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에 대하여>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중 한 권.

 

이 책은 요양 보호사로 일하는 노년에 이른 한 여인과, 그녀의 딸 이야기이다.

아직 나이 든 서러움을 사무치게는 느끼지 못했을 작가는 이 책에서 나이 들어감에 대한 서글픈 감정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낸다.

 

세대마다 중년의 기준이 달라지겠지만, 중년의 나이인 나는 남편과 자주 데이트를 한다.

서울 도심을 걷고, 꽃이 유명하다는 곳은 애써 찾아다닌다. 맛집과 근사한 카페는 열심히 검색하여 잊지 않고 들린다. 그러나 어느 곳을 가도 우리는 젊은이들에게 낯설고 이질감이 느껴지는 존재일 것이다. 

 

나는 이곳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다. 누구든 언제든 나를 향해 너무나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내보일 것만 같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천천히 시간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젊었을 때는 선을 긋도 담을 쌓고 그래서 영원히 못 볼 것 같은 부류의 사람들도 이토록 쉽게 만날 수 있게 된다. 모두 별다를 게 없는 늙은이가 되는 탓이겠지. 그런 늙은이들을 받아 주는 곳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문 탓이겠지.

 

심장을 떨리게 하는 수치심과 모멸감. 내가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종이를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듯이. 그러다 불현듯 이 애들은 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겠지. 그건 내가 사라지는 게 아니다. 내가 서 있을 자리가 사라지는 거다. 그렇게 나는 없는 사람처럼 되겠지. 아니다. 이 애들은 그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녀는 홀로 딸을 키우며 어렵게 뒷바라지한다. 그 덕에 공부 꽤나 한 딸에게 바라는 것은 평범하게 사는 것. 

그러나 딸은 안정된 직장이 아닌 대학 강사로 떠돌이 생활을 하며, 웬만한 남자와 결혼은 고사하고 동성 친구와 엄마의 집으로 들어와 신세를 지게 된다. 

딸은 동성연애를 한다는 이유로 부당 해고 당한 동료를 도와 시위 현장에 드나든다. 엄마는 그런 평범하지 않은 딸을 바라보며 끔찍한 고통을 느낀다.

 

 

내가 아닌 것을 감당하는 고통

 

딸애가 말하지 않지만 내가 아는 것들, 내가 모른 척하는 것들, 그런 것들이 딸애와 나 사이로 고요히, 시퍼렇게 흐르는 것을 난 매일 본다.

 

이대로 딸애를 계속 당기기만 하면 결국 이 팽팽하고 위태로운 끈이 끊어지고 말겠구나. 이대로 딸을 잃고 말겠구나. 그러나 그게 이해를 뜻하는 건 아니다. 동의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다만 내가 쥐고 있던 끈을 느슨하게 푼 것뿐이다. 딸애가 조금 더 멀리까지 움직일 수 있도록 양보한 것뿐이다. 기대를 버리고, 욕심을 버리고, 또 무언가를 버리고 계속 버리면서 물러선 것뿐이다.

 

나는 빛깔과 무늬를 달리하며 스스로 떠오르고 저무는 감정을 바라보느라 말을 잃는다. 딸애에게 걸었던 기대와 욕심, 가능성과 희망, 그런 것들은 버리고 또 버려도 또다시 남아서 나를 괴롭힌다. 내가 얼마나 앙상해지고 공허해져야 그것들은 마침내 나를 놓아줄까.

 

가시 같은 것, 못 같은 것. 나는 내내 그런 걸 키우고 품어 왔는지 모른다. 그런 것들이 외부로부터, 누군가로부터, 나를 지켜 줄 거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불러오는 건 이토록 끔찍한 통증이다.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의 수고로움. 내가 아닌 누군가를 돌보는 것의 지난함. 실은 나는 아름답고 고결해 보이는 이런 일의 끔찍함과 가혹함을 딸애와 그 애에게 알려 주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 애들이 다만 책에서 읽거나, 누군가에게 전해 듣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게 하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요양 보호사다.

그녀가 간호하는 젠이란 여성은 젊은 시절 이민자 자녀들을 돌보고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인물이다.

하지만 화려했던 과거는 늙어 치매가 걸린 젠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가족 하나 없는 그녀의 마지막은 더 끔찍하고 허무하다. 주기만 했던 모든 것이 결국 되돌아오진 않는다.

 

어쩌자고 이 여자는 이렇게 오래 살아있는 걸까.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 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 싸움. 져야만 끝나는 싸움.

 

그게 뭐든. 언제나 받는 사람은 모르는 법이다. 그건 다만 짐작이나 상상으로는 알 수가 없는 거니까. 자신이 받는 게 무엇인지, 그걸 얻기 위해 누군가가 맞바꾼 것이 무엇인지, 그래서 그 돈이 어떤 빛깔을 띠고 무슨 냄새를 풍기며 얼마나 무거워지는지 결코 알 수 없다.

 

그 말을 하는 동안 나는 젠이 아니라 나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니라 딸애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이건 세상의 일이 아니고 바로 내 일이다. 바로 코앞까지 다가온 나의 일이다. 

 

누군가에겐 특별할 것 없는 일상. 누구나 누려야 할 마땅한 소소하고 평범한 순간. 그런 순간은 늘 너무 이르거나 늦게 도착한다.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거나 기다리다가 포기하게 만든다.

 

 

 

 

 

 

이 책을 읽으며 늙어감과 내가 아닌 것들을 감당하는 고통에 대해 생각해 본다. 그리고 삶 한가운데 버려져 꾸역꾸역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과 혹독한 시대에 대해서.

