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여행 중 다녀온 신동엽 문학관.
시인의 삶을 자세히 알 수 있었던 알찬 공간이었다. 가을 하늘 아래 감나무와 싯구들이 아름답게 어울렸다.


그 사람에게/신동엽

아름다운
하늘 밑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쓸쓸한 세상 세월
너도야 왔다 가는구나

다시는 못 만날지라도
먼 훗날
무덤 속 누워 추억하자

호젓한 산골길서 마주친
그날, 우리 왜
인사도 없이
지나쳤던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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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 그의 책에 스며있는 분위기가 좋다.

책에 실린 8편의 단편은, 주인공의 경험, 생각, 감정들을 <일인칭 단수> 시점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다가 소설이라기보다는 하루키의 단상이나 에세이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림>

p 45. 프랑스어로 '크렘 드 라 크렘'이라는 말이 있는데, 아나? 크림 중의 크림, 최고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야.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에센스.

 

p 48. 대체 무슨 일인지 곱씹어보았지. 상처도 받았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멀찌감치 물러나 바라보니 전부 아무래도 상관없는 시시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 인생의 크림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일이라고. 인생의 크림. 그가 말한다. 내가 말한다.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

 

<찰리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p 67.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이 영혼 깊숙한 곳의 핵심까지 가 닿는 음악이었다는 것이다. 듣기 전과 들은 후에 몸의 구조가 조금은 달라진 듯 느껴지는 음악--그런 음악이 세상에는 분명히 존재하는 법이다.

 

 

<위드 더 비틀즈>

p 79. 그렇게 기억이란 때때로 내게 가장 귀중한 감정적 자산 중 하나가 되었고, 살아가기 위한 실마리가 되기도 했다.

 

p 83. 그곳에는 음악이 있었다. 하지만 정말로 그곳에 있었던 것은 음악을 포함하면서도 음악을 넘어선, 더욱 커다란 무언가였다. 그리고 그 정경은 순식간에 내 마음속 인화지에 선명히 아로새겨졌다. 아로새겨진 것은 한 시대 한 장소 한순간의, 오직 그곳에만 있는 정신의 풍경이었다.

 

p 114. 그들의 음악은 그 시절의 우리를 마치 벽지처럼 구석구석 에워싸고 있었다.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p 131. 그렇다 인생은 이기는 때보다 지는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인생의 진정한 지혜는 어떻게 상대를 이기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잘 지는가 하는 데서 나온다.

 

p 147. 물론 지는 것보다야 이기는 쪽이 훨씬 좋다. 당연한 얘기다. 하지만 경기의 승패에 따라 시간의 가치나 무게가 달라지지는 않는다. 시간은 어디까지나 똑같은 시간이다. 일 분은 일 분이고, 한 시간은 한 시간이다. 우리는 누가 뭐라 하든 그것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시간과 잘 타협해서, 최대한 멋진 기억을 뒤에 남기는 것--그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p 148. 나도 소설을 쓰면서 그 소년과 똑같은 기분을 맛볼 때가 종종 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하나하나에게 사과하고 싶어 진다. '죄송합니다. 저기, 이거 흑맥주인데요."라고. (죄송할 필요 없어요. 전혀. 나는 그렇게 말하며 그를 안심시킨다. 아까부터 흑맥주가 오기를 기다렸거든요.)

 

 

 

인생은 진액의 크림 같은 일들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 시시하고 사소한 무수한 순간들이 존재한다. 과거에 나를 괴롭게 했거나 행복하게 했던 일들도, 지금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누군가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아니다. 학창 시절 매일 듣던 그 음악이 여전히 나에게 감동을 주는 것처럼,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의 체온이 나에게 끊임없이 따스함을 건네주는 것처럼. 그 모든 순간들은 또 다른 나를 만들어 준 소중한 것들이다. 

 

깊은 맛의 에일을 선호하는 사람, 시원한 라거를 좋아하는 사람, 혹은 흑맥주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것처럼  온갖 종류의 맥주는 누군가에게 소비되기 마련이다. 

 

 

 

 

 
 
<내가 되는 꿈>이라는 제목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내가 원하는 나, 내가 추구하고 바라는 삶, 내가 생각하는 존엄을 지켜나가며 사는 것....
 
얼마 전 읽었던 최진영 작가의 장편 <구의 증명>은 '나'의 존재를 무시당하며 평범한 '나'로 살지 못했던 구와, 구의 죽음을 증명하기 싫었던 담이의 이야기이다. 최근 다시 본, 변영주 감독의 영화 <화차>에서는 '나'를 숨기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야 했던 주인공이 결국 '내'가 되지 못한 채 비극을 맞이한다. 공교롭게 두 작품 모두, 물려받은 사채 빚 때문에 쫓기는 젊은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최소한의 권리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 가면을 쓰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억지웃음을 지으며 당당하게 나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나와 반하는 일임에도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들.
그런 순간들은 내가 아닌 걸까? 내가 되지 못한 것일까? 이런 순간을 견디면 과연 내가 될 수 있는 것일까?
 
 
p. 53 내가 어떤 사람인지 탐구하는 대신 나를 어떤 사람이라고 정해 좋고 그 틀 안에서만 나를 생각하는 지름길.
p. 54 아빠는 자기 자신도 그런 틀 안에 가둔다. 진짜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는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믿는 사람을 자기라고 단정해 버린다.(....) 아빠는 자기가 바로 삶이라는 생각을 못 하는 것 같다.
 
p. 80 다람쥐다, 하고 말해서 다람쥐가 사라졌다. 우리는 라일락을 찾지 못했다. 비탈을 내려오자 다시 향기가 불었다.
p. 97 탈출하고 싶다. 어디로 달려도 현재에 갇혀 있을 뿐이다. 나로 계속 사는 건 지겹다. 일시 정지 버튼이 없다.
p. 150 나의 좋은 순간을 가장 많이 담아 둔 이 사람까지 지운다면 내게는 무엇이 남는가.
 
