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 계발서는 읽고 나면 허무함이 먼저 남는 책이다.
그래서 끝까지 읽기보다, 멀어지기 쉬운 장르이기도 하다.

나 역시 젊은 시절에는 간혹 자기 계발서를 펼쳤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잘 읽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2026년 올해, 조금은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그 마음에 이끌려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의 <미움받을 용기>를 다시 꺼내 들었다.

 

 

 

 

 

 

알프레드 아들러 심리학을 한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이해하기 쉽게 해석한 이 책이 이번에는 예전과 다르게 읽혔다.

 

 

 

1. 과거의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누구나 자신의 현재 모습이 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이다.
열등감으로 자존감이 무너지고 세상의 루저가 된 듯한 기분에 사로잡힐 때, 인간은 ‘내가 이렇게 된 이유’를 어디에서 찾게 될까.

 

대부분은 과거의 불행이나 환경, 강압적이었던 부모 같은 기억에서 그 이유를 찾으려 한다.
과거 탓을 하는 일은 아마 가장 쉬운 선택일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단호하게 말한다. “과거의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삶은 내가 겪은 일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에 내가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불행이 되기도, 성장으로 남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주어졌느냐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다.

 

과거는 과거일 뿐.
그것이 현재를 지배할 수는 없다.

 

 

 

2. 모든 고민은 인관관계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사회 안에서 살아가는 한, 피할 수 없이 인간관계 속에서 고통을 겪는다.
남에게 미움을 사고 상처받을까 지나치게 두려워하기 때문에 관계는 쉽게 스트레스가 된다.

 

이 책은 말한다.
인생의 과제인 인간관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립할 것’과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그리고 ‘내게는 능력이 있다’, ‘사람들은 내 친구다’라는 의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인다.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주관적 해석일 뿐이다. 내 얼굴은, 결국 나만 오래 바라본다.

인간관계의 중심을 경쟁으로 보지 말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지 말 것.

 

상대를 구속하지 말고, 상대가 행복하다면 그 모습을 순순히 축복해 주는 것이 사랑이며, 서로를 묶어두려는 관계는 결국 스스로를 깨뜨리게 된다고 이 책은 말한다.

 

 

 

3.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p. 166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과 타인의 과제를 떠안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무겁게 짓누른다네. 만약 인생에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면 - 그 고민은 인간관계에 있으니- 먼저 "여기에서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경계선을 정하게. 그리고 타인의 과제는 버리게. 그것이 인생의 짐을 덜고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첫걸음일세.

 

가족일지라도 그들의 과제를 침범하지 말 것.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훈수 두지 말고, 그들이 힘든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개입하거나 과도한 관심을 갖기보다, 곤경에 처했을 때 언제든 도울 준비가 되어 있다는 조용한 메시지를 보내라고 한다.

 

내가 타인의 문제에 과도하게 개입하려 한다는 것은, 어쩌면 타인 또한 나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누구도 내 과제에 끌어들이지 말고, 나 역시 타인의 과제에 끼어들지 않는 것. 이 ‘분리’가 인간관계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니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을 내려놓고,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마음에 두지 말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을 미움받을 용기가 있다면,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수 있다고.

 

p. 155 자네가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라고 한다면, 타인 역시 자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하는 걸세. 상대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지 않더라도 화를 내서는 안 돼. 그것이 당연하지.

 

 

 

4.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세계의 중심은, 내가 아니다.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에만 집착하는 삶이야말로 사실은 나 이외에는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는 가장 자기중심적인 생활양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자기에 대한 집착을 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바꿔야 한다. “이 사람은 내게 무엇을 해줄까?”가 아니라 “나는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 공동체에 공헌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주어야 내가 설 자리를 얻을 수 있고,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공헌할 때 비로소 소속감이 생긴다고.

 

눈앞의 작은 공동체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들, 보다 다양한 관계들, 보다 큰 공동체는 언제나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타인을 행위의 차원이 아니라 ‘존재’의 차원에서 바라볼 것. 의식 속에서 대등한 수평관계를 유지하고, 주장할 것은 당당하게 주장할 것.