 

끝이 없는 노동. 아무도 날 이런 고된 노동에서 구해 줄 수 없구나 하는 깨달음.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어쩌나 하는 걱정. 그러니까 내가 염려하는 건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어떤 식으로든 살아 있는 동안엔 끝나지 않는 이런 막막함을 견뎌 내야 한다.

 

어쩌면 이건 늙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 시대의  문제일지도 모르지.

 

이 애들은 삶 한가운데에 있다. 환상도 꿈도 아닌 단단한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내가 그런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이 애들은 무시무시하고 혹독한 삶 한가운데에 살아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흐리고 우울하다. 서글프고 아프다.

그럼에도 한 줄기 새어 들어오는 빛, 선선한 바람,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무언가를 느낀다.

 

나와 딸애. 내가 데려온 젠과, 딸애가 데려온 그 애가 머무르는 집 안에 선선한 바람이 새어 든다. 종일 내가 한 것은 젠의 곁에서 다시금 저녁이 오기를 기다린 것뿐이다. 고요한 저녁이 오고 거짓말처럼 아무 일도 없이 하루가 지난다.

 

그러나 이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끊임없이 싸우고 견뎌야 하는 일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건 아득한 내일이 아니다. 마주 서 있는 지금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일들을 생각하고 오직 그 모든 일들을 무사히 마무리하겠다는 생각만 한다. 그런 식으로 길고 긴 내일들을 지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볼 뿐이다.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 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 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이렇듯 어원상으로 볼 때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 말이다.

 

 

 

 

책의 주인공 이레나와 조제프는 1968년 소련 침공 이후 프랑스와 덴마크로 망명해, 자국민의 비난과 타국민의 눈초리를 받으며 21년 세월을 어렵게 살게 된다. 

 

낮은 버림받은 조국의 아름다움으로 빛났으며 밤은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두려움으로 빛났다. 낮은 그녀에게 자신이 잃어버렸던 낙원을 보여주었으며 밤은 자신이 도망쳐 나온 지옥을 보여 주었다.

 

1989년 동유럽 공산정권 붕괴 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압박을 받으며 그들은 체코를 방문하게 되지만 다시 찾은 고향은 불편하고 낯설 뿐이다. 

 

그녀가 외국에서 무얼 했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 여자들은 그녀에게서 이십 년 간의 삶을 잘라내었다. 그리고 이제 질문 공세를 통해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꿰매려고 했다. 마치 그녀의 팔뚝을 잘라 내고는 손을 막바로 팔꿈치에 갖다 붙이려는 듯이, 마치 그녀의 장딴지를 잘라내고 발을 무릎에 붙이려는 듯이.

 

특히 조제프는 외국에서 사랑에 빠졌으며, 사랑은 현재 순간의 고양이다. 현재에 대한 그의 집착은 기억들을 쫓아냈으며 기억의 개입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었다. 그의 기억은 여전히 적의를 품고 있었으나, 무시되고 격리된 기억은 그에 대한 힘을 잃어버렸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에서 루이는 12년간 고향과 가족을 떠나 살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귀향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따뜻한 분위기를 기대했을 루이는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의 어긋남에 결국 죽음을 알리지 못한 채 도망치듯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귀향 3시간 만에 귀환이다.

 

학교, 직장, 결혼 등의 이유로 타지에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늘 걷던 길의 풍경들, 집 안에 깔려있던 냄새, 친구들과의 추억, 가족의 얼굴과 표정, 함께 먹던 음식들........

그러나 먼 시간을 보내고 마주한 나의 가족, 동네, 고국은 예상이나 기대와 다르게 낯설거나 불편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기억의 편린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연출을 선호하는 우리의 추억은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율리시스는 칼립소 여신과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 자신을 기다리는 페넬로페에게로 귀환한다.  20년의 세월은 그 둘의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율리시스는 또다시 칼립소를 향한 향수를 느꼈을까?

 

결국, 향수는 지금 부재하는 어떤 것을 지독히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가상의 빛, 헛된 희망이나 바람일지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는 현재, 그리고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고달픔과 나약함이 서글프다.

 

 

 

 

'사랑은 현재 순간의 고양이'라는 조제프의 표현이 강렬히 남는다.

 

 

 

 

 

 

 

 

 

 

 

 

 

 

 

영화 빅피시를 보았다.

개인적으로 판타지 영화를 즐기지 않기에 계속 미루던 영화였다.

판다지이지만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였고 감동적이었다. 에드워드의 장례식 장면이 연출될 때 울컥하며 코끝이 시렸다.

한 사람의 인생이 판타지와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고,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우리 삶.

 

 

 

은희경의 소설  [태연한 인생]은 잘 읽혔지만 이해는 어려웠다. 오랜 시간 머문 책이다.

태연한 인생 따위는 없을지도 모른다.

통속적이고 패턴을 따라 사는 인생도, 강한 욕망을 추구하며 틀을 벗어나는 인생도, 거짓 해피엔딩과 헛된 희망에 대한 고통과 고독 그리고 상실을 피할 수 없다.

 

어머니가 적국에 부역하는 포로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이데올로기의 딜레마 속에 살았다면, 아버지는 남의 나라에 태어난 소년이었다. 그곳에서는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원하며 그것을 상실이라고 불렀다. 가장 아름다운 매혹을 보아버린 뒤 그들이 보는 모든 것은 상실이라는 이름의 풍경이었다. 아버지가 태어난 곳은 상실의 시대였던 것이다.

