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얇지만 대단한 책, <깊이에의 강요>를 다시 읽었다.
세 편의 단편 소설 <깊이에의 강요>, <승부>, <장인 뮈사르의 유언>과, 한 편의 짧은 에세이 <문학의 건망증>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 <승부>에 관하여.
 
체스의 고수, 쟝.
일흔 살가량의 적잖이 비열하고 왜소한 남자, 손에는 검버섯, 텁수룩한 모습에 담배꽁초를 푹푹 빨아 내뿜는 노인.
 
그의 도전자,
매력적인 외모, 창백하고 냉담한 표정, 침착하고 자신감 있는 분위기의 검은 머리 젊은이.
 
열 명이 넘은 구경꾼들,
쟝에게 번번이 체스를 진 그들은 노인에게 시기심과 악의를 가지고 있었고, 처음 보는 젊은이가 승자가 되기를  바라며 게임을 지켜본다.
 
체스게임이 진행될수록, 구경꾼들은 과감하고 독창적인 패를 내놓는 젊은이를 향한 무한한 신뢰를 갖게 된다. 젊은이의 게임 방식은 자살하듯이 모험적이며 어처구니 없었지만, 대중은 뭔가에 홀린 듯, 그를 아름답다고 느끼며 승리를 거머쥘 거라 의심하지 않는다.
 
많은 이들의 예상과는 다르게, 게임은 쟝의 승리로 끝난다.
젊은이는 자신의 킹을 손으로 쓰러뜨리고, 무례하게 자리를 떠난다. 
 
명백하게도 일치감치 승리를 할 수 있었던 쟝은 무언가에 홀린 듯, 도전자의 천재성, 자신감, 젊음에서 오는 후광을 이기지 못하고 게임을 마무리 짓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이 멋진 남자에게 참패를 당하고 챔피언의 자리에 대한 부담을 덜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 남자의 자신감, 천재성, 그리고 젊음에서 오는 후광을 그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었다. 그뿐이 아니다. 아주 솔직하게 말하면, 자신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 낯선 이에게 감탄했으며, 심지어는 그가 승리해서 가능한 인상적이고 천재적인 방법으로 몇 년 전부터 기다리고 기다려 온 참패를 마침내 자신, 쟝에게 안겨 주기를 바랐었다고 고백해야 했다. 그러면 마침내 그는 가장 뛰어난 사람으로 모든 사람을 물리쳐야 한다는 부담감에서 벗어났을 것이며, 마침내 구경하고 있던 악의에 찬 군상들, 이 시기심 넘치는 패거리들에게 만족을 안겨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평온을 찾았을 것이다. 마침내.......

 
 
게임에 이기고도 실제로는 패배했다는 것을 깨달은 쟝은, 마침내 체스를 영영 그만두게 된다.
 
 
 

옮긴이의 말 중에서,

승부에서 두 명의 체스꾼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삶의 축소판이다. 삶과 사회의 규칙을 곧이곧대로 준수해 어느 정도의 것은 얻었지만, 현재의 나를 지키기 위해 늘 전전긍긍하는 늙은 체스의 고수 쟝. 인습을 과감하게 무시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서 정열적으로 용기 있게 돌진하는 젊은 도전자. 그리고 쟝처럼 확실하게 무엇을 이룬 것도 아니면서, 젊은 도전자처럼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는 뱃심도 없는 나머지 구경꾼들. 그들은 마음 한구석에 젊은 도전자와 같은 욕망을 지니고는 있지만 실행에 옮길 용기가 없어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소시민들이다.

 
 
 
나에게는, 도전자인 젊은이의 모습이 용기 있거나 멋져 보이기보다 무모하고 허세에 차 보였다.
그는 실력과 경험보다는, 젊음과 패기로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은 얼마나 쉽게 선입견과 편견으로 세상을 바라보는지!
 
노화로 자신감을 잃고, 변화를 두려워하며, 열등감에 잠식되어 있었던 쟝에게는 연민의 감정이 들었다.
젊음은 아름답고 귀하다. 그렇다고 늙음이 추하거나 함부로 대해야 할 것은 아니다.
 
온유와 친절, 인정과 포용의 따뜻함을 간직한 채, 세월을 통과해 온 경험으로 두려움에 맞서고, 당당함과 자존감을 잃지 않은 노인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연약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삶과 인간이라는 주제, 잡힐 듯 사실적인 묘사, 긴장감과 재미를 잃지 않는 작가의 글이 너무도 좋다.
 
 
 
 
 

 

 

 

 

 

 

 

최승자 시인.

그녀의 산문집을 먼저 만났다.

 

비록 일부겠지만, 시인이 살아온 삶을 알고 책을 보니 그녀의 글을 쉽게 읽을 수 없었다.

불확실한 희망보다는 확실한 죽음을 노래하는 그녀의 글들은 우울하고 아프다.

 

20대 중반의 나이에 벌써 쓸쓸함을 안다. 깨고 나면 달콤했던 예전의 쓸쓸함이 아니고 쓸쓸함은 이제 내 머릿골 속에서 중력을 갖는다. 

 

 

누군가의 20대는 무모하고 철없을 것이고, 누군가의 그것은 찬란할 것이다.

또 어떤 이의 20대는 세상의 거대한 타의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맞서기 위해, 싸워가면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시대와 개인사의 가위눌림 같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도와달라고 시인은 온 힘으로 저항하고 비명을 지른다.

시집 <이 시대의 사랑>부터 읽어보려 한다.

 

 

 

 

 

 
 

 
 
 


8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소설은 <새 이야기>로 시작해, <침묵의 사자>로 끝난다.

