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의 밤은 화려했다.

 

 

 

 

돌산대교와 거북이 대교 불빛은 시시각각 색이 바뀌었고, 케이블에 매달린 50대의 곤돌라는 둥글고 하얀 조명을 깜빡이며 바다 위를 아찔하게 운행했다.

 

 

 

 

 

 

 

하멜등대는 5초에 한 번씩 빛을 깜빡거리며 광양항과 여수항을 오가는 선박을 지켜주고 있었고, 빨간 등대는 조명을 받아 낮보다 더 선명해졌다.

 

 

 

 

 

 

 

운행하는 거대한 크루즈 선수 위로 화살 같은 빛이 던져지고, 그 빛이 터지며 색색의 불꽃이 까만 밤하늘에 별처럼 나린다. 선상에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떨어지는 불꽃을 시야 가득 채우는 그 순간은, 멀리서 지켜봤던 불꽃놀이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이었다.

 

 

 

 

 

 

 

높고 낮은 건물들에서 새어 나오는 따뜻한 빛들, 언덕 위 벽화마을을 밝힌 불빛, 형형색색의 조명이 밤바다에 비쳐 섞이며 너울거렸다. 화려한 빛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말랑해지며 벅차올랐다.

 

 

 

 

 

paul frank Cafe.

 

Cafe 여수에서,

 

Cafe, MOI FIN

 

 

한낮 더위는 감성이 넘치는 작은 카페와 여유로운 대형 카페에서 달랬고, 국내 최대 규모의 아쿠아리움에서 탄성을 지르며 동심으로 돌아가 보기도 했다.

 

 

 

 

 

 

 

여수에서 먹어봐야 하는 음식 몇 가지를 먹었다. 속이 꽉 찬 게장정식은 기본이다.

삼겹살, 문어 그리고 갓김치의 조합이 환상적이었던 삼합은 다시 먹고 싶다. 시원한 문어라면, 이름이 예뻤던 목하 식당의 깔끔한 덮밥, 마지막 날 사치를 부려보았던 호텔 조식도 만족스러웠다.

 

 

 

 

 

 

 

긴 대기 끝에 살 수 있었던 쑥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이순신광장 한 편에 앉아 먹기도 했다.

 

 

 

 

 

소노캄 호텔

 

 

바다, 오동도 뷰로 일출을 감상할 수 있었던 접근성 좋았던 호텔과, 붉은 노을로 믈들었던 여수의 해 질 녘 모두 잊지 못할 것 같다.

 

 

 

꿈만 같았던 휴가.

온 가족이 함께여서 더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성숙하고 철이 든 자녀들과의 여행이 참으로 편안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여수 밤바다~  이 조명에 담긴~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네게 들려주고파~"

장범준의 노래 가사처럼, 여수에 담긴 우리들만의 이야기가 풍성하게 생겼다.

 

 

살아온 날들이 감사했고, 

살아갈 날들이 기대되었다.

그리고, 여수에서의 순간 순간이 너무 소중했다.

 

 

다시 힘을 내야 할 시간.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또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아야 한다.

 

10월에 예정된 부산 여행이 벌써부터 맘을 설레게 한다.

 

 

 

 

 

 

 

 

 

 

서울에서 가장 높은 공원.

산이라기엔 험한 경사가 없고, 공원이라기엔 너무 높다.

 

이곳이 난지도 쓰레기 더미 위에 조성된 공원이라고는 믿기지 않았다.

이곳의 모든 식물, 동물, 곤충들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에 적응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이루어내고 있다는 사실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하늘공원을 향해 걸어 천천히 올라도 좋았겠지만, 조금 더워진 날씨에 체력 소비를 줄이기 위해 맹꽁이 전동차를 탔다.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건드리고 머리카락을 날렸다.

 

 

 

 

 

공원을 마주하는 순간 너른 평야 같은 느낌이 시원하고 신비로웠다. 여느 공원과는 확연히 다르다.

유채꽃은 스러지고, 해바라기는 아직이지만 푸릇한 청보리가 공원을 책임지고 있었다. 

 

 

 

 

 

곳곳에 전망대가 있어 한강과 서울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강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왔다.

 

 

 

 

 

강 위 선유도, 붉은 성산대교와 시원한 월드컵 대교가 나란히 보이고, 난지 한강공원의 여유로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둥지'

예쁘고 조그만 둥지가 저마다 다른 각도로 배치되어 있다. 

이 작품은 같은 모양, 같은 크기의 아파트를 다른 시선으로 본 작품이다. 획일화된 공간에 갇혀 사는 현대인들이 다른 시각과 공간을 느끼며 자신만의 삶을 개척하라는 메시지가 좋았다. 새들도 다른 기울기의 공간에서 자신만의 삶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또 하나의 전망대 '하늘을 담은 그릇'

 

 

 

 


안으로 들어가니 하늘과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단이 있고, 꼭대기에 오르니 하늘 공원의 사방을 조망할 수 있었다.

흐린 하늘이 아쉽긴 했지만, 무엇이든 또 그만의 매력은 존재한다.

 

 

 

 

 

월드컵 공원이 이렇게 다양한 공원들과 시설을 갖추고 있는 공간인 줄 몰랐다.

 

 

노을공원, 난지천공원의 모습도 궁금하지만, 쌀쌀한 가을 키 큰 억새의 흔들림과 지는 노을을 볼 수 있을 때 하늘과 가장 가까운 이곳을 먼저 찾을 것 같다.

 

 

 

 

 

 

우리나라 최동단, 해돋이를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 우리나라 지형 호랑이 꼬리에 위치한 호미곶을 문무대왕릉 가기 전 잠시 들렸다.