소설은 지금의 나와 과거의 나가 교차되어 흘러간다. 과거의 경험은 현재의 나를 만들고, 지금 나는 과거를 들여다본다. 늘 탈출하기만을 바랐던 상황, 뭔가 나아지리라 생각했던 기대, 지금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란 부정, 나는 내가 되고 싶다는 꿈, 이 모든 것은 그저 부르면 달아나는 다람쥐 같다. 
 
 
 
p. 170 집은 변함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방에서 똑같은 이불을 덮고 누울 것이다. 하지만 이모는 어제와는 조금 다른 사람으로 잠들겠지. 비 내리는 바다를 봤고 사실을 확인한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으로 잠들 것이다. 비는 비고 바다는 바다다. 섞인다고 하나가 되는 건 아니지. 그러니까 이별할 수도 있다. 우리는 또 울겠지만 절대 같은 이유로 울지는 않을 것이다.
 
내가 아니라고 부정하고 싶은 순간도 어쩌면 나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의 나는 어제와는 또 다르다. 조금씩 성장하고 나아가고 있다. 그러니 내가 되는 꿈은 순간순간 이루어지는게 아닐까.
 
무수한 나는 나라고 할 수 없고, 유일한 나는 찰나의 찰나.
작가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구의 증명',  제목이 독특해서 관심이 갔던 책이다.  역시나 수학적인 내용의 책은 아니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희망,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의 처절한 이야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인정하고 증명하기를 거부하여 기꺼이 미친 자아를 필요로 했던 인간의 사랑이야기다.

 

p.9 지금의 인간적이라는 말과 천 년 후의 인간적이라는 말은 얼마나 다를까...... 천 년 후 사람들은 지금과 완전히 다르리라 믿고 싶다.

 

p.11 내겐 부활과 동정녀의 잉태가 필요하다. 윤리나 과학이 끼어들 여지없는 기적이 필요하다. 천 년 후가 필요하다. 종말 혹은 영생이 필요하다. 미친 자아가 필요하다. 인간이 아닌 상태라도 좋으니, 당신이 필요하다.

 

 

 

가난을 물려받은 구와, 이모의 죽음으로 혼자가 된 담이가 서로 사랑하며 정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나가기엔 세상은 너무 폭력적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행복은 행복이기에 곧 불행이다.

 

p.97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데도 실패는 예정되어 있는 것 같고,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는 것 같고, 그래서 이미 진 것 같았다.   

 

p.84 사람 대접 받겠다고 평생을 싸우느니 그냥 이쯤에서 청설모가 되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기꺼이 그러자고 했다. 사람 말고 다른 것이 되자고 했다.

 

p.157 전쟁이나 질병은 선택 문제가 아니다.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사채업자에게 쫓기는 삶을 살던 구는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담은 구의 머리칼 한 줌 버릴 수 없어서, 불에 태우고 땅에 묻을 수 없어서 구의 살을 먹는다. 살아서 인정받지 못했던 구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런 그의 죽음을 증명하기 싫어서.

 

p.174 교통사고와 돈. 그런 것이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성숙한 사람은 죽음을 의연히 받아들이는가. 그렇다면 나는 평생 성숙하고 싶지 않다. 나의 죽음이라면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p.20 너를 먹고 아주 오랫동안 살아남을 거야. 우리를 사람취급 안 하던 괴물 같은 놈들이 모조리 늙어 죽고 병들어 죽고 버림받아 죽고 그 주검이 산산이 흩어져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진 다음에도, 나는 살아 있을 거야. 

(.......) 네가 사라지도록 두고 보진 않을 거야. 살아남을 거야. 살아서 너를 기억할 거야.

 

 

 

소설의 설정이지만 충격적이었던 구와 담이의 사랑이야기는 현실의 폭력성과 맞물려 아련하고 슬프게 다가왔다.

 

p.54 구 대신 들어온 다른 것들이 터무니없이 옅고 가벼워서 구의 밀도를 대신하지 못했다. (......) 너 때문에 나는 만사가 시시해졌는데 너는 사는 게 어떠냐고 물어볼까.

 

p.88 너와 나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겠네. 함께 있지 않더라도 함께 하겠네. 그것을 뭐라도 불러야 할까. 다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랑에 가장 가까운 감정. 

 

p.68 죽으면 다 끝인 줄 알았는데, 몸은 저기 저렇게 남아 있고 마음은 여태 내게 달라붙어 있다(......) 기억이 나의 미래, 기억은 너, 너는 나의 미래.

 

p.159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p.185 네가 나를 기억하며 오래도록 살아주기를. 그렇게 오래오래 너를 지켜볼 수 있기를. 살고 살다 늙어버린 몸을 더는 견디지 못해 결국 너마저 죽는 날, 그렇게 되는 날, 그제야 우리 

 

 

이 이야기는 파랗고 검다. 우울하고 어둡다. 