 

 

 

영화 빅피시에서 윌은 이야기를 과장하고 허풍 떠는 아버지에 질려 연락을 하지 않고 지낸다. 아버지의 병환 소식에 다시 마주한 아버지. 우연히 그의 과거를 하나 둘 알게 되고 허풍이라 생각했던 이야기가 전부 거짓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어머니와 자신에 대한 사랑만 변치 않을 뿐, 아버지의 인생은 계획한 대로 흘러가는 인생이 아니었다. 우연과 모험과 도전과 사랑과 인내로 판다지와 같은 삶이 연출된 것이다. 

 

용의 주도한 계획을 세우는 동안 일어나는 뜻밖의 일들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며, 운명이란 주어진 운명에서 도망치려 할 때 바로 그 도망침을 통해 실현된다.

 

 

 

타인이란 영원히 오해하게 돼 있는 존재이지만 서로의 오해를 존중하는 순간 연민 안에서 연대할 수 있었다. 고독끼리의 친근과 오해의 연대 속에 류의 삶은 흘러갔다. 류는 어둠 속에서도 노래할 수 있었다.

 

 

판타지와 같은 도무지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의 연속, 그것이 삶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어쩌면 태연한 인생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은희경 작가의 이 책을 읽으며 밀란 쿤데라의 소설들이 많이 생각났다. 

다시 그의 책을 꺼내 읽어야겠다.

 

 

 

 

 

 

 

 

 

 

크리스마스이브.

한 해의 마무리로 선택한 연극은 스테디셀러 뮤지컬 <빨래>다.

어쩌다 보니 대학로를 자주 가고 있지만, 크리스마스에 이보다 좋은 장소 찾기가 쉽진 않다.

 

 

 

붐비는 시간을 피해 일찌감치 도착한 인도커리 전문점, 니로사 레스토랑.

연말답게 날이 정말 추웠고, 오픈 시간 전에 도착한 우리는 미처 따뜻해지지 않은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시금치 커리에 고소하고 달콤한 두 가지의 난과 밥을 함께 먹으니 정말 맛있었다.

 

 

 

추위를 피해 한 카페로 들어갔다.

스며드는 따스함이 고마운 2층 창가에서 극장을 내려다보며 기대감에 부풀었다.

 

 

 

뮤지컬은 최고였다.

이층으로 꾸며진 무대, 강렬하게 시작한 음악과 노래, 배우들의 진심이 담긴 연기, 소외된 계층에 대한 메시지, 삶에 대한 연민 등 정말 감동적이었다. 1막이 끝나고 2차 관람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빨래> 뮤지컬 음원이 있어 다운로드하여 듣고 있다. 모든 곡들이 참 좋다. 

 

난 빨래를 하면서 얼룩 같은 어제를 지우고

먼지 같은 오늘을 털어내고

주름진 내일을 다려요

잘 다려진 내일을 걸치고 오늘을 살아요.

 

뮤지컬 <빨래> 중 빨래

 

 

 

 

 

해를 보내고 설 연휴 첫날,

이번에는 온 가족이 빨래를 관람했다. 

 

주연 남녀 배우만 바뀌고 대부분 같은 배우들이 연기를 했다.

모두 연기와 노래를 정말 잘한다. 다시 봐도 울컥하고 눈물이 났다.

아들도 딸도 각자의 생각과 느낌대로 재미있게 뮤지컬을 보았다.

 

 

 

대학로에서 자녀들과 함께 한 하루는 벅찼다.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좋은 연극을 보고, 우리 부부가 늘 가던 카페에서는 특별히 케이크도 주문했다. 아들이 추천한 즉석 떡볶이도, 딸이 좋아하는 카페에서 과일이 넘치도록 담긴 빙수도 먹었다.

 

어둑한 대학로 거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어가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너무 행복했다.

 

 

 

 

 

 

 

 

 

 

 

 

 

 

'가장 중요한 체코의 현대 작가' ,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보흐밀 흐라발.

체코 한 병원에서 추락사했다는 그의 죽음은 자살인지 실족인지 아직도 미스터리라 한다. 83세의 나이였음에도 그런 논란이 있다는 이유는 아마, 그의 작품 속 자살하는 인물이나 혹은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이 그처럼 느껴져서일까?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처럼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어제 퇴근길에 무언가에 밟혀 죽은 작은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수분이 빠져나간 몸은 너무 작고 가벼워 보였다. 눈길을 주지 않으려 곁을 피해 달아나듯 지나쳤다. 전쟁은 인간을 쓰레기처럼 버려진 새와 다름없게 만든다.

 

그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은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인공 한탸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이야기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의 인물들 역시, 영향력 있는 누구도 영웅도 아닌 평범하고 인간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존재들이다. 폭우처럼 피할 수 없었던 끔찍한 전쟁과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의 부조화로 인해 그의 소설은 더 할 말을 잃게 한다.

 

 

들판에 쌓인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눈 입자 하나하나에 아주 작은 시계 초침이라도 매달려 째깍대는 것처럼, 눈은 환한 햇빛을 받으며 영롱한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밀로시는 아름다운 세상에 닥친 전쟁의 상황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간다. 사방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시계 초침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여인과의 잠자리에서 자신의 그것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에 낙담하며 자신의 손목을 그을 정도로 무모하고, 애인을 만족시키고자 다른 여성을 상대로 연습하며 그것이 성공하자 세상을 다 갖은것 마냥 기뻐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엄중히 감시받는 독일의 열차를 폭파시키는 영웅적 행동을 하게 된다.

