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는, 헬무트 디틀이 감독한 독일 영화 <로시니, 1997>의 시나리오가 실려 있다.

(헬무트 디틀, 파트리크 쥐스킨트 공동 각본)

등장인물들 정리가 잘 되지 않아 영화를 보려 했지만, 현재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없는 듯하다.

책에 실린 영화 속 장면의 흑백 사진들로 위안을 삼는다.

 

 

 

1. 친구여, 영화는 전쟁이다! (시나리오 쓰기의 몇 가지 어려움에 대하여)

 

2. 영화 속의 장면들

 

3. 로시니 (혹은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

 

4. 멜로드라마란 무엇인가? (헤루트 카라세크와 헬무트 디틀의 대담 발췌)

 

 

 

완성된 영화만 봐 왔던 관객들은 시나리오를 쓰는 과정, 배역 결정, 촬영과 편집까지 겪는 일련의 많은 어려움들을 알 길이 없다. 그저 추측만 할 뿐, 아니면 거의 생각하지 않는다.

시나리오 쓰기의 어려움에 대한 쥐스킨트의 글을 읽으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이 단계에서는 아무리 좋은 영화들도 시시해 보이고, 아무리 엄청난 아이디어도 소화할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요구라도 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시나리오 작가라면 누구나 다 이 단계를 거친다. 이것은 시나리오 쓰기에 있어 일종의 통과 의례로서, 앞으로 닥쳐 올 난관에 대한 공포를 약화시키는 신경 안정제 같은 역할을 한다. 

 

시나리오 작업의 다음 단계는 <이야기를 조심할 것>이라는 구호하에 진행되었다. 그때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것, 즉 설명적 요소를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각각의 이야기들이 너무 일찍 다른 이야기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는 것, 그러면서도 관객의 흥미를 어느 정도 유발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된 것이다.

 

영화는 산문에서 기대하는 책과 독자 사이의 리듬의 일치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영화 자체의 내적인 리듬과 관객의 리듬의 일치를 요구한다. 이 말은 영화의 경우 두 가지 맥박이 두 시간 동안 거의 비슷하게 뛰어야 한다는 뜻이다.

 

오스카 라이터의 말을 다시 한번 인용하면, <친구여, 영화는 전쟁이다.> 시나리오는 총알이 하나밖에 들어 있지 않은 탄창에 비교할 수 있다.

 

영화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말은 아마 이것일 것이다. 영화는 흘러간다. 

 

 

 

 

부제목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는 볼트 본드라 체크의 장편시에서 인용했다고 한다.

그 시는 한때 불타오르던 열정과 사랑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것에 대한 노래입니다. 그것이 위대함은 아니라는 거지요. 그리고 마지막에서 <누가 누구와 잤는가 하는 문제는 만족스럽게 끝이 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전날 밤 그렇게 대단해 보였던 우정이나 사랑, 혹은 일이 다음 날이 되면 실은 별게 아니하는 사실을 깨닫데 되는 거지요.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적어도 만족스럽게 끝이 납니다. 아주 끔찍했던 경험조차도 말입니다.

 

 

우리에게 전부인 듯 느꼈던 어떤 것들도 삶의 긴 호흡에서 보면 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인생무상.

영화 속 인물, 크리크니츠의 목소리에서도 메시지는 전달된다. 

"고뇌와 사랑의 거대한 산맥에서 남은 것은 우스꽝스러움뿐, 위대함은 모두 사라지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모래뿐이라네. 가장 저질스러운 코미디처럼."

오래된 악취? 뜻대로 되는 일은 없는 법.
그리고 누가 누구와 잠을 잤는가 하는 잔인한 문제는 만족스럽게 해결된다.

 

 

지금 나의 마음속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갉아먹는 것은 무엇인가. 

뜨거운 열정이나 욕정도 언젠가 사라진다.

 

빛은 발하고,

허기나 갈증은 달래진다.

 

사라져 버리는 것들.

무뎌지고 또 만족스럽게 되는 삶.

 

슬프고 잔인하지만 그것이 필요하기도 함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독특한 구성이 흥미를 끌었고, 쥐스킨트의 조금은 다른 모습도 느낄 수 있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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