 

p. 287 즉 타인에게 공헌할 때 우리는, 설사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곧 공헌감을 가지면 그걸로 족한 걸세. (....) 바로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이게 행복의 정의라네.

 

 

 

5.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찰나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살며, 과거도 보지 말고 미래도 보지 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 살아가기.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없이 하루하루 춤추다 보면, 우리는 결국 어딘가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반박하고 싶은 대목들도 분명 생긴다.
하지만 그중에서 나에게 맞는 것만 취사선택해 몇 가지라도 달라질 용기를 낸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대신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 자신의 힘으로만 조금씩 달라질 수 있는 것일 테니까.

 

그러니 이해할 수 없는 세상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멈춰 있기보다, 용기를 내어 무엇이라도 해보는 것.

그 작은 시도만이 조금 더 나은 나를 만들고, 오래 짓눌러 왔던 것들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줄 수 있을 것이다.

 

 

p. 261 과제를 분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네.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 수가 없어. 하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내 힘으로 바꿀 수가 있네. 따라서 바꿀 수 없는 것에 주목하지 말고, 바꿀 수 있는 것에 주목하란 말이지. 

 

 

 

 

"신이여, 바라옵건대 제게 바꾸지 못하는 일을 받아들이는 차분함과
바꿀 수 있는 용기와
그 차이를 늘 구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키트 보네거트 < 제5 도살장>

 

 

 

 

 

 

 

 

 

 

 

2026년 2월 1일, 명필름 아트센터가 문을 닫는다.

파주에서 10년 동안 문화의 숨결을 이어왔던 그 공간이 사라진다니, 마음 한쪽이 허전해진다.

 

처음엔 먼 거리라 망설이면서도, 어느새 익숙해져 자주 찾게 되었던 곳.

영화 시작 전마다 들르던 카페, 정겨운 오이 샌드위치도 이제 마지막이라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더 시큰해진다.

 

 

 

파주 명필름아트센터 1층, MFAC 카페

 

 

 

 

 

짐 자무쉬 감독의 <파더 마더 브라더 시스터>를 마지막 영화로 보았다.

가족에 대해 많은 생각과 이야깃거리를 남겨준 영화는, 기대했던 만큼 좋았다.

 

영화 시작 전, 늘 그랬듯 카페에 들렀다.
낯익은 직원분이 우리를 알아보고는 서비스로 휘낭시에 하나를 더 주셨다.

항상 친절해 고마웠던 분인데, 그 작은 디저트 하나에 마음이 괜히 짠해졌다.

이곳과의 인사가 정말 마지막이라는 걸, 그제야 실감한 것처럼.

 

 

 

오이샌드위치와 초코 휘낭시에

 

 

오이 샌드위치는 부드러운 식빵에 크림치즈와 오이를 넣은 아주 간단한 간식이지만, 언제 먹어도 부담 없고 늘 맛있다.

명필름아트센터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함께 떠오르는 MFAC 카페 역시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소중한 것들이 하나씩 떠나간다.
사라진다고 말하기보다는, 어딘가로 떠나갔다고 생각하고 싶다.
잊히는 존재가 아니라, 오래도록 불러낼 수 있는 기억으로 남는 것들.

이별을 추억하는 일은, 반짝이는 눈물처럼 슬프고도 아름다운 일이므로.

 

 

 

 

 

 

 

 
 


긴 기다림 끝에 아들이 조금 더 괜찮은 자취방으로 이사를 마쳤다. 때가 되면 일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조급해하고 서둘러 봐야 소용없다는 걸, 나는 늘 그렇게 배우며 산다.

이제는 모든 일을 혼자서 해내는 아들을 보며 세월을 느낀다. 기특하기도 하고, 짠하기도 하다.
 