그럼에도, 책 표지 뒷면에 '사랑 후 남겨진 것들에 관한 숭고할 만큼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쓰여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이다.

 

 

 

 

 

 



딸 덕분에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영국에서 나흘, 독일에서 이틀, 덴마크에서 반나절, 마지막 여행지 스웨덴에서 이틀을 딸과 동행했다. 그리고 소중한 나의 딸은 교환학생을 시작하기 위해 홀로 떠났다. 
길어야 6개월 정도의 부재지만, 지구 반대편에 있다는 생각이 단절감을 증폭시킨다. 
 
 
소설을 쓰는 동안엔 다른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해라는 말속엔 늘 실패로 끝나는 시도만 있다고 생각한 기억도 난다. 그럼에도 내가 아닌 누군가를 향해 가는, 포기하지 않는 어떤 마음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이 소설도 끈질기게 지속되는 그런 수많은 노력 중 하나가 아니었는지. <딸에 대하여_김혜진, 작가의 말 중>
 
 
세상의 한가운데 떨어져 삶을 마주하고 살아가고 있는 두 자녀.
대신해 주고 싶은 것들이 많지만, 어느 하나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점점 깨달아 간다.  
 
보고만 있어도 짠하고,
생각만으로도 맘이 저려온다.
 
나의 마음은 나 아닌 그들을 향한다. 
무언가를 포기하며, 포기하지 않는 다른 어떤 마음들을 지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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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이야기를 해 보고 싶었다."

라는 작가의 말을 생각해 보았다. 

 

p.198 나는 알고 있다. 곤이가 착한 아이라는 걸. 하지만 구체적으로 곤이에 대해 말하라면 그 애가 나를 때리고 아프게 했다는 것, 나비를 찢어 놓았다는 것, 선생에게 패악질을 부리고 아이들에게 물건을 집어던졌다는 것밖에 말할 게 없다. 언어라는 건 그랬다. 이수와 곤이가 같은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알아요. 곤이는 좋은 애예요.

 

자신의 의지로 주어지지 않은 삶은, 때로는 버겁다.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아무런 고통도 상실도 느낄 필요가 없었을 텐데.... 원하지 않았던 삶을 꾸역꾸역 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괴물이 되어간다. 마음과는 다르게,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심지어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삶은 나의 의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 싶지만 번번이 상처를 주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종종 진심과는 다른 행동이나 말로 오해를 산다.

상대에게 상처를 받지 않으려 다짐하지만 공격하는 이들은 많고,

상황은 반복될 뿐이다.

 

우리는 사람이기도 괴물이기도 한 채 살아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하루하루 노력해야 한다. 더 따뜻한 사람이 되기로. 

 

p.219 네가 상처 입힌 사람들에게 사과해. 진심으로. 네가 날개를 찢은 나비나 모르고 밟은 벌레들에게도.

 

p.229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저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은희경 작가의 1995~1996년 사이 중단편 소설 9편이 실려있다.
2023년 개정판이 나왔지만, 중고서점에서 구입한 초판본으로 읽었다.
 
p 184.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비록 모양틀 안에서 똑같은 얼음으로 얼려진다 해도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
 
 
 

 

 
 
"더는 남자가 책을 읽고 여자가 뜨개질하는 장면을 그리지는 않을 것이다. 숨 쉬고, 느끼고, 고통받고, 사랑하는, 살아있는 인간을 그릴 것이다. 당신은 그 일상의 성스러움을 이해해야 하며, 이 일상에 대해 사람들은 교회 안에서처럼 모자를 벗어 경의를 표해야 한다."_에드바르 뭉크
 
 
지난 주말 에드바르 뭉크 전시회에 다녀왔다.
<절규>로만 알고 있었던 유명한 화가의 지난한 인생사와, 다양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었던 좋은 전시였다.
미술관 한 벽면에 쓰여 있는 글을 읽고 은희경 작가의 위 구절이 떠올랐다.
하루하루 고단하게 살아가는 모든 인간들의 삶은 엄숙하고 존중받아 마땅하다. 
 
 
 
[타인에게 말 걸기]
 
타인에게 말 걸기는 쉽지 않다. 타인과의 대화는 즐겁던 그렇지 않던 늘 어떤 그늘을 남긴다. 미안함과 억울함, 아쉬움이나 후회 등 다양한 감정으로 인한 번뇌를 피해 갈 수 없다.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내 삶을 요동치게 만든다. 이 단편 소설은 단조로운 일상을 원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것을 최대한 피하는 한 남자와, 타인에게 사랑을 갈구하지만 타인의 불친절과 무관심으로 상처받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p 229. 나는 타인이 내 삶에 개입되는 것 못지않게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되는 것을 번거롭게 여겨왔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그에게 편견을 품게 되었다는 뜻일 터인데 나로서는 내게 편견을 품고 있는 사람의 기대에 따른다는 것이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할 일이란 그가 나와 어떻게 다른지를 되도록 빨리 알고 받아들이는 일뿐이다.
 