 

천만에요, 이렇게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 저도 이제 남잡니다. 후비치카 씨처럼 그런 남자가 됐다니까요. 너무 멋진 일이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동안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짐을 벗어 버린 느낌입니다. 나는 책상 위에서 긴 가위를 집어 들어, 날을 벌렸다 철컥! 소리 나게 닫았다. "이렇게 제 과거를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나는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폭탄 투하 거사를 앞두고 있는 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라면 이런 일은 진지하고 결의에 찬 인물이 조금 더 무겁게 일을 벌여야 한다. 그야말로 영웅의 탄생이다. 그러나 밀로시의 가벼움은 독자의 삶에 더 친근하게 다가와 가슴을 먹먹하고 슬프게 만든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폭파하는 열차 안에 타고 있던 독일인들은 또 어떤가.

 

우는 소리와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자기들에게 벌어진 일을 한탄하는 인간의 울음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화약과 병력등을 실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에 폭탄을 성공적으로 던진 밀로시는 마지막 칸에 타고 있던 독일 병사와 총구를 겨누게 된다.

 

그러나 이 네 잎 클로버는 아무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내전을 다룬 전쟁영화다. 이 영화의 결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전쟁이 평범한 한 인간의 삶에 간섭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불편하고 참담한 마음이었다.

인간의 욕심으로 발생하는 만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준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고, 긴장감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있다.

분쟁을 일으키는 윗대가리들은 배부르고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 처박혀있을 것이지!

 

의식을 잃어버리기 직전, 그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죽은 병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대고, 특급 우편열차장이 드레스덴에서 싣고 온 그 불쌍한 독일인들한테 했던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주인공 진희는 엄마의 자살, 집 떠난 아버지, 하숙집을 하는 할머니의 손에 자라면서 일찍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된다. 간혹 지나치게 성숙해 보이는 어린이들이 있다. 연기를 하는 듯 눈매가 심상치 않고 예의 바르며 눈치가 빨라 놀라는 경우가 있다. 진희는 어린 시절의 상처와 그녀에게 처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 치열하게 자아를 둘로 분리한다.

 

내가 내 삶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나 자신을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분리시키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나는 언제나 나를 본다.  '보여지는 나'에게 내 삶을 이끌어가게 하면서 '바라보는 나'가 그것을 보도록 만든다.

 

남의 시선으로부터 강요를 당하고 수모를 받는 것은 '보여지는 나' 이므로 '바라보는' 진짜 나는 상처를 덜 받는다. 이렇게 나를 두 개로 분리시킴으로써 나는 사람들의 눈에 노출되지 않고 나 자신으로 그대로 지켜지는 것이다.

 

 

진희의 이 분리법은 세상에서 상처를 덜 받고 자신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도와준다.

삶에 대한 통찰이 가능한 진희는 사람들은 허세와 위선으로 가득하며, 세상은 철저하게 부조리하다는 사실을 마주한다.

사람들의 약점을 잘 알고 그것을 이용해 자신을 지키기도 한다.

 

 

운명적이었다고 생각해 온 사랑이 흔한 해프닝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을 때 사람들은 당연히 사랑에 대한 냉소를 갖게 된다. 그렇다면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않을 것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사랑에 빠지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다시 사랑에 빠지며, 자기 삶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유지의 감각과 신랄함을 갖고 있기 때문에 집착 없이 그 사랑에 열중할 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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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냉소에 의해 불붙여지며 그 냉소의 원인이 된 배신에 의해 완성된다. 삶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사람은 삶에 성실하다. 삶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언제나 자기 삶에 불평을 품으며 불성실하다. 

 

 

짙게 노을이 내려 깔리고 염소 한 마리와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던 키가 큰 남자. '하모니카와 염소'의 실루엣으로 시작된 그녀의 첫사랑은 오랜 기간 그녀의 마음을 애달프게 했다.

그러나 그 실루엣은 허석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더러운 낯빛의 구부정한 아저씨일 뿐임을 알았을 때 그녀는 도망치며 운다. 삶에게 조롱당한 것이 분해서만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환상이 남아있는 그녀로부터 그 물기를 다 배설시키기 위해서.......

 

그녀가 깨달은 사랑은, 삶은 완벽하지 않다.

삶은 장난기와 악의로 가득 차 있다. 불완전하고 엉망진창이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삶에 대한 환상을 온전히 비운 사람만이 불평 없이 하루하루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삶이란 언제나 양면적이다. 사랑을 받을 때의 기쁨이 그 사랑을 잃을 때의 슬픔을 의미하는 것이듯이. 그러니 상처받지 않고 평정 속에서 살아가려면 언제나 이면을 보고자 하는 긴장을 잃어서는 안 된다.
삶은 그런 것이다. 어이없고 하찮은 우연이 삶을 이끌어간다. 그러니 뜻을 캐내려고 애쓰지 마라. 삶은 농담인 것이다.

 

 

 

냉소적인 12살 진희의 삶에 대한 통찰은 씁쓸하다.

<오! 윌리엄>의 주인공 루시 바턴이 인생을 통과하며 삶을 깨달아가는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웃고 울며, 행복과 불행을 맛보고, 좌절과 성취를 느끼며 사랑하는 가족과 하루하루 소란스럽게 지내는 그것과는 말이다.

 

진희의 인생을 응원하고 싶다. 삶의 간계를 꿰뚫어 보기에 건조하고 냉소적일 수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더 많이 웃고 따뜻한 감정을 느끼며 행복하기를 말이다.

 

새의 선물은 진희의 성장 없는 성장 과정을 통하여 한편으로는 한국사회에 깃들어 있는 절망의 징후를 표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용기와 결단의 부족으로 부조리한 현실세계를 냉소할 뿐인 진희를 냉소하는 중충적 주제 방식이 돋보이는 소설이며, 가차 없는 시선과 인간적인 다감을 가장 조화롭게 결합시킨 소설이라 할 수 있다. _류보선(문학평론가)

 

 

 

 

 

 

 

 

 

 

 

 

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녀의 작품이기에 '이건 읽어야 해' 생각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작가의 책처럼 말이다.

