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되는 꿈>이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원하는 나,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삶, 내가 생각하는 존엄을 지켜나가며 사는 것....
얼마 전 읽었던 최진영 작가의 장편 <구의 증명>은 '나'의 존재를 무시당하며 평범한 '나'로 살지 못했던 구와, 구의 죽음을 증명하기 싫었던 담이의 이야기이다. 최근 다시 본,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에서는 '나'를 숨기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주인공이 결국 '내'가 되지 못한 채 비극을 맞이한다. 공교롭게 두 작품 모두, 물려받은 사채 빚 때문에 쫓기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가면을 쓰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억지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나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나와 반하는 일임에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
그런 순간들은 내가 아닌 걸까? 내가 되지 못한 것일까? 이런 순간을 견디면 과연 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p. 53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대신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해 좋고 그 틀 안에서만 나를 생각하는 지름길.
p. 54 아빠는 자기 자신도 그런 틀 안에 가둔다. 진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사람을 자기라고 단정해 버린다.(....) 아빠는 자기가 바로 삶이라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
p. 80 다람쥐다, 하고 말해서 다람쥐가 사라졌다. 우리는 라일락을 찾지 못했다. 비탈을 내려오자 다시 향기가 불었다.
p. 97 탈출하고 싶다. 어디로 달려도 현재에 갇혀 있을 뿐이다. 나로 계속 사는 건 지겹다. 일시 정지 버튼이 없다.
p. 150 나의 좋은 순간을 가장 많이 담아 둔 이 사람까지 지운다면 내게는 무엇이 남는가.
소설은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가 교차되어 흘러간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나를 만들고, 지금 나는 과거를 들여다본다. 늘 탈출하기만을 바랐던 상황, 뭔가 나아지리라 생각했던 기대, 지금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란 부정, 나는 내가 되고 싶다는 꿈, 이 모든 것은 그저 부르면 달아나는 다람쥐 같다.
p. 170 집은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방에서 똑같은 이불을 덮고 누울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잠들겠지. 비 내리는 바다를 봤고 사실을 확인한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잠들 것이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순간도 어쩌면 나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어제와는 또 다르다.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내가 되는 꿈은 순간순간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무수한 나는 나라고 할 수 없고, 유일한 나는 찰나의 찰나.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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