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초.
해마다, 지역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이 즈음이 단풍 절정인 듯하다.
오늘은 조금 멀리 충남 독립기념관 내에 조성된 단풍나무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어죽 대부
목천점
기념관에서 그리 머지않은 식당에서 특별한 음식을 먹었다.
어죽? 이름만 들었을 때는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 모양과 맛이었다.
보양어죽(9.0) 두 그릇과 민물새우전(13.0)을 주문했다.
반찬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돋워 주었고, 대나무 채반에 담긴 전은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새우가 아낌없이 들어간 전을 한 입 베어 씹으니 바삭거리는 식감과 새우 특유의 짜고 고소한 맛이 정말 별미다.
이어 나온 어죽은 추어탕과 비슷해 보였다. 국물을 떠먹어보니 비린맛이 전혀 없다.
얼큰한 짬뽕, 고소한 추어탕, 혹은 고추장찌개 등의 맛이 섞여 있었다. 맛있다.
수저로 휘저어보니 넉넉하게 들어있는 국수와 수제비 그리고 죽이라기보다는 말은 느낌의 밥알이 들어있었다.
국수를 먼저 건져 먹고, 수제비를 먹은 후 마지막으로 죽을 먹었다. 양이 무척 많아 밥은 조금 남겼지만 남편은 싹싹 비웠다. 특별하고 맛있는 식사에 정말 만족스러웠다.
독립기념관
주차를 하려는 차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미 길가에 세워 둔 차의 길이도 상당했다.
주차장에 간신히 주차 후 들어서니 높게 치솟은 하얀 겨레의 탑이 보인다.
탑을 지나 옆길로 단풍나무길이 이어진다.
단풍나무길
가을 단풍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한 시간 남짓, 혹은 조금 더 걸리는 이 반원의 길을 같은 방향으로 걷고 또 걸었다. 양 옆으로 단풍나무가 간격을 맞추어 서 있다. 이런 곳은 처음이다.
붉은 단풍이 눈을 자극하다가도 노란 은행잎과 갈색의 쓸쓸한 잎들이 연이어 지나가고, 상록수들이 초록을 뽐내며 어우러져야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곳은 온통 붉다.
단풍잎이 마르지 않고 색이 더 선명했다면 불 속에 뛰어든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아직 채 물들지 않은 잎들과 간혹 보이는 초록의 잎들이 오히려 안도감을 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경사진 길이 한참 이어지는 예상치 않았던 등산으로 다리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길의 끝이 조금 반갑게 느껴졌다.
조선총독부
철거 부재 전시공원
단풍나무길을 나와 조금 더 내려가면 뼈 아픈 역사현장이 나온다.
경복궁의 전각들을 헐어버리고 세운 조선총독부는 일제의 식민통치기관이었다.
광복 50년 만에 이 건물을 허물어 일재의 잔재를 없애고, 이곳 독립기념관에 그들의 만행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공원을 조성하였다.
기념관 서쪽에 자리한 이곳은 지는 해처럼 일본의 제국주의도 패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부서져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부자재들도 그들의 몰락을 상징한다.
갈수록 움푹 파인 구조에 반 매장되어있는 첨탑을 내려다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곳을 본다면 넓은 공간에 석조물을 전시해 놓은 근사한 곳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전시의 의도를 제대로 알고 엄숙하게 지켜봐야 할 장소이다.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공원을 떠났다.
맑은 하늘 아래로 청와대를 떠올리게 하는 파란 지붕의 건물이 보인다.
겨레의 집
독립 기념관의 상징건물인 이곳을 마주하니 오래전 아이들과 왔었던 기억이 희미하게 떠올랐다.
그때는 아이들과 전시실을 두루두루 다니며 관람하고 체험했었다.
이미 지칠 대로 지친 우리는 십 년 전 그때와는 많이 다른가보다.
이곳을 마지막으로 본 후 입구 쪽으로 향했다. 아직도 사람들은 넘쳐난다.
간혹 군복을 차려입은 아들들이 눈에 띄었다. 휴가 중 이곳을 방문하면 하루 휴가를 더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혹한다. 막상 군인들은 하루 버리고 하루 얻기 느낌인가 보다. 그래도 그게 어딘가.
광개토 대왕 비
나오는 길에 광개토대왕 비가 서 있어 의아했다.
중국 지린성에 있는 거대한 비석을 이곳에 재현해 놓은 것이었다.
고구려 장수왕이 아버지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광개토 대왕비. 중국까지 가서 이 비석을 보기는 어렵다.
주변국들이 이 비에 대한 다른 해석으로 역사를 왜곡하고 있는 현실도 우려스럽다.
이런 이유에 대응하고 고구려의 기상을 계승하고자 설립되었다고 한다.
단풍나무로 뒤덮인 숲길, 버스킹 하는 가수들의 소리, 독립 기념관답게 곳곳에 전시된 역사의 현장들, 맑은 하늘과 늦가을답지 않게 따뜻했던 날씨가 오늘을 의미 있는 하루로 만들어 주었다.
위드 코로나가 실감 나게 곳곳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보니 한 편으로는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일상을 조금씩 찾아간다는 생각에 평화로워 보이기도 했다.
지나가는 가을이 아름답다.
'♧ 여행·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원 홍천] 소노벨 비발디파크의 가을_211113 (0) | 2021.11.17 |
---|---|
[경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Cafe 구름정원 제빵소_211113 (0) | 2021.11.16 |
[서울 중구] 덕수궁(경운궁)_211023 (0) | 2021.10.27 |
[서울 종로] 창덕궁 후원_211002 (0) | 2021.10.21 |
[서울 종로] 창덕궁_211002 (0) | 2021.10.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