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올리브 키터리지>의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그녀의 작품이기에 '이건 읽어야 해' 생각했다.
<쇼코의 미소> 최은영 작가의 책처럼 말이다.
역시나 좋다. 사람에 대한 연민과 따스한 가족애, 삶에 대한 통찰은 페이지마다 가슴을 울린다.
사랑받지 못하며 불우하게 자란 루시 바턴은 늘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작가로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자신의 출생을 벗어나는 행동을 하는 것이 버겁고 어색하기만 하다.
내가 정말로 거기 존재한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내가 그 자리로부터 제거된 것처럼, 모든 것이 조금 멀리 있는 듯 느껴졌다.
첫 번째 남편 윌리엄은 그런 그녀의 삶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로 다가와 세상을 보는 다른 창을 열어준다.
요점은 결코 자신을 떠나지 않는 문화적인 빈 지점이 있다는 말이고, 다만 그것은 하나의 작은 점이 아니라 거대하고 텅 빈 캔버스여서, 그게 삶을 아주 무서운 것으로 만든다는 사실이다. 윌리엄은 그런 나를 세상으로 안내한 듯하다. 그러니까 내가 최대한 안내될 수 있는 만큼, 그가 내게 그걸 해주었다. 그리고 캐서린도.
그러나, 무수한 세월을 보내며 루시가 윌리엄에게 느끼는 감정도 변한다.
권위가 있었던 그, 나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존재였던 그 역시도 연약한 한 인간일 뿐이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오. 그는 권위를 잃었어.
우리는 타인을 결코 알 수 없다. 그들의 경험과 생각을 짐작할 수 있다는 말은 오만일 뿐이다.
삶의 고통스러웠던 수많은 밤을 위로해 주었던 무언가가, 내가 생각했던 그 불빛이 아니라 신화와 같은 것이었다면? 배신감과 절망을 느낄 것인가? 그럼에도 그 무언가가 없었다면 절망의 시기를 무사히 통과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루시에게 윌리엄은 그런 불빛과 같았고, 다만 그녀는 삶이 뭔가 가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다닌 헨젤과 그레텔의 모습. 그것은 사라졌다. 나는 더 이상 헨젤을 안내자로 여기며 바라보는 꼬마가 아니었다. 윌리엄은 그저-아주 단순히-더는 내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오, 윌리엄!"
그 사실과 마주한 루시는 이렇게 소리친다.
끔찍했던 과거를 극복한 듯 보였던 윌리엄의 어머니 캐서린도,
권위를 가졌던 윌리엄도,
책임을 기꺼이 떠맡는 큰 딸 크리시도,
사랑스러운 둘째 딸 베카도,
자신을 투명인간처럼 느꼈던 루시도,
모두 서로서로에게 신화와 같은 존재가 아닐까?
오, 캐서린! 오, 윌리엄! 오, 크리시! 오, 베카!
오, 루시!
이 책에서 나의 마음을 사로잡은 또 하나는 루시와 두 딸들의 관계와 사랑이다.
성인이 되어 집을 떠나 가끔씩 집에 오는 나의 자녀들. 만날 때의 반가움과 헤어질 때의 아쉬움.
지나가는 중년의 사람들을 바라보다, 젊음을 잃어버린 나의 자녀들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러다 이내 슬퍼졌다.
나의 감정을 그녀가 세심하게 묘사해 준 듯한 글들이 마음에 와닿는다.
하지만 헤어질 때 나는 늘 그렇듯 딸들에게 키스했고, 아이들과 헤어질 때는 매번 정말 마음이 아프다. 이번에는 심장이 약간 더 많이 아팠다.
딸들에게 작별인사를 하는 순간, 나는, 슬픔을 느꼈다. 우리는 평소처럼 포옹했고,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어떤 이유에선지 캐서린이 살아있다면 지금 몇 살일지 문득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나 늙은 그녀를 떠올리니 마음속에서 입이 벌어졌다. 그리고 아주 슬퍼했는데, 우리 아이들의 아주 늙은 모습을 상상할 때 느껴지는 슬픔과 비슷했다. 생기와 활력이 넘치던 얼굴이 종잇장처럼 파리하게 변하고 팔다리는 뻣뻣해져 그들의 시간이 끝난다는 생각. 그리고 우리는 그 곁에서 아이들을 도울 수 없다는 생각-(상상하기 어렵지만 그 일은 일어날 것이다.)
우리는 각자 어린 시절의 경험이 다르기에 다른 길을 걷는다. 도무지 선택이란 걸 제대로 할 수 없고, 그저 뭔가를 쫓아갈 뿐이다. 그 길에 위로가 되는 누군가를 또 무언가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완전치 않은 것일 뿐. 그저 그렇게 허술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오 모든 이여, 오 드넓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소중한 모든 이여,
그런 의미는 아닌가?
우리는 누구도 알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 자신조차도!
우리가 알고 있는 아주, 아주 작은 부분을 빼면.
하지만 우리는 모두 신화이며, 신비롭다. 우리는 모두 미스터리다.
그게 내가 하려는 말이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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