p 243. 먼 곳의 불빛을 향해서 온몸에 생채기가 난 채 밤새 산길을 더듬어가는 나그네가 있다면 그 순간 그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을 듯도 싶었다. 죽을힘을 다해서 불빛을 향해 가고 있는 간절한 희망, 그 불빛이 허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쑥불쑥 떠오르지만 밤길 속에서 불안이란 곧바로 절망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나그네의 표정은 무엇보다 자기를 믿어야만 한다는 안간힘으로 단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타인에게 걸었던 말과 기대로 절망을 느꼈던 여자는, 남자의 친절하지 않음과 냉정함 때문에 오히려 그에게 말을 건다. 
 
p 249. 그때 산부인과에 따라가 달라고 처음 찾아갔을 때, 왜 하필 너였는 줄 알아? / 왜 그랬는데. / 네가 친절한 사람 같지 않아서야. / ....... / 거절당해도 상처받지 않을 것 같았어. 난 네가 좋아.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냉정함 말야. 그게 너무 편해. 너하고는 뭐가 잘못되더라도 어쩐지 내 잘못은 아닐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없기에 타인에게 말 걸기는 어렵다.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자기 몰입적인 사람들 틈에서 외로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인간의 삶이 슬프고 아프게 다가왔던 소설이다.
 
p 251. 나쁘게 정해진 일을 피할 수는 없는 모양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언제나 내 머릿속에는 '그럴 수도 있지' 하는 말이 떠오르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단조로움을 원한다.
 
 
 
 
 

 

 

 

 

p 265. 어차피 언젠가는 지게 되어 있어요. 친절한 사람들이 나쁜 사람들을 어떻게 계속 이겨요. 도무지 이기지 못하는 것까지 친절함에 포함되어 있으니까 괜찮아요. 져도 괜찮아요. 그게 이번이라도 괜찮아요. 도망칩시다. 안 되겠다 싶으면 도망칩시다. 나중에 다시 어떻게든 하면 될 거예요.

 

딸이 어느 날 가족 톡으로 공유한 구절. 슬프지만 가슴 뭉클해지는 글에 마음이 따스해졌었다.

사실 이 책은 몇 해 전 읽었던 책이다. 개인적으로 판다지 소설이나 영화에 흥미가 없는 편이라 이 책 역시 가볍게 읽었던 기억이다. 소중한 딸의 문자로 다시 한번 읽고 싶어졌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그것들과 싸울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보건교사 안은영. 

M고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사건들을 그녀와, 한문선생 인표가 해결해 나가는 이야기이다.

p 21. 하도 예상 밖의 것들이 튀어나오는 세상

p 22. 폭력성과 경쟁심의 덩어리들, 묵은 반목과 불명예와 수치의 잔여물들이 어두운 곳에 누워 있었다.

p 238. 은영은 살아 내는 일이 버거워서 먼 계획을 세우지 않았으며 모든 상황이 임시적이라는 걸 늘 암시했다.

 

 

 

괴물의 공격을 받은 학생들은 상처가 있는 사람들이다. 외롭거나 약한 이들은 외부의 충격에 더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정치와 권력, 자본의 힘에 눌려있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친절과 정의를 포기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무겁지 않게 전해주는 느낌이 좋았다.

p 113. 은영은 근거 없는 짝사랑 증후군이라고 혼자 이름을 붙였다. 작은 친절에도 쉽게 반할 정도로 좋지 않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주 발생한다.

p 185. 어린 은영은 살아간다는 것이 결국 지독하게 폭력적인 세계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가끔은 피할 수 없이 다치는 일이란 걸 천천히 깨닫고 있었다.

p 192. 아직은 있어야 할 것 같아. 나쁜 일들이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곳이야. 나쁜 일들은 언제나 생겨.

p 193. 빛나는 가루가 강선이 처음 서 있던 가로등 쪽으로 흩어졌다. 상자를 들고 달려가서 주워 담고 싶다고, 은영은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대신 아주 오랜만에 울었다.

 

 

 

은영은 선하고 친절하다. 어려운 사람에게 연민을 느끼고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려는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이다.

실은, 언젠가부터 착하다는 미덕이 그리 좋게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착한 사람이 이용당하고, 친절한 사람이 상처받는 세상이라서 일까. 악인이 되고 싶진 않지만, 적당히 착하고 적당히 차갑게 내 자신을 지키고 싶다.

p 47. 은영이 손을 뻗어, 정현의 머리에서 흐르는 피를 닦는 시늉을 해 본다. 닦을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번
p 117.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은영이 나쁜 것들로부터 학생들을 지켜낼 때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이다. 늘 어딘가에서 충전을 해야 한다. 

한문 선생의 손, 명승지의 탑, 성당, 남산타워의 사랑의 자물쇠, 학생들의 사랑과 정성이 담긴 물건들.....꿀벌처럼 단것들을 빨아들이는 은영의 설정이 재미있고 공감이 갔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조그맣고 사소한 일들로 인해 의외로 큰 힘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p 125.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인표에게서 얻은 그날 치 좋은 기운을 고스란히 전했다. 어떤 나이에는 정말로 사랑과 보호가 필요한데 모두가 그걸 얻지는 못한다.

 

 

 

따뜻하고 선한 이야기. 친절하고 정의로운 이야기. 결론까지 완벽하게 달달한 이야기. 힐링 그 자체다.

p 272. 좋아해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꽃무늬만 입는다 해도.

p 272. 그래도 인테리어 취향 차이에서 오는 괴로움을 빼면 전반적으로는 만족할 만했다. 서로의 흉터에 입을 맞추고 사는 삶은 삶의 다른 나쁜 조건들을 잊게 해 주었다. 