 
 

서울대 입구, 그릭베리

 
 
 
추위를 피해 모닝커피와 간단한 아침을 먹으려고 들어간 ‘그릭베리’.
처음 듣는 이름이었는데 아사이볼과 그릭요거트 전문 카페였다.
건강한 한 끼 식사 대용으로 다이어터들에게 인기가 많을 것 같은 메뉴들이 가득했다.
베이글을 활용한 샌드위치가 있어 하나씩 주문해 보았다.
 
 
 

블루나나 베이글 샌드위치/ 생딸기 샌드 베이글

 
 
‘블루나나 베이글 샌드위치’는 그릭요거트 소스에 바나나 슬라이스, 블루베리를 곁들인 조합이었다.
맛은 산뜻했지만, 안에 들어 있는 과일 토핑의 양이 조금 아쉬웠다.
 
‘생딸기 샌드 베이글’에는 그릭요거트와 크림치즈로 만든 수제 크림이 듬뿍 들어 있었고, 딸기로 멋과 맛을 낸 베이글이었다.
크림의 양이 꽤 많아, 맛이 더 궁금해졌다.
 
 
 

허니시드 베이글 샌드위치

 

‘허니시드’는 그릭요거트 소스 속에서 작은 알갱이들이 톡톡 씹혀 베이글과 잘 어우러졌고, 새콤하면서도 담백한 맛이 인상적이었다.


 
 
 

 

 

추운 날, 생소한 장소에서
처음 맛보는 샌드위치를 천천히 먹으며
다음 일정을 기다렸다.

 

꽤 넓은 공간과 따뜻한 커피,
그리고 아들과 나란히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언젠가는 문득 그리워질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소중한 하루였다.

 


 
 
 
 
 

 

 

최근에 라이카시네마에서 짐 자무시 감독의 영화 <패터슨>을 봤다.

이 영화는 나의 인생 영화 중 하나이기도 하고, 비밀로 하고 싶은 나만 알고 싶은 영화다.

 

문득 쟝 그르니에의 책 <섬>이 떠올랐다.

이 책 역시, 아껴두었다 꺼내 읽는 나의 인생 책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쟝 그르니에 에세이 [섬] & 짐 자무시의 영화 [페터슨]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 패터슨은 버스 드라이버다.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어나 반복되는 하루를 보내고, 동네 바에서 맥주 한 잔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의 일상은 단조롭다.

부유하거나 화려하지 않고, 특별한 사건도 없지만 그는 불만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패터슨에게는 비밀스러운 삶이 있다.

쟝 그르니에의 <섬>에서 이런 문장을 만난 적이 있다.

 

"비밀스러운 삶의 예를 들어 보자면, 데카르트가 네덜란드에 살면서 누릴 수 있었던 삶을 말할 수 있다. 시계추처럼 단조롭고, 또 어김없이 계속해 나가고, 노골적으로 낱낱이 드러내 보이는 극도로 절제된 생활을 해 나감으로써, 데카르트는 오히려 자기 생활의 신비로움을 충실히 간직할 수 있었다." (p.76)

 

패터슨의 삶도 이 문장과 닮아 있다. 겉으로는 누구에게나 훤히 보이는 반복된 일상이지만, 그 안에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내면의 세계가 숨 쉬고 있다.

 

 

 

그는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좋아한다. 그리고 자신만의 시를 쓴다.

<섬>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앞으로 다가오는 나날을 어떻게 해서든 견디어내고 싶다면, 그 어떤 것이건 하나의 대상에 다만 몇 시간이라도 열중해 보라. 아마 그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으리라."  (p.60)

 

패터슨에게 그 대상은 시일 것이다.

그는 일상에서 만나는 사소한 사물과 자연의 순간들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고, 그 놀라움을 시로 옮긴다. 그는 그렇게 조용히 시인이 된다.

 

"무엇보다도 특히 방금 물속에서 건져 올린 듯한 푸른 하늘은 아무리 바라보아도 질리지가 않았다." ( p.114)

 

 

 

그는 완벽하게 단조로운 삶 속에서 조금씩의 변주를 발견하는 사람이다.

