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중요한 체코의 현대 작가' , '체코 소설의 슬픈 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보흐밀 흐라발.
체코 한 병원에서 추락사했다는 그의 죽음은 자살인지 실족인지 아직도 미스터리라 한다. 83세의 나이였음에도 그런 논란이 있다는 이유는 아마, 그의 작품 속 자살하는 인물이나 혹은 죽음을 맞이하는 인물들이 그처럼 느껴져서일까?
전쟁은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동물처럼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어제 퇴근길에 무언가에 밟혀 죽은 작은 새 한 마리를 보았다. 수분이 빠져나간 몸은 너무 작고 가벼워 보였다. 눈길을 주지 않으려 곁을 피해 달아나듯 지나쳤다. 전쟁은 인간을 쓰레기처럼 버려진 새와 다름없게 만든다.
그의 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은 엉뚱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인공 한탸의 1인칭 주인공 시점 이야기다.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의 인물들 역시, 영향력 있는 누구도 영웅도 아닌 평범하고 인간적이며 우스꽝스러운 존재들이다. 폭우처럼 피할 수 없었던 끔찍한 전쟁과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의 부조화로 인해 그의 소설은 더 할 말을 잃게 한다.
들판에 쌓인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눈 입자 하나하나에 아주 작은 시계 초침이라도 매달려 째깍대는 것처럼, 눈은 환한 햇빛을 받으며 영롱한 빛깔로 반짝이고 있었다.
밀로시는 아름다운 세상에 닥친 전쟁의 상황 속에서 불안하게 살아간다. 사방에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듯한 시계 초침소리를 듣는다. 그럼에도 사랑하는 여인과의 잠자리에서 자신의 그것이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에 낙담하며 자신의 손목을 그을 정도로 무모하고, 애인을 만족시키고자 다른 여성을 상대로 연습하며 그것이 성공하자 세상을 다 갖은것 마냥 기뻐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엄중히 감시받는 독일의 열차를 폭파시키는 영웅적 행동을 하게 된다.
천만에요, 이렇게 편안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아! 저도 이제 남잡니다. 후비치카 씨처럼 그런 남자가 됐다니까요. 너무 멋진 일이라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그동안 제 어깨를 짓누르고 있던 모든 짐을 벗어 버린 느낌입니다. 나는 책상 위에서 긴 가위를 집어 들어, 날을 벌렸다 철컥! 소리 나게 닫았다. "이렇게 제 과거를 싹둑 잘라 버렸습니다. 나는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폭탄 투하 거사를 앞두고 있는 인물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라면 이런 일은 진지하고 결의에 찬 인물이 조금 더 무겁게 일을 벌여야 한다. 그야말로 영웅의 탄생이다. 그러나 밀로시의 가벼움은 독자의 삶에 더 친근하게 다가와 가슴을 먹먹하고 슬프게 만든다.
연합군의 공격을 받고, 폭파하는 열차 안에 타고 있던 독일인들은 또 어떤가.
우는 소리와 모습은 제각각이었지만, 본질적으로 자기들에게 벌어진 일을 한탄하는 인간의 울음이라는 점에서는 똑같았다.
화약과 병력등을 실은 '엄중히 감시받는 열차'에 폭탄을 성공적으로 던진 밀로시는 마지막 칸에 타고 있던 독일 병사와 총구를 겨누게 된다.
그러나 이 네 잎 클로버는 아무에게도 행운을 가져다주지 못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 역시 한 인간이었다. 나처럼, 혹은 후비치카 씨처럼 말이다. 특별하게 잘난 것도, 특별한 지위도 없는 그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서로를 쏘고,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곳 말고 다른 곳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만났더라면, 우리는 서로를 좋아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내전을 다룬 전쟁영화다. 이 영화의 결말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다. 전쟁이 평범한 한 인간의 삶에 간섭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 불편하고 참담한 마음이었다.
인간의 욕심으로 발생하는 만행은 아무것도 모르고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너무나 많은 고통을 준다. 그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말이다. 지금도 전쟁은 진행 중이고, 긴장감으로 불안에 떨고 있는 많은 나라들이 있다.
분쟁을 일으키는 윗대가리들은 배부르고 할 일 없으면 집구석에 처박혀있을 것이지!
의식을 잃어버리기 직전, 그 마지막 순간까지 나는 죽은 병사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귀에 대고, 특급 우편열차장이 드레스덴에서 싣고 온 그 불쌍한 독일인들한테 했던 말을 되풀이해서 말했다.
"집구석에 궁둥이나 붙이고 얌전히 앉아들 있을 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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