해돋이를 보진 못했지만 청량한 바다, 의미 있는 조형물, 아름다운 등대가 눈을 사로잡았다.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이하며 마련된 거대한 조형물이다.

해맞이 광장을 지나며 볼 수 있는 왼손과, 바다에 솟구쳐 오른 오른손 형상은 인류가 서로 도우며 상생과 화합을 이루자는 의미로 조성되었다. 두 손이 서로를 갈망하고 있지만, 닿을 수 없는 듯 멀고 아련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맑은 하늘 아래, 푸른 동해의 물은 가슴이 탁 트일 정도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전망대 위쪽으로 사람들이 오고 갔다. 이름이 예쁜 해파랑길을 따라 나무로 만든 데크 위를 걸었다.

 

 

 

 

전망대 끝에 서있는 소년상은 해가 뜨는 지점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뒤쪽으로는 하얗고 높은 등대와 새천년 광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도상의 가장 동쪽 끝, 바로 그 지점에 내가 서있다 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바다 냄새가 정신을 깨웠다.

 

 

 

 

호미곶 등대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는 등대답게 한 컷 사진으로 전체를 담기 어려웠다.

책을 뒤집어 바닥에 놓은 듯한 모양의 하얀 등대는 밤에 배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12초에 한 번씩 불을 밝힌다고 한다.

 

세계항로표지협회에서 2022년 올해, 세계의 아름다운 등대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전 세계 수많은 등대 중 네 번째라고 하니 대단하다.

 

거칠고 어두운 밤바다 위, 반짝거리는 불빛으로 안도와 희망을 선사할 등대가 궁금하다. 해 진 후 등대의 불빛과 호미곶의 일출을 보려면 꼬박 하룻밤을 호미곶에서 지내야 할 듯하다.

 

 

 

경주로의 일박이일 여행 전 잠시 머문  포항의 바다는 기대 이상이었다. 

 

 

 

 

 

 

 

 

 

 

 

공세리 성당

 

 

희미한 봄꽃들이 스러지고 강렬한 색이 지배하는 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성당을 찾았다.

입구부터 단정하고 고요한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치료 중인 보호수를 지나, 회색과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성당을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적벽돌 건물 정면에 아치형 문 세 개, 같은 모양으로 난 창문들은 부드럽고 온화한 느낌을 주었다. 꼭대기에 솟구친 첨탑과 십자가가 위엄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성당을 감싸며 보호하는 거대한 나무들은 여름이 오기도 전에 무성한 잎을 내어 충분한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

고목과 성당의 조화가 너무 아름다웠다.

 

 

 

 

신을 벗고 성당 내부로 들어가 보니, 평 천장 가운데로 아치형 천장이 솟아있다. 무지개처럼 그려져 있는 회색 장식, 그리고 회색 기둥이 엄숙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스테인드 글라스 창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성당 둘레에 마련된 십자가의 길을 순례자처럼 걸었다.

붉은 철쭉이 핍박받는 예수상과 어우러지며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하얀색과 분홍, 연보라, 특이한 핫핑크까지 다양하고 화려한 철쭉의 절정이었다.

 

 

 

 

박물관의 문은 닫혀 있었지만, 마당에 소박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은 열려 있었다.

토요일 미사 시간인지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바쁘게 움직이셨고, 야외 예배당에서는 찬송가 소리가 울려 퍼졌다.

 

 

 

 

피정의 집은 지친 사람들에게 팔을 벌리고 있고, 마리아 상 앞에서는 양초에 촛불을 밝혀 기도드릴 수 있다.

숨겨진 장소인 듯한 성체 조베실은 성체 안 예수님과의 은밀한 시간을 갖는 곳이었다. 

이렇게 고요한 시간을 보내기에는 영화나 드라마 촬영도, 성당을 찾는 이도 많아 소란스럽지 않을까 염려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이곳의 모든 것들은 공존하며 자연스러워 보였다.

 

 

 

 

 

 

 

피나클 랜드

 

 

 

아산의 또 다른 명소 피나클 랜드.

공세리 성당의 철쭉이 아직 눈에 선명한데, 이번엔 튤립이다.

 

 

활짝 핀 튤립은 꽃송이가 더 커 보였고, 강렬한 원색의 꽃들은 크기만큼 화려했다.

늦은 봄은 선명한 색의 꽃들 천지다.

 

 

 

 

국화도

튤립 축제 기간이지만 다양한 꽃들에도 눈길이 간다.

복숭아꽃이 국화를 닮아 국화도다. 색이 노랗다면 국화꽃, 모양이 복숭아꽃이면 복사꽃일 텐데....... 특이하다.

작은 복숭아 열매를 맺는다니, 국화도라기 보단 복사꽃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

 

 

 

 

수선화

수선화의 종류도 다양하다. 자주봤던 노랗고 간결한 수선화와는 다르게, 은은한 색이 뒤섞인 잎 많은 수선화가 피어 있었다.

 

 

 

 

죽단화 (겹황매화)

매화처럼 생겼지만 노란색의 꽃을 황매화라 한다.

죽단화는 풍성한 겹꽃이지만 황매화의 색을 닮아 겹황매화라고도 부른다.

매화도, 황매화도 아닌 꽃 죽단화. 꽃에 이름을 붙이는 방법이 단순하고도 재미있다.

 

 

 

 

자엽자두나무

늦가을인 듯, 짙은 물이 든 이 나무는 자엽 자두나무다. 하얀 꽃이 아직 남아 있었는데 너무 작고 나뭇잎의 색이 강해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니 작은 벚꽃 모양의 꽃이 자주색 잎 사이로 하얗게 얼굴을 내민다. 