 

"나는 어쩔 도리없이 가장 가까운 곳에서 나의 은신처를 찾지 않으면 안 되었다." (p.167)

 

출근길 붉은 담벼락에 스민 햇살을 바라보고, 매일 다른 승객들의 대화를 들으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아내가 싸준 도시락을 불만 없이 먹고, 그날그날 마주친 사람들에게 친절하다.

버스가 고장 나거나, 바에서 소동이 일어나거나, 그가 쓴 시 노트를 개가 찢어버렸을 때조차 그는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잠시 마음의 동요를 느끼지만, 의외로 침착함을 잃지 않는다.

 

 

 

인생의 공허와 허무를 잘 알지만, 그는 그 마음을 다스릴 줄도 안다.

 

"곧 말없이 어떤 풍경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욕망은 입을 다물어 버리게 된다. 홀연히 공(空)의 자리에 충만이 대신 들어오게 된다. 나의 삶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 그것은 오로지 그와 같은 신적인 순들에 이르려고 했던 어렵고 힘든 노력이었을 뿐이라고 여겨지기도 한다." (p.36)

 

 

 

사실 이렇게 고요한 일상을 유지한다는 것이 판타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패터슨이라는 인물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 내면에 비밀스러운 삶을 품고, 일상을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자족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에게 삶이란, 더 큰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이 된다.

찢어진 노트 대신 낯선 시인에게서 새 노트를 선물 받은 그 행운처럼, 그의 일상에는 앞으로도 조용한 기적들이 끊임없이 찾아올 것이다.

 

 

 

 

 

 

 

 

 

 

 

 

라이카 시네마 5주년 기념 기획전이 진행 중이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영화 <패터슨>을, 운 좋게도 다시 만났다.

지독히 평범한 하루를 시처럼 살아가고, 시를 일상처럼 품고 사는 사람들.
이 영화는 그런 조용하고 아름다운 삶의 얼굴을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아쉬운 마음에 연희동에 잠시 더 머물렀다.

 



연희동, 카페 케뚜

 

 

연희동의 골목은 젊고 활기가 넘친다.
하지만 홍대나 성수와는 또 다른, 이 동네만의 온도가 있다.

영화에 취하고, 거리의 분위기에 취하는 일. 이런 순간들이야말로 영화 같은 삶, 시처럼 흘러가는 하루가 아닐까 싶었다.

 

두 가지 샌드위치를 커피와 함께 주문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맛보았다.

 

 

 

 

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

 

 

아보카도 오픈 샌드위치.
개인적으로는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빵 위에 신선한 채소와 다양한 재료들이 차곡차곡 올라가 있고, 반숙 계란과 아보카도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빵의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토핑이 넉넉해 한 입 한 입이 만족스러웠다.

 

 

 

 

구운 채소 샌드위치

 

 

또 하나는 구운 채소 샌드위치.
되도록이면 건강을 챙기고 싶어 남편이 고른 메뉴였다.

 

구운 가지와 버섯, 신선한 채소들이 어우러져 맛은 은은하고 담백했다.
바삭하고 고소한 빵, 그리고 곁들여 나온 상큼한 샐러드 덕분에 미각이 천천히 살아났다.

 

 

 

 

 

 

하루하루, 일상은 반복되지만

조금씩 다른 결을 발견하는 재미가 생각보다 큰 기쁨을 건네준다.

 

오늘도, 한 편의 시가 완성되었다.

 

 

 

 

 

 

 

 

 

퇴근길, 바람이 매섭다.
남편의 회식으로 혼밥을 하게 된 저녁,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가보고 싶었던 비밀 베이커리에 들러 시그니처 샌드위치를 포장했다.