 

 

 

 

 

 

 

 

 

 

 

 

 

자기 연민. self pity. 자기 스스로를 불쌍하고 가엾게 여김.

자기 연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끝없는 추락의 상황을 겪게 되는 주인공 해수는 상처투성이의 길고양이,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서도 자신을 발견하며 동정하고 가여워한다. 끝없는 의미 찾기.

 

p 18-19. 그녀는 그 불쌍한 고양이를 빌미로 다시금 자기 연민에 빠진다. 그녀는 트럭 아래 웅크린 고양이에게서 자신이 처한 가혹한 현실을 상기하고, 자신의 가여운 처지를 되새긴다. 자신과 아무 상관없는 길고양이에게서 자신의 슬픔과 비애, 비통과 울분을 발견하는 건 얼마나 쉬운지. 철저한 피해자 되기. 자신을 향한 이 연민에는 끝이 없다.

 

p 45. 그녀는 흔하고 평범한 나무 한 그루에서 조차 고통의 흔적을 발견하려는 스스로가 안쓰럽고 또 얼마간 역겨워진다.

 

p 96. 보도블록의 좁은 틈을 비집고 나온 푸릇푸릇한 풀들이 보인다. 그녀는 눈에 보이는 온갖 것들에서 작은 고통의 흔적이라도 발견하려는 스스로가, 어떤 위안을 찾아 헤매는 스스로가 끔찍해진다.

 

 

 

길 고양이 순무를 구조하는 과정에서 만난 초등학생 세이. 그녀는 세이가 학교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상황을 목격한다.

꽤 유명한 상담사였던 그녀지만, 부주의하게 했던 말 때문에 만신창이가 된 현재의 상황 탓인지 세이의 문제를 쉽게 알은 채 하고 조언해 주는 것에 조심스럽다. 그러나  조금씩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순무와 세이를 통해, 그녀 또한 자신이 처한 지금의 삶과 화해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라는 걸 얻게 된다. 결국, 해수는 그녀처럼 상처받고 아프고 여린 존재들과의 관계에서 치유를 받는다. 이상도 하다. 관계에서 상처와 절망을 느끼고, 또 관계에서 치유와 작은 희망이란 걸 건져내니 말이다. 

 

p 182. 아줌마, 근데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요. 그럼. 그냥 듣기만 할 수 있지. 대화는 조금씩 더 깊어지고 넓어진다. 불신과 두려움 같은 것을 밀어내며 스스로 반경을 넓힌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그녀는 아이의 마음속에 불이 켜진 것 같다고 느낀다. 두 사람 모두 불이 켜진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고 느낀다. 아이의 마음은 그녀의 마음과 얼마간 닮아 있는 걸까. 아이의 세계는 그녀의 세계와 얼마나 다른 걸까.

 

p 87. 어느 순간, 그녀는 자신과 그 작은 생명체 사이에 어떤 가느다란 유대감이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 전부를 건 싸움. 전부를 잃을 수 있는 싸움. 보잘것없는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한 전투. 그러니까 그 밤, 그녀가 목격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순무가 그녀에게 보여 주었던 것은 무엇일까. 아니, 순무에게서 그녀가 보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p 265. 우정, 유대감, 순수한 동지애.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감정이 이미 그녀의 마음속에도 새겨져 있다. 아이와 함께 겪은 일련의 일들이 그녀를 달라지게 한 걸까. 아이와 보낸 계절이 그녀의 일상에 어떤 영향을 준 걸까. 먼 훗날 아이는 이 시절의 일을 어떻게 기억할까. 그녀와 아이가 주고받은 것은 무엇일까.

 

 

 

소설에서 해수가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모습을 렌즈 삼아 자신을 깊이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나 또한 책과 영화를 보며, 인물들의 사연에 공감과 연민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위로받는 경우가 많아 공감이 갔다. 

 

p 200-201. 카메라는 진압할 수 없는 한 사람의 내면. 결코 다다를 수 없는 타인의 시간. 

그러므로 그녀 역시 다만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녀는 이 영화에서, 주인공 여자에게서, 여자를 연기하는 저 배우에게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여자를 연기하는 저 배우에게서 무엇을 보는 것일까. 무엇을 보려고 하는 것일까. 

 

 

 

자기기만. 자기의 양심에 벗어나는 말이나 행동을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는 일.

자신이 억울하게 오해를 받을 때 마음이 방망이질한다. 견딜 수 없다. 오해를 풀고자 어떤 말과 행동을 끊임없이 하게 된다. 우리는 자기기만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치지 않는 자기변명을 하고 산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신이 불쌍한 피해자라는 생각이 자신을 괴물로 만들 수 있다. 상황을 객관화하고, 불행의 원인을 찾고 헤어 나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p 245. 이 일로 해수 씨도 타격을 입었겠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테고 해명도 하고 싶겠죠. 자기 입장, 자기 처지. 사람들이 말하려는 건 결국 그런 거잖아요. 난 그런 거, 반성이라고 생각 안 해요.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반성에 더 가깝지 않나요? 이제 와서 어떤 말을 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요? 해수 씨도 감당해야 하는 것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잖아요.

