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스어로 귀환은 <노스토스 nostos>이다. 그리스어로 <알고스 algos>는 괴로움을 뜻한다. 노스토스와 알고스의 합성어인 <노스탈지> 즉 향수란, 돌아가고자 하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에서 비롯된 괴로움이다.
이렇듯 어원상으로 볼 때 향수는 무지의 상태에서 비롯된 고통으로 나타난다. 너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네가 어찌 되었는가를 알지 못하는 데서 생겨난 고통, 내 나라는 멀리 떨어져 있고 나는 거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지 못하는 고통 말이다.
책의 주인공 이레나와 조제프는 1968년 소련 침공 이후 프랑스와 덴마크로 망명해, 자국민의 비난과 타국민의 눈초리를 받으며 21년 세월을 어렵게 살게 된다.
낮은 버림받은 조국의 아름다움으로 빛났으며 밤은 그곳으로 돌아간다는 두려움으로 빛났다. 낮은 그녀에게 자신이 잃어버렸던 낙원을 보여주었으며 밤은 자신이 도망쳐 나온 지옥을 보여 주었다.
1989년 동유럽 공산정권 붕괴 후, 고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주변의 압박을 받으며 그들은 체코를 방문하게 되지만 다시 찾은 고향은 불편하고 낯설 뿐이다.
그녀가 외국에서 무얼 했는지에 대해 철저하게 무관심한 태도를 보임으로써 이 여자들은 그녀에게서 이십 년 간의 삶을 잘라내었다. 그리고 이제 질문 공세를 통해 그녀의 과거와 현재를 다시 꿰매려고 했다. 마치 그녀의 팔뚝을 잘라 내고는 손을 막바로 팔꿈치에 갖다 붙이려는 듯이, 마치 그녀의 장딴지를 잘라내고 발을 무릎에 붙이려는 듯이.
특히 조제프는 외국에서 사랑에 빠졌으며, 사랑은 현재 순간의 고양이다. 현재에 대한 그의 집착은 기억들을 쫓아냈으며 기억의 개입으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었다. 그의 기억은 여전히 적의를 품고 있었으나, 무시되고 격리된 기억은 그에 대한 힘을 잃어버렸다.
영화 <단지 세상의 끝>에서 루이는 12년간 고향과 가족을 떠나 살았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후 죽음을 알리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그의 귀향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따뜻한 분위기를 기대했을 루이는 서로 다른 기억과 감정의 어긋남에 결국 죽음을 알리지 못한 채 도망치듯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 귀향 3시간 만에 귀환이다.
학교, 직장, 결혼 등의 이유로 타지에서 생활해 본 사람이라면 대부분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마련이다.
늘 걷던 길의 풍경들, 집 안에 깔려있던 냄새, 친구들과의 추억, 가족의 얼굴과 표정, 함께 먹던 음식들........
그러나 먼 시간을 보내고 마주한 나의 가족, 동네, 고국은 예상이나 기대와 다르게 낯설거나 불편하고 실망스러울 수 있다.
기억의 편린은 지극히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연출을 선호하는 우리의 추억은 현실과는 다를 수 있다.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에서 율리시스는 칼립소 여신과 안락한 삶을 살았지만 결국 자신을 기다리는 페넬로페에게로 귀환한다. 20년의 세월은 그 둘의 상황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을까? 율리시스는 또다시 칼립소를 향한 향수를 느꼈을까?
결국, 향수는 지금 부재하는 어떤 것을 지독히도 그리워하고 갈망하는 가상의 빛, 헛된 희망이나 바람일지 모르겠다.
채워지지 않는 현재, 그리고 인생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인간들의 고달픔과 나약함이 서글프다.
'사랑은 현재 순간의 고양이'라는 조제프의 표현이 강렬히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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