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우도 여행 중 만난, 정말 좋았던 독립 서점, 밤수지 맨드라미.
뭔가를 꼭 사야 할 것만 같아, 기념품을 찾던 중 발견한 정혜윤 작가의 또 다른 책, <슬픈 세상의 기쁜 말>.
고민할 것 없이 난 이 책을 골랐다.
p 7. 나는 언어가 우리를 구해 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새로운 생각, 새로운 말, 새로운 이야기가 있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고 있다. 나에게서 어떤 새로운 말도, 이야기도 나오지 않는 것, 이것이야말로 오늘 내가 가장 슬퍼해야 할 일이다.
p 9. 보르헤스는 자신의 인생은 열 개 정도의 단어로 압축될 것이라고 했다. 시간, 불멸, 거울, 미로, 실명, 시는 보르헤스가 평생 열정을 기울여 그 의미를 확장시키려고 노력한 단어다.
나의 인생은 어떤 단어들로 압축될 것인가? 음... 이런 식으론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당장 떠오르는 것들은 가족(남편, 아들, 딸, 부모, 형제), 책, 영화, 여행, 산책, 꽃, 나무, 카페 등이 떠 오른다. 조금 더 숙고해보고 싶다.
p 12. 우리가 서로의 단어를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감동적인 면이 있다. 세상은 열심히 우리의 이름과 고유성을 지운다.
p 21. 우선 이야기를 하면서 나부터 새롭게 바뀌고 싶다. 나의 누이는 너의 누이가 되고 나의 전투는 너의 전투가 되고 나의 늑대는 너의 늑대가 되고 너의 이야기는 나의 이야기가 되고 너의 슬픔은 나의 슬픔이 되고.... 그리고 다음번에는, 우리 정말로 더 잘 사랑해야 한다. 처음에 사랑했던 것보다 많이.
p 108. 그는 최악의 상황을 이야기의 출발점으로 삼을 줄 알았다. 나는 그토록 깊게 슬퍼한 사람이 타인의 행복을 바란다는 사살을 떠올릴 때마다 놀란다.
p 116. 빛이 안 나도 괜찮아. 하지만 따뜻해야 해.
p 117. 언니랑 있으면 평온해져요. 내가 뭔 말을 하든 언니 입으로 들어가면 더 괜찮은 걸로 변해서 나와요. 언니랑 이야기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고 사는 게 더 쉬워지지도 않아요. 하지만 언니랑 있으면 사는 것이 더 괜찮은 일이 돼요.
p 144. 아침에 눈을 뜨는 나의 의무 사항 중 하나는 하루의 슬픔을 감당할 기쁨을 찾는 것이다.
p 200. 진실이 그토록 중요한 것은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해서다. 현실을 더 낫게 고치기 위해서다.
p 201. 유일한 희망의 말은 '모든 것이 변해야 한다'이다. 깨버려야 할 것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 할 일이 없다'라는 생각이다. 이 생각이 비극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린다.
세상에 희망이 없을 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뭐 달라질까 해서. 그러나 그럼에도 작은 일이라도 행해야 한다. 비극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두어서는 안 된다.
p 203. 이 작은 손짓이 다른 미래가 될 수 있을까?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될 수도 있을까?
이 슬픈 사람들의 마음을 세상과 연결시켜 주는 단어는 생명에 대한 사랑이다.
작은 손짓, 사소한 것, 사랑은 여기에 있다.
p 222. 마거릿 애트우드의 말 중에 '우리가 가진 것은 목소리뿐(All I have is a voice)'이라는 말이 있어요. 이 말은 내게 중요해요. 나는 사회의 통념대로라면 전문가가 아니지만 아까 말한 대로 내 인생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전문가예요. 우리는 알아야 하고 솔직하게 말해야 해요.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지. 문제를 문제로 알아야 문제를 풀 수 있어요.
p 254. 스틸 뷰티풀(still beautiful)은 변주가 가능하다. 아무리 많은 일이 일어났어도 아름다운, 슬프지만 아름다운, 덧없지만 영원한, 슬프지만 기쁜. 내 마음에 고독이 찾던 이야기들은 모두 이 말과 관련이 있다.
슬픈 세상의 기쁜 말.
still beautiful.
슬픈 세상에서 나의 이야기와 나의 단어를 찾기.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소설] 경청_김혜진 (0) | 2024.06.23 |
---|---|
[한국 소설] 너라는 생활_김혜진 (2) | 2024.06.19 |
[영미 소설] 설득_제인 오스틴 (1) | 2024.05.23 |
[한국 에세이] 삶의 발명_정혜윤 (1) | 2024.05.06 |
[한국 소설] 무진기행_김승옥 (1) | 2024.0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