 

 

 

동탄호수공원, 비밀베이커리

 

 

 

 

영화 한 편을 틀어 두고 거실 소파에 앉아 간단한 저녁을 즐겼다.
얇은 치아바타 빵 사이로 햄과 치즈, 그리고 양상추가 넉넉하게 들어 있다.
바질 페스토 외에 별다른 소스를 넣지 않았음에도, 햄과 치즈의 짭짤함 덕분에 간이 적절하게 느껴진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양배추의 양이었다.
겹겹이 두툼하게 들어가 먹기에는 불편했지만, 달디단 양배추는 그만큼 싱싱했다.
소금빵과 잠봉뵈르 샌드위치 등 가성비 좋은 빵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어, 이곳이 곧 단골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영화는 <미술관 옆 동물원>이었다.

고 안성기 배우가 출연한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첫 장면부터 등장한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아름다운 그를 추억하기에 충분한 영화였고, N차 관람의 매력답게 이번 감상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서로에게 스며드는 이 영화는, 1998년의 감성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다.

 

 

 

서로를 변화시키는 힘이 사랑에 있다면,
인간은 생각보다 희망적인 존재인지도 모른다.

 

엔딩 크레딧이 흐르는 동안,

마음 한쪽이 오래도록 따뜻했다.

 

 

 

 

 

 

 

 

 

 

 

 

 

 

"행복해"라고 말할 때,
나는 가장 나다워질 것이다.
내가 가장 기쁨을 느끼는 일을 하고 있을 테니까.

<슬픈 세상의 기쁜 말_정혜윤>

 

 

 

생일이 있던 주말, 서울역 한 식당에서 자녀들과 가족 모임을 했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생일이라고 선물도 받았다.

행복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문득 밀려오기도 했다.

 

 

 

행복한 순간들이 있다.

 

지금처럼 글을 쓸 때,
고요한 음악이 흐르는 카페에서 책을 읽을 때,
남편과 단골 수제 맥주집에서 피자와 맥주를 나누며 이야기를 나눌 때,
새로운 경험을 할 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때,
‘나도 쓸모 있는 인간이구나’ 하는 뿌듯함이 스칠 때,
세상에 어렴풋하게 희망을 느끼는 순간에.....

 

내가 행복한 순간들이 나의 본질을 말해 준다면,

나는 사소한 경험들과 내 주변이 안녕한 상태를 행복해하는 사람이다.

 

 

 

슬픈 세상에서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나만의 단어 찾기’ 중에 멋진 하나를 발견했다.

 

딸이 생일 선물로 스웨덴 브랜드 향수를 건넸다.
쇼핑백을 보더니 아들이 말한다.

“혹시 라 튤립이야? 엄마한테 잘 어울리는 향이 바로 그거야.”

 

개봉한 향수는 역시나 라 튤립이었고,
그 향 노트는 '막 물기를 머금은 생화 튤립 줄기 같은 깨끗하고 투명한 향', '은은하고 과하지 않은 플로럴 향'이었다.

은은하지만 존재감 있는, 과하지 않게 곁에 머무는 그런 존재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어 행복했다.

 

나만의 단어에 라 튤립을 기억해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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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친정엄마와 연극 한 편을 보았다.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더 드레서>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무대에 올리는 노쇠한 배우와, 그의 곁에서 분장사이자 조력자로 살아온 노먼이 중심이 되어 극은 흘러간다.
화려한 무대와 달리, 막으로 가려진 무대 뒤의 세계는 혼란과 갈등, 의존과 헌신, 권력과 복종, 삶과 죽음이 모두 실제였다.

치매와 노화로 더 이상 연기가 쉽지 않은 선생님을 계속 무대에 서게 만드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감정들이 겹쳐 보였다.
사람을 살게 하는 어떤 힘은 때로 나를 몰아붙이고 강요하며 아프게 하지만, 그 고통조차 결국은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본 엄마의 모습은 3년 전 겨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찍은 사진 속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이제는 나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던 엄마의 외로움과 고독이 얼마나 클지, 나는 그저 조금, 아주 조금 짐작할 뿐이다.