역시나 좋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따스한 가족애, 삶에 대한 통찰은 페이지마다 가슴을 울린다.

 

 

 

사랑받지 못하며 불우하게 자란 루시 바턴은 늘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작가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자신의 출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버겁고 어색하기만 하다.

 

내가 정말로 거기 존재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로부터 제거된 것처럼, 모든 것이 조금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은 그런 그녀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로 다가와 세상을 보는 다른 창을 열어준다.

 

요점은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는 문화적인 빈 지점이 있다는 말이고, 다만 그것은 하나의 작은 점이 아니라 거대하고 텅 빈 캔버스여서, 그게 삶을 아주 무서운 것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윌리엄은 그런 나를 세상으로 안내한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최대한 안내될 수 있는 만큼, 그가 내게 그걸 해주었다. 그리고 캐서린도.

 

 

 

그러나, 무수한 세월을 보내며 루시가 윌리엄에게 느끼는 감정도 변한다.

권위가 있었던 그,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였던 그 역시도 연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 그는 권위를 잃었어.

 

우리는 타인을 결코 알 수 없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은 오만일 뿐이다.

삶의 고통스러웠던 수많은 밤을 위로해 주었던 무언가가, 내가 생각했던 그 불빛이 아니라 신화와 같은 것이었다면?  배신감과 절망을 느낄 것인가? 그럼에도 그 무언가가 없었다면 절망의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루시에게 윌리엄은 그런 불빛과 같았고, 다만 그녀는 삶이 뭔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다닌 헨젤과 그레텔의 모습. 그것은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헨젤을 안내자로 여기며 바라보는 꼬마가 아니었다. 윌리엄은 그저-아주 단순히-더는 내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 윌리엄!"

그 사실과 마주한 루시는 이렇게 소리친다.

  

끔찍했던 과거를 극복한 듯 보였던 윌리엄의 어머니 캐서린도,

권위를 가졌던 윌리엄도,

책임을 기꺼이 떠맡는 큰 딸 크리시도,

사랑스러운 둘째 딸 베카도,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느꼈던 루시도,

 

모두 서로서로에게 신화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오, 캐서린! 오, 윌리엄!  오, 크리시! 오, 베카! 

오, 루시! 

 

 

 

이 책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하나는 루시와 두 딸들의 관계와 사랑이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가끔씩 집에 오는 나의 자녀들. 만날 때의 반가움과 헤어질 때의 아쉬움.

지나가는 중년의 사람들을 바라보다, 젊음을 잃어버린 나의 자녀들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다 이내 슬퍼졌다.

나의 감정을 그녀가 세심하게 묘사해 준 듯한 글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하지만 헤어질 때 나는 늘 그렇듯 딸들에게 키스했고, 아이들과 헤어질 때는 매번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는 심장이 약간 더 많이 아팠다.

 

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 나는, 슬픔을 느꼈다. 우리는 평소처럼 포옹했고,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지 캐서린이 살아있다면 지금 몇 살일지 문득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나 늙은 그녀를 떠올리니 마음속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아주 슬퍼했는데, 우리 아이들의 아주 늙은 모습을 상상할 때 느껴지는 슬픔과 비슷했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던 얼굴이 종잇장처럼 파리하게 변하고 팔다리는 뻣뻣해져 그들의 시간이 끝난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는 그 곁에서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는 생각-(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일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각자 어린 시절의 경험이 다르기에 다른 길을 걷는다. 도무지 선택이란 걸 제대로 할 수 없고, 그저 뭔가를 쫓아갈 뿐이다. 그 길에 위로가 되는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완전치 않은 것일 뿐. 그저 그렇게 허술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오 모든 이여, 오 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모든 이여,
그런 의미는 아닌가?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

온 가족의 선물준비가 끝나고, 뿌듯한 마음으로 전구를 밝혔다.

 

 

 

 

이브에는 대학로와 명동거리를 거닐었다.

뮤지컬 <빨래>는 준비되지 않았던 마음에 엄청난 감동을 선사했고, 아직도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중이다.

2차 관람은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

 

 

 

 

 

 

어느 해부터 소문이 자자했던 백화점 미디어 파사드도 차가운 겨울 공기와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지켜보았다.

설경을 헤치며 달려 나가는 기차는 기분 좋은 파티장으로 향하고, 알록달록 화려한 색감의 영상은 지켜보는 이들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올 해에는 일과처럼 영화를 보려고 했다. 알지 못했던 영화들이 무수했고, 보고 싶은 영화 목록은 더해져 갔다. 몇 편의 인생영화를 더 발견했고, N차 관람하고 싶은 것들도 생겼다.

 

독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했지만 한 권을 읽을 때 두 번씩, 그리고 천천히 읽었다는 데에 만족한다. 이번 해에는 밀란 쿤데라의 글에 몰입했던 것 같다.

