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화산 기슭에 자리를 잡고 수백 년 삶을 이어온 터전, 마을 자체가 문화유산인 외암 마을을 찾았다.
양반의 고택, 초가, 돌담, 정원의 옛 모습이 보존되어 있어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금강산도 식후경.
저잣거리 쪽에 차를 세우고 파전과 국수로 민속마을에 온 분위기를 더해 보았다.
방송을 타 더 유명해진 듯한 식당은 오전 10시 30분 즈음 도착했을 때도 문을 열고 손님을 맞고 있었다.
신을 벗고 마루에 올라 파전과 국수를 주문했다. 식당 앞 작은 정원에는 노랗고 하얀 수선화 몇 송이가 땅에서 솟아올라 눈을 즐겁게 해 주었다.
오전 산책을 마친 듯한 복장과 분위기의 부부 한 쌍이 파전을 주문해 먹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갔다. 이어 온 부부도 같은 메뉴에 막걸리를 추가했다. 먼길을 달려온 우리는 파전과 종류가 다른 국수 2개를 더 주문했다.
시간이 걸려 나온 파전은 광고대로 1cm 두께를 자랑했다. 굵게 썰린 오징어와 홍합, 새우 등이 파 사이로 드러났다.
맛은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얇고 바삭한 부침개가 부담 없고 더 좋다.
국수는 익숙하고 정겨운 맛이었다. 모두 맛있었지만 정말 배가 불렀다. 결국 파전은 다 먹지도 포장도 못했다. 너무 욕심을 냈나 보다.
저잣거리부터 걸어 마을 쪽으로 향했다. 가는 길이 가깝고 마을을 멀리서 바라볼 수 있어 좋다.
아직 남아있는 벚꽃들이 하나 둘 나리며 환영해 주었다.
주차장과 관리 사무소 근처에 있는 민속관에서는 상류, 중류, 서민층 가옥을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었다.
목련과 산수유는 여전히 자태를 뽐내며 마을과 어우러져 있었고, 마당에서 전통놀이 체험을 하고 있는 가족들의 수다와 웃음이 듣기 좋았다.
아주 오래전 가을, 노랗고 붉게 물든 단풍을 배경으로 어린 나의 아이들과 이곳에 왔던 추억이 나를 물들이며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가옥 주인의 관직명이나 출신 지명을 따서 참판댁, 감찰댁, 풍덕댁, 교수댁, 참봉댁 등 택호가 정해져 있었다.
그중, 건재고택은 시간을 정해 개방하고 있어 들어가 보았다.
들어서는 순간 '아 뭔가 다르다'라고 느껴지는 반가의 고택.
잘 가꾸어진 정원과 기품 있는 기와집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선사하고 있었다.
돌담들 사이를, 기와와 초가집 담장 사이를 천천히 걷다 보니 자주 볼 수 없었던 꽃들이 눈에 밟힌다.
밥을 튀긴 밥티기를 닮아 붙여진 이름 박태기나무 꽃. 봉오리가 구슬을 닮아 북한에서는 구슬 꽃나무라고도 한단다.
아치형으로 굽은 꽃대에 꽃들이 줄줄이 걸려있는 금낭화.
복주머니를 실로 정성스레 달아놓은 듯 물가에서 싱싱한 분홍빛을 띄고 신비롭게 피어있었다.
얼핏 봐서는 큰 매화, 혹은 작은 무궁화 느낌을 주는 복사꽃을 발견하고는 정말 기뻤다. 빛깔이 이리 고우니 아름다운 복숭아 열매를 맺나 보다. 붉은빛을 띠는 겹 복사꽃의 색은 정말 강렬했다.
시대를 잘 재현해 놓은 민속촌도 좋지만, 보존되어 전해 내려오는 마을은 더 정겹다.
산과 물과 바람과 나무, 봄이기에 누릴 수 있는 아름다운 꽃들이 더해진 외암마을은 그야말로 최고였다.
입구로 돌아왔을 때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마을 안쪽의 산책길은 고즈넉하고 여유로웠다.
꽃 이름 하나, 자연의 섭리 하나를 알아가는 것이 이리도 즐겁고 소중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삶의 행복은 크고 거창한 일들에 담겨있는 것이 아니라 눈을 돌리면 내 옆 작은 것들에 있다는 것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사네 카페를 들려 잠시 쉬어갔다.
네모진 하얀 외관이 인상적인 카페는 야외 좌석이 꽤나 넓었다. 남편이 오래전부터 찾아둔 유명한 곳이었다.
추억의 분식집처럼 메뉴에 표시를 해서 가져다주면 주문 완료다.
앙증맞은 메뉴 그림과 컬러가 재미나다. 우리는 시그니처 흑임자 크림 커피와 딸기 라테를 체크했다.
남편은 라테가 정말 맛있다며 좋아했고, 검은깨가 아낌없이 들어간 음료는 흑임자 크림의 달달함을 시작으로 커피의 쌉쌀함까지 시그니처다웠다.
꽉 차게 알찬 그리고 행복한 하루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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