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친정엄마와 연극 한 편을 보았다.

국립극장에서 공연 중인 <더 드레서>였다.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무대에 올리는 노쇠한 배우와, 그의 곁에서 분장사이자 조력자로 살아온 노먼이 중심이 되어 극은 흘러간다.
화려한 무대와 달리, 막으로 가려진 무대 뒤의 세계는 혼란과 갈등, 의존과 헌신, 권력과 복종, 삶과 죽음이 모두 실제였다.

치매와 노화로 더 이상 연기가 쉽지 않은 선생님을 계속 무대에 서게 만드는 사람들과,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감정들이 겹쳐 보였다.
사람을 살게 하는 어떤 힘은 때로 나를 몰아붙이고 강요하며 아프게 하지만, 그 고통조차 결국은 삶을 지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어제 본 엄마의 모습은 3년 전 겨울,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찍은 사진 속 모습과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기력이 예전 같지 않아 이제는 나이를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던 엄마의 외로움과 고독이 얼마나 클지, 나는 그저 조금, 아주 조금 짐작할 뿐이다.

연극 속 노배우 곁에는 언제나 노먼이 있었다. 무대 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혹은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그는 끝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그 모습 앞에서 나는 생각했다. 엄마의 삶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원동력 역시, 누군가를 위해 혹은 무엇인가를 위해 감내해 온 조용한 헌신이 아니었을까 하고.

 

 


여든다섯의 나이에 죽음을 연기하는 대배우의 마음이 어떠할지 가슴이 아렸다. 누구보다 월등한 연기력과 발성, 그리고 에너지로 온 힘을 다해 무대에 서 있는 그를 보며, 그의 삶을 지금까지 떠받쳐온 원동력은 결국 연기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많은 정보 없이 고른 연극이었지만, 그것은 나와 엄마 모두의 마음을 분명히 건드렸다.

모든 것을 계획해 준 남편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이제 내게 남은 유일한 부모인 친정엄마를 앞으로는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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