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소설은 <새 이야기>로 시작해, <침묵의 사자>로 끝난다.

동화 같은 제목이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어 느낌이 좋았다.

 

소설의 끝자락에 실린 해설들 중 몇몇은 몇 장 읽다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또 어떤 해설들은 보물 창고 같다.
이 책에 실린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마치 9번째 소설인 듯 읽었다.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 해설이다.
 

타인의 마음을 생각한다는 건 우리를 인간답게 하지만, 그 인간다움으로 인해 우리는 자주 상처받고 낙담한다는 것을 아는 탓이었다.

먼저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사랑은 하는 사람의 것이지 받는 사람의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을 시작하고 더 이상 받아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사랑을 계속할 수 있다.

한 번의 만남이 어긋난다고 해도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기어이 진심을 읽어내려는 에너지는  먼저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상처받은 대가로 얻는 것이다.

각자가 변하면서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변화는 가장 먼저 익숙했던 것들의 상실로 찾아온다. 그것이 상실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임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 김화진이 쓴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지치지 않는 열정일 것이다.

해설 (마음이론)_박혜진

 
 

 

새 이야기
진아는 천희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는 일본에 여자친구가 있었고, 결국 일본으로 떠난다.

이별 선물로 파가 심긴 화분을 받은 진아는 파를 정성스레 키운다.

파의 끝부분을 잘라 매일 매운 음식을 만들어 먹다가 결국 위장염에 걸리는 진아.

새가 된 천희는 그녀에게 찾아오고, 천희가 남긴 파는 미련이 된다.

 


나주에 대하여

사고로 규희를 잃고, 전 여자 친구인 나주의 SNS 계정을 엿보며 그를 그리워하고 흔적을 찾는 김단.

규희를 닮은 나주의 모습에서 그를 느끼고, 두근거리는 심장과 열에 달아오른 두 빰으로 나주를 탐색한다.
그렇게라도 규희를 잊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사람.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는 끈질기게도 나를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된다.

존재하지 않아도 남아있는 것들.

상실했지만 여전히 품고 있는 것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10년 전 물에 빠져 죽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1박 2일을 그린 영화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를 잊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마음 한편에 그를 묻은 슬픔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 엄마(키키 키린)에게 노란 나비가 되어 찾아오는 준페이는 마치 새나 파로 변한 천희, 나주의 몸을 빌린 규희처럼 느껴졌다. 

 

삶에 상실은 언제나 존재한다.

먼저 사랑하고, 공감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으려 지나치게 애쓰는 사람들은 그 상실로 겪는 고통의 무게가 더 클지도 모른다.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는 인생은 예측할 수도, 그러니 피할 수도 없다.

걸어도 걸어도 잊히지 않는 상실을 등에 메고, 손에 들고, 마음에 품은 채 그저 살아가는 수밖에.

그렇게 또 걷다 보면, 또 다른 근육의 모양이 생기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못생긴 마음들을 솔직하게 회피하지 않고 쓸 때, 이상하게 행복하다는 소설가의 말처럼,

내 안의 못난 나, 뾰족한 나, 감추고 싶은 나를, 생각과 말로, 행동으로 표출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며 이상하게 나 또한 위로와 치유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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