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나는 영화감독도, 영화를 만드는 일에 관여하지도, 씨네필도, 평론가도 아닌 영화 보기가 취미일 뿐인 사람이지만, 거침없이 재미있게 읽었다. 어쩌면 나는, 영화를 사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그만큼 나의 삶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것으로부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우고 나아간다. 

 

이 소설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 혹은 좋아하는 일들로 상처받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어둡고 우울한 면이 있지만, 결국 미소 짓게 만드는 엔딩으로 따뜻하고 잔잔한 위로를 건넨다.

 

115. 우리는 각자가 원하지 않는 이야기를 가지고 살아간다. 잘하고 싶었는데, 큰 잘못을 저지르지도 않았는데, 콘티도 열심히 그렸는데, 우리는 왜 우리가 사랑하던 것들을 미워하게 될까.

 

138.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168. 혜나야. 너 기분 좋아 보이니까 좋다. 그런데 꼭 뭐가 되어야지만 사랑받을 수 있는 건 아니야.

 

168. 자기가 좋아한 것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우리가 추구하던 꿈과 기대하던 삶이 전부 무너진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198. 그러나 계속 후회 속에 빠져 멈춰 있을 순 없다. 다음 챕터로 넘어가야 한다. 때로는 오케이가 없어도 가야 한다.

 

205. 영화를 정말로 사랑하니까 영화를 미워하고 싶지 않아서 영화를 하지 않겠다는 승호의 말. 누군가에게는 궤변으로 들릴 말이지만, 내게는 궤변이 아니었다. 영화가 아니어도 좋으니까, 승호가 단지 자신이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217. 어떻게 버티느냐고 물었지. 진정으로 응원해 주고 지켜봐 주는 한 사람만 있으면 돼.

 

217. 고태경의 이 모든 게 애정 때문이었다는 말인가. 애정이라는 건 결국 식어버리는 것 아닌가. 나는 잠시 혼란스러웠지만 이내 납득했다. 결국, 내가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도 <초록 사과>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229. 작품을 위해 함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큰 위안이 됐다. 돌이켜보면 뭔가를 도모하고 거기에 몰두할 때가 제일 행복한 것 같아.

 

 

애정, 사랑은 삶을 끌고 가는 원동력이다.

나를 지켜봐 주는 단 한 사람을 위해,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다. 일터로 향한다. 노트북을 켜고 자판을 두드린다.

내가 사랑하는 무언가를 위해, 낡고 비좁은 작업실로 발길을 돌린다. 힘겹게 돌아가는 컴퓨터로 편집을 강행한다. 

그렇게 버텼고, 버티고 버틸 것이다. 결국 어떤 선택을 하던 그것 또한 애정일 것이다.

 

모든 준비생들과 지망생들, 기회만 주어진다면 잘 해낼 사람들이지만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그런 상황에 놓인 누군가가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이 소설을 썼다. 그건 나에게 누군가 해주었으면 하는 이야기였다. _작가의 말 중

 

 

 

인생에서 꼭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는 것도, 무언가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주어진 하루를 애정 어린 시선을 주고받으며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따스한 작가의 마음이 느껴지는, 그리고 재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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