동화 같은 제목이 책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고 있어 느낌이 좋았다.

 

소설의 끝자락에 실린 해설들 중 몇몇은 몇 장 읽다 그만두는 경우도 있지만, 또 어떤 해설들은 보물 창고 같다.
이 책에 실린 박혜진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마치 9번째 소설인 듯 읽었다. 소설을 다시 읽어보고 싶게 만든 해설이다.
 

타인의 마음을 생각한다는 건 우리를 인간답게 하지만, 그 인간다움으로 인해 우리는 자주 상처받고 낙담한다는 것을 아는 탓이었다.

먼저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에게 사랑은 하는 사람의 것이지 받는 사람의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마음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도 사랑을 시작하고 더 이상 받아줄 사람이 없는 곳에서도 사랑을 계속할 수 있다.

한 번의 만남이 어긋난다고 해도 세상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 마음, 기어이 진심을 읽어내려는 에너지는  먼저 좋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상처받은 대가로 얻는 것이다.

각자가 변하면서 관계에도 변화가 생긴다. 변화는 가장 먼저 익숙했던 것들의 상실로 찾아온다. 그것이 상실이 아니라 변화 그 자체임을 알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실패하는 여덟 편의 소설을 통해 작가 김화진이 쓴 것은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지치지 않는 열정일 것이다.

해설 (마음이론)_박혜진

 
 

 

새 이야기
진아는 천희를 좋아하게 되었지만, 그는 일본에 여자친구가 있었고, 결국 일본으로 떠난다.

이별 선물로 파가 심긴 화분을 받은 진아는 파를 정성스레 키운다.

파의 끝부분을 잘라 매일 매운 음식을 만들어 먹다가 결국 위장염에 걸리는 진아.

새가 된 천희는 그녀에게 찾아오고, 천희가 남긴 파는 미련이 된다.

 


나주에 대하여

사고로 규희를 잃고, 전 여자 친구인 나주의 SNS 계정을 엿보며 그를 그리워하고 흔적을 찾는 김단.

규희를 닮은 나주의 모습에서 그를 느끼고, 두근거리는 심장과 열에 달아오른 두 빰으로 나주를 탐색한다.
그렇게라도 규희를 잊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애쓰는 사람.

 

 


내 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는 끈질기게도 나를 떠나지 않고 끊임없이 재생된다.

존재하지 않아도 남아있는 것들.

상실했지만 여전히 품고 있는 것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는 10년 전 물에 빠져 죽은 장남, 준페이의 기일에 모인 가족의 1박 2일을 그린 영화이다. 세월이 지나도 그를 잊지 못하는 가족 구성원들은 마음 한편에 그를 묻은 슬픔이 다른 방식으로 표출된다. 엄마(키키 키린)에게 노란 나비가 되어 찾아오는 준페이는 마치 새나 파로 변한 천희, 나주의 몸을 빌린 규희처럼 느껴졌다. 

 

삶에 상실은 언제나 존재한다.

먼저 사랑하고, 공감하고, 타인의 감정을 읽으려 지나치게 애쓰는 사람들은 그 상실로 겪는 고통의 무게가 더 클지도 모른다. 언제나 조금씩 어긋나는 인생은 예측할 수도, 그러니 피할 수도 없다.

걸어도 걸어도 잊히지 않는 상실을 등에 메고, 손에 들고, 마음에 품은 채 그저 살아가는 수밖에.

그렇게 또 걷다 보면, 또 다른 근육의 모양이 생기는 나를 마주하는 순간이 올 것이다.

 

 

 

못생긴 마음들을 솔직하게 회피하지 않고 쓸 때, 이상하게 행복하다는 소설가의 말처럼,

내 안의 못난 나, 뾰족한 나, 감추고 싶은 나를, 생각과 말로, 행동으로 표출하는 소설 속 주인공들을 보며 이상하게 나 또한 위로와 치유를 받는다. 

 

 

 

 

 

 

 


 

 

 

 
 

 

 
2023년,
한 해가 지나간다.
 
 
 
 
몇 번이고 돌려봤던 드라마 속 주인공이 생을 마감했다. 일어난 모든 일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비현실적이다.
세상은 여전히 폭력적이고, 우리는 그 한복판에 내던져져있다. 
 
한숨 자고 나면, 아주 깊고 깊은 잠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일이 다 거짓말처럼 되어 버리면 좋겠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와 있으면 좋겠다. 내가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하지 않아도 되는 순조롭고 수월한 일상.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_김혜진 <딸에 대하여>
 
 
 
 
 
 
2023년,
개인적으로는

 

오랜 기다림 끝에 다른 곳으로 이사해, 따뜻한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꽤 오래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새 직장으로 출근해 적응 중이다.

 

학교를 다니며 틈틈히 자신의 창작물을 만드는 아들과 딸, 그 둘이 함께 작업한 첫 작품을 감동적으로 마주했다.

틈틈이 전시와 공연을 예매해, 재미와 교양을 선사해 준 남편에게 늘 고맙다.

가능한 책을 곁에 두려 했고, 올 해는 극장에서 영화도 여러 편 보았다.