싹이 날 때부터 낙엽까지 자줏빛을 유지하는 나무가 신기하다.

 

 

 

 

팥꽃나무

팥알 같은 꽃봉오리가 열리면 팥색의 꽃이 피어난다.

진달래의 빛깔과 비슷하고 꽃잎이 4개로 개나리 같으니 '진나리'고 해도 되지 않을까.

 

 

 

 

지면패랭이꽃

잔디처럼 피어난 지면패랭이꽃들은 요즈음 철쭉과 함께 자주 볼 수 있는 꽃이다.

 

 

 

 

어린 아이들이 좋아했던 동물 먹이주기 코너.

알파카라는 동물은 몸에 비해 목과 다리가 길었다. 놀이공원에서 동전을 넣으면 움직이는 동물 모형 같은 느낌이 들었다. 

 

 

 

 

피나클 랜드의 정상까지 올라가며 내려다보는 경치는 또 하나의 관람 포인트다.

곳곳에 포토존과 다양한 식물들 그리고 조형물들이 정성스럽게 배열되어 사람들의 눈길을 끌고 있었다.

 

 

 

 

흐렸던 하늘이 서서히 맑아졌다.

 

 

 

2007년 겨울, 나의 어린아이들과 이곳에 왔었다.

옛 사진의 배경에는 꽃도 푸르름도 없었지만, 뭐가 그리도 좋은지 웃음과 즐거움이 배어난다.

아이들은 없지만, 같은 장소를 배경으로 포즈를 재현해 사진을 찍어 보았다. 카톡 메시지로 딸에게 보내니, 셀카를 찍어 자신의 빈자리를 합성해 되돌려 준다. 감동이다.

 

2007년의 우리와, 2022년의 우리가 완벽하게 같다. 

추억이 현재와 이어져 행복은 배가 된다. 

 

함께 지내진 못하지만, 마음 안에 늘 머무는 가족은 삶을 이어주는 큰 힘이다.

 

 

 

 

 

 

설화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수백 년 삶을 이어온 터전, 마을 자체가 문화유산인 외암 마을을 찾았다.

양반의 고택, 초가, 돌담, 정원의 옛 모습이 보존되어 있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저잣거리 쪽에 차를 세우고 파전과 국수로 민속마을에 온 분위기를 더해 보았다.

 

 

 

 

방송을 타 더 유명해진 듯한 식당은 오전 10시 30분 즈음 도착했을 때도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 파전과 국수를 주문했다. 식당 앞 작은 정원에는 노랗고 하얀 수선화 몇 송이가 땅에서 솟아올라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오전 산책을 마친 듯한 복장과 분위기의 부부 한 쌍이 파전을 주문해 먹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갔다. 이어 온 부부도 같은 메뉴에 막걸리를 추가했다. 먼길을 달려온 우리는 파전과 종류가 다른 국수 2개를 더 주문했다.

 

시간이 걸려 나온 파전은 광고대로 1cm 두께를 자랑했다. 굵게 썰린 오징어와 홍합, 새우 등이 파 사이로 드러났다.

맛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얇고 바삭한 부침개가 부담 없고 더 좋다.

국수는 익숙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모두 맛있었지만 정말 배가 불렀다. 결국 파전은 다 먹지도 포장도 못했다. 너무 욕심을 냈나 보다. 

 

 

 

 

저잣거리부터 걸어 마을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가깝고 마을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아직 남아있는 벚꽃들이 하나 둘 나리며 환영해 주었다.

 

 

 

 

주차장과 관리 사무소 근처에 있는 민속관에서는 상류, 중류, 서민층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었다.

목련과 산수유는 여전히 자태를 뽐내며 마을과 어우러져 있었고, 마당에서 전통놀이 체험을 하고 있는 가족들의 수다와 웃음이 듣기 좋았다.

 

아주 오래전 가을,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어린 나의 아이들과 이곳에 왔던 추억이 나를 물들이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풍덕댁, 교수댁, 참봉댁 등 택호가 정해져 있었다.

그중, 건재고택은 시간을 정해 개방하고 있어 들어가 보았다.

 

 

 

 

들어서는 순간 '아 뭔가 다르다'라고 느껴지는 반가의 고택.

잘 가꾸어진 정원과 기품 있는 기와집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박태기꽃

 

금낭화

돌담들 사이를, 기와와 초가집 담장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니 자주 볼 수 없었던 꽃들이 눈에 밟힌다.

밥을 튀긴 밥티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 박태기나무 꽃. 봉오리가 구슬을 닮아 북한에서는 구슬 꽃나무라고도 한단다.

 

아치형으로 굽은 꽃대에 꽃들이 줄줄이 걸려있는 금낭화.

복주머니를 실로 정성스레 달아놓은 듯 물가에서 싱싱한 분홍빛을 띄고 신비롭게 피어있었다.

 

 

 

 

얼핏 봐서는 큰 매화, 혹은 작은 무궁화 느낌을 주는 복사꽃을 발견하고는 정말 기뻤다. 빛깔이 이리 고우니 아름다운 복숭아 열매를 맺나 보다. 붉은빛을 띠는 겹 복사꽃의 색은 정말 강렬했다. 

 

 

 

 

시대를 잘 재현해 놓은 민속촌도 좋지만, 보존되어 전해 내려오는 마을은 더 정겹다.

산과 물과 바람과 나무, 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꽃들이 더해진 외암마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입구로 돌아왔을 때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마을 안쪽의 산책길은 고즈넉하고 여유로웠다. 

