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란 쿤데라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불멸>, 두 소설 제목이 주는 느낌은 강렬하게 달랐었다.
그래서인지 <불멸> 속에 등장하는 저자와 그의 친구 아베나리우스 교수의 대화를 읽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그 소설의 제목은 뭔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아니 그 제목은 이미 써먹지 않았는가."
"그래 써먹었지! 하지만 그때 난 제목을 잘못 달았어. 그 제목은 지금 쓰는 소설에 붙여야 했어."
<불멸>의 또 다른 제목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었다.
불멸 앞에서 사람들은 모두 평등하지 않다.
작은 불멸, 말하자면 생전에 알고 지낸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과
큰 불멸, 즉 생전에 몰랐던 이들의 머릿속에도 남는 어떤 인물에 대한 추억은 구분되어야 한다.
사실 어느 날 갑자기 한 사람을, 도무지 사실 같지 않고 있음 직하지 않은, 그러면서도 이론의 여지없이 가능한 그런 엄청난 불멸에 맞닥뜨리게 하는 생애들이 있다. 바로 예술가와 정치가의 생애가 그렇다.
괴테, 나폴레옹, 베토벤, 랭보, 헤밍웨이........
소설 속에도 등장하는 위 인물들은 불멸의 존재들이다.
위 인물들에 대해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가?
포털 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끊임없이 나오는 그들의 업적, 성품, 연인들, 일화,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누구의 시선으로 작성되었나? 심지어 카메라와 녹음기가 없을 당시의 삶은 어떻게 전해졌을까?
수많은 사람들의 의견과 해석, 책과 영화 등을 참고로 우리는 그들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을 추측하고, 랭보의 '절대적으로 현대적이었던 인생'과 베를렌과의 동성애, 19세에 시 쓰기를 포기했던 사실로 그를 판단한다. 괴테와 베토벤의 산책 중 모자 일화로 괴테는 귀족 신분을 열망했다는 이미지를 피할 수 없게 된다. 헤밍웨이는 또 어떤가. 그의 허영, 노년의 정신질환과 자살은 사람들의 관심을 자극한다.
그 위대한 인물들은 후세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원치 않는 날카로운 일격을 당한다.
헤밍웨이가 말한다. "보세요, 요한, 나 역시 그들의 영원한 구형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신세랍니다. 나의 책을 읽는 대신 그들은 나에 관한 책을 써 댑니다. 내가 여편네들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하고, 아들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도 합니다. 어느 비평가의 입을 찢어 놓았고, 성실하지 않았으며, 너무 오만했고,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혔다고도 합니다, (.............)"
"그것이 바로 불멸인 걸 어쩌겠습니까." 하고 괴테가 대답한다. "불멸은 영원한 소송이죠."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에 불멸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 일단 불멸의 배에 오르고 나면 영원히 내릴 수가 없지요.
소설 속에는 불멸을 욕망했던 두 여인이 등장한다.
베티나와 로라의 그 몸짓을 불멸에 대한 욕망의 몸짓이라 명명하자. 큰 불멸을 갈망하는 베티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나는 현재와 더불어, 현재의 온갖 근심과 더불어 사라지길 거부한다. 나는 나 자신을 초극하여 역사의 일부가 되고자 한다. 역사는 영원한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작은 불멸을 희망할 뿐이지만, 로라 역시 같은 것을 원한다. 자기 자신을 초극하고 자신이 겪는 불행한 순간을 초극하여, 자신을 알았던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 머무르기 위해 뭔가를 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괴테의 연인으로 불멸하고 싶었던 베티나와, 자신을 아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아름답게 남고 싶어 했던 로라는 잔인하게, 끊임없는 노력으로 불멸의 기차에 승차하는 데 성공한다.
반면에, 아녜스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무도 그녀를 쳐다보지 않는 것이었다. 시선들의 부재를 동경했다.
자신의 영혼, 실재와 굳게 연계되어 있는 얼굴을 보며 혼란에 빠지고 무너지기 시작한다.
"이 얼굴이 도대체 뭐가 중요하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얼굴, 몸, 귀의 생김새뿐만 아니라, 우연히 아녜스의 삶에 주어진 그녀의 동생 로라를 일생동안 끌고 다녀야 했던 아녜스는 행복하지 않았다.
추함의 습격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정도가 되는 날, 그녀는 꽃 장수에게 물망초 한 가지를 살 것이다. 가는 줄기 끝에 작은 꽃이 달린 물망초 한 가지만 사서, 얼굴 앞에 세우고 외출을 할 것이다. 그녀에게 쏠리는 시선이 그 예쁜 푸른 점 외에, 이제 사랑하기를 그만둔 이 세상에서 그녀가 보존하고 싶은 그 최후의 이미지 외에 다른 어떤 것도 보지 못하도록 말이다.
불멸은 고사하고 세상의 작은 시선도 불편했던 아녜스는 자신의 영혼, 자신의 본질을 지키고 싶었다.
그러나 실재보다는 겉모습과 평판이 중요한 세상에서 어쩔 수 없이 부끄러움을 느껴야 했으며, 작은 두 손, 혹은 물망초 한 송이로 부끄러움을 가리고 자신의 이미지를 바라보고 싶었을 것이다.
왜 인간은 자신이 어쩔 수 없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껴야 하는가?
인생에서 견딜 수 없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로 존재하는 것이다.
(............)