 

 
 
 
 
 
1년 동안 읽은 책들

 
Jan.
1. 쇼코의 미소_최은영
2. 오, 윌리엄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3. 새의선물_은희경
4.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_보흐밀 흐라발

Feb.
5. 이름 뒤에 숨은 사랑_줌파 라히리
6. 무진기행_감승옥

Mar.
7.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_로맹가리
8. 태연한 인생_은희경
9. 향수_밀란쿤데라

Apr.
10. 안나 카레리나(1)_톨스토이
11. 딸에 대하여_김혜진

May
12. 불안_알랭드보통
13. 인생의 허무를 어떻게 할 것인가_김영민
14. 아몬드_손원평

June
15. 작별들 순간들_배수아
16. 리어왕_셰익스피어
17. 이반 일리치의 죽음_레프 톨스토이
18. 나는 독일인입니다_노라 크루크
19.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_전인권
20. 이중섭의 편지와 그림들_박재상 옮김
21. 영국왕을 모셨지_보후밀 흐라발

July
22. 위대한 게츠비_스콧 피츠제럴드
23. 아버지의 해방일지_정지아
24. 리스본행 여간열차_파스칼 페르시어
25. 애쓰지 않아도_최은영

Aug.
26. 사랑_밀란쿤데라
27. 연인_마르그리트 뒤라스
28. 농담_밀란쿤데라
29. 비둘기_파트리크 쥐스킨트

Sep.
30.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밀란쿤데라
31. 시간산책_Group Exhibition
32. 기형도 전집
33. 내 어머니 이야기(1-2)_ 김은성

Oct.
34. 82년생 김지영_조남주
35. 내게 무해한 사람_최은영
36. (시집) 동주와 빈센트
37.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_이도우
38.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_김태연

Nov.
39.디디의 우산_황정은
40.자존감 수업_윤홍균
41.네루다의 우편배달부_안토니오 스카르메타

Dec
42.크리스마스 건너뛰기_존 그리샴
43.소년이 온다_한강
44.채식주의자_한강
45.디 에센셜_한강


 
이중섭, 기형도, 윤동주의 삶을 들여다 보고,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진한 연민과 아쉬움에 마음이 아팠다.
한강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는, 삶의 지난함을 통과하며 애쓰고 버티고 회복하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며 무척 고통스러웠다.

 

 
 

1년 동안 본 영화들

 