 

꽃 이름 하나, 자연의 섭리 하나를 알아가는 것이 이리도 즐겁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행복은 크고 거창한 일들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돌리면 내 옆 작은 것들에 있다는 것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네 카페를 들려 잠시 쉬어갔다.

네모진 하얀 외관이 인상적인 카페는 야외 좌석이 꽤나 넓었다. 남편이 오래전부터 찾아둔 유명한 곳이었다.

 

 

 

 

추억의 분식집처럼 메뉴에 표시를 해서 가져다주면 주문 완료다.

앙증맞은 메뉴 그림과 컬러가 재미나다. 우리는 시그니처 흑임자 크림 커피와 딸기 라테를 체크했다.

 

 

 

 

남편은 라테가 정말 맛있다며 좋아했고, 검은깨가 아낌없이 들어간 음료는 흑임자 크림의 달달함을 시작으로 커피의 쌉쌀함까지 시그니처다웠다.

 

 

 

 

꽉 차게 알찬 그리고 행복한 하루에 감사한다.

 

 

 

 

 

 

 

 

사람들이 활기차 보인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내려놓고 꽃구경으로 마음을 달랜다.

 

22년의 봄은 특별하다.

지속된 추위 덕에 봄꽃들의 개화가 늦어졌다.

덕분에 산수유와 매화꽃이 사라지기도 전에, 목련의 송이가 완전히 떨어지고 개나리의 노란빛이 초록의 잎으로 바뀌기도 전에, 하얗고 여린 분홍빛의 벚꽃들이 탐스럽게 만개해 있다. 어디를 가던 꽃 천지다.

모든 봄꽃이 공존하다 함께 지워지려나 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신 국립묘지이자 호국추모공원인 현충원.

몇 해 전 이곳의 벚꽃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꽃이 만발하는 올해, 위드 코로나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 이곳을 다시 찾았다.

 

 

 

 

이른 아침 도착했을 때는 성능 좋은 줌 카메라를 들고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화보 촬영을 하는 사람들, 인생 사진을 건지려 작정하고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화려한 꽃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수양벚꽃 덕이다.

수양버들처럼 벚꽃도 유연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아래로 꽃을 피우고 있다. 오래되어 큰 나무의 검은 가지들이 하얗고 여린 빛의 꽃과 대비를 이루며 신비함을 더한다.

 

 

 

 

아름다운 꽃 장식을 단 커튼이 내린 듯 고개를 숙인 가지 덕에 눈높이에 맞추어 꽃을 마주할 수 있다.

 

 

 

 

천국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신선놀음을 한다면 이곳이 아닐까. 신비롭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또 하나의 명소인 현충천의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과 강렬한 개나리꽃 사이로 작은 산책길과 실개천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 우리도 이 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하늘한 치마나 작은 꽃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봄과 잘 어울렸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벚꽃들 사이 개성 있게 서 있는 나무 한그루가 있다. 홍겹매화다.

백찰 옥수수 사이에서 발견한 한 개의 붉은 옥수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화가 붉다. 잎이 겹으로 풍성하다. 귀한 이 나무 주위에 사람들이 붙어서 꽃을 관찰하기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인기 많은 나무였다.

 

 

 

 

수양벚꽃뿐만이 아니라 왕벚꽃나무의 자태 또한 지금이 절정인 듯했다.

 

 

 

 

활짝 핀 벚꽃 여러 개가 모둠을 이루어, 커다란 꽃 한 송이처럼 보였다. 탐스럽고 풍성한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산수유, 버티고 있는 목련, 보라색 유채꽃인 소래풀까지 벚꽃 절정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인파로 뒤덮인 꽃 주위를 벗어나 김대중 대통령과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묘소에 들렸다.

앞서 온 두세 팀의 참배가 끝날 때를 기다린 후 버튼을 눌러 녹음된 음성을 따라 분향을 하고 목례를 하고 묵념을 했다.

날은 25도를 넘겨 초여름 더위였고, 내리쬐는 햇살이 강렬했다. 그리운 마음, 아쉬운 마음, 답답한 마음으로 잠시 시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수양벚꽃들이 자리한 곳으로 돌아와 돌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며 꽃잎이 날린다. 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처럼, 수백 마리의 나비가 팔랑대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오전 공기 속 만개한 벚꽃들은 분명 가지에 단단히 매달려 떨어질 것 같지 않더니, 따뜻한 오후 햇살과 잔잔한 바람에 잎을 하나씩 떨구다 수많은 꽃잎을 날려 버린다. 시선을 옮겨 멀리 보니 목련의 커다란 꽃잎은 빠른 속도로 우수수 낙하한다. 

 

벚꽃의 절정과 벚꽃의 엔딩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꿈같은 오늘이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그러하다.

너무 소중한 봄날이다.

 

 

만물이 깨어나는 성실한 계절, 

하늘과 닿아있는 키 큰 벚나무의 잔 가지들이 붉은빛을 띠며 개화 준비를 하고 있다.

한쪽에선 이미 색을 드러 낸 하얗고 노란 그리고 분홍빛의 꽃들 사이로 연초록의 잎이 더해져 여리디 여린 초봄의 기운이 온 세상을 물들인다.

 

봄다운 따스함을 느낀 오늘, 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모셔 둔 종묘를 찾았다.

 

 

 

 

하마비와 외대문

모두를 말에서 내리게 했던 하마비는 예를 갖추어야 할 장소임을 일깨워 주었고, 화려하지 않은 종묘의 정문은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와 더불어, 2001년에는 제례와 종묘제례악 역시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니 그 옛날 선조들의 지혜와 업적이 놀라울 뿐이다.

