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난 이것이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에 앞선 '작가의 말'부터 울음은 밀려왔다.
세월이 갈수록 울음이, 설움이, 슬픔이 고여간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름, 아버지.
이 책은 가족에게 한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희생하며 살지만, 고독과 외로움으로 스러져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췌장암.
췌장의 위치가 숨겨져 있어 발견도 치료도 어려운 병.
지금껏 소박하고 성실한 삶이 전부였던 정수는 길어야 5개월, 사형 집행일을 선고받는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절실한 외로움에 더 견딜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그 자체보다 오래지 않아 그렇게 영원히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남은 얼마간도 어쩌면 영원한 외로움에 대한 연습 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의 답답함과 혼란함, 그리고 두려움과 무력감의 실체였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보지만 상황이, 가난이, 능력이, 성정이, 불운이, 꿈꾸었던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아가려 애를 쓰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내 생각대로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다.
정수 역시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지만 결국, 처참한 처지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며 외로워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아내, 자식, 형제, 친구, 직장동료, 과거, 이름.......... 심지어는 자신까지, 가졌다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멍에였다. 그 실타래처럼 엮인 작은 멍에 하나하나가 모두 고뇌와 미련의 시작이었고 화두였다. 후회스러웠다.
소중하지만 짧고 허망한 삶 가운데,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멍에를 이고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생은 가엾고 초라하다.
마약과 같은 진통제와 몽롱한 잠으로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정수는 아내와 자식들 걱정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린다.
인생에는 분명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있어. 그게 서푼짜리 자존심이 됐든 알량한 오기가 됐든, 그거나마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네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겠는가?
정수는 결국 의사인 친구 남박사에게 살인 교사를 간절히 호소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 더 이상 가족을 괴롭힐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그의 진심을 오해하고 그를 외면해왔던 시간들을 후회하며 아내 영신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결국 사랑은 용기였다. 사랑을 얻는 용기만큼 사랑을 보내는 용기도 필요했다. 그것이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가슴이 트였다. 이제는 보낼 수 있었다. 혼자인 것도 두렵지 않고 고독도 무섭지 않았다. 진정한 사랑이 영원히 있는데 그런 고독이나 두려움이 무슨 두려움이 될 것인가.
영신의 생각처럼 죽은 자나 살아남은 자 모두 영원한 사랑을 정말 얻을 수 있는 걸까?
얼마전 사랑하는 아빠와 작별한 나는, 진정한 사랑이 영원히 있음을 느끼며 정말 고독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노르웨이의 숲>
결국 인간은 함께하던 그 누구를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평생을 짊어져야 할 고독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마저도 고독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
그를 보내고 난 슬픔은 치유되지 않는다. 세월이 무수히 지나면 잊힐까?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이 올까? 또 다른 슬픔이 다가왔을 때 그것은 겹이 되어 더욱 진해질 것만 같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렇게 소박하게 사는 것, 그렇게 호흡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 그것을 해야 한다.
'※ 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국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_한강 (0) | 2022.04.11 |
---|---|
[한국 소설] 완전한 행복_정유정 (0) | 2022.03.31 |
[한국소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_정진영 (0) | 2022.03.07 |
[프랑스 소설] 사랑하기 때문에_기욤 뮈소 (0) | 2022.02.18 |
[한국 소설] 밝은 밤_최은영 (0) | 2022.01.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