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휴무로 연달아 3일을 쉬니 마음에 여유가 생긴다. 

보너스 같은 휴일, 이름만으로도 낭만적인 정동길을 다녀왔다.

 

정동교회부터 경향 아트힐로 이어지는 이 길은 폭이 좁은 이차선 도로다.

정동길이란 이름은 태조 이성계의 둘째 부인 신덕왕후의 능묘 정릉이 이 곳에 있었던 것에서 유래했다 한다.

 

 

 

 

교회부터 시작해도, 아트힐부터 걸어도 상관없다.

양 옆을 장식한 가로수 아래 운치 있는 건물을 구경하며 천천히 걷다 보면 그리 길지 않은 이 길이 특별함을 알 수 있다.

 

정동교회, 정동극장, 구 이화학당(현재는 이화여고 박물관), 이화여고 100주년 기념관, 캐나다 대사관 등 유명한 건물들이 자리하고 있고,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팔았던 손탁호텔 터도 이곳에 있었다. 

 

 

 

 

소매를 파고드는 쌀쌀한 기운에 따뜻한 커피 생각이 났다.

이 날, 이 길에 어울리는 작은 카페, 정동 커피로 들어섰다.

 

 

 

 

넓지 않은 공간에 테이블 수도 많지 않았지만 분위기 있다. 벽면에 책을 둔 인테리어도 마음에 든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과 정동길에 놀러 온 가족, 연인들의 모습이 좋아 보였다.

 

 

 

 

국립 정동 극장 내에는 마당이 있는 카페 정담이 있었고, 지난겨울 트리 장식이 예뻤던 카페 루소도 지나쳤다.

 

 

 

 

정동교회가 보이는 길에서 만난 작곡가 고 이영훈의 추모비다.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이 마이크 하단에 새겨져 있다.

그를 사랑하는 친구들이 마련한 이 작은 비석은 길에서 보석을 발견한 듯 한 느낌을 주었다.

 

 

 

 

작은 비에 새겨진 <광화문 연가>를 비롯하여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옛사랑>, <사랑이 지나가면> 등등 이문세의 소리를 빌려 발표했던 그의 노래들은 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들었던 주옥같은 노래들이다.

광화문 연가의 가사를 되짚어 보니 정동길의 쓸쓸함과 인생의 외로움이 사무친다. 

 

 

 

 

정동길은 덕수궁 돌담길과 통한다.

예쁜 돌담길에서 연인과 가족들이 다양한 포즈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우리도 돌담 아래서 사진을 남겼다.

그늘을 만들어주는 가로수 아래, 감각적인 벤치에 앉아 즐거운 연인들을 한없이 바라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대한문쪽으로 돌아나가니 분위기가 다르다. 

길 건너로 플라자 호텔과 서울광장, 서울시청이 도심 한복판임을 일깨워 준다.

 

복잡하고 바쁜 도심생활에 정동길과 덕수궁 돌담길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일 뿐 아니라 지친 사람들을 어루만져 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돌담을 돌아 계속 걸었다.

오른쪽으로 세실극장이 보이고 그 뒤로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이 자리한다.

돌담길 쪽 황실 자재들의 근대적 교육기관인 경운궁 양이재를 지나면 정면에 영국대사관 건물이 있다.

선교사처럼 양복을 잘 차려입고 서류가방을 든 외국인이 골목을 지나 대사관으로 들어갔다.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적 건축 기법이 가미된 이 건물은 대한성공회 서울대성당이다.

화강석과 붉은 벽돌의 조화, 아치형의 장식과 창들이 아름답다. 기와로 얹은 지붕도 묘하게 어울린다.

 

 

 

 

서양식 건물 옆 이 건물은 사제관이다.

동서양의 느낌을 함께 가진 성공회 건물은 매우 독특한 분위기를 풍겼다.

 

 

 

 

대한성공회는 유월 민주화 운동의 진원지였다.

조선의 궁들이 모여있는 이곳에서 민주화의 열망이 얼마나 뜨거웠을지 생각해 보았다.

 

 

영국대사관 왼편, 덕수궁 안쪽에 마련된 보행테크를 통과해 고종의 길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데크에서는 유료 관람인 덕수궁으로 넘어갈 순 없지만 넘겨다 볼 수는 있어 궁의 웅장함을 잠시나마 구경할 수 있었다.

 

 

 

 

고종의 길은 1896년 아관파천 이후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부터 덕수궁까지 오갔던 길로 알려져 있다.

길의 끝까지 걸으니 정동공원이 있다. 언덕 위 구 러시아 공사관은 공사 중이었다.

 

 

 

 

주차해 놓은 콘코디언 빌딩 쪽으로 가던 중 캐나다 대사관에 들려 사진을 찍었다.

 

요즘 다시 보고 있는 드라마 <도깨비>에서 단풍국으로 친근한 나라.

TV 화면 속, 붉게 물든 커다랗고 풍성한 메이플 트리를 보며 가보고 싶은 나라 목록에 슬그머니 올려보기도 했던 곳.

 

사실 이 드라마에 빠져있는 건 나보다 남편이 더 유난하다. 폰카메라를 들어 정성스레 구도를 잡고 사진을 찍는 그의 뒷모습이 마냥 사랑스럽다.

 

 

 

오늘 걸었던 정동길은 고 이영훈의 노래 광화문 연가와 함께 기억날 것 같다.

 

쓸쓸한 날씨가 그 길의 분위기를 더해 주었고, 소박한 이름의 작은 카페는 정이갔다.

붉은 벽돌 건물들과 돌담이 어우러진 풍경은 색다른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가로수 아래 지나치는 사람들의 환한 얼굴들이 정겨웠다. 길에서 만난 작은 비석과 새겨진 가사는 옛 감정들을 불러일으켰고, 돌아오는 내내 차 안에서 들었던 광화문연가는 정동길을 나의 길로 만들어 주었다.

 

이 길을 자주 오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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