바그다드 카페 / Lost in Translation(빌 머리, 스칼렛요한슨) / 아들의 방(라우라 모란테) / 모나리자 스마일(줄리아 로버츠) /빌리 엘리어트(제이미 벨) /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잭 니콜슨,헬렌헌트) / *본투비블루(에단호크) / 파고(프란시스 맥도먼드) / 내사랑(에단 호크, 샐리 호킨스) / 블루 재스민(케이트 블란쳇) / *헤어질 결심(탕웨이) /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하이에르 바르뎀) / 아들(올리비에 구르메) / 캐롤(케이트 불란쳇, 루니 마라) /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카트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에단 호크) / 인생은 아름다워(유승룡,염정아) /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간다(브래드피트,케이트블란쳇) /그을린 사랑(드니 빌뇌브 감독) / *리스본행 야간열차(재레미 아이언스,마티나 게덱) / 셰익스피어 인 러브(기네스 펠트로,조셉파인즈) / 비포선라이즈(에단호크,줄리델피) / 비포선셋(에단호크,줄리델피) / 토토의 천국(미셸부케, 미래이유 빼리) / 하워즈엔드(엠마톰슨,안소니홉킨스) / 클로저(나탈리 포트만, 주드로) / 여자, 정혜(김지수) / 콜미바이유어네임(티모시 살라메) / 레이디 버드(시얼샤 로넌) / 트루스(케이트 블란쳇) / 센스앤센서빌리티(엠마톰슨,케이트윈슬렛) / 래퀴엠(엘렌바스틴) / *다음, 소희(배두나) / 미비포유(에밀리아 클라크,샘클라플린) / *팬텀스래드(다니엘데이 루이스) / 파리폴리(이자벨 위페르) / 피아나스트(이자벨 위페르) / 타이타닉 / 번지점프를 하다(이은주 이병헌) / 토탈이클립스(디카프리오,데이빗듈스) /순수의 시대(다니엘 데이루이스) / 아무르(장루이트린티냥,엠마누엘리바) / 가스등(잉그리드 버그만)  / 아나스타샤(잉그리드 버그만, 율 브리너) / 킬유어달링(데인드한) / 안녕 유에프오(이은주, 이범수) / 단지 세상의 끝 (가스파르 울리엘) / *컴온컴온 (호아킨 피닉스) / 투러버스 (호아킨 피닉스, 기네스펠트로) / * 피아니스트(로만 폴란스키 감독) / 빅피쉬(팀 바튼 감독) /콜레트(키이라 나이틀리) / 레벤느망 / 길복순(전도연) / 앵커(천우희) / 한공주(천우희) / 라이언 /  라빠르망(뱅상카셀,모니카 밸루치) / 발신제한(조우진) / 노스탤지아(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 해피엔드(전도연 최민식) / 안나카레리나(키이라 나이틀리) / 안나카레리나 뮤지컬(감독 신예지) / 안나카레리나(소피마르소) / 러블리 스틸 / 필라델피아(톰 행크스,덴젤워싱턴) / 나,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 / 전쟁과 평화(BBC) (폴 다노, 릴리 제임스) / 피노키오(기예르모 델토로) /There will be blood(다니엘 데이 루이스, 폴다노) / 메멘토(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양철북 / 클로이(리암 니슨, 줄라안 무어, 아만다 사이프리드) / *내가 죽기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셜리 맥글레인, 아만다 사이프리드) / 폭풍의 언덕 / *연인(장자크 아노 감독, 제인 마치, 양가휘) / 로마(알폰소 쿠아론) / 이투마마(알폰소 쿠아론) / 눈먼자들의 도시(줄리안 무어) / 애니 홀(우디 앨런, 다이앤 키튼) / 맘마미아(메릴 스트립, 아만다 사이프리드) / 너는 내운명(황정민, 전도연) / 컨텍트(에이미 아담스) / 스탠바이미(리버피닉스, 윌휘튼) / *보희와 녹양(안주영 감독) / 더킹(정우성,조인성) / 왕의남자(감우성 이준기) / *패터슨(애덤 드라이버) / 카운트 (진선규) /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전도연, 배용준) / 온더로드(가렛 헤드룬드(딘 모리아티), 샘라일리(샐)) / 안녕하세요(김환희, 유선, 이순재) / 서울의 아들(게자 뢰리) / 올드보이(최민식, 유지태) / 사라의 열쇠(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 어둠속에 빛 / 제이콥의 거짓말(로빈 윌리엄스) / 네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휴 그랜트,앤디 맥도웰) / 킹메이커(이선균, 설경구) / 어쩌면 우린 헤어졌는지  모른다(이동휘,정윤채) / 조안나(우르슐라 브라보브스카)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 스타이즈본(브래들리 쿠퍼, 레이디 가가) / 김종욱찾기(공유, 임수정) /파리넬리(스테파노 디오니시) /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브래들리 쿠퍼,제니퍼 로렌스) / 아뉴스 데이(루 드라쥬, 아가타 부잭) / 이다(아가타 쿠레샤) / 에브리띵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양자경) / 부산행(공유) / 아가씨(김민희,김태리) / 베를린천사의 시(빔 벤더스 감독) /리바운드 (안재홍) / 문라이트 (트레반테 로즈) / 카이로의 붉은 장미 (우디 앨런 감독) / 타인의 삶(울리쉬 뮤흐, 마티나 게덱) / 굿바이 칠드런(루이 말 감독) / 봄날은 간다 (유지태,이영애) /Knockin’ on heaven”s door(토머스 얀 감독) / 사랑의블랙홑(빌 머레이, 앤디 멕도웰) / 택시 드라이버(로버트 드 니로, 조디 포스터) / 사랑을 카피하다(줄리엣 비노쉬) / 터미널(톰행크스) / 오펜하이머(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 다운폴 (브루노 간츠) / 블랙북(카리세 반 하위텐) / 미드나잇 인 파리(우디 앨런 감독) / 세가지색: 블루(줄리엣 비노쉬) / 공기살인(김상경) / 가장 따뜻한 색 블루(래아 세이두, 아델) / 사랑에 관한 짧은 필름(키에슬로프스키 감독) / 살인에 관한 짧은 필름(키에슬로프스키 감독) / 중년의 위기(우디앨런 감독) / her (호아킨 피닉스) / Fried Green Tomatoes(캐시 베이트) / 길 (안소니 퀸) / 인더하우스(파브리스 루키니,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 자기 앞의 생 (소피아 로렌) / 프란시스 하(그레타 거윅) / 프란츠 (피에르 니니) / 새벽의 약속 (피에르 니니, 샤를로뜨 갱스부르) / 데미지(제레미 아이언스, 줄리엣 비노쉬) / 결혼하고도 싱글로 남는 법(샤를로뜨 갱스부르) / 귀여운 반항아(샤를로뜨 갱스부르) / 잠(이선균, 정유미) / 문라이즈 킹덤 / 거미집(송강호, 임수정) / 82년생 김지영(정유미, 공유) / 방랑자(아녜스 바르다 감독) / 연애소설(이은주, 차태현) / 기생충(송강호) / 트와이스 본( 페넬로페 크루즈) / 동주(강하늘, 박정민) / 욕망(안토니오니 감독) /월플라워(로건 레먼, 엠마왓슨,에즈라밀러) / 무뢰한(전도연, 김남길) / 연애빠진로맨스(손석구, 전종서) / 내 아내의 모든 것(임수정, 이선균) / 스플릿(유지태)  / 미드소마(아리에스터 감독.플로렌스퓨) / 종이달(미야자와 리에) / 마스터(호야킨 피닉스,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 프리다(셀마 헤이텍) / 너는 여기에 없었다(호아킨 피닉스) / 맥베스 (마이클 패스팬더,마리옹꼬띠아르) / 건축학 개론 / 너와나(박혜수, 김시은) / 에브리띵윌비파인(제임스 프랭코,샤를로뜨 갱스부르) / 낭트의 자코 (자끄 드미) /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앤디 맥도웰) / 귀향(페넬로페 크루즈) / 하몽 하몽(페넬로페 크루즈) / 내 어머니의 모든 것(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 펀치 드렁크 러브(폴 토마스 앤더슨) / 삼진그룹영어토익반(고아성,조현철) / 바닐라스카이(톰쿠루즈,페넬로페크루즈) / 흐르는 강물처럼(브래드피트) / 초콜릿(줄리엣 비노쉬) /오, 수정(이은주) / 시(윤정희) / 카페 드 플로르(바네사 파라디) / 어톤먼트(키이라 나이틀리,제임스 맥어보이) / 길버트 그레이프(조니뎁,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메기스플랜(그레타거윅, 에단호크) / 비공식작전(주지훈, 하정우) / 갈매기(아네트 베닝, 시얼샤 로넌)  / 나나, before now & then / 소년들 (설경구) / 팬텀 스레드(다니엘 데이루이스, 비키 크립스) / 남산의 부장들(이병헌) / 크리스마스에는 행복이(맥켄지 데이비스, 크리스틴 스튜어트) / 봄날의 곰을 좋아하세요?(배두나) / 서울의 봄(정우성, 황정민) / 우연과 상상(하마구치 류스케 감독) / 비밀의 꽃(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 크리스마스 건너뛰기(팀 알렌) / 네버랜드를 찾아서(조니뎁, 케이트 윈글렛) / 어바웃타임(레이첼 맥아담스, 빌 나이) / 아메리칸 뷰티(샘 멘데스 감독) / 콘크리트 유토피아(이병헌,박서준) / 26년(한혜진, 진구) /노다지(김승호, 황해, 엄앵란) / 마더 앤 차일드(아네트 베닝,나오미 왓츠) / 케이터링 크리스마스 / 인사이드 아웃 
 
205 편의 영화.
정말...., 많이 봤다.
 