 

 

[2022년에 읽은 책들]

 

1. 상실의 시대_무라카미 하루키
2. 보건교사 안은영_정세랑
3. 밝은 밤_최은영
4.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_이도우
5. 모랫말 아이들_황석영
6. 사랑하기 때문에_기욤뮈소
7.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_정진영
8. 아버지-김정현
9. 축제_이청준
10. 화장_김훈
11. 섬_장 그르니에
12. 완전한 행복_정유정
13. 작별하지 않는다_ 한강
14. 레미제라블_빅토르 위고
15. 동물원에 가기_알랭 드 보통
16. 친정엄마와 2박 3일_고혜정
17.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_레프 톨스토이
18. 키다리아저씨_진 웹스터
19. 바다의 기별_김훈
20. 다시, 책은 도끼다_박웅현
21. 10대들을 위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22. 애쓰지 않아도_ 최은영
23. 위대한 개츠비_피츠제럴드
24.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밀란쿤데라
25. 불멸*_밀란쿤데라
26. 햄릿_셰익스피어
27. 앵무새 죽이기_하퍼리
28. 무의미의 축제*_밀란 쿤데라
29. 잠옷을 입으렴_이도우
30. 여덟 단어_박웅현
31. 농담*_밀란쿤데라
32. 우스꽝스러운 사랑*_밀란 쿤데라
33. 디 에센셜_한강
34. 아버지의 해방일지_정지아
35. 어린왕자_셍떽쥐베리
36. 호랑가시나무의 기억_이성복 시집
37. 삶의 한 가운데_루이제린저
38. 밤이 선생이다_황현산
39. 너무 시끄러운 고독_보후밀 흐리발
40. 호밀밭의 파수꾼_J.D 샐린저
41. 크리스마스 캐롤_찰스디킨스
42. 올리브 키터리지_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2022년에 본 영화들]

 

1. 퍼펙트맨(조진웅, 설경구)

2. 조(레아 세이두)

3. 45년 후

4. 클래식(손예진, 조승우)

5. 시*(윤정희)

6. 오직 그대만(소지섭)

7. 끝까지 간다 (이선균, 조진웅)

8. 시간 이탈자(임수정 )

9. 사라진 시간(조진웅)

10. 판소리 복서

11. 또 하나의 가족(박철민)

12. 사도

13. 삼진그룹 영어토익반(고아성, 이솜)

14. 원데이(앤해서웨이, 짐스터게스)

15. 좋아해 줘(이미연, 김주혁)

16. 비밀은 없다(손예진, 김주혁)

17. 안나카레니나(소피마르소)

18. 어떤 만남(소피마르소)

19. 광식이 동생 광태(김주혁, 봉태규)

20. 탐정, 더 비기닝(권상우, 성동일)

21. 탐정 리턴즈(권상우, 성동일)

22. 성난 변호사(이선균, 한고은)

23. 공범(손예진, 김갑수)

24. 색, 계(탕웨이, 양조위)

25. 만추(탕웨이, 현빈)

26. 박화영(김가희, 강민아)

27. 앵무새 죽이기(그레고리 펙)

28. 캐치미 이프 유 캔*(디카프리오, 톰행크스)

29. 레옹(나탈리 포트만, 장르노, 개리올드만)

30. 미비포유(에밀리아 클라크)

31. 밀애(김윤진, 이종원)

32. 사랑을 놓치다(송윤아, 설경구)

33. 세 자매(문소리, 박선영, 장윤주)

34. 오아시스(문소리, 설경구)

35. 친정엄마(김해숙, 이진희)

36. 델마와 루이스

37. 키다리 아저씨(하지원, 연정훈)

38. 미나리(윤여정, 스티븐 연, 한예리)

39. 생일(설경구, 전도연)

40. 굿윌헌팅(맷

41. 언니(이시영)

42. 아이다호(이 버피닉스, 키아누리브스)

43. 스탠바이미(리버피닉스, 월 휘튼)

44. 흐르는 강물처럼*(브래드피트, 크레이그셰퍼)

45. 조블랙의 사랑(브래드피트, 앤서니홉킨스, 클레어폴라니)

46. 벤자민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브래드피트, 케이트블란쳇)

47. 벌새(박지후, 김새벽)

48. 고흐, 영원의 문에서(윌렘데포)

49. 반고흐: 위대한 유산(바리 아츠마)

50. 러빙 빈센트(더글라스 부스)

51. 화양연화(장만옥, 양조위)

52. 와이키키 부라더스(이얼, 오지혜)

53. 그대가 조국

54. 클로저*

55. 중개인(송강호 배두나)

56. 프라하의 봄(다니엘 데이루이스, 줄리엣 비노슈)

57. 헤어질 결심(탕웨이, 박해일)

58. 마녀(김다미)

59. 괴테

60. 님아, 이 강을 건너지 마라.

61.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까뜨린느 드뇌브, 줄리엣 비노쉬)

62. 논픽션(기욤 까네, 줄리엣비노쉬)

63.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최민식)

64. 불멸의 연인(개리 올드만)

65. 토털 이클립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66. 혼자 사는 사람들(공승연)

67. 불도저에 탄 소녀(김혜윤)

68. 뷰티플 레이디스(소피 미르소)

69. 더 서클(엠마왓슨)

70.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메릴 스트립, 클린트 이스트우드)

71. 시간을 달리는 소녀(호소다 마모루 감독)

72. 동주(강하늘, 박정민)

73. 범죄 도시((마동석, 윤계상)

74. 세 가지 색 :블루(줄리엣 비노쉬)

75. 사랑을 카피하다(줄리엣 비노쉬)

76. 올리버 트위스트(바니 클락)

77. 세 가지 색 :레드(이렌느 야곱)

78. 세 가지 색: 화이트(줄리델피)

79. 관상(송강호 이정재)

80.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이렌느 야곱)

81. 전망 좋은 방(핼레나 본햄카터, 다니엘데이 루이스)

82. 설행, 눈길을 걷다 (김태훈, 박소담)

83. 호밀밭의 반항아*(니콜라스 홀트)