 

 

 

 

봄의 시작은 여리고 은은하다. 만개한 꽃, 푸르른 나무의 향연에 앞선,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잎 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진달래의 연분홍 빛을 군데군데서 만날 수 있었다.

 

 

 

 

신로를 중심으로, 왼편 세자의 길과 오른쪽 왕의 길이 신비롭게 이어져 있었다.

먼저 정전 쪽으로 향했다.

 

 

 

 

종묘 정전

정전은 태조의 신주를 비롯해 공덕이 있는 역대 왕과 왕비 49분의 신주를 모셔 둔 장소이다.

올 하반기까지 공사 예정이라 일부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종묘 정전

다행히도 남신문을 통과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박석이 촘촘하게 깔린 장대한 월대, 가로로 끝없이 이어진 듯한 지붕, 그 아래 소박하게 단청을 입힌 이어진 기둥들. 정전의 모습에 압도당하는 순간이었다.

 

 

 

 

배향공신당과 칠사당

월대 아래쪽 마당에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배향 공신당과,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칠사당 건물이 동서로 자리한다.

배향공신 신주 봉안도를 들여다보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학자 이황, 이이 등의 이름도 쓰여 있었다.

 

 

 

 

악공청

영녕전으로 가는 길에 기다란 정자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발걸음을 멈춰 보니, 종묘제례시 음악을 담당하는 악공과 무원들의 대기실 같은 곳이었다.

 

 

 

 

영녕전 일대

길을 돌아 마주한 영녕전은 태조의 4대조와, 왕과 왕비의 신주 총 34위가 모셔져 있는 별묘이다.

산수유와 닮아있지만 더 풍성해 보이는 꽃 뭉치의 생강나무가 아름다운 영녕전 앞으로 자라 있었다.

파란 하늘, 따뜻한 기운이 도는 온도, 은은한 봄의 빛깔, 새소리가 크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사위는 왕과 왕비들이 편히 쉬기에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녕전

따스한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건물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고요한 분위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곳, 거칠고 단단한 박석 사이로 끈질긴 초록의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다. 

 

 

 

 

영녕전 건물 옆, 악공청을 지나가던 중, 무리를 지어 자라는 노란 개나리가 눈길을 끌었다. 작은 잎이 네 개 달린 꽃은 스케치북에 그리기에도 색을 입히기에도 무척 쉬워 보였다. 

 

 

 

 

정전의 동문과 수복방

정전과 맞닿아 있는 전사청 일원은 제례에 필요한 음식을 마련했던 곳이다.

동문 옆 수복방은 종묘를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했던 공간이고, 그 앞에 너른 찬막단은 제사에 쓰일 음식을 상에 올리고 검사했었던 곳이다.

 

 

 

 

전사청과 제정

제사용 우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들여다보니 우물 바닥이 보였음에도 꽤 깊다고 느껴졌다.

 

 

 

 

전사청 일원

전사청을 등지고 나오는데 근사한 산사나무가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곧 하얀 꽃을 피우고 가을에 붉은 열매를 맺을 이 나무의 생이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화려하게도 고통스럽게도 느껴져 한참을 바라보았다.

 

 

 

 

재궁일원

재궁은 임금과 세자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사를 준비했던 공간이다.

준비를 마친 왕과 세자는 정전으로 향했을 터였다. 관람 동선도 이곳부터 시작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향대청 일원 (망묘루와 공민왕 신당)

제례 용품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대기하던 장소인 향대청 남쪽에 자리한 망묘루는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곳이다. 뒤쪽으로 공민왕 신당이 있었는데 조선의 왕들을 모신 종묘에 고구려의 왕이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향대청 일원 근처에 연못 하나가 더 있었다. 임금의 혼을 모신 종묘의 연못에서는 생물을 기르지 않는다고 한다. 

외대문 앞에서 만난 연못도 왠지 썰렁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런 이유에서였나 보다. 

 

 

 

 

 

연못 근처, 하얗고 탐스런 목련이 송이 하나 땅에 떨구지 않은 채로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하얀 장미 혹은 풍성한 튤립인 듯도 보이는 꽃의 수백 송이를 거대한 꽃다발로 만들어 파란 도화지에 그려놓은 작품 같았다.

 

 

 

 

어느 고궁보다 더 고요했던 종묘는 고인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절제되어 있는 모든 것이 신비롭고 엄숙하다. 

연못에 생물을 키우지 않는 그 마음이라면 종묘는 겨울이 가장 잘 어울릴까?

활엽수의 잎들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 있는 황량한 겨울은 너무 쓸쓸할 것 같다. 눈이라도 소복이 쌓여 정전과 영녕전을 감싼다면 모를까.

 

 

여리고 은은한 오늘의 종묘가 참 좋다.

생기로 가득 찬 이 성실한 봄은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남기는 응원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다음 방문 시에는 매년 5월과 11월 봉행된다는 제사의 경건한 모습을 종묘제례악과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전날 종일 오던 비는 여행 당일 11시가 지나서야 그쳤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첫째 날은 양평, 다음 날은 이천으로의 산수유 여행이다. 

비를 흠뻑 머금은 양평 시골길의 산수유와, 이천의 햇살 받은 산수유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경기 양평

산수유

 

 

 

개군면 산수유길과 주읍리 마을길을 걸었다. 매년 열렸던 산수유 축제는 길고 긴 전염병으로 3년째 취소되었다.

꽃길에서 만난 얼굴들이 반가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양평의 산수유 길은 고즈넉하다.

