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배우 마티나 게덱을 보고 싶어 찾아본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는 제목이 주는 느낌대로 너무 좋았다.
영화를 보고 책을 구입했다. 1/3 정도 읽고,  거의 600 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에 눌려 잠시 두었던 책.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해 일주일 정도의 시간을 들여 완독했다.
 
 
 
스위스 베른에 사는 언어학자이자 교사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출근길에 키르헨펠트 다리에서 자살하려고 하던 포르투갈 여성을 돕게 된다.  그녀의 수수께끼 같은 행동, 낯설지만 부드럽고 동화 같은 억양의 포루투칼어, 여성의 코트 주머니에서 발견한 책 <언어의 연금술사>, 그리고 리스본행 열차 티켓....... 이 모든 우연으로 그는 리스본행 열차에 몸을 싣게 된다.
 
그레고리우스는 하루아침에 자신이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그냥' 떠나는 것을 감행했다. 그게 과연 가능한가? 그 누구도 아닌 문두스(세계, 우주)라고 불리었던 철저하게 완벽했던 한 인간이? 인생의 57년이 지난 시점에서 말이다.
그는 낯선 리스본에서 <언어의 연금술사>의 저자 아마데우 드 프라두의 과거 흔적을 찾는 여정을 떠난다.
천재였으며, 열정적이었고, 살리자르 독재정권에서 의사로, 레지스탕스로 살았으며 시와 사유를 사랑했던 그의 인생에 깊이 빠져들며, 더불어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우리는 많은 경험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의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인생의 진정한 감독은 우연이다. 잔인함과 자비심과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으로 가득한 감독

 
'스스로의 고고학자'가 되어 숨어있는 나를 파헤치고 발견해 나간다면, 다른 내가 될 수 있을까?
더 이상 원하지 않는 무언가를 그냥 떠나 새로운 경험과 맞닥뜨리면, 나의 삶은 만족스럽게 혹은 진실하게 흘러가는 것일까?
 
나의 의식 표면 아래 숨어있던 무언가가 떨어져 나와 돌연한 떠남을 강행했을 때, 그때 만약, 나를 예기치 않은 곳으로 이끌고, 실망시키고, 실패를 경험하게 하고, 파멸의 길로 이끈다면? 
우리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현 상태에 머물기를 흔쾌히 수락한다.
그러나 이는 떠나고 싶다는 반증일 것이다.
 
 
 
실망에 대한 아마데우의 글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실망이라는 향유

실망은 불행이라고 간주되지만, 이는 분별없는 선입견일 뿐이다. 실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무엇을 기대하고 원하는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으랴? 또한 이런 발견 없이 자기 인식의 근본을 어떻게 알 수 있으랴? 그러니 실망이 없이 자기 자신에 대한 명확함을 어떻게 얻을 수 있으랴?
.......

우린 실망을 찾고 추적하며 수집해야 한다.
.......

자신에 대해 정말 잘 알고 싶은 사람은, 쉬지 말고 광신적으로 실망을 수집해야 한다. 실망스러운 경험의 수집이란 그에게 중독과도 같을 것이다. 삶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중독. 그에게는 실망이 뜨겁게 파괴하는 독이 아니라 서늘하게 긴장을 풀어주는 향유임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의 진정한 윤곽이 무엇인지 눈을 뜨게 해주는 향유.

 
 
 
영화의 엔딩은, 강렬했던 리스본에서의 며칠을 보낸 그레고리우스가 베른으로 떠나는 기차역을 배경으로 한다.
리스본에서 만난 여의사 마리아나 에사(마리아나 게덱)와 작별 인사를 하던 중, 그는 아마데우와 그 주변 인물들의 활력 있고 강렬했던 삶을 생각하며 "Where is my life?"라고 하며 살아온 인생을 후회한다.
그럼에도 고향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넨다.
"Why don't you just stay?"
 
책의 마지막은, 베른으로 돌아온 그레고리우스가 심해진 현기증에 대한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으로 들어가며 끝을 맺는다. 
 
엔딩은 다르지만, 이전과는 다른 경험의 조각을 품고 베른으로 돌아간 그레고리우스는 새로운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조금은 더 활력 있게, 지루하지 않게, 강렬하게, 충만하게 말이다.
어떤 실망과 실패가 있을지라도_______.
 
책과 영화는 다른 부분들이 꽤나 있다. 영화에는 아마데우의 둘째 여동생도, 그레고리우스의 친구 독시아데스도 등장하지 않는다. 책의 무수한 말과 사유들을 표현하기에 영화는 짧다. 그렇지만 책의 묵직하고 감동적인 부분들을 영화가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화면에서 주인공들의 이미지를  만나고, 리스본의 거리와 스페인 땅 끝 배경을 보는 재미는 더없이 감동적이다.
 
 
 

인생은 우리가 사는 그것이 아니라, 산다고 상상하는 그것이다.

 
책 속의 책 <언어의 연금술사>가 실제 존재하는 책인지 검색해 보았지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책이 존재한다면 꼭 갖고 싶다. 가능하면 필사해서 나만의 책을 소장하고 싶은 생각도 든다.
TV에서 스치며 봤던, 야경이 아름다웠던 포르투갈의 항구도시 리스본은 꼭 가보고 싶은 곳으로 저장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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