84. 어바웃타임(레이철 맥 아담스, 빌나이, 도널 글리슨)

85. 미드나잇 인 파리(오운 월슨, 레이철 맥 아담스)

86. 작은 아씨들(위노나 라이더)

87. 작은 아씨들(시얼샤 로넌)

88.이다(아가타 트르제부초우스카)

89. 대어 윌비 블러드(다니엘 데이 루이스)

90. 증인(정우성, 김향기)

91. 나쁜 피(드니라방, 줄리엣 비노쉬)

92.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아델에넬, 노에미멜랑)

93. 두 교황

94. 스위트 프랑세즈(미셀윌리엄스, 마티아스 쇼에나에츠)

95.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미셀 윌리엄스)

96. 바스켓볼 다이어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97. 라붐 2

98. 비포선셋(에단호크, 줄리델피)

99. 캐럴(케이트 블란쳇)

100. 케빈에 관하여(틸다 스윈튼, 에즈라 밀러)

101. 마빈스룸(메릴 스트립)

102. 아메리칸 뷰티(케빈 스페이시)

103. 다우트(메릴스트립, 플립세이모어호프만)

104. 마스터*(호야 킨 피닉스, 필립세이모어호프만)

105. Her(호야 킨 파킨슨, 스칼렛 요한슨)

106. 랑데부(줄리엣 비노쉬)

107. 잉글리시 페이션트(랄프 파인즈, 줄리엣 비노쉬)

108. 필라델피아*(톰 행크스, 덴젤 워싱턴)

109. 그랑블루*(장 르노, 장 마르크 바르)

110. 도그빌(니콜 키드먼)

111. 디 아워스* (니콜 카드 먼, 메릴 스트립, 줄리안 무어)

112. 리플리(맷데이먼, 주드로, 기네스펠트로)

113. 스틸워터(맷데이먼)

114. 사랑이 지나간 자리(미셸 파이퍼)

115. 나의 특별한 사랑이야기(Definitely, Maybe)(라이언 레이놀즈)

116. 순수의 시대(다이엘 대이 루이스, 미셸파이퍼, 위노나 라이더)

117. 해운대(설경구, 하지원)

118. 줄리 앤 줄리아(메릴스트립, 에이미아담스)

119.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케시 배이트)

120. 의뢰인(장혁,)

12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배종옥)

122. 블론드

123. 특종(조정석)

124. 송어(강수연, 이은주)

125.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톰행크스, 맥라이언)

126. 길버트 그레이프(조니 뎁, 디카프리오)

127. 마더(김혜자, 원빈)

128. 스틸 앨리스(줄리안 무어)

129. 포레스트 검프(톰 행크스)

130. 부러진

131. 댈러웨이 부인(나타샤 맥켈혼, 바네사 레드그레이브)

132. 강원도의 힘(오윤홍, 백종학)

133. 남자가 사랑할 때(황정민, 전혜진)

134. 빈집(이승연, 재희)

135. 그을린 사랑(감독 드니 빌뇌브)

136. 라스베이거스를 떠나며(니콜라스 케이지)

137. 매그놀리아(폴 토마스 앤더슨 감독)

138. 전태일

139.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유지태)

140. 팬텀트레드(PTA, 다니엘 데이 루이스)

141. 타인의 삶(올리쉬 뮤흐, 마티나 게덱)

142. 로맨틱 홀리데이(주드로, 카메론 디아즈, 케이트 윈슬렛, 잭 블랙)

143.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라이언 고슬링)

144. 러브 액츄얼

145. 이프온리

146. 렛미인(2008)

147. 이터널 산샤인(짐캐리, 케이트 윈슬렛)

148. 리스본행(제레미 아이언스)

149. 아무르 (장 루이 트린티냥)

 

 

여전히 [흐르는 강물처럼]은 나의 인생 영화다. 

그 외에 [마스터], [필라델피아], 그리고 [어바웃 타임]은 그만한 감동을 준 영화들이다. 

 

 

 

영화 아무르에서 투병 중에 있는 안나는 앨범을 넘겨다 보며 말한다.

 

아름다워...... 

뭐가? 

인생이.
참 긴 것 같아.  인생은 참 길어.

 

 

길고 아름다운 인생이 영화처럼 소설처럼 지나간다.

부족한 나를 돌아보며 또 다짐한다.

 

We can love completely, without complete understanding.(영화 _흐르는 강물처럼 중)

 

 

 

 

Adieu, 2022!

Welcome,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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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대한 짧은 글 모음집.

찰스 디킨즈의 글들이다.

 

마이클 슬레이터의 서문을 시작으로, 일곱 개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담겨있다.

 

디킨즈의 크리스마스 이야기들은 용서와 화해, 화합, 친절, 최악의 상황에서도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힘, 사람들로부터 고립되려 애쓰다 보면 결국 스스로 파괴된다는 사실, 기억과 상상력이 개인의 도덕적 건강에 얼마나 필수적인가 하는 것을 늘 이야기의 중심 주제로 삼았다.(서문)

 

1889년 반 고흐는 동생에게 보낸 편지에서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소설을 읽었는데 " 그 안에 깃든 정신이 너무도 심오하여 모든 사람이 읽고 또 읽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크리스마스 캐럴>에는 분명 미슬토 장식과 푸딩 이상의 것이 있다.(서문)

 

 

크리스마스는 정말 마법 같은 날이다.

집과 건물에 세워 둔 알록달록한 트리들, 어둠이 깔린 거리에 반짝이는 불빛들, 선물 준비로 분주한 상점의 풍경 등, 일 년 중 가장 들뜨는 요즈음이다.