잔뜩 젖어있는 땅, 물을 머금은 논, 허름한 집들과 돌담 주위로 여린 노란빛의 산수유가 애처로운 듯 신비롭게 서 있었다.

구름 덮인 하늘 아래, 단풍잎인지 꽃인지 모를 나무는 묘하게 아름다웠다.

 

 

 

 

쌀쌀한 날씨에 완전히 피지 못한 꽃이 진한 갈색 가지에 안간힘을 쓰고 달라붙어 있었다.

꽃마다 매달린 물방울들은 보석처럼 반짝이기도, 눈물이 맺혀있는 듯도 보였다.

 

 

 

 

도심의 혼잡한 거리에선 느끼지 못할 편안한 보행을 했다.

정겹고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다 보니, 검은 새의 날갯짓마저도 여유롭게 보였다.

 

 

 

 

시조목으로 지정된 오래된 나무가 빨간 지붕 기와집 옆에서 보호되고 있었다. 출근길에 오가며 봤던 자그마한 산수유나무와는 비교되지 않을 키와 덩치였다.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던 중, 동네 분께서 훈수를 두고 지나가셨다.

아직 만개도 아니고 날도 흐려 오늘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거라고, 빛을 받아야 예쁘다고 하셨다.

 

산수유는 보는 것만큼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송이가 작고 색이 여리서 일테다. 멀리서 보면 꽃의 모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산수유꽃은 마음씨도 곱다.

 

 

 

 

 

 

경기 이천

백사면 산수유 마을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이곳은 입구부터 붐볐다. 11시 즈음 도착했을 때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다. 운 좋게도 출차하는 차가 있어 자리를 얻었다.

 

날이 맑아서인지, 사랑채를 중심으로 주차장과 산책 코스가 정비되어 있어서인지, 이곳은 행사는 없었지만 축제장 분위기였다.

 

 

 

 

작은 절이 눈에 띄어 올라가 보았다.

이곳의 나무들은 크고 풍성했다. 오랜 기간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맑은 하늘 아래 햇살 품은 산수유 꽃은 즐겁게 수다를 떠는 아이들 같다.

 

 

 

 

어제 양평에서 만난 동네 분의 말대로 맑은 날의 산수유는 눈에도 사진에도 더 선명하게 담겼다.

 

 

 

 

육괴정이라 불리는 정자는 느티나무 여섯 그루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중 세 개는 세월을 이겨낸 것이었다.

수 백 년 전 느티나무를 심으며 함께 심기 시작한 산수유가 지금 이 아름다운 풍경의 시작이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연인의 길 쪽으로 걸었다. 이곳은 피크닉을 해도 좋을 장소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간단한 다과를 먹는 가족, 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부부,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 연인들, 노란 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을 사진에 남기는 젊은 엄마의 모습도 벅차도록 아름다웠다. 

 

장관이다. 노란 물감으로 반점을 그려놓은 어느 화가의 작품처럼 노란 물결이 세상을 감싼다.

 

 

 

 

어제보다 하루를 더 산 산수유 꽃은 그만큼 풍성해져 있었다.

며칠이 지나 만개 후, 지워지듯 없어질 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매화나무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막 터질 듯한 옥수수알 같은 몽우리와, 둥근 잎의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 꽃들이 섞여 있었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향을 맡아보니 은은한 향이 좋다. 어디선가 맡아보았던 향수나 방향제 냄새 같기도 했다.

 

 

 

 

낙수제 쪽으로 올라가던 중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 풍경과 산수유의 노란빛이 어우러지며 꿈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그런지 바람소리가 매섭게 들리고, 맑던 하늘엔 갑자기 구름이 덮쳤다.

 

 

 

 

고요한 산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청량하고 맑았다.

윙윙 바람 소리, 경쾌한 물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로 오감 중 청각이 두드러지는 순간이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며 근처 바위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이 피어나 시각마저 사로잡을 그때의 낙수제가 궁금해졌다.

 

 

 

 

낙수제를 끝으로 연인의 길로 다시 내려왔다.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산수유의 물결 또한 너무 아름답다.

가을에 펼쳐질 붉은 행렬은 또 얼마나 강렬할지.............

꽃과 대비되는 색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신비로울 뿐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어제의 산수유와 오늘의 산수유는 다르다.

비 온 날과 맑은 날 기분이 달라지듯이, 비를 머금은 산수유와 햇살 받은 산수유도 달라 보였다.

 

어제의 진하고 쓸쓸한 모습, 오늘의 맑고 명랑한 느낌, 둘 다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저마다 환경에 따라 다른 가치를 뽐낸다. 

 

 

 

일박으로 다녀온 산수유 여행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산수유를 시작으로 앞으로 피어날 수많은 봄꽃들을 기대하며 행복한 봄이다.

 

 

 

 

 

 

 

지난 11월, 행사 관계로 1층 서가를 구경하지 못했었다.

오늘은 이곳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리라 작정하고 온 길이다.

 

 

 

 

노들 서가

 

 

한강 위 작은 섬 북카페, 정말 낭만적이다. 

 

 

 

 

 

2층 입구로 들어서면 한쪽에 카페 B o o o C 이 있다. B와 C 사이 [ooo].

사이에 놓인 소중한 것들을 잃지 말자는 의미인가? 카페 이름 붘(booc)이 서가의 북(book)과 어울리며 재미나다.

 

 

 

 

체온을 재고, QR 체크를 하니 놀이공원 마냥 프리패스 종이 팔찌를 채워 준다.

손 소독을 하고 서가로 입장하면 작가들이 추천하는 책들을 모아놓은 코너가 제일 먼저 눈에 띈다.