 

p 245. 모든 것이 분명해진다. 여자는 그녀의 말을 들으려고 나온 것이 아니다.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은 모두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그녀가 어떤 말을 하든 그것은 침묵보다 하찮을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마음속 깊이 가라앉은 말들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누른다. 하지 못했고, 할 수도 없는 그 말들이 철저히 자신의 몫으로 남았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그것들은 그녀가 감당해야 하는 몫이다. 결코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박정기가 그랬던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녀는 언어로만 이해하던 그 말의 의미를 비로소 아프게 깨닫는다. 

 

p 282.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흔들림이 없다. 그건 그녀가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또 한 걸음 최선을 다해 물러서고 있기 때문이다.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 더는 그런 것들에 휩쓸리지 않으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것이 정말 가능할까. 남의 일을 말하듯 스스로에게 대해 냉정을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그런 게 어떻게 가능할 수 있을까.

 

 

 

김혜진의 다른 책들에서도 말을 참아내는 주인공들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책의 해수 역시, 말로 먹고사는 상담사이지만, 말로 파멸하고, 말을 참아낸다. 

 

p 144. 그리고 이제 그녀는 저 남자에 관해서라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는다. 어떤 평가도, 판단도 내리지 않는다. 

 

p 271. 그녀는 억측과 오해 같은 것들이 무섭게 번져 나가지 않도록 마음을 다잡는다. 선인과 악인, 호의와 악의. 그렇게 이름을 붙이고 판단을 내린 뒤, 높다란 경계를 세우는 것만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p 225.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자신은 그저 넘쳐 나는 말들에 둘러싸여, 불필요한 말들을 함부로 낭비하는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자신이 한 말이 언제 탄생하고 어떻게 살다가 어디에서 죽음을 맞이하는지 단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p 224. 언어가 생략된 순무와의 교감이 그녀에게 이상한 안도감을 준다. 수없이 많은 말들로 소란스럽던 세계에서는 느낄 수 없던 감정이다. 헤아림과 공감, 위로와 포용. 그런 것들은 이처럼 완전한 침묵 안에서만 가능해지는 것일까. 

 

 

 

자기 연민에서 조금씩 벗어나기로 작정한 해수는, 타인의 이해와 배려를 바라거나, 고소하는 대신 입을 다문다. 그리고 자기 몫의 무게를 감당해 내기로 한다. 그리고 마침내, 상담사로의 역할을 감당해 낼 용기를 내본다. 세이의 말을 경청할 준비를 하며.

 

p 300. 이처럼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에 기대어 있는 것이라면 자신은 무엇에 기대고 있는 걸까. 반대로 자신에게 기대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렇게 생각할 때 그녀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떤 이름들이, 어떤 순간들이 있다. 

 

p 307. 지난 계절 그녀는 이 방에서 홀로 편지를 썼다. 외부와 단절된 이 폐허 같은 곳에서. 그녀는 어떤 말로, 어떤 언어로, 외부와 대적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 행위를 통해 그녀가 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녀는 승리하지도 패배하지도 않았다. 시간이 환호와 야유와는 무관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그녀는 다만 그렇게 한 시절을 지나왔을 뿐이다. 적어도 그녀는 아이에게 그 정도의 이야기는 들려줄 수 있을 것이다. 아이가 원한다면. 어디까지나 아이의 요청이 있다면. 그때까지 그녀는 기다릴 것이다. 최선을 다해 들을 것이다. 

 

 

 

영화 <추락의 해부>를 봤다. 한 남자의 추락사를 두고 사고사인지, 자살인지, 타살인지를 밝히는 과정에서 부부 관계의 해부, 한 인간의 삶에 대한 추락의 해부가 대사를 통해 적나라하게 전달된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전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었던 영화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남자 삶의 추락 원인은 자기 연민, 피해의식, 자기기만에서 비롯되었다. 잘못된 자기 연민은 스스로를 병들게 하고, 삶을 무시무시한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

 

우연히, 동시에 경험한 책과 영화는, 자기 연민과 기만, 변명과 침묵 등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준 좋은 작품들이다.

 

 

 

 

 

 

 

 

 

[3 구역, 1 구역]

 

재개발이 끝난 단정하고 쾌적한 1 구역. 어떻게 해도 재개발이 될 것 같지 않은 낡고 후진 3 구역. 그 보다 더한 너와 나의 간극과 격차. 너를 다시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만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또다시 너의 연락에 무방비 상태가 되며, 이끌리듯 만나고, 너에 대해서 어쩔 수 없어지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이다.

 

p34. 너는 길고양이를 끔찍이 생각하는 사람이고, 요령 있게 집을 사고팔며 차익을 남길 줄 아는 사람이고, 내게 아무런 경계심 없이 사적인 이야기를 늘어놓는 사람이고, 누구나 관심 있어하고 궁금해할 정보를 대가 없이 공유하는 사람이고, 낡고 오래된 것들은 말끔히 부수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몇 날 며칠씩 오지 않는 고양이를 기다리는 사람이고.

그러므로 결코 내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도 너라는 사람을 다 알 수는 없겠구나. 너에 대해 무엇을 상상하고 기대하든 그것은 어김없이 비껴 나고 어긋나고 말겠구나. 

 

 

 

[다른 기억]

 

횡령, 조작, 사기 등의 사유로 파면당한 학교 신문사 주간 교수 임 선생님에 대한 너와 나의 기억은 다르다.