 

 

 

 

여섯 번째 이야기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 

자연스레 이 제목에 눈길이 간다.

 

그는 <늙어가는 우리에게 크리스마스란 무엇일까>에서 '크리스마스 정신'을 '적극적으로 유익하게 이용하고 지켜나가며, 기쁜 마음으로 의무를 내려놓고 친절과 관용을 베푸는 것'이라고 말했다._서문

 

어린아이였을 때와, 한창 젊은 시절, 가정을 꾸리고 자녀들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는 모두 다르다.

늙어가며 맞이하는 크리스마스는 무지개와 같이 희미한 추억을 소환시킨다.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행복하다.

그것이 가슴을 아리게 한다.

 

잃어버린 친구, 잃어버린 아이,  잃어버린 부모, 잃어버린 형제, 자매, 잃어버린 남편이나 아내, 우리는 당신들을 잊지 않을 것이다!  당신들은 우리의 크리스마스 추억 속에, 그리고 우리의 크리스마스 난롯가에서 소중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영원한 소망의 계절, 영원한 자비의 탄생일에 우리는 그들 모두를 환영할 것이다!

 

오라, 무엇이든! 어서 오라. 과거에 존재했던 것이나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나 우리가 바랐던 것들 모두, 호랑가시나무 아래 너희 자리로 오라!

 

 

 

 

두 번째 이야기 <크리스마스 축제>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한껏 기대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새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었다. 그야말로 축제를 앞둔 기분으로 말이다.

 

우리의 삶은 변함이 없더라도 크리스마스는 즐겁게, 새해는 행복하게 맞아라.

 

크리스마스 가족 파티! 이보다 더 즐거운 날은 아마 없으리라! 크리스마스라는 이름 자체가 마법인 듯하다.

 

크리스마스가 되자 한 해 동안 마음 한 편을 무겁게 했던 불쾌한 감정들은 크리스마스의 따듯한 위력에 아침 햇살에 눈 녹듯 사라져 벼렸다.

 

이처럼 크리스마스 파티는 다가오는 한 해에도 긍정적인 생각을 유지하는 데 지금까지 그 어떤 성인들이 남긴 설교집보다도 큰 역할을 한다.

 

 

 

 

스쿠루지 할아버지로 유명한 <크리스마스 캐럴>.

크리스마스 예찬가 디킨즈의 글은 크리스마스 정신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 준다.

 

세상에는 굳이 덕을 보지 않아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아주 많아요. 크리스마스도 그중 하나죠. 전 크리스마스가 돌아올 때마다, 그 성스러운 이름과 유래에서 느껴지는 경외심이라든지 그와 관련된 건 무엇이든 다 제쳐두고라도, 참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친절과 용서와 자비가 가득한 좋은 때죠. 일 년이라는 많은 날들 중에 남녀 할 것 없이 닫혔던 마음을 활짝 열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자기와는 다른 길을 가는 별종으로 생각하지 않고 무덤으로 함께 가는 길동무인 양 생각하는 때가 유일하게 크리스마스거든요.

 

단 하루, 이 날 만이라도, 모든 사람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친절, 용서, 자비를 베풀고 그로 인해 웃음과 즐거운 기분으로 가득 찬 하루가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또 누가 알겠는가? 한 번의 친절과 자비가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꾸게 될지..... 스쿠루지의 인생처럼 말이다. 

 

이따금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며, 그러기에 크리스마스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 어차피 크리스마스가 생기게 된 것도 아기 덕분이 아니던가.

 

스쿠루지는 교회에도 가고 거리도 걸어 다니고 바쁘게 오가는 사람들도 구경하고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하고 걸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고 다른 집 부엌을 들여다보거나 창문을 올려다보기도 하며, 이 모든 것들이 자신에게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한낱 산책이  ------- 겨우 산책에 불과한 일이------ 이처럼 큰 행복감을 느끼게 해 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하지도 못했다.

 

 

 

 

 

 

 

 

 

 

가을이 깊어지더니 지나간다.

바람 한 번, 비 한 번에 잎들이 맥없이 떨어진다. 나무들은 앙상해지고 낙엽들이 쌓인다.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 중,  

 

11월 예찬

 

그렇더라도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마른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면 감춰져 있던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가 드러난다. 꽃 피고 녹음 우거졌던 지난 계절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어쩌면 음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앙상해진 나무를 보며 걸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초록의 잎으로, 여린 꽃으로, 단풍으로  부풀어 있던 나무는 벌거벗어 초라했다.

꽃을 잃은 장미 가지처럼 뾰족한 가시가 돋은 듯, 날카롭고 예민한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리에 멈추어 다시 올려다보니 외롭고 쓸쓸해 보이다가, 이내 정직하고 강인한 기운이 느껴진다.

모진 겨울을 부끄럼 없이 온몸으로 이겨내고, 다시 풍성하고 아름다운 머리칼을 갖게 될 나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시절의 영화는 사라졌어도 세상을 지탱하는 곧은 형식들은 차가운 바람 속에 남아 있다. 작은 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 마른 석류보다 더 작은 새들이 주목의 붉은 열매를 쪼다가 돌배나무의 앙상한 가지로 날아올라간다. 높은 가지에서 관목 숲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릴 때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이제 겨울이 오면 저것들은 어디에 몸 붙이고 살아갈까. 그러나 새들은 욕망도 불안도 떨어져 쌓인 나뭇잎들 속에 벗어두고 한 알의 맑은 생명으로만 남은 듯하다.

 

 

 

 

여러 날 조금씩 읽었던 산문집을 마무리하던 중, 가을 또한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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