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종일 오던 비는 여행 당일 11시가 지나서야 그쳤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첫째 날은 양평, 다음 날은 이천으로의 산수유 여행이다.
비를 흠뻑 머금은 양평 시골길의 산수유와, 이천의 햇살 받은 산수유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경기 양평
산수유
개군면 산수유길과 주읍리 마을길을 걸었다. 매년 열렸던 산수유 축제는 길고 긴 전염병으로 3년째 취소되었다.
꽃길에서 만난 얼굴들이 반가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양평의 산수유 길은 고즈넉하다.
잔뜩 젖어있는 땅, 물을 머금은 논, 허름한 집들과 돌담 주위로 여린 노란빛의 산수유가 애처로운 듯 신비롭게 서 있었다.
구름 덮인 하늘 아래, 단풍잎인지 꽃인지 모를 나무는 묘하게 아름다웠다.
쌀쌀한 날씨에 완전히 피지 못한 꽃이 진한 갈색 가지에 안간힘을 쓰고 달라붙어 있었다.
꽃마다 매달린 물방울들은 보석처럼 반짝이기도, 눈물이 맺혀있는 듯도 보였다.
도심의 혼잡한 거리에선 느끼지 못할 편안한 보행을 했다.
정겹고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다 보니, 검은 새의 날갯짓마저도 여유롭게 보였다.
시조목으로 지정된 오래된 나무가 빨간 지붕 기와집 옆에서 보호되고 있었다. 출근길에 오가며 봤던 자그마한 산수유나무와는 비교되지 않을 키와 덩치였다.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던 중, 동네 분께서 훈수를 두고 지나가셨다.
아직 만개도 아니고 날도 흐려 오늘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거라고, 빛을 받아야 예쁘다고 하셨다.
산수유는 보는 것만큼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송이가 작고 색이 여리서 일테다. 멀리서 보면 꽃의 모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산수유꽃은 마음씨도 곱다.
경기 이천
백사면 산수유 마을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이곳은 입구부터 붐볐다. 11시 즈음 도착했을 때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다. 운 좋게도 출차하는 차가 있어 자리를 얻었다.
날이 맑아서인지, 사랑채를 중심으로 주차장과 산책 코스가 정비되어 있어서인지, 이곳은 행사는 없었지만 축제장 분위기였다.
작은 절이 눈에 띄어 올라가 보았다.
이곳의 나무들은 크고 풍성했다. 오랜 기간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맑은 하늘 아래 햇살 품은 산수유 꽃은 즐겁게 수다를 떠는 아이들 같다.
어제 양평에서 만난 동네 분의 말대로 맑은 날의 산수유는 눈에도 사진에도 더 선명하게 담겼다.
육괴정이라 불리는 정자는 느티나무 여섯 그루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중 세 개는 세월을 이겨낸 것이었다.
수 백 년 전 느티나무를 심으며 함께 심기 시작한 산수유가 지금 이 아름다운 풍경의 시작이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연인의 길 쪽으로 걸었다. 이곳은 피크닉을 해도 좋을 장소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간단한 다과를 먹는 가족, 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부부,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 연인들, 노란 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을 사진에 남기는 젊은 엄마의 모습도 벅차도록 아름다웠다.
장관이다. 노란 물감으로 반점을 그려놓은 어느 화가의 작품처럼 노란 물결이 세상을 감싼다.
어제보다 하루를 더 산 산수유 꽃은 그만큼 풍성해져 있었다.
며칠이 지나 만개 후, 지워지듯 없어질 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매화나무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막 터질 듯한 옥수수알 같은 몽우리와, 둥근 잎의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 꽃들이 섞여 있었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향을 맡아보니 은은한 향이 좋다. 어디선가 맡아보았던 향수나 방향제 냄새 같기도 했다.
낙수제 쪽으로 올라가던 중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 풍경과 산수유의 노란빛이 어우러지며 꿈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그런지 바람소리가 매섭게 들리고, 맑던 하늘엔 갑자기 구름이 덮쳤다.
고요한 산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청량하고 맑았다.
윙윙 바람 소리, 경쾌한 물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로 오감 중 청각이 두드러지는 순간이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며 근처 바위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이 피어나 시각마저 사로잡을 그때의 낙수제가 궁금해졌다.
낙수제를 끝으로 연인의 길로 다시 내려왔다.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산수유의 물결 또한 너무 아름답다.
가을에 펼쳐질 붉은 행렬은 또 얼마나 강렬할지.............
꽃과 대비되는 색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신비로울 뿐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어제의 산수유와 오늘의 산수유는 다르다.
비 온 날과 맑은 날 기분이 달라지듯이, 비를 머금은 산수유와 햇살 받은 산수유도 달라 보였다.
어제의 진하고 쓸쓸한 모습, 오늘의 맑고 명랑한 느낌, 둘 다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저마다 환경에 따라 다른 가치를 뽐낸다.
일박으로 다녀온 산수유 여행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산수유를 시작으로 앞으로 피어날 수많은 봄꽃들을 기대하며 행복한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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