몇 편의 인생 영화는 매 해 다시 봐도 '울컥'하고 울음이 터진다.
좋아하는 영화 몇 편이 더 생겼다.
애덤 드라이버 주연의 <패터슨>과, 세월호 이야기 <너와 나>, 안주영 감독의 독립영화 <보희와 녹양>이 너무 좋았다.
 
 
<보희와 녹양>의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다.
강으로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던 보희가, 다시 물 위로 올라와 힘겹게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고, 마침내 한 줄기 햇살을 받은 그의 얼굴에 살며시 미소가 번진다. 
그렇게 성장하고 회복하며 보희는 또 나아갈 힘을 얻는다. 
 
삶이 마냥 좋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살아갈 수 있음은, 곁에서 그를 지지하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따스한 온기로 생겨난다. 보희와 녹양의 생일 파티에 모인 사람들의 유쾌하고 소박한, 엉뚱하고 재미난 분위기로 충분하다.
 
더 많이 유쾌하고, 더 많이 사랑하는 한 해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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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에서 놀기_220605  (0) 2022.06.09


 

 
 
문학동네의 스페셜 에디션이다.
한강의 장편 소설 <희랍어 시간> , 단편 소설 <회복하는 인간 > <파란 돌>, 네 편의 시들, 여덟 편의 산문들을 한 권으로 엮은 책. 
 
한강의 작품들을 다시 꺼내 읽게 동기는, 영화 <서울의 봄> 관람이다.
 
'우리가 이토록 폭력과 아름다움이 뒤섞인 세상을 견딜 수 있는가, 껴안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 <채식주의자>.
 
'삶을 살아내야 한다면, 인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면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된, <희랍어 시간>.
 
'인간의 연하고 섬세한 자리를 들여다보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이어진 1980년 광주이야기, <소년이 온다>.
 
올해 나의 독서는 한강의 책들로 마무리다.

 
희랍어 시간

시력을 잃어가는 한 존재,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지 않고 두꺼운 안경과 빛에 의지해 희랍어 강사 생활을 하고 있는 남자.
 

안갯속을 나아가는 것 같을 때가 있어요.
그 도시의 겨울에 종종 찾아오던, 새벽에 호수에서 시가지로 밀려온 안개가 저녁까지 걷히지 않던 날처럼.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들이 안개에 덮여 흔적도 보이지 않는 회색 건물들 사이를, 축축한 석벽에 바싹 몸을 붙이고 천천히 걸어야 하던 밤처럼.
아무도 자전거를 타지 않던 밤, 사람의 자취 없이 무거운 발소리들만 들려오던 밤, 아무리 더 나아가도 싸늘한 집에 다다를 수 없을 것 같던 밤처럼.

 
 
말을 잃은 한 존재,
열일곱 살, 처음으로 말을 잃었던 그녀를 회복시킨 건 불어 단어였다. 이혼 후 양육권을 뺏기고, 또다시 입을 뗄 수 없어, 말을 되찾기 위해 희랍어를 배우는 여자.
 

셀 수 없는 혀와 펜들로 수천 년 동안 너덜너덜해진 언어. 그녀 자신의 혀와 펜으로 평생 동안 너덜너덜하게 만든 언어.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늙은 심장이 느껴졌다. 누덕누덕 기워진, 바싹 마른, 무표정한 심장. 그럴수록 더 힘껏 단어들을 움켜쥐었다. 한순간 손아귀가 헐거워졌다. 무딘 파편들이 발등에 떨어졌다. 팽팽하게 맞불려 돌던 톱니바퀴가 멈췄다. 끈덕지게 마모된 한 자리가 살점처럼, 숟가락으로 떠낸 두부처럼 움푹 떨어져 나갔다.

 
 
그들과 세계 사이에 놓인 서슬 퍼런 칼날. 고립감, 답답함과 두려움.
희랍어 강사와 학생으로 만난 두 사람은 처음엔 그들의 연약한 부분을 볼 수 없었지만, 그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후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수 있게 된다. 
 

......... 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순간이 있어요.
더 이상 아무것도 말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있어요.

 
 

그녀는 혀끝으로 아랫입술을 축인다. 입술을 떼었다가 힘껏 다문다.
그가 내민 손을 그녀의 왼손으로 받친다. 주저하는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 위에 쓴다. 

아니요.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

 
 
폭력과 부조리로 가득한 세상에도 따스함과 아름다움은 여전히 있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듯이, 상처와 치유가 반복되듯이,
 
소설의 마지막 장 제목이 '0'이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일까. 
빛의 소멸, 소리의 꺼짐, 공의 상태, 혹은 인간의 가장 연약한 부분. 
 
가느다란 숨소리처럼, 스치는 체온처럼, 조용히 위로가 전해지는 따뜻한 사랑이야기.
 
