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자크 레니에)는 테라스로 나와 다시 고독에 잠겼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서, 쿠바에서 전투를 치른 다음 페루 해변으로 몸을 피한 마흔일곱의 남자.

세상에 대해 알만큼 알았고, 삶에 대해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그는, 세상 끝 해변에서 홀로 카페를 운영한다.

 

자연은 사람을 배신하는 일이 거의 없으므로, 다만 아름다운 자연에서 위안을 구할 뿐.

 

이 해변의 모래 위에는 죽어있는 수많은 새들과, 죽음을 기다리며 퍼득거리는 새들로 가득하다.

새들이 왜 먼바다의 섬들을 떠나 라마에서 북쪽으로 십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이 해변에 와서 죽는지 아무도 그에게 설명해주지 못했다. 
새들에게는 이곳이 믿는 이들이 영혼을 반환하러 간다는 인도의 성지 바라나시 같은 곳일 수도 있었다.

 

자크는 세상을 피해 살고자, 새들은 먼바다의 섬을 떠나 죽고자 이 해변을 찾는다.

어쨌든..... 한 가지 설명은 있을 것이다.

 

 

 

 

 

그는 사연을 알 순 없지만 바다에 빠져 죽으려던 한 여인을 발견하고 구해준다. 그리고 작고 여린 그녀로 인해  잠시 행복의 가능성을 느낀다.

 

그녀가 흐느꼈다. 그가 대책 없는 어리석음이라고 스스로 이름 붙인 그 무엇에 다시 점령당하고 만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고, 자신의 손 안에서 모든 것이 부서지는 걸 목격하는 일에 습관이 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이런 식이었으므로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내부에 무언가가 체념을 거부하고 줄곧 희망이라는 미끼를 물고 싶어 했다.

 

인생은 허무의 연속이고, 행복은 잡을 수 없는 것이란 걸 알지만,  인간은 순간 느끼는 삶에 대한 욕망과 희망에 또다시 속는다. 그 결과는 더 깊은 허무만 남을 뿐.

 

그들은 떠나갔다.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기 직전 여자는 모래 언덕 꼭대기에서 걸음을 멈추고 잠시 주저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는 이제 그곳에 없었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카페는 비어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떠나고, 그는 어디로 간 걸까? 

모래 위에서 마지막 발버둥을 치던 새들처럼 힘겨운 삶을 이어가던 그 또한 고요한 평안으로 돌아간 걸까?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로마>에서 가정부 클레오는 죽은 척하는 페페를 따라 하며 잠시 일을 멈추고 평상에 누워 말한다. "죽어있는 것도 괜찮다" 

 

Maybe I'm not leaving. Maybe I'm going home. <영화_ 가타카>

 

고통과 허무로 가득한 세상 속에서 무모하고 대책 없는 헛된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의 나약함 그리고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짧지만 여운이 남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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