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경궁과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는 창덕궁.
창경궁은 가을 단풍을 보러 두어 번 갔었기에 선명하지만, 창덕궁은 오래전 일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임금들이 거처했던 곳이라 한다.
고궁의 매력을 알아버린 가을, 오늘은 창덕궁이다.
창덕궁
창덕궁의 정문 돈화문.
문의 규모라기에는 엄청나다. 위엄이 느껴졌다.
돈화문 일원에 마련된 통유리 건물에서 표를 구입하고 기념품 몇 가지를 구경했다.
돌다리 건너 진선문으로 들어가기 전부터 멋스럽다. 입구부터 잘 심긴 고목들이 운치 있다.
꽃은 지고 단풍은 아직인 계절이지만, 종일 나의 눈에 들어왔던 건 사연이 담긴 듯한 나무 기둥과, 다양한 모양으로 뻗은 가지, 제각각 푸르름으로 달린 잎의 화려함이었다.
경복궁의 건물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일직선상에 배치된 것과는 다르게, 창덕궁은 북악산 응봉 자락 지형에 맞게 배치하여 자연과 조화롭게 어울린다. 경복궁은 유교, 창덕궁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니 정말 느낌이 다른 두 궁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된 이곳은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좌측은 정전으로 통하는 인정문, 정면은 숙장문이다.
인정문 안으로 보이는 인정전은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문 안으로 들어서니 정전인 인정전이 흐린 하늘 아래 서있다.
경복궁 근정정과 다르게 창호지가 황색이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순종황제가 거처했기 때문에 황제의 색인 황금색을 사용했다고 한다.
용마루에 박힌 오얏꽃도 생소하다. 오얏은 자두의 순우리말로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꽃문양이기는 하지만 다른 조선 궁궐에는 없는 장식이다. 개화기 서양이나 혹은 일본의 영향을 받았으리라 추측된다고 하는데 어떤 이유이던 우리의 슬픈 역사가 스며있는 정전이다. 그 위를 검은 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경복궁의 어좌가 붉은색인 것과 다르게 황색 어좌다.
유리창과 커튼, 서양식 마루, 전등 등 외국 문물을 궁에서 보니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선정전으로 들어가 어로인 복도를 지나면 편전인 선정전이다. 궁궐의 전각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청기와 건물이다.
아쉽게 특별한 기와는 사진에 담지 못했다.
전통과 근대가 잘 어우러진 건물 희정당은 조선시대에는 침전으로 사용되다 순조부터는 편전이었다고 한다.
동행각, 서행각, 접견실로 이루어진 내부는 조선 후기 및 근대 왕실의 생활모습이 많이 남아있다고 한다.
화려하게 얽혀있는 지붕이 멋스럽고 희정당에서 바라본 소나무들은 액자 그림처럼 아름답다.
선평문을 들어서니 왕비의 침소였던 대조전이 우아하게 자리한다.
대조란 크게 만든다는 뜻으로 왕자 마마를 생산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임금의 침소이기도 했던 이곳은 지붕에 용마루가 없다. 왕자가 태어나면 두 마리의 용이 충돌할 수 있어 만들지 않았다는 설이 있다고 한다.
내부를 들여다보니 서양풍의 장식과 소품들이 방 안을 차지하고 있었고, 뒤뜰에는 왕비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화계가 어김없이 마련되어 있었다.
정면으로 고송 한그루와 희정당이 보이는 카페 야외 좌석에 앉았다.
내내 흐렸던 하늘에서 비가 떨어진다. 카페 왼쪽 숙장문으로 우산을 쓴 관광객들이 오고 갔다.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며 비를 머금은 고궁을 둘러보는 순간이 황홀했다.
길 아래로 조금 내려오니 낙선재 일원이다. 단청을 입히지 않은 담백한 이 건물들은 헌종이 경빈 김 씨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곳으로 낙선재, 석복헌, 수강재가 있다.
헌종의 서재겸 사랑채로 사용되었던 낙선재.
정문인 장락문의 편액이 색다르다. 알고 보니 흥선대원군의 글씨란다. 뒤쪽으로 누각 상량정과 화계도 보인다.
경빈 김 씨의 처소인 석복헌.
수강재 창으로 바라본 화계에 걸린 감나무.
계단에서 소나무가 자라는 건 처음 본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환상적인 풍경이다.
창덕궁은 매우 화려하고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정형화되지 않은 건물 배치, 전통과 근대적인 모습의 조화, 우거진 특별한 나무들이 인상적이었다.
역사를 증명하듯이 근대적인 모습이 곳곳에 남아있는 궁은 그 시대의 시간들이 생생하게 느껴지게 만들어 주었다.
상량정 근처에 창경궁으로 들어가기 위한 매표소와 입구 그리고 창덕궁 후원 가는 길이 이어진다.
후원은 인원 제한이 있어 온라인으로 예약해야 했었지만, 운 좋게도 오늘은 현장에서 가능했다.
한국 전통 정원의 모습을 기대하며 길을 따라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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