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부모에겐 자랑거리였고, 능력 있는 항소법원 판사로 동료들에게 사랑받았고, 크고 작은 다툼이 있었지만 가정의 평화를 깨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이반 일리치.

그의 죽음을 마주하며 동료들은 자리 이동이나 승진을 생각하고, 아내는 재산과 연금문제로 혈안이 되어있다.

자신들은 죽음과는 멀리 있다는 듯, 한 사람의 죽음이 다른 이들에게는 감정의 동요도, 연민도, 삶을 성찰하는 기회도 주지 못한다. 그저 번거로운 일이 생겼을 뿐.

 

반면, 이반 일리치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으로 통증이 시작된 후,  삶과 죽음,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며,  희망의 사다리를 오르락거리다 절망의 늪으로 추락하며 절절한 외로움과 고독을 홀로 감내한다.

 

 

 

[정면으로 다가오는 죽음]

 

이반 일리치는 정신을 가다듬고 어떻게든 통증에 대한 생각 자체를 떨쳐내려고 했지만 통증은 결코 떠나지 않았다. 죽음은 전혀 비켜나지 않고 정면으로 버티고 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더욱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죽음이란 놈이 다른 어떤 일도 하지 못하도록 자꾸만 그를 끌어당기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저 죽음만을 바라보도록, 피하지 않고 똑바로 죽음을 응시하도록, 모든 일을 손에서 내려놓고 그저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만 했다.

 

죽음은 그 어떤 것이라도 뚫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다시 죽음이 꽃나무 뒤편에서 또렷하게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서재로 돌아가 자리에 누워 다시 혼자 죽음과 대면해야 했다. 죽음과 시선을 마주하고 있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죽음을 바라보며 두려움에 젖어들 뿐이었다.

 

 

 

[외로움과 고독]

 

오랜 기간 병마에 시달리던 중 어떤 때에는, 사실대로 고백하기 좀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반 일리치는 누군가 자신을 어린아이 대하듯이 그렇게 가엾게 여기며 보살펴주기를 가장 간절히 소원했다. 어린애를 어루만지고 달래듯이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입을 맞추고 자기를 위해 울어주기를 그는 바랐다.

 

뾰뜨르가 방을 나가고 혼자 남은 이반 일리치는 계속 끙끙 앓았다. 그건 꼭 통증 때문만이 아니라 혼자라는 끔찍한 외로움의 절절한 표현이었다.

 

늘 모든 게 이런 식이었다. 희망이 한 방울 반짝이는가 싶다가도 이내 절망의 파도에 묻혀버리고 이어지는 통증과 통증, 괴로움과 괴로움, 모든 게 그대로였다. 

 

희망을 북돋아주는 의사의 말에 한결 고양되었던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여전히 똑같은 그림들, 커튼과 벽지, 조그만 약병들, 그리고 여전히 고통에 괴로운 육신, 이반 일리치는 다시 끙끙 앓기 시작했다. 주사가 처방되었고 그는 의식을 잃었다.

 

그는 다리를 내려놓고 팔을 베고 옆으로 누웠다. 자신이 너무나 불쌍했다. 그는 게라심이 옆방으로 물러나기를 기다렸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한없는 무력감과 끔찍한 고독이, 사람들과 하느님의 냉혹함이, 그리고 하느님의 부재가 너무나 원망스러웠다. 

 

 

 

[과거의 추억과 후회]

 

어린 시절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리고 현재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기뻤던 일들은 더욱더 덧없고 의심스러운 것으로 변했다......... 그렇게 세월이 더 지날수록 좋았던 기억은 점점 더 사라져 갔다.

 

'갈수록 고통이 심해지듯이 내 삶의 모든 것은 더욱더 나빠져만 갔군.' 멀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그곳, 인생의 초기에는 환한 빛이 한 줄기 반짝이고 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빛은 광채를 잃고 어두워져만 갔다. 그나마 그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결혼...... 너무나 절망적이고 환멸뿐이었다. 아내의 입 냄새, 애욕과 위선! 그리고 죽은 것만 같은 공직 생활과 돈 걱정들, 그렇게 일 년이 가고 이년이 가고 십 년이 가고 이십 년이 갔다. 언제나 똑같은 생활이었다. 하루를 살면 하루 더 죽어가는 그런 삶이었다. 한 걸음씩 산을 오른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 걸음씩 산을 내려가고 있었던 거야. 세상 사람들은 내가 산을 오른다고 보았지만 내 발밑에서는 서서히 생명이 빠져나가고 있었던 거야...... 그래 결국 이렇게 됐지. 죽는 일만 남은 것이다!

