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교장.

이름도 생소한 이곳은 있는 곳도 낯설다.

응급차가 수시로 도착하고,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이 링거를 꽃은 채 돌아다니는 강북 삼성병원 내에 위치한다.

 

경교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로,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하신 장소이기도 하다.

그의 죽음에 대한 의문이 풀리지 않은 채, 오랜 세월 경교장은 잊혔었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과 노력의 결과, 다행스럽게도 현재는 그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경교장을 위협하고 있는 듯 병원 건물이 뒤에 바짝 서 있어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았다.

 

 

 

 

 

입구를 들어서자 백범 김구 선생의 흉상이 건장하고 결의에 찬 모습으로 서 있었다.

 

해방 후, 친일파 사업가 최창학은 자신의 저택을 김구 선생에게 빌려주었고, 이곳이 대한민국 임시청사로 사용되었다.

경교장의 원 모형이 축소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주차장과 병원 건물들로 분주한 저택의 외부에는 원래 정원과 한옥이 있었다고 한다.

 

 

 

 

 

지하부터 2층까지 구석구석 돌아보았다.

곳곳에 있는 사진 자료들과 비교하며 천천히 둘러보니, 오랜 세월 다른 곳으로 이용되었지만 당시의 모습을 잘 재현해 놓은 듯했다. 

 

 

 

 

 

1층에 있는 귀빈 식당은 그의 서거 후 빈소로 사용되었던 곳이다.

 

 

 

 

 

1층 관람 후, 지하로 내려갔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과, 임시정부 요인들 그리고 그의 생전 자료들과 유품 등을 전시한 공간이었다.

 

 

 

 

 

방문객이 그리 많지 않아 고요해서인지 알 수 없는 경건한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한 자 한 자 차분하게 읽어보니, 파란만장했던 경교장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피로 물든 그의 저고리가 세월과 함께 색이 바래고 흐려져 있다.

죽을 고비를 수십 차례 넘겼을 그가, 같은 민족의 손에 허무한 죽음을 맞다니 정말 비통할 뿐이다.

 

 

 

 

 

윤봉길 의사의 거사 당일, 서로 맞바꾼 회중시계를 김구 선생은 늘 지니고 다녔다 한다.

 

"우리 지하에서 만납시다."

 

그들의 마지막 인사는 그렇게 결연하고 슬프게 현실이 되었다.

 

 

 

 

 

온전한 독립을 꿈꿨고, 부강한 나라보다는 아름다운 나라를 바랐던 그의 소망.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부와 힘, 결코 부리지 않은 욕심, 그 당연하고 소박한 꿈은 정녕 이룰 수 없는 것일까?

 

반복되는 역사를 바라보며 잡을 수 없는 그 빛에 가슴이 무너진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양 쪽으로 두 군데 있었는데, 어느 쪽으로 암살자 안두희가 올라갔는지 궁금했다.

 

 

 

 

 

그의 침실 창 옆으로 책상 하나. 이곳에 앉아 있는 김구를 향해 육군 소위 안두희는 4발의 흉탄을 발사한다.

 

 

 

 

 

뒷 유리창에 새겨진 흉탄의 흔적을 선명히 볼 수 있었는데 사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마음이 무거워졌던 2층 전시를 끝으로 경교장을 나왔다.

해방 후, 자신의 안위를 위해 저택을 빌려주었을 친일파 최창학, 누군가의 사탕발림으로 범행을 저지르고 협박으로 침묵했을 안두희, 그 모든 것을 조장했을 엄청난 배후세력.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삶의 노선을 정한 사람들이 그때도 지금도 얼마나 많은지....... 

 

 

 

한여름 더위가 시작된 듯 햇살이 따가웠다.

내리쬐는 햇살을 맞으며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홍난파 가옥

근린공원을 따라 올라가다 보니 머지않아 <고향의 봄> 작곡가 홍난파가 생의 마지막 6년을 보낸 집이 보였다.

내부 관람은 할 수 없었지만, 담쟁이로 덮인 적벽돌 2층 가옥은 아담하고 예뻤다.

독립운동에서 친일로 이어진 그의 생에 대해 많은 의견들이 있지만, 죽은 자에 대한 모든 말은 확인받을 방법이 없다.

 

 

 

 

 

딜쿠샤

 

감각적인 현대식 아파트를 지나 조금 더 오르면 큰 은행나무 근처 붉은 벽돌 건물을 만날 수 있다.

 

페르시아어로 딜쿠샤(DILKUSHA)는 '기쁜 마음'이라는 뜻이다.

미국인 테일러 부부가 머물던 공간이다. 앨버트 W. 테일러는 광산 기술자 아버지를 돕기 위해 조선에 입국한 후, 광산과 상회를 경영하기도 했다. 1919년 연합 통신원으로 활동하면서 고종 국장, 3.1 운동, 제암리 학살 사건 등을 취재하였다고 한다. 1942년 외국인 추방령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당한 후 테일러 부부는 늘 한국을 그리워했다고 전해진다.

 

 

 

 

서로 다른 집, 세 곳을 보았다. 경교장, 홍난파 가옥, 딜쿠샤.

1930년대 어느 시기에는 머지않은 곳에 사는 이웃이었을 최창학, 홍난파, 테일러 부부를 생각하니 소름이 끼친다.

그들만의 사연들이 있을 법도 하다.

 

 

 

 

Cafe Loco Fefe

병원 쪽으로 내려가는 길, 꿈길에나 볼 법한 Cafe들이 연이어 있고 꽃과 화분으로 치창된 화원이 있는 공간이 있다. 그중 초록 문의 한 카페에 들어갔다. 커피는 맛있었고 가격도 적당했다. 

 

 

잠깐의 휴식과 함께 여러 가지 감정과 많은 생각을 부른 시간여행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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