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리트 쥐스킨트의 장편소설, <향수>.
잔혹 동화같기도 한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이다.
작가의 기발한 아이디어와 탁월한 문장력으로 읽는 내내 긴장감과 재미를 느낄 수 있었다.
18세기, 악취가 심한 프랑스의 한 지역, 생선 도마 아래에서 태어난 장 바티스트 그르누이.
그의 엄마는 수차례의 영아 살인죄로 참수형을 당하고, 그르누이는 열악한 보호 아래 여기저기 떠돌이 신세를 지게 된다.
악취 속에서 태어난 그는 놀라운 후각을 가진 천재였다. 그러나 막상 자신은 그 어떤 인간의 냄새도 갖지 못한다.
애당초 괴물로 태어난 그는, 반항심과 사악함의 끈질긴 생명력으로 삶을 지속시킨다.
냄새를 맡고 분별하는 능력이 남달랐던 그르누이는, 향수 제조자 발디니 밑에서 향수 제조법을 배우는 것을 시작으로 온갖 것들로부터 향을 채취하는 법을 익힌다. 결국, 자신에게 냄새가 없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 후, 아름다운 인간의 향을 채취하기 위해 25명의 소녀를 희생시킨다.
마지막 소녀의 향을 채취한 후 목격자가 발생했고, 범인으로 잡힌 그는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어갈 운명이었다.
처형장에 도착한 그르누이가 마차에서 내리는 순간, 근사한 옷을 입은 그에게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름다운 향이 퍼져나가고 광장을 가득 메운다. 그렇다. 그는 <위대한 그르누이>였다.
그 이상한 일은 바로 처형장과 그 주변 언덕에 구름처럼 모여 있던 만여 명의 사람이 한순간에 갑자기 푸른 옷을 입고 마차에서 막 내려서는 작은 남자는 절대 살이마일 리가 없다는 확고한 믿음에 사로잡힌 일이었다.
심지어 주교마저도 마치 신이 내려온 것 같은 종교적 황홀감을 맛보며 그르누이에게 빠져 들었다.
그는 수녀들에게는 구세주의 헌신이었고, 사탄의 추종자들에게는 빛나는 어둠의 신이었으며, 계몽주의자들에게는 가장 이성적인 존재로 보였다. 처녀들에게는 동화 속 왕자였으며, 또 남자들에게는 그들이 꿈꾸는 이상적 자화상이었다. 그들은 모두 그의 손길이 자신들의 가장 예민한 곳, 가장 민감한 성감대를 어루만지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서는 인간에 대한 역겨움이 되살아나 승리를 느끼지 못했다. 그 향기로 인해 타인들은 자신을 사랑하게 되었지만, 그가 도둑질한 향기, 그가 연출한 분위기만 진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자신은 사랑이 아니라 언제나 증오 속에서만 만족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는 마을을 떠난다. 이후, 그르누이가 일하던 향수 공장장 도미니크 드뤼오가 체포되어 14시간의 고문 끝에 교수형 당한다.
향수.
젊었을 때는 호기심으로 몇 번, 지금은 가끔 필요에 의해 사용하고 있는 향수. 싸구려 향수는 조잡한 향에 냄새가 금세 날아가 버리지만, 값이 나가는 향수는 시간이 지나면서 향이 바뀌고 마지막에는 에센스 향이 은은히 남는다. 나의 불쾌한 냄새를 감추려 향을 사용하지만 일시적이다. 좋은 향이 나는 사람이 인상적이지만, 글쎄.
쥐스킨트의 단편 <승부>에서, 도전자 젊은이의 후광에 판단력을 잃은 체스의 고수와 구경꾼들처럼, 외적인 조건만으로 사람을 쉽게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처형장에 모인 무수한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들을 보라.
그르누이는 어쩌면 평범한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결점을 가지고 있는 불완전한 인간, 자신의 역린을 숨기고 있는 존재들.
사람들은 그것을 숨기거나 극복하고자 고군분투하며 살지만 쉽지 않다. 자신을 감추고 포장하면 타인을 어느 정도 설득할 수 있겠지만, 나 자신의 만족과 행복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질 수 있다.
자신이 몸에 신의 향유를 바르기만 한다면.......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이 없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의 손에 그 힘이 들어 있다. 이것은 돈이나 테러, 혹은 죽음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 이것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이끌어 내는 힘이 있다. 아무도 그걸 거역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힘이 미치지 못하는 곳이 딱 한 군데 있으니, 그곳이 바로 그르누이 자신이다. 그는 이 사랑의 향기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그는 이 향수를 통해 세상에 신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향수를 느낄 수가 없으니 그걸 바르고도 자신이 누군지 모른다면 도대체 그게 무슨 의미일까? 그는 세상과 자신 그리고 향수를 비웃었다.
천재적인 재능을 계발하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악한 일들도 서슴지 않았던 그르누이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헛된 희망, 이루어질 수 없는 욕망을 품고 사는 인간들의 삶은 고독하고 불행하다.
소설은 영화로도 제작되었다. 원작과 조금 다른 부분이 있고, 후각의 시각화를 표현하기 쉽지 않아 보였지만, 영화도 좋았다.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보는 것이 더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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