 

우리가 가진 가장 약하고 연하고 쓸쓸한 것, 바로 우리의 생명을 언젠가 물질의 세계에 반납할 때, 어떤 대가도 우리에게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언젠가 그 순간이 나에게 찾아올 때, 내가 이끌고 온 모든 경험의 기억을 나는 결코 아름다웠다고만은 기억할 수 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남루한 맥락에서 나는 플라톤을 이해한다고 믿고 있는 것이라고. 그 역시 아름다운 것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거라고. 완전한 것은 영원히 없다는 사실을. 적어도 이 세상에는.

 


 

 

 

 

올해 연말 공연은 뮤지컬 <지하철 1호선>.

 

학전 소극장이 내년 초 문을 닫는다는 소식을 접하고 맘이 좋지 않다.

고 김광석의 천회 공연을 그 좁은 공간에서 봤었고, 남편과 연애 초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봤던 곳.

시간이 흘러서도 대학로에 들릴 때면, 김광석 흉상을 보기 위해 매번 찾았던 곳.

 

언젠가부터 아이들 연극 포스터가 걸려있어, 쉽사리 가게 되지 않았던 그 지하의 좁은 공간.

 

 

 

 

 

94년에 초연이 있었고, 우리는 95년 6월 24일 공연을 봤었다.

공연 중 대학로 일대 전기가 나갔고, 극을 멈추어야 했던 상황이었음에도, 어둠과 정적 속에서 배우들이 열심히 스텝을 밟으며 춤을 췄던 그 기이한 순간이 기억난다. 우리는 기다렸다 다음 공연을 봤었다.

 

그 재미있었던 에피소드, <아침 이슬>의 김민기, 학전 소극장,  그리고 쓸쓸했던 시절 지하철 1호선을 탔던 소외된 우리들의 이야기가 더해져 <지하철 1호선>을 깊이 기억하게 되었었다.

 

 

 

 

 

28년이 지나 학전의 마지막 소식을 접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이 공연을 보았다.

''6시 9분 서울역~'' 오프닝 곡이 울리자 마법같이 노래가 기억나며 심장이 두근, 

무수한 세월이 지났음에도  잊히지 않은 많은 것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감동, 또 감동이었다.

 

 

 

 

 

이 마음을 오래 간직하고픈 마음에 우리 부부는 대학로에 더 오래 머물렀다.

학전 소극장의 구제를  간절하게 소망하며......

 

 

 

20대 꿈과 같던 시절, 50대가 된 지금.

거의 30년 세월의 촘촘한 사연들 사이에서 <지하철 1호선>의 추억은 묘한 끈으로 나의 인생을 이어주고 있었다.

 

 

23년 연말, 대학로 거리에서의 추억이 또 포개진다. 따뜻한 눈처럼.

 

 

 

 

 

 

 

 

 

 

 

 



오랜만에 교양 심리학 책 한 권.
[자존감 수업]


 

비난에 대하여

 

사실을 말하거나, 좋은 의도로 한 말도 비난이 될 수 있다. 눈빛과 작은 제스처 혹은 무관심도 누군가에겐 화살이 되어 꽂히기도 한다. 말하는 의도와 수반된 감정은 읽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모든 언어와 태도를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가족과 타인에게 무심코 던진 말이나 몸짓이 그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간혹 그럴 때가 있을 것이다.

말 한마디,

어떤 눈빛,

나에 대한 사실적 묘사,

무심한 듯한 비교.

별 거 아닌 무언가가 때로는 엄청난 힘으로 나를 지배할 때가.

 

그러나 나를 비난하는 사람은 나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단지 그 사람의 감정일 뿐이다. 어쩌면 별 의도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저 그 사람의 성격이나 말투일지도.

 

우리에게 어떤 의견을 제시하거나 평가했다고 해서 그것이 진리일리 없다. 개인적 의견이고, 언제 변할지 모른다. 비난하는 그들은 이미 스트레스에서 자신을 방어하지 못한 상태다.

 

 

그러니, 타인의 생각은 그들만의 것으로 놔두자.

상대를 인정하는 대범함도 길러보자.

 

 

 

정확한 대사가 기억나진 않지만, 

영화 <쵸콜렛>에서 로쉐(줄리엣 비노쉬)는 가정폭력을 당하고 자신의 초콜릿 가게로 찾아온 조세핀(레나 올린)에게 남편이 전부가 아니니 자신의 삶을 지켜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 조세핀은 나의 세상에는 남편이 전부라고 꾸짖듯이 울부짖는다. 그때 로쉐는 맞서지 않는다. "당신이 그렇다면 그런 거겠죠. 미안해요."라고 사과한다.

 

그 장면이 너무 좋았다. 나의 생각과는 다른 타인의 감정을 인정하고 어루만져 주는 로쉐의 따스함이 닮고 싶었다.

로쉐가 있었기에, 조세핀은 자신을 가두었던 상황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멈추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찾게 된다.

 

 

 

 

때론 실패하거나, 어떨 때는 비난받는 나인 듯해 괴로울 수 있지만, 가끔은 우울하고 외롭겠지만,

오늘도 나를 칭찬하고 사랑하기. 

 

그리고 그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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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의 소설 [디디의 우산] &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

 

 

<d>,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었다> 두 편의 연작 소설이 실려있다.

선물 받은 책이었고, 제목만으로는 어떤류의 소설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채, 붉은 표지에 매료되어 읽기 시작했다.

 

 

 

소설은 혁명에 관한 이야기였다.