 

 

 

 

일상작가의 서재

책갈피처럼 사이에 꽂혀있는 카드에는 추천작가들의 짧은 서평이 쓰여 있다.

지난번 이곳에서 로맹 가리의 좋은 책 한 권을 소개받았었다.

 

 

 

 

곳곳에 앉을자리가 있어 차와 책을 즐길 수 있는 2층은, 지난번 한 예술가의 그림 전시가 있었을 때보다 여유로워 보였다.

 

 

 

 

설레는 마음으로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갔다.

식물원에 온 듯 키가 큰 나무 몇 그루가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 주었고, 책뿐 아니라 다양한 전시들에 입이 떡 벌어질 정도였다. 

 

 

 

 

꿈꾸는 별책방

책 모양 갈색 상자에 넣어 포장된 책은 날짜 순으로 갈무리되어 있었는데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코너였다. 

 

내 생일과 같은 날 태어난 작가가 없는 건지, 책이 팔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날의 책이 없어 아쉬웠다.

딸의 생일이 쓰여있는 상자가 눈에 띄어 꺼내보니 <Blind Date With a Book>이라고 쓰여있을 뿐, 작가의 나이도 성별도 알 수 없었다. 

 

책과의 블라인드 데이트. 정말 멋지다. 

 

<꿈꾸는 별 책방>을 검색해 보니 광명에 있는 한 독립서점이다.

그곳에는 나와 생일이 같은 작가의 책이 있을지 궁금했다. 

 

 

 

 

한장책

또 하나의 이벤트 한장책.

종이 한 장에 노래 가사가 새겨진 스탬프를 찍어 시나 운문을 만들어 보는 코너였다. 

완성 후, 책 모양으로 접어 카운터에 가지고 가면 선물도 준다고 한다. 우리는 스탬프 몇 개를 찍어 기념품으로 가져왔다.

 

 

 

 

예전에는 스탬프 없이 오롯이 글로 나만의 책을 만들었나 보다.

방문객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책들은 인테리어에도 성공적 이어 보였다.

 

 

 

 

모레책

책문화를 생산하는 이들이 생각하고 그려왔던 이야기들이 한 뼘 작은 종이에 쓰여 있었고, 그중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모아 나만의 위시 리스트로 만드는 이벤트다. 

<마음산책>, <그림책 공작소> 같은 익숙한 출판사들의 메시지도 있었고, <단추>, <파란 자전거>, <리타의 테이블>등 낯선 이름도 많았다.

 

그중 블라인드 데이트 북을 판매하는 <꿈꾸는 별 책방>의 한 뼘 종이가 나의 모레책 첫 페이지다.

 

♥ 우연히 만나,

♥ 더 특별해질 수 있는

♥ 인연이 있다고.

 

 

 

 

각 코너마다 다양한 출판사들의 대표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고 구입도 가능했다.

몇 권 사고 싶은 책들도 눈에 띄었지만 오늘은 책과 원 없이 놀았던 것으로 만족했다.

 

 

 

 

노들 버스커

음악의 섬 노들에서는 인디 뮤지션들에게 버스킹 무대와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었는데, 버스킹 장면들을 서가에서도 만나볼 수 있었다.

나만의 플레이 리스트를 메모지에 적어 벽면에 겹으로 빼곡히 붙여놓은 걸 보고, 나의 가장 사랑하는 곡들을 적어 흔적을 남겼다.

 

 

 

 

비마이비

"당신은 어떤 브랜드인가요?"

 

나의 일상을 브랜드 관점으로 바라보며 카드를 골라, 뒷 면 OR 코드로 자세히 알아보고 나만의 브랜드 관점을 알아볼 수 있는 코너였다.

 

카드가 예뻐 골고루 모아 가지다 보니 꽤 집어 들게 되었다. 

 

 

 

 

홀처럼 넓은 1층 한 공간에는 소원을 비는 돌탑 위에 올라간 소원초가 전시되어 있었고, 그 앞으로 철제 의자 여러 개가 편하게 놓여있었다. 위에 올려진 둥근 방석이 예뻐 보여 잠시 쉬어가기로 하고 주문을 위해 카페로 올라갔다.

 

 

 

 

호주식 카푸치노가 있었는데 맛이 부드럽고 향이 진한 커피라고 한다.

남편은 호주식, 나는 바닐라라테를 주문했다.

 

 

 

 

코코아 파우더가 올라간 쪽이 호주식 카푸치노다.

거품 위에 하얀 하트나 동그라미만 만들 수 있는 나로서는 가느다란 선들을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다.

 

 

 

 

분홍 의자를 테이블 삼아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겼다.

이것저것 기념품들이 담긴 작은 손가방에서 내가 만든 모레책을 꺼내 한 장씩 넘기며 읽어보니, 책 한 권으로 충분하게 느껴졌다.

 

 

기대했던 것 이상의 공간이었고, 다시 와도 매번 새로울 것 같은 장소다.  

 

 

 

 

 

 

 

 

설날 앞으로 주말이 있어 여유로운 연휴다.

추운 겨울바람이 걱정되었지만, 한낮에는 다닐만하겠다 싶어 고궁 나들이에 나섰다.

 

오늘은 두해 전 단풍구경을 갔었던 창경궁이다.

 

 

 

 

창경궁

 

홍화문

월요일 휴무인 고궁은 연휴기간 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이른 시간이지만 궁을 찾은 관람객들도 꽤 있었다.

서울대학교 병원 앞에 자리한 중층의 홍화문이 묘한 느낌을 주었다.

 

 

 

 

옥천교

옥천교 너머로 명정문과 명정전이 한눈에 보였다.

