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활기차 보인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내려놓고 꽃구경으로 마음을 달랜다.
22년의 봄은 특별하다.
지속된 추위 덕에 봄꽃들의 개화가 늦어졌다.
덕분에 산수유와 매화꽃이 사라지기도 전에, 목련의 송이가 완전히 떨어지고 개나리의 노란빛이 초록의 잎으로 바뀌기도 전에, 하얗고 여린 분홍빛의 벚꽃들이 탐스럽게 만개해 있다. 어디를 가던 꽃 천지다.
모든 봄꽃이 공존하다 함께 지워지려나 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신 국립묘지이자 호국추모공원인 현충원.
몇 해 전 이곳의 벚꽃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꽃이 만발하는 올해, 위드 코로나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 이곳을 다시 찾았다.
이른 아침 도착했을 때는 성능 좋은 줌 카메라를 들고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화보 촬영을 하는 사람들, 인생 사진을 건지려 작정하고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화려한 꽃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수양벚꽃 덕이다.
수양버들처럼 벚꽃도 유연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아래로 꽃을 피우고 있다. 오래되어 큰 나무의 검은 가지들이 하얗고 여린 빛의 꽃과 대비를 이루며 신비함을 더한다.
아름다운 꽃 장식을 단 커튼이 내린 듯 고개를 숙인 가지 덕에 눈높이에 맞추어 꽃을 마주할 수 있다.
천국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신선놀음을 한다면 이곳이 아닐까. 신비롭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또 하나의 명소인 현충천의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과 강렬한 개나리꽃 사이로 작은 산책길과 실개천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 우리도 이 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하늘한 치마나 작은 꽃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봄과 잘 어울렸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벚꽃들 사이 개성 있게 서 있는 나무 한그루가 있다. 홍겹매화다.
백찰 옥수수 사이에서 발견한 한 개의 붉은 옥수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화가 붉다. 잎이 겹으로 풍성하다. 귀한 이 나무 주위에 사람들이 붙어서 꽃을 관찰하기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인기 많은 나무였다.
수양벚꽃뿐만이 아니라 왕벚꽃나무의 자태 또한 지금이 절정인 듯했다.
활짝 핀 벚꽃 여러 개가 모둠을 이루어, 커다란 꽃 한 송이처럼 보였다. 탐스럽고 풍성한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산수유, 버티고 있는 목련, 보라색 유채꽃인 소래풀까지 벚꽃 절정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인파로 뒤덮인 꽃 주위를 벗어나 김대중 대통령과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묘소에 들렸다.
앞서 온 두세 팀의 참배가 끝날 때를 기다린 후 버튼을 눌러 녹음된 음성을 따라 분향을 하고 목례를 하고 묵념을 했다.
날은 25도를 넘겨 초여름 더위였고, 내리쬐는 햇살이 강렬했다. 그리운 마음, 아쉬운 마음, 답답한 마음으로 잠시 시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수양벚꽃들이 자리한 곳으로 돌아와 돌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며 꽃잎이 날린다. 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처럼, 수백 마리의 나비가 팔랑대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오전 공기 속 만개한 벚꽃들은 분명 가지에 단단히 매달려 떨어질 것 같지 않더니, 따뜻한 오후 햇살과 잔잔한 바람에 잎을 하나씩 떨구다 수많은 꽃잎을 날려 버린다. 시선을 옮겨 멀리 보니 목련의 커다란 꽃잎은 빠른 속도로 우수수 낙하한다.
벚꽃의 절정과 벚꽃의 엔딩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꿈같은 오늘이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그러하다.
너무 소중한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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