 

p 32. 그 일은 그 일이고 선생님은 선생님이라는 식의 너의 말에 동의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모든 사실을 다 알면서도 여전히 좋은 사람이라고 말할 자신도 없었다. 

 

p 62. 선생님이 저지른 잘못에 대해 모른 척할 수 있었더라면, 선생님이 내게 보여준 모습만을 기억했더라면, 시간이든, 마음이든, 감정이든 선생님과 관계된 그 어떤 것도 훼손하거나 망가뜨리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그날 너와 함께 좋은 시절의 이야기를 즐겁게 떠들어댈 수 있었더라면. 아니, 네가 끝까지 좋은 사람이길 포기했더라면 뭔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소설 속의 너와 같은 성향을 가진 나는, 아마, 너처럼 선생님을 옹호했을지도 모른다. 그를 함부로 비판하는 누군가를 향해 너무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를,  또 다른 이들은 답답해했을까? 그들도 내가 타인을 너그럽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길 그토록 원했을까? 결코 달라지지 않는 우리들은, 서로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나의 은밀한 불만과 걱정을 말하지 못한 채, 그저 불편한 관계를 지속할 뿐이다.

 

 

 

[너라는 생활]

 

p 86. 그러나 한밤에 나란히 누워 잠이 들 무렵에는 이만하면 나쁘지 않고, 어쨌거나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만하자, 헤어지자, 내내 벼르듯 쥐고 있었던 그런 말은 또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내일은, 모레는, 더 좋아질 거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오 년이 지났구나, 이대로 십 년이 가고 또 십 년이 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에 오싹해지면서도 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없이 놓아버리고 그만두고 포기하고 싶으면서도, 끈질기게 너를 놓으려고 하지 않는 나의 모습을 거듭 확인하는 지금의 생활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자정 무렵]

 

p 114. 그러니까 이 순간에는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게 너라는 확신을 지울 수가 없다. 어쩌면 내가 벗어나고자 하는 건 이 낯선 동네가 아니고 바로 너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실은 그것이 오래전부터 내가 바라온 일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p 116. 함께 지내다 보면 예상하지 못하는 일들이 생겨나고, 그때마다 감수하고 포기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네가 설명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나와 사는 동안 네가 포기한 건 뭘까. 뭘 얼마나 양보했다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너와 함께하는 동안 내가 포기한 것들, 앞으로 감수해야 하는 것들을 가늠해보고 있다. 아니, 지금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그런 수많은 일을 감당해야 한다면, 뭔가를 무릅써야 한다면, 그건 너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늘은, 내일은, 주말에는, 틀림없이 너와의 관계를 정리하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함께 어울리며 지낸다는 건, 그 사람뿐 아니라 주변의 많은 것들을 불러들이는 일이다. 익숙지 않은 상황이나 사람들. 나에겐 참을 수 없는 어떤 취향들.... 그럼에도 정말 하고 싶은 말을  끝내 삼킨 채, 익숙하고 당연한 일상의 흐름을 좇아 너와 나의 하루는 또 그렇게 지나간다. 

 

 

 

[동네 사람]

 

주거 문제로 고난을 겪는 레즈비언 커플의 생존은 만만치 않다. 주변의 싸늘한 시선 아래 이방인이 된 너와 나는, 둘의 관계에서도 끊임없는 의심과 불신으로 어긋나고 비껴간다. 결국 평범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오싹한 감정을 느낀다. 

 

p 131. 이건 동네의 문제가 아니고 네 문제일지도 모르지. 네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일지도 모르지. 우리가 함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지.

 

p 134. 누가 봐도 너와 나는 나들이 나온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럼 우리는 주민인가. 그것도 아닌 것 같다. 우리는 잠시 이 동네에 머무르는 사람들이고, 그러므로 이도 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하나일 수 없는 인간은 둘이 되어도 외로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둘 사이의 외로움과 고독을 경험한 인간은 수없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움츠러들며 소름 끼치는 감정을 느낀다. 필사적으로 외로움의 거미줄을 벗어나려 하지만 결국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삶은 잔인하다. 

 

 

 

[우리는]

 

헤어진 지 오 년, 너의 연락에 나는 망설이지만, 결국 우리는 만난다.

 

p 171. 하지만 정말 왜였을까. 그 순간엔 또다시 네가 처한 상황 속에 겁 없이 발을 들여놓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로 인해 보지 않아도 될 것을 보고, 듣지 않아도 될 것을 듣고,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을 말해야 하는 곤란한 자리에 서게 되었다는 자책을 떨칠 수가 없었다. 너의 무엇이 그토록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일까. 나는 왜 늘 너에게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네가 원한 건 춥고 어두운 그곳에 고작 몇 시간 함께 머물러주는 것이었는데. 그 밤, 어떤 식으로든 담판을 짓고 어떻게든 해결을 할 거란 네 다짐에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여주는 것이었는데.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에게나 할 법한 격려의 말 한마디를 구하는 것이 전부였는데도.

 

p 172. 너와의 관계는 왜 이렇게 계속 이어져온 것일까. 완전히 연락이 끊어지고 그래서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릴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에 대해 편안한 기억만을 나눠 가질 수 있었는데. 나는 왜 겁도 없이 네 연락을 받고, 안부를 듣고, 네 삶에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걸 포기하지 못한 것일까. 