산다는 것, 거기에는 어떤 행복도 없다. 산다는 것, 그것은 이 세상에서 자신의 고통스러운 자아를 나르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존재, 존재한다는 것은 행복이다. 존재한다는 것, 그것은 자신을 샘으로, 온 우주가 따뜻한 비처럼 내려와 들어가는 돌 수반으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나는, 죽는다면 누구에게 기억되고 싶은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창작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나 명예에 대한 욕망이 있는 사람들은 역사까지는 아니라도 대중의 기억에 남고 싶을 것 같다.
나에게 그런 욕망은 없다. 나의 사후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지들, 인연을 이어가고 있는 지인들 정도가 나를 기억할 것이다. 그것도 잠시의 기억 후에 잊힐 것이다.
불멸을 꿈꾸진 않지만, 현세 혹은 사후에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고 남고 싶은 바람이 없다면 그건 거짓일 거다.
남들의 시선을 의식해 나를 꾸미고, 자신의 이미지에 대해 염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미숙함과 연약함이다.
그러나 내가 보는 것과는 다른 식으로, 나의 생각과는 다른 모습으로 남들은 나를 바라볼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두려워진다.
아마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우리가 타인들의 신경에 거슬리는지, 우리의 어떤 점이 그들에게 호감을 주며, 어떤 점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지 영원히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이미지야말로 우리에게 가장 큰 미스터리인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이미지 뒤에 숨을 수 있고, 우리 이미지 뒤로 영원히 사라져 버릴 수 있으며, 우리 이미지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도 있다. 우리는 결코 우리 자신의 이미지가 아닌 것이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불멸의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아마 그들이 원했던 모습의 이미지로 남지 못했을 것이다.
대부분 영원히 폭발하지 않으나 지뢰 하나가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는 날이 오듯이, 하찮은 에피소드 하나가 당신을 무너뜨릴 수 있다. 진지했던 인생 전체를 우스꽝스러운 이미지로 전락시킬 수도 있다.
사람들은 이미지를 속이고 이미지에 속는다.
말러의 7번 교향곡의 엄청난 완성도는 우리 능력을 넘어선다. 아무리 광적일 정도로 주의 깊은 방청객이라 해도, 그 교향곡에서 포착하는 건 담긴 내용의 100분의 1 정도일지 모른다. 그것도 말러가 보기에 가장 중요하지 않은 100분의 1말이다.
밀란 쿤데라가 고르고 골라 쓴 한 단어, 한 문장, 한 부, 한 편의 소설을 그의 의도대로 독자들은 얼마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100분의 1은 될까?
한 존재의 삶의 깊이와 본질을 우리는 알 수 없다. 그들의 이미지는 그들이 아니다.
그러니 불멸하는 존재조차, 참을 수 없이 가벼울 수밖에.
존재하지 않는 자는 있을 수 없다. 모든 권리를 잃어버린 죽은 자의 사생활은 사적이길 멈춘다. 생전에 썼던 편지, 유품과 사진, 했던 말까지도 이젠 더 이상 그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 불멸은 없다. 인간은 멸하는 존재이다. 떠들어 대는 모든 불멸, 즉 영원한 소송이란 한낱 바보짓일 뿐이다.
정말 이상한 일입니다. 멸한다는 것은 가장 기초적인 인간 경험인데도, 인간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고, 그에 따라 처신하려 한 적이 없습니다. 사람은 멸하는 존재가 될 줄 몰라요. 죽어 놓고도 죽은 줄 모르지요.
하나의 몸짓으로 탄생했던 소설 속 주인공 아녜스. 그녀의 몸짓은 그녀만의 것이 아니었다.
수영장의 우아한 노부인의 몸짓, 아버지의 아름다운 여비서의 몸짓, 그리고 그녀의 몸짓을 따라 했던 로라의 그것이기도 했다. 결국 폴에게 기억되는 불멸의 몸짓은 로라의 것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기억되는 가장 아름다운 몸짓은 아녜스의 그것이다. 그녀에게 연민을 느낀다.
자동차들이 경적을 울렸고, 성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예전에 바로 이런 분위기에서 아녜스는 물망초 한 가지를, 물망초 오직 한 송이를 사고 싶어 했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아름다움의 마지막 자취로서, 그것을 두 눈앞에 간직하고 싶어 했다.
그녀의 아름다움의 마지막 자취 물망초, forget me not, 작고 푸른 꽃 한 송이가 그녀의 여리고 여린 이미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그녀가 기억되기 원하는 그녀의 실재, 그러나 결코 누구도 알 수 없는 그녀의 영혼, 꽃 한 송이.
소설 속에 저자가 등장하여 주인공들과 관계를 맺고, 세월을 거슬러 역사 속 인물들이 등장하기도 하며, 다른 시대에 살았던 괴테와 헤밍웨이의 만남 등 독특한 구조를 가진 소설이다. 소설은 읽기 쉽지 않았지만 흥미로왔고, 두 번째 읽을 때 조금 고개가 끄덕여졌으나, 역시 많은 부분은 이해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
그의 소설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우고, 사색하게 된다.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유럽 소설] 무의미의 축제_밀란 쿤데라 (0) | 2022.08.22 |
---|---|
[외국희곡] 햄릿_셰익스피어 (0) | 2022.08.04 |
[동유럽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_밀란 쿤데라 (0) | 2022.06.24 |
[영미 소설] 위대한 개츠비_ F. 스콧 피츠제럴드 (0) | 2022.06.13 |
[한국 단편소설] 애쓰지 않아도_최은영 (0) | 2022.05.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