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독일인입니다._전쟁과 역사와 죄의식에 관하여
평산 책방에서 산 몇 가지의 책들 중 하나이다.
동화책 같은 그림을 가지고 있는 따뜻한 표지에 쓸쓸함과 외로움이 묻어난다.
부제를 보고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게 된다.
독일어를 전공한 나로서는 오래전부터 가보고 싶은 나라 1위.
독일에 사시는 이모가 어쩌다 한국에 오실 때 가져다 주신 독일제 압력밥솥, 칼과 가위, 믹서기, 얼룩제거 비누 등을 감탄하면서 썼다. '독일은 물건도 잘 만드는구나' 하며.....
그러나 독일의 역사는 치욕스럽다. 씻을 수 없는 원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이다.
미국 이민자인 작가 노라 크루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에 전쟁의 주체였던 독일인으로서 죄의식을 가지며 살아간다. 독일어 억양을 감추고, 유대인을 보면 죄책감이 들고, 독일에 대한 비난들을 들으며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그러나 그녀는 폐허를 마주 볼 용기를 내본다. 고향과 가족의 과거를 파헤치며, 두렵지만 현실을 마주하기 위한 여정을 떠난다. 과거를 덮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고 직시하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것만이 함께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길임을 절감하면서......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 <사라의 열쇠>에서, 미국인 기자 줄리아는 1942년 프랑스 유대인 집단 체포사건을 조사하게 되고 프랑스인인 남편 가족과 얽혀있는 그 사건을 파헤치면서 끔찍했던 그날의 흔적들과 피해자 가족이 현재까지 겪고 있는 트라우마를 마주하게 된다. 불편한 과거를 알아가는 여정이 이 책과 닮아있다. 프랑스인들도 그런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던 영화이다.
작가는 독일의 좋은 것들 No.1~No.8까지 소개하며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또한 감추지 않는다.
절대 떨어지지 않는 반창고 한자플라스트(Hansaplast), 평온한 숲(Der Wald), 버섯 따기(Das Pilze-sammeln), 유명한 라이츠 바인더(Der Leitz Aktenordner), 보온 물주머니 탕파(Die Warmflasche) , 수 천 종류의 빵 (Das Brot), 소 쓸개로 만든 비누 갈자이페(Die Gallseife), 강력한 우후 접착제(Der Uhu).
그렇다. 효과 좋은 제품들 뿐 아니라, 독일은 괴테와 실러의 나라, 수많은 문학작품들을 보유한 나라, 시원한 맥주와 맛있는 소시지를 맛볼 수 있는 나라이다.
"죄의식 가지지 말아요" (유대인) 월터가 부드러운 어조로 말한다. 그 말로 그는, 과거 그의 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에게 해주었던 것과 똑같은 일을 한다. 그는 나를 위한 증언서에 서명한다.
용서받지 못할 죄에 대한 용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개인의 속죄가 수백만 명의 고통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 따뜻한 목소리와 관대함 덕분에 나는 어느새 친밀감을 느낀다.
식민시대와 냉전시대.
과거 청산이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나라의 역사를 생각해 본다.
노라 크루크의 이 책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감동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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