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니까 시는>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죽은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
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호랑이가
레몬 한 조각에 젖는다
성냥개비들, 불꽃 한 점에 날뛴다
그러니까 시는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
유리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요틴처럼 닫힌 면접장 문틈에
잘려 나간 그림자에 뒤덮여서
돋아나는 버섯의 부드러운 얼굴
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동그란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
한밤중 쏟아지는
폐병쟁이 별들의 기침
언어의 벌집에서 붕붕 대는 침묵의 말벌들
이 슬픔의 앙상한 다리는 어느 꽃술 위에 내려앉았나
내 속에 매달린
영원히 익지 않는 검은 열매 하나
그러니까 시인은,
그녀의 언어로 절망과 분노, 위로와 애도, 저항과 사랑을 말한다.
시집의 2부에서는,
2014, 4.16일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한 단원고 학생 유예은과 그의 가족을 위한 시 몇 편을 만날 수 있다.
<그날 이후>,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아빠>를 읽으면 마음이 저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시를 통해 딸의 목소리를, 엄마 아빠의 목소리를 들었을 그들은 아마 한바탕 울음을 쏟아낸 후, 또 그렇게 위로받고 나아갈 힘을 얻었을 것이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경험할 때 온전한 존재가 되려는 힘이 강해지기 때문에, 삶이 부서진 어떤 사람에게 예술적 자극은 곧 치유적 자극이 된다는 것. 그렇다면 아름다움(예술)은 인간을 해결하는 사랑의 작업이 되고, 그렇게 치유되면서 우리는 해결되지 않는 분쟁과 다시 맞설 힘을 얻게 된다._해설(신형철)
표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는 시 <청혼> 1연의 시작이다.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도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
시 한 편을 외우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다.
소설이던 수필이던 오늘 밑줄 치며 감동받아도, 또 다음 날이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말대로, 문학의 건망증에 굴복하기보다는, 벗어나려 애써야 한다.
허둥지둥 글 속에 빠져 들지 말고, 분명하고 비판적인 의식으로 그 위에 군림해서 발췌하고 메모하고 기억력 훈련을 쌓아야 한다. 결국, 나의 삶을 변화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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