 

1950. 6.28 한강대교 폭파로 붕괴된 개개인의 두개골

1960년대 후반 세운상가의 화려한 완공식과, 세월이 지난 후 상가 재생 프로젝트에서 제외된 상인들

1983. 2.25 북한의 공군 이웅평 대위가 북쪽 삶에 환멸을 느끼고 남한으로 귀순한 사건

1996년의 연세대 사태로 고립된 학생들

2008. 6.10 명박산성

2009. 1.20 용산구 남일당 건물 철거민들의 농성과 사망

2014. 4.16 세월호

2016 수차례의 촛불집회

그리고,

2017. 3. 10. 박근혜 대통령직 파면

 

열차 안 차창으로 지나치는 풍경처럼 역사적인 사건들이 배경이 되어 소설을 이끌어 간다.

 

 

 

조현철 감독의 영화 [너와 나] 생각을 했다.

2014년 4월에 대한 이야기를 절절한 방식으로 추모하고 위로한 대단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정동진 독립 영화제를 시작으로, 최근 N차 관람을 했다.

 

 

 

 

 

 

부조리한 현실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소극적 혹은 적극적으로, 시위 참여 혹은 주도로 각자의 촛불을 손에 들고 거대한 무언가에 소리치며 대항한다. 각자가 생각하는 수준의 혁명가가 되어 혁명을 기대하고, 때로는 약간의 위안과 찰나의 희망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혁명은 바르게 진행되고 있는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되고 있는가?

우리가 들었던 촛불은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켰는가?

 

 

 

영화 [너와 나]에서 세미가 수학여행 가기 전 날, 엄마 아빠와 국수를 먹는 장면이 나온다.

세미가 자신의 태몽을 물어보자, 엄마는 빨간 수박 이야기를 한다. 세미가 '수박은 다 빨갛지' 하며 시시하게 생각하자, 엄마는 수박이 정말 선명하고 빨갰다고, 아빠는 '우주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빨간색이라고 이야기해 준다.

 

우주에 단 하나밖에 없는 빨간색.

단 하나의 우주가 파괴되었다. 그 유일했던 것이. 

 

개개인의 맥락이 없는, 나와는 무관한, 내가 소외된 상태로 전개되는 혁명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냥 조용히 아닌 척하고 망해가는 것보다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박조배는 금방이라도 세계가 망할 것처럼 이야기했으나 디는 의아했다. 망한 다고? 왜 망해. 
내내 이어질 것이다. 더는 아름답지 않고 솔직하지도 않은 삶이. 거기엔 망함조차 없고....... 그냥 적나라한 채 이어질 뿐.

 

 

 

진공관은 소리를 좌우한다고 그는 말했다.
정류와 증폭이라고..... 들어봤나? 정류는 산만하게 흩어진 것을 한 방향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고, 증폭은 신호의 진폭을 늘리는 것인데 말이야. 이 앰프에서 그걸 하는 게 얘네들이야. 이게 제대로 켜져야 이 앰프가 사는 것이고, 모든 게 제대로 흐르는 거라고.

 

디는 세종대로 사거리에서 느꼈던 진공을 생각하고, 문득 흐림이 사라진 그 공간과 그 너머, 거기 머물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들과 디에게는 같은 것이 거의 없었다. 다른 장소, 다른 삶, 다른 죽음을 겪은 사람들.
그들은 애인을 잃었고 나도 애인을 잃었다. 그들이 싸우고 있다는 것을 디는 생각했다.
그 사람들은 무엇에 저항하고 있나.
하찮음에 하찮음에.

 

 

 

 

세운상가에서 진공관 앰프를 수리하는 여소녀의 낡은 가게에서, d는 불을 밝힌 유리 벌브에 무심히 손을 대어 본다.

 

디는 놀라 진공관을 바라보았다. 이미 손을 뗐는데도 그 얇고 뜨거운 유리막이 달라붙어 있는 듯했다. 통증은 피부를 뚫고 들어온 가시처럼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우습게 보지 말라고 여소녀가 말했다. 그것이 무척 뜨거우니, 조심을 하라고.

 

 

 

누구도 죽지 않는 이야기를  꿈꾸는 이 소설들이 그의 손에서 아직 완결되지 않았으므로, 혁명으로 이루어진 날은 오늘이 아닐 것이다. 일상 속에서 사소하게 치부되어 온 문제들과 지워져 온 존재들을 무한히 많은 혁명들이 계속되어야 하고, 정말 혁명이 도래하는 그날에는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는 대신에 모두가 말하게 될 것이다. <문학 평론가 강지희>

 

 

 

하찮음에 하찮음에 끝없이 저항하고 있는 우리는, 낡아 거무스름하게 그을린 유리 벌브 안 빛처럼, 정류와 증폭을 거쳐 우습게 보지 못할 강력한 빛을 뿜어낼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건네는 이 책. 

 

무한한 혁명. 

진실된 관심, 글, 박수, 응원, 기부, 참여, 시간, 노동, 연대의 힘은 결코 하찮거나 우습지 않다. 

그러니 계속되어야 한다.

 

 

 

 

 

 

 

 

 

 

 

 

 

 

 

 
 
 

 
 
 
 
기형도 문학관 (경기 광명)
기형도 플레이 (연극)
입 속의 검은 잎 (기형도 시집)
기형도 전집 
기형도를 잃고 나는 쓰네 (김태연 소설)
 
 
 
기형도 시인의 삶과 문학에 한동안 빠져 있었다. 그리고, 그 여운은 강렬하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던 어머니와 누이들, 그리고 시인.
한 누이를 먼 나라로 보낸 후, 찢긴 마음의 상처와 끝이 없던 그리움.
유리병 속에서 알약이 쏟아지듯, 언젠가 쓰러질 거란 예감을 늘 갖고 살았던 시인.
스물아홉, 그의 삶은 끝나고 말았다. 뇌졸중.
 
