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미세먼지에 안개가 더해져 온통 뿌옇다. 

계획된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오후에는 사라질 먼지를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길을 나섰다.

차창 앞 멀리 높다란 건물들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드러날 정도로 희미하다. 영화 속 재난상황과 흡사했다.

 

 

문래 근린공원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늦가을로 가득 찬 아담한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다행히 우리 자리는 있었다.

 

 

 

 

 

영일 분식

문래동

 

쓸쓸한 날 잘 어울리는 칼국수로 메뉴를 고르고, 방송 꽤나 탄 맛집이라 이른 시간이지만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낮고 허름한 집에 밖에까지 나와있는 냉장고와 주방 도구들을 보니 시골 한 구석에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온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편안했다. 

단출한 메뉴 중 칼국수(6.0)와, 칼 비빔국수(7.0)를 주문했다. 가격도 착하다.

만두를 놓고 좀 고민했지만, 양이 넉넉해 보였고 카페도 갈 예정이라 자제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겉절이는 방금 버무린 듯 싱싱했고, 매운 국수와 짝꿍인 육수도 담백했다.

 

 

 

 

다른 색과 온도의 국수는 커다란 은색 그릇에 담겨 나왔다. 따뜻한 국수는 시골 할머니가 해주시는 듯한 고향의 맛이 소환되었고, 매운 양념을 한 국수는 쫄깃한 식감에 짜지 않은 적당한 양념이 너무 맛있었다.

먹고 나올 때쯤에는 거의 자리가 없어 보였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문래창작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래창작촌

 

1960년대 이후 철강 제조사업이 활발했던 문래동은, 90년대 산업의 하락세를 겪으며 많은 철공소들이 빈자리를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반면 홍대나 대학로 등 예술가들의 아지트였을 장소들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임대료나 집값이 올랐고 그곳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저렴한 문래동의 빈자리로 하나 둘 옮겨오게 되었다. 

2000년대 초 많은 예술가들이 유입하며 문래창작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키가 작고 허름한 집들 사이의 좁은 골목,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벽과 지붕들,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거리는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철공소, 거주공간, 카페나 식당, 예술가들의 작업실 등이 공존하고 있는 이곳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곳곳에 매너 있는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안내가 있었는데, 삶의 터인 이곳이 관광객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 듯 느껴졌다. 

 

 

 

 

문래창작촌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처음에는 작가들의 아지트가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동네를 거닐다 보니, 곳곳에 애매모호한 이름의 작은 간판들이 걸려있었고, 건물 2층에 자리한 곳이 많이 있었다.

 

 

 

 

문래동에 터를 잡은 오랜 철공 장인들은 떠난 동료들과, 그 자리를 채운 예술가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어떠했을까?

결이 다른 문화가 유입하여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관광객들이 드나들며 임대료가 오를까 걱정도 했을 터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낯선 환경에서 불편하게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편치 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두 관계가 상생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져가고 있는 듯해 보였다.

삭막한 철공소 철문에 칠해진 감각적인 색의 페인트,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곳곳에 예술가들이 설치했을 사진 촬영 매너 표지판과, 예술가들의 디자인으로 장인들이 용접했을 조형물들이 수줍게 손잡은 그들의 공존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어울리지 않는 철공 장인들과 예술가들의 만남. 이제 이 둘은 꼭 필요한 파트너인 듯하다.

 

여전히 먼지로 뒤덮여 흐리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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