 

 

 

[삶과 죽음의 성찰]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된 것이지? 그럴 리가 없다. 삶이 이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일 수는 없는 것이다. 삶이 그렇게 무의미하고 역겨운 것이라면 왜 이렇게 죽어야 하고 죽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해야 한단 말이냐? 아니다, 뭔가 그게 아니다.  '어쩌면 내가 잘못 살아온 건 아닐까?'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찾아들었다. '난 정해진 대로 그대로 다 했는데 어떻게 잘못될 수가 있단 말인가?'

 

그의 정신적 고통은 전날 밤, 광대뼈가 불거진, 게라심의 졸음 가득한 선량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떠오른, 만약에 정말로 내가 살아온 모든 삶이, 내 생각과 행동이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하지? 하는 의심이 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만일 정말 그렇다면',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는 생각만 가지고, 그걸 바로잡을 기회도 없이 인생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그럼 어떻게 하지?'  그는 똑바로 누워 완전히 새로운 시각에서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날 아침 시종과 아내, 그리고 딸과 의사를 차례로 만나게 되었을 때 그들의 행동거지 하나하나가,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전날 밤 깨달은 끔찍한 진실을 그에게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는 그들에게서 바로 자기 자신을, 그리고 자신이 살아온 삶의 방식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죽어가던 이반 일리치는 구멍 속으로 굴러 떨어졌고 빛을 보았다. 동시에 그는 그의 삶이 모두 제대로 된 것이 아니지만 그러나 아직은 그걸 바로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문했다. '그게' 뭐지? 그리고 조용히 귀를 기울이다가 입을 다물었다. 바로 그때 누군가 그의 손을 잡고 입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눈을 뜨고 아들을 보았다. 아들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아내도 그에게 다가왔다. 그는 아내를 바라보았다. 아내는 입을 크게 벌린 채 코와 빰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내도 불쌍했다. '그래 내가 모두를 괴롭히고 있구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모두 참 안 됐어. 하지만 내가 죽으면 훨씬 나을 거야.'

 

 

 

[죽음과 평화]

 

그는 아내에게 눈으로 아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데리고 나가....... 불쌍해 당신도......." 
그는 '쁘로스찌'(용서해 줘)라고 한마디 더 덧붙이고 싶었지만 '쁘로뿌스찌'(보내줘)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러자 돌연 모든 것이 환해지며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며 마음속에 갇혀 있던 것이 일순간 밖으로, 두 방향으로, 열 방행으로, 온갖 방향으로 한꺼번에 쏟아져 나왔다. 가족들이 모두 안쓰럽게 여겨지고 모두의 마음이 아프지 않도록 해주고 싶었다. 이 모든 고통으로부터 자신도 벗어나고 가족들도 다 벗어나게 해주어야 했다. 

 

'아, 이렇게 기쁠 수가!'
이 모든 것은 한순간의 일이었고 이 한순간의 의미는 이제 흔들리지 않았다.

 

'끝난 건 죽음이야. 이제 더 이상 죽음은 존재하지 않아.' 그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다가 그대로 멈추고 온몸을 쭉 뻗고 숨을 거두었다.

 

 

 

 

 

이 책을 읽으며 소설 <아버지(김정현)>를 생각했다.

췌장암으로 죽어가는 한 아버지의 절절한 외로움과 고독이 너무 마음 아팠던 책. 작년 2월 친정아빠가 떠난 후 그가 그리워 읽었던 책이다. 두 책 주인공 성격은 다르지만, 한 가정의 가장, 한 인간이 느끼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삶에 대한 후회와 남아있는 자들에 대한 연민들이 닿아있다.

 

영화 <The Last Word, 내가 죽기 전에 가장 듣고 싶은 말>의 주인공 해리엇처럼 이반 일리치에게도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가족과 화해하며, 오만과 욕심으로 잊고 살았던 작지만 가슴 따뜻한 일들을 하고, 사랑으로 인생을 마무리할 시간이 주어졌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영화의 마지막에서 사랑하는 이들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보며, 붉은빛의 스카프를 어깨에 두른 채, 음악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잠을 자듯 떠난 그녀의 죽음 앞에서 난 눈시울이 붉어졌다. 죽음의 춤을 추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이 너무 우아해 보였기 때문일까?

 

이반 일리치가 죽음의 순간 느꼈던 깨달음, 아들의 사랑, 가족들에 대한 연민은 삶의 노고에 대한 보상치고 지독히도 가혹하게 찰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물의 감정을 놀랍도록 세밀하고 날카롭게 표현하는 톨스토이의 작품들은 그래서인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책 <아버지>와 셜리 맥클레인 주연 영화를 다시 챙겨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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