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더니 지나간다.

바람 한 번, 비 한 번에 잎들이 맥없이 떨어진다. 나무들은 앙상해지고 낙엽들이 쌓인다.

 

 

황현산 선생의 산문집 중,  

 

11월 예찬

 

그렇더라도 11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마른 잎사귀들이 떨어지고 나면 감춰져 있던 나무들의 깨끗한 등허리가 드러난다. 꽃 피고 녹음 우거졌던 지난 계절이 오히려 혼란스러웠다고, 어쩌면 음란하게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앙상해진 나무를 보며 걸었다

늘 같은 자리에서 초록의 잎으로, 여린 꽃으로, 단풍으로  부풀어 있던 나무는 벌거벗어 초라했다.

꽃을 잃은 장미 가지처럼 뾰족한 가시가 돋은 듯, 날카롭고 예민한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리에 멈추어 다시 올려다보니 외롭고 쓸쓸해 보이다가, 이내 정직하고 강인한 기운이 느껴진다.

모진 겨울을 부끄럼 없이 온몸으로 이겨내고, 다시 풍성하고 아름다운 머리칼을 갖게 될 나무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한 시절의 영화는 사라졌어도 세상을 지탱하는 곧은 형식들은 차가운 바람 속에 남아 있다. 작은 새들의 날갯짓을 볼 수 있는 것도 이때이다. 마른 석류보다 더 작은 새들이 주목의 붉은 열매를 쪼다가 돌배나무의 앙상한 가지로 날아올라간다. 높은 가지에서 관목 숲으로 미끄러지듯 떨어져 내릴 때는 바람에 날리는 낙엽과 구별하기조차 어렵다. 이제 겨울이 오면 저것들은 어디에 몸 붙이고 살아갈까. 그러나 새들은 욕망도 불안도 떨어져 쌓인 나뭇잎들 속에 벗어두고 한 알의 맑은 생명으로만 남은 듯하다.

 

 

 

 

여러 날 조금씩 읽었던 산문집을 마무리하던 중, 가을 또한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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