 
 
그의 시와 소설, 산문을 읽으면 슬픔과 허무가 밀려온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힘으로.
그가 말하는 희망의 노래마저 나를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채운다.
늘 어떤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면, 몇 가지의 시에 더 애정이 가곤 했지만, 기형도 시인의 모든 시들은 그러했다.
 
연극 기형도 플레이는 한예종 출신 작가들이 기형도의 시에서 영감을 받아 쓴  단편 희곡으로 꾸민 연극이다.
우리가 본 회차는 <빈 집>, <흔해빠진 독서>,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바람의 집>, <조치원> 다섯 편의 플레이였고,
모든 극은 슬픔과 쓸쓸함이 묻어났다.  <조치원>의 박호산, 이창훈 배우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시인의 친구였던 김태연 작가의 소설에서는, 시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그의 성격, 말투, 인간 관계, 사생활, 그가 갔던 식당, 찻집, 탔던 버스 번호마저도. 
시인을 더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책이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기형도
 
 
그는 어디로 갔을까
너희 흘러가버린 기쁨이여
한때 내 육체를 사용했던 이별들이여
찾지 말라, 나는 곧 무너질 것들만 그리워했다.
이제 해가 지고 길 위의 기억은 흐려졌으니
공중엔 희고 둥그런 자국만 뚜렷하다
물들은 소리없이 흐르다 굳고
어디선가 굶주린 구름들은 몰려왔다
나무들은 그리고 황폐한 내부를 숨기기 위해
크고 넓은 이파리들을 가득 피워냈다
나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돌아갈 수조차 없이
이제는 너무 멀리 떠내려온 이 길
구름들은 길을 터주지 않으면 곧 사라진다
눈을 감아도 보인다
 
어둠 속에서 중얼거린다
나를 찾지 말라....... 무책임한 탄식들이여
길 위에서 일생을 그르치고 있는 희망이여
 
 
 
 
 
 
 
 

 

 
 
 
 
밀란 쿤데라의 단편집, 우스운 사랑의 첫 번 째 이야기, <아무도 웃지 않으리>의 주인공처럼,
소설 <농담> 속, 루드빅의 삶은 농담 한 마디로 유린된다.
 
복수와 회복을 꿈꾸며 버텨온 삶은 결국,
허무와 하강으로 잠식된다.
 
사실은 잊히고, 회복의 가능성은 전무할 뿐,
삶이란 허무 그 자체이다.
 
사랑이 사랑이고, 고통이 고통인 세상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한 세상은 상상이고 기념비이다.
 
결국,
농담도 우연도 자신이 짊어져야 할 무거운 십자가.
 

그렇다. 갑자기 모든 것이 선명하게 보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 가지 헛된 믿음에 빠져있다. 기억(사람, 사물, 행위, 민족 등에 대한 기억)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행위, 실수, 죄, 잘못등을) 고쳐볼 수 있다는 가능성데 대한 믿음이 그것이다. 이것은 둘 다 마찬가지로 잘못된 믿음이다. 모든 것은 잊히고, 고쳐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을(복수에 의해서 그리고 용서에 의해서) 고친다는 말은 망각이 담당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미 저질러진 잘못을 고치치 못하겠지만 모든 잘못이 잊힐 것이다.

 

그리고 나는 이 노래들 속에서(이 노래의 유리집 속에서) 행복했다.
거기에서는 슬픔이 가볍지 않고, 웃음이 비웃음이 아니고, 사랑이 우습지 않으며, 증오심이 맥없지 않고, 사람들은 온몸과 마음으로 사랑하며, 행복은 사람들을 춤추게 만들고, 절망은 다뉴브 강으로 뛰어들게 만들며, 그곳에서는 그러니까 사랑이 사랑으로, 고통이 고통으로 머물러 있었고, 아직 가치들이 유린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노래들 속에 나의 출구가 있고, 나의 본원의 표지가, 내가 배반한 나의 집, 그러나 그렇기에 더욱 나의 집인 집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깨달았다.

이 나의 집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며, 우리가 노래하는 것들은 모두가 단지 추억이고 기념물이며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으로 보존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느꼈다. 나의 집의 바닥이 내 발밑으로 꺼져 내려앉는 것을, 그리고 내가 클라리넷을 입에 문 채 수십 년 수백 년의 심연 속으로, 바닥 없는 심연(사랑이 사랑이고 고통이 고통인 곳)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것을, 무언가를 찾고 갈망하는 이 추락이라고 나 자신에게 말하며 놀라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러한 나의 집에, 내 황홀한 현기증에 자신을 내맡겼다.

 
 

내게는 언제나 너무도 현재적이고 생생한 그와 나 사이의 투쟁 위로 모든 것을 잠재우는 위무(위로하고 어루만지어서 달램)의 물결이 파도처럼 넘쳐오는 것을 나는 보았다. 시간의 물결,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모든 시대들 사이의 차이들마저 다 씻어가 버리는데, 하물며 보잘것없는 두 개인 사이의 차이는 얼마나 쉽게 씻어가겠는가.

 
 
세월은 앞으로 빠르게 질주한다. 아무리 열심히 과거로 달려봐야, 달려가는 방향과 반대편에 있는 목적지로 서서히 갈 수밖에 없다. 역사는 뒤로 가고, 시대는 바뀌어, 영원한 것은 없으며, 미루어진 복수는 환상으로, 자신만의 종교로, 신화로 바뀌어버리고 만다. 허망한 일이다.
 
농담은 진담이 되고, 진실된 말은 허공에 가볍게 흩어지는 일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목격하는가. 
밀란 쿤데라의 초기 작인 <농담>에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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