이번에는, 이번에야말로________,

 

 

 

[아는 언니] 

 

오지랖 넓은, 네가 아는 언니는, 나에게 부담스럽다.

 

 

p 190. 그게 호의든, 배려든, 친절이든, 호기심이든 뭐든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고, 모욕을 당한 것처럼 불쾌했다.

 

p 201. 잊지 말고 안부 전해줘. 건강 잘 챙기고. 두 사람 내가 항상 응원하는 거 잊지 말고......... 뭘요?.......

뭘 응원하느냐는 의미였는데 언니는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그게 뭐든 바란 적도 없고, 원한 적도 없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p 201. 도대체 우리를 왜 그렇게 특별하게 여기는 건지 따져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다 끝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특별했다면 너와 내가 이토록 빠르고 간단하게 헤어질 수 없었을 테니까. 그러니까 너와 나는 아는 언니가 말하는 그런 사이가 아니고, 고작 그 언니 때문에 헤어질 수 있는, 남들과 다를 바 없는, 흔하고 흔해빠진 연인이었다. 

 

 

 

[팔복광장]

 

크리스마스 전, 큰맘 먹고 일찌감치 예약한 고급 레스토랑의 자리는 터무니없이 불쾌한 화장실 앞자리였다. 

직원에게 자리를 바꿔달라는 요구를 하는 나에게, '너는 좋은 게 좋지 않냐'며 나를 말린다.

 

p 216 ~217. 좋은 게 좋다니. 누구에게 좋다는 걸까. 도대체 뭐가 미안하다는 걸까. 그런 걸 따져 묻지는 못했다. 그게 뭐든 네 의도가 선하다는 것을 나 역시 모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너는 누구에게도 싫은 소리를 못하는 사람이고, 그래서 생기는 불편과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고, 그건 네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하니까. 

.... 우리가 미안해할 일은 아니야. 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원하는 테이블에 앉아 주문한 음식을 먹고 대화를 나누고 만족스러운 저녁 시간을 보낼 자격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우리도 그만한 값을 치렀다고, 나는 당연한 요구를 했을 뿐이고 때론 요구하고 주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그건 미안해야 할 일이 아니고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말은 끝내하지 못했다.

 

너와 나의 다름, 차이, 간극. 

함께 살 집에 내가 가져온 물건과 네가 가져온 물건들이 보이지 않는 경계를 이루며 어울리지 않는다.

산동네에 생긴다는 팔복광장을 두고 네가 상상하는 광장의 모습과 내가 생각하는 그것의 모습은 다르다.

 

p 227. 너와 지내는 동안 나는 우리가 상상하는 광장의 모습이 어느 정도 일치했다고 생각했다. 아니, 서로가 원하는 광장의 모습을 누구보다 서로가 가장 잘 안다고 여겼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 놓인 까마득한 차이와 간격을 전력을 다해 줄여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p.231. 그러니까 너란 사람과 보냈던 시간은 결코 다다를 수 없었던, 그 광장을 기다렸던 삼 년 남짓한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고. 우리가 볼 수 없었고 확인할 수 없었던 광장이라는 신기루 같은 미래가 우리가 나눌 수 있는 전부였다고. 실은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난 가장 좋은 일이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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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팬텀 스레드>에서 레이놀즈와 알마는 가학과 피학을 오가며 아슬아슬하게 사랑을 지켜나간다.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묘하게 공감이 가기도 했던 영화이다.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참고 인내하며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말들을 참아내지만, 상대가 달라질 거란 희망은 결국 허상이다.

 

이 책 모든 단편들의 화자는 '나'이다. 내가 바라보는 '너'는 답답하고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너'가 바라보는 '나'는 어떨까? '너'의 의견을 무시한 채 흘러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너'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

 

p 171.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결코 다 알 수 없는 일들. 사실이지만 또 얼마간 사실이 아닌 일들. 차마 다 이야기할 수 없는 각자의 내밀한 사정들. 잘잘못을 가릴 수 없음에도 모두가 죄책감을 떠안아야 했던 시간들. 

 

얼마 전 무주 산골 영화제에서 김혜진 작가의 소설을 영화화 한 <딸에 대하여>를 관람했다. 책이 너무 좋았어서 영화도 보고 싶었는데, 기대 이상이었다. 작가의 책에서는 하고픈 말을 참아내는 주인공들이 있다. 상대가 상처를 받을까 봐, 오히려 관계가 깨질까 봐 두려워 뾰족한 말들을 안으로 누르고 담는다. 말하지 않고 더는 못 견딜 때, 오히려 푸는 것이 좋다고 생각할 때, 용기를 내어 말해보기도 한다.  그러나 상대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관계가 악화되거나 같은 상황이 반복되겠지.

 

어쩌면, 너도 나에게 하고픈 말이 많은데 참아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 '나'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면, 너를 견디는 것이 조금은 나아질지도 모르겠다. 어느 시절, 그때, 나와 다른 그런 너였기에, 사랑을 시작했을 테니, 우리는 또 하루를 무심한 척 그렇게 지나가 본다. 

 

개인의 문제와 감정에 집중하며, 관계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이야기들이 너무 좋다. 어느 작가의 책들은 주저하지 않고 선택하게 된다. 이 책의 작가가 나에게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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