연극 속 노배우 곁에는 언제나 노먼이 있었다. 무대 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는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의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원동력 역시,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엇인가를 위해 감내해 온 조용한 헌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여든다섯의 나이에 죽음을 연기하는 대배우의 마음이 어떠할지 가슴이 아렸다. 누구보다 월등한 연기력과 발성, 그리고 에너지로 온 힘을 다해 무대에 서 있는 그를 보며, 그의 삶을 지금까지 떠받쳐온 원동력은 결국 연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정보 없이 고른 연극이었지만, 그것은 나와 엄마 모두의 마음을 분명히 건드렸다.

모든 것을 계획해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부모인 친정엄마를 앞으로는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늘 곁에 두고 싶은 책,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올리브 키터리지>를 올해의 첫 번째 책으로 읽었다.
HBO에서 방영되었던 같은 제목의 4부작 드라마 역시 좋았다.

 

누구도 완벽할 수는 없다. 모두에게 선했던 헨리도, 직설적이고 무뚝뚝했던 올리브도 저마다의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이다.
그렇게 애써 살아왔지만 인생은 늘 내 뜻을 비켜갔고, 온 마음으로 키운 자식들 또한 내가 그려온 모습과는 달랐다.
 
후회한들 되돌아오지 않는 어떤 것들을 오롯이 마주하며, 삶은 그저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시리즈 마지막 화에서 터져 나온 올리브의 처절한 울음을 이해할 것 같아서, 너무 이해해 버려서 쓸쓸하다.

그러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삶을 조금 더 살아내려는 그녀의 의지는 결국 사랑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생일이었다.
외로운 인생길에서 나에게 문자와 선물을 보내준 몇 안 되는 가족과 친구들.
그들 덕분에 하루가 참으로 즐겁고 소중했다.
‘매일 생일만 같으면 좋겠다’라는 말이 이제서야 무슨 뜻인지 알 것 같다.
 
작은 관심과 배려, 웃음과 필요.
그것들이 사랑이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인가.
그 작은 몸짓을 건네는 모두를 나는 의심 없이, 열렬히 사랑하리라.





 
 

 

 

2026년 새해 첫 영화로 애프터 양 감독의 <하나 그리고 둘>을 선택했다.
광화문 씨네큐브 상영은 일찌감치 예약해 두었다.

 

1월의 첫 주말,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한파를 피하기 위해 상영 시간 전까지 근처 베이커리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광화문 S타워, 아띠제 

 

 

 

로인햄 & 에멘탈 크루아상 샌드위치

 

 

종류는 많지 않았지만 알찬 구성의 샌드위치가 몇 가지 있었고, 그중 로인햄과 에멘탈 치즈가 들어간 크루아상 샌드위치를 골랐다.

고소한 크루아상 사이로 짭짤한 햄과 부드러운 치즈, 여기에 썬드라이 토마토와 루꼴라의 독특한 맛과 향이 더해져 입안에서 풍부하게 어우러졌다.

 

추운 날, 따뜻한 커피와 함께하니 더없이 좋았다.

 

 

 

 

 

N차 관람한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은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그 처음과 끝의 장면이 유독 오래 남았다.

마냥 즐거워야 할 결혼식도, 마땅히 슬퍼해야 할 장례식도 나에게는 이상하리만치 비슷한 온도로 다가왔다.

 

기쁨은 완전하지 않았고, 슬픔 또한 전부는 아니었다.

삶의 시작과 끝은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을 뿐, 결국은 같은 선 위에 놓인 장면처럼 느껴졌다.

기대와 설렘 뒤에는 고통과 상실이 있었고, 침묵과 허무의 끝에는 기억과 추억이라는 작은 행복들이 남아 있었다.

말을 아끼고 침묵으로 여백을 내어준 영화는 그 감정들을 설명하지 않고도 충분히 느끼게 했다.

 

 

 

온전하지 않고 흔들리는 삶.
백석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행복하다는 생각과 불행하다는 생각 사이에 취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2026년의 삶도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흔들리며, 때로는 슬프고, 그러나 완전히 식어버리지는 않은 따뜻한 온도의 시간들로 채워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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