 다른 단편에서 별로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이 영혜를 들여다보는 화자가 되어 이야기를 끌고 나갈 때 남편과 형부는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된다. 언니 인혜는 폭력을 당하는 주인공이 된다. 결국 모두는 그렇게 연결되어 있었다.
사실상 두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영혜와 인혜 자매는 소리 없이 비명을 지르며, 악몽과 부서짐의 순간들을 통과해 마침내 함께 있다. 이 소설의 세계 속에서 영혜가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랐으므로 마지막 장면은 앰뷸런스 안이다. 타오르는 초록의 불꽃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수상자 강연 중)
행복해지기 위해 죽어가는 영혜, 고통을 끝내려 죽음을 선택하려 했던 인혜.
그 앰뷸런스 안에서 인혜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결국, 무수한 질문들을 던진 채 질문으로 끝난 이 소설은 여전히 어려운 소설이지만, 또 다른 시각으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그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는 이 질문들에서 더 나아간다. 폭력을 거부하기 위해 삶과 세계를 거부할 수는 없다. 우리는 결국 식물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수상자 강연 중)
영혜와 인혜가 세상의 폭력에도 불구하고 살아남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소설을 끝냈다는 작가의 그다음의 소설, <바람이 분다, 가라>. 이 소설에서 작가는 우리의 삶에 생명을 어떻게 증명하고자 했는지 읽어 보려 한다.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음이었던 것은 아닐까? (수상자 강연 중)
결국 팔딱팔딱 뛰는 가슴에서 가슴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랑은 모든 것을 구원할 수 있는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이토록 폭력적인 세상, 이곳에 구원이 있기를, 또 살아갈 수 있기를, 이토록 아름다운 세상이기를 바라는 아침이다.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유럽 소설] 영국 왕을 모셨지_보후밀 흐라발 (3) | 2024.12.20 |
---|---|
[한국 에세이] 어떤 섬세함_이석원 (4) | 2024.12.13 |
[아일랜드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_클레어 키건 (5) | 2024.12.06 |
[한국 소설] 흰_한강 (2) | 2024.11.04 |
[한국 소설] GV 빌런 고태경_정대진 (6) | 2024.10.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