궁궐에 남아있는 다리 중 원형이 잘 보존되어 보물이기도 한 옥천교 아래로는 물이 얼어 눈이 쌓인 것처럼 보였다.

 

 

 

 

명정전

명정문을 통과하니 조정에 놓인 품계석이 종렬을 맞추고 있었고, 오랜 세월을 지나 온 창경궁의 정전이 품위 있게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명정전은 현존하는 조선의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오래된 건물답게 명정전 내부도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천장 중앙을 올려다보니 경복궁과 덕수궁 정전에서 보았던 용 장식 대신 아름다운 한쌍의 봉황을 볼 수 있었는데 한결 부드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명정전 양 옆에는 커다란 청동그릇이 소화기처럼 놓여 있었다.

 

 

 

 

 

 

 

 

숭문당

명정전 뒤 좌측으로, 성균관 유생을 접견하기도 시험하기도 했다는 숭문당이 있었는데 '문을 숭상한다'는 의미의 이곳이 어쩐지 애잔하게 보였다.

 

 

 

 

함인정

몇 개의 전각들을 둘러보다 정자처럼 생긴 건물 하나가 눈에 띄었다.

함인정은 국왕이 신하를 만나거나 경연을 하기도 했던 곳이다. 동궐도에는 지금과 달리 삼면이 막혀 있다고 한다. 

 

 

 

 

함인정 내부

함인정 사면에는 사계절을 노래한 시인 도연명의 사시(四時)가 걸려있다. 

소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에서 주인공 진솔과 건이 밤의 궁 데이트에서 머물렀던 공간이 바로 이곳이었다.

 

옆에서 찰칵~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건이 라이터를 켜 정자 내부에 걸린 현판을 비춰보는 중이었다. 동서남북 방향으로 네 개의 현판이 라이터 불빛 속에 차례로 드러났다. 다섯 글자씩 새겨진 한문을 그가 중얼거리듯 읽어나갔다.

春水滿四澤(춘수만사택)    봄비에 연못의 물은 가득하고 
夏雲多奇峯(하운다기봉)    여름엔 구름이 봉우리를 만든다. 
秋月揚明輝(추월양명휘)    가을 달빛은 휘황하게 빛나고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    겨울 고개엔 외로운 소나무가 우뚝하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_이도우>

 

실제 존재하는 장소를 콕 집어주는 소설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은 듯하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모르겠지만,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 장소를 찾아가 보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이도우 님의 이 소설은 서울 도심의 곳곳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冬嶺秀孤松(동령수고송) "겨울 고개에는 외로운 소나무가 빼어나도다"

 

옛 시인의 노래처럼, 한 겨울 고궁에서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는 소나무였다.

둥치가 굵은 고송들은 제각각 다른 모양으로 구부러져 있었고, 나무마다 조금씩 다른 색의 거칠고 굵은 껍질을 입고 있었다.

 

 

 

 

마르고 황량한 겨울나무 사이, 초록의 빛을 잃지 않고 강건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은 고궁과 어우러지며 황홀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해 내고 있었다.

 

 

 

 

통명전

내전 깊숙한 곳 남향으로는 통명전과 양화당이 나란히 서 있었다.

왕비의 침전인 통명전은 마당에 깔린 박석 때문인지 정전 느낌이 나며 여느 내전과는 달라 보였다. 지난번 방문 시 이곳 기단 위에서 국악음악회가 열렸던 것이 기억났다.

 

 

 

 

통명전 연지

뒤뜰 샘이 넘쳐 마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건물 서쪽에 연지라는 연못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침전 옆 연못도 독특했다. 

 

 

 

 

경춘전

정조가 태어나기도, 혜경궁 홍 씨가 승하하기도 했다는 경춘전.

사도세자가 정조를 낳기 전에 용이 이곳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벽에 용 그림을 그려 두었다고 하는데 내부는 볼 수 없었다.

 

건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북쪽에 위치한 전각으로 그녀를 이끌었다. 그곳은 경춘전이었고 뒤로는 상록수들이 담장까지 빽빽이 들어서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_이도우>

 

경춘전 뒤쪽 숲 너머에는 창덕궁 후원으로 통하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춘당지

어느 해 가을, 환상적이었던 단풍이 연못 주위에서 반짝였던 춘당지 쪽으로 걸었다.

겨울의 춘당지는 추위에 얼어 있었고, 화려했던 주변 나무들은 휑하고 쓸쓸했다.

 

 

 

 

관덕정

대온실 쪽으로 걸어가다 언덕 위에 정자 하나를 발견했다. 궁금해 올라가 보니 활쏘기나 말타기 연습 등을 했던 곳이다.

언덕 위에서 하얀 온실 건물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따뜻한 온실 안을 구경하고 출구로 내려오던 중 회화나무 몇 그루를 발견했다. 그중 선인문 근처의 하나는 심하게 뒤틀리고 껍질이 갈라져 속이 훤히 들여다 보였다. 

뒤주에 갇혀 죽어간 사도세자의 비극을 지켜보았던 이 나무는 안타까운 죽음에 괴로워하며 온 몸으로 함께 고통을 나누었나 보다. 생명을 가진 나무는 위대하다.

 

 

 

사도세자의 비극을 떠올리며 고궁 나들이를 마무리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겨울 답지 않게 햇살이 따스하게 느껴졌고 가볍게 운동한 느낌도 들어 상쾌했다. 

 

22년 첫 달의 마지막 날을 의미 있게 보낸 것 같아 뿌듯했고, 설날로 시작되는 2월도 최선을 다해 살아갈 에너지가 충전된 느낌이 들었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