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은 현대의 야망의 하녀다."

인간은 걱정과 불안 없이 살 수 없고, 쓸데없는 걱정조차 만들어 불안해한다. 

 

저자는 불안의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설명하고, 철학, 예술, 정치, 기독교, 보헤미아의 견지에서 해법을 제시한다.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욕심, 더 잘 먹고 잘 살고 싶은 욕망, 자녀들에 대한 기대, 남보다 우월하고자 하는 이기심, 이 모든 욕심과 욕망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게다가 전혀 인간적이지 않은 세상의 부조리함 속에서 확실한 것 하나 없고,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는 판단을 교란시키고 극기야 인간의 존엄마저 잃게 만든다.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철학

 

나를 부유하게 하는 것은 사회에서 내가 차지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판단이다._에픽테토스 <어록>

 

사람들의 인정을 바라며 자학하는 습관을 버리고 그들의 의견이 과연 귀를 기울일 만한지 자문해보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사랑을 구하는 사람들의 정신에 존경할 만한 구석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때도 있다.

 

모든 질책은 그것이 과녁을 적중하는 만큼만 피해를 줄 수 있다. 자신이 어떤 질책을 받을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만만하게 그런 질책을 경멸할 수 있으며 또 실제로 그렇게 한다._쇼펜하우어

 

 

 

예술

 

소설가는 사회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는 표준 렌즈, 즉 부와 권력을 확대해 보여주는 렌즈를 인격의 특질을 확대해 보여주는 도덕적 렌즈로 바꾼다. 도덕적 렌즈로 보면 높고 강한 사람은 작아지며, 잊혀 뒤로 물러나 있던 인물이 오히려 크게 보일 수 있다. 소설의 세계에서 덕의 움직임은 물질적 부와 아무 관계가 없다.

 

 

 

정치

 

사회의 목소리 큰 사람들이 선험적 진리로 여기는 견해들이 사실은 상대적인 것이고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때 비로소 정치적 의식이 깨어난다.

 

억압적 상황은 영원한 고통을 겪으라는 자연의 심판으로 여길 수도 있지만,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변화 가능한 어떤 사회 세력들 탓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죄책감과 수치감은 이해로, 지위의 더 평등한 분배 방식에 대한 탐구로 바뀔 수도 있다.

 

 

 

기독교

 

기독교적인 죽음의 경고 memento mori의 훌륭한 전통 안에 자리 잡은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죽음에 대한 생각 때문에 세속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을, 휘스트와 저녁 파티보다 진실과 사랑을 중요하게 여기게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해골 앞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억압적인 의견도 위압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폐허는 우리의 노력을, 완전과 완성이라는 이미지를 버리라고 한다. 폐허는 우리가 시간에 도전할 수 없다는 사실, 우리는 파괴의 힘이 장난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기독교 도덕가들은 불안을 달래려면 낙관적인 사람들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강조하는 것이 최선이라도 생각했다.

 

따라서 지위에 대한 우리의 하찮은 걱정을 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

 

 

 

보헤미아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 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보헤미안들의 통찰이다. 

 

가장 넓은, 가장 포괄적인 말로 보헤미아의 기여를 요약하자면 그들이 대안적인 삶의 방식 추구에 정통성을 부여했다고 간단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그들이 존중하는 하위문화의 경계를 정하고 의미를 규정했는데, 이곳에서는 부르주아 주류가 과소평가하고 간과하는 가치들이 적절한 권위와 위엄을 부여받았다.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 순간 노력해야 한다.

성공과 행복은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가득하고 너그러운 사람이다.

죽음 앞에서 모두는 평등하다.

 

영화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 The Last World>에서 해리엇은 80세에 자신의 부고기사를 미리 쓰기 위해 사망기사 전문기자인 앤을 고용한다. 잘 나가는 광고 에이전시 보스였지만 까칠하고 배려라곤 없었던 그녀는 죽음 앞에서 그녀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된다.

가족들의 사랑도, 동료들의 칭찬도 받을 수 없었던 그녀.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 적이 없었던 그녀는 남은 기간 인생을 다시 살며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코미디 영화라 무겁지 않게 재미있게 봤지만 인생의 마지막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욕망의 하녀가 되어 매 순간 불안한 삶을 살 것인가?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채워 나갈 것인가? 

 

메멘토 모리.

나의 죽음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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