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노들 서가에서 발견한 이 책은 제목만 보고 홀린 듯 꼭 봐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밀리의 서재에 검색해 보니 행운처럼 책의 표지가 떴다.

 

 

 

 

1. 끝

 

대필작가로 생계를 이어가던 범우는 자서전을 대필해 주었던 HT기업 나 회장의 도움으로 홍보실에 스카우트된다.

그는 입사 전 건강검진 과정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대장암 판정은 세월에 묻어두고 살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했다.

 

 

무능력하고 술에 찌든 남편, 극심한 생활고, 말썽을 피우다 가출한 동생은 그렇게도 엄마를 고통스럽게 했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엄마는 그 스트레스를 범우에게 매질하며 풀었고, 그런 엄마를 그는 원망하며 살았다.

 

엄마의 자살 이후, 그는 그 잔인했던 이별을 잊으려 안간힘을 썼다. 살기 위해서.

 

슬픔을 느낄 새도, 위로를 받을 새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은 사람들의 일상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빠르게 어머니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어머니를 향한 연민보다 원망이 커질수록 괴로움이 크기도 줄어들었다.

 

 

 

 

2. 기억

 

HT 나 회장은 범우에게 회사에 입사해 치료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AI 음성 인식 기술을 연구하는 곳에서 경선의 도움을 받아 엄마를 AI로 구현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경선은 AI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과 자연적으로 소통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이라도 말했다. 이는 인간의 인지, 감정, 기억, 학습 등을 담당하는 두뇌 신경망을 기술로 구현했을 때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에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수록 그녀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진한 후회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3. 기록

 

범우는 어머니가 자살한 옛 집, 오래된 벽장 안에서 엄마의 일기를 꺼내 읽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엄마의 젊은 시절과 마주한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마음 태웠고, 무능력한 아버지와의 결혼을 후회하며 살았지만 그를 사랑하며 기다렸고,  몸이 불편했을 때조차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어야 했었고,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고, 돈이 없어 첫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어 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후 한없이 괴로워했었던 엄마.

자신에게 모질게 굴었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던 일기장.

 

 

나는 어머니가 그런 당연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어머니의 진심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일기장 위로 떨어져 번졌다.

 

기댈 언덕이 모두 사라진 어머니는 홀로 시들어갔을 것이다. 가족 누구도 어머니가 시들어가는 줄 몰랐다. 나는 끝까지 방관자였다.

 

가진 건 많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정을 꾸미는 것. 일기에 드러난 어머니의 희망은 소박했다.

 

 

세상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던 어머니는 결국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하게 된다. 죽음으로 고통에서의 해방을 꿈꾸었던 것이다.

 

 

 

 

4. 고백

 

범우는 어머니를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출장지로 발길을 돌린다.

 

남산에서 처음 만난 엄마에게 한눈에 반해 구애했던 아버지.

아무 대책 없이 동거를 시작했지만, 아빠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았다. 자신만을 믿고 따라온 어머니를 배려하지 못한 아버지는 무책임했다.

 

그러나 아버지 또한 철없고 무지했던 시절을 후회하며 엄마가 죽은 공간에서 홀로 세월을 이겨내고 있었다.

범우의 대장암 소식에 그의 마음은 무너진다.

 

 

 

 

5. 증언

 

범우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찾아 이모와 막내 외삼촌이 계신 곳으로 떠난다.

 

사 남매 중 가장 똑똑하고 영리했던 엄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 그림을 잘 그려 전국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적인 사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돕기 바랐던 부모님의 강경함은 엄마에게 초졸이라는 초라한 학력만 허락했다. 그녀는 결국 집을 나와 서울로 달아나듯 떠난다.

 

엄마의 초등학교에서 발견한 그녀의 우승 트로피를 안고 범우는 무너진다.

" 엄마.........., 참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6. 시작

 

어머니의 기일, 산소에서 범우는 비욘드 앱을 실행한다.

AI로 구현된 엄마와 범우는 각자 외롭게 보냈던 그 시간들을 서로 어루만져 주고 아픈 곳을 쓰다듬어 준다.

 

그는 삶의 끝에서 삶의 시작을 꿈꾸게 된다. 소설 밖에서 그는 대장암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며 삶을 향해 몸부림치지 않을까?

 

 

"만남만큼 중요한 게 이별이야. 이별을 소홀히 하지 마" 

내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정은 과거의 어머니와 제대로 이별하는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저는 그 당연한 것을 모르고 살았어요. 죽은 사람의 흔적을 뒤늦게 끌어모으며 그리워하는 일보다, 산 사람과 직접 만나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해를 푸는 게 훨씬 쉬운 일이더라고요.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나의 부모님의 어린 시절, 십 대와 이십 대의 젊은 나날들, 결혼과 출산 육아로 먹고살기 바빴을 삼사십 대.

나는 그때 그분들의 삶에 대해 시간을 들여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나의 큰 아이가 태어나고 오십 대 초반에 딸을 위해 손자를 돌봐야 할 상황이 되셨던 엄마. 

그때부터 부모님에 대한 나의 기억은 두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으로 강하게 기억되었다. 

 

어머니의 삶과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이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어머니는 지극히 당연한 현존재- 즉 과거가 없이 오로지 현재적으로만 나에게 의미를 갖는 존재 - 로 여기는 인간들이 우리 시대의 자식들이 아닐지. _ 장경렬 (작품 해석)

 

 

우리들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너무도 당연한 우리네들의 현재적 삶의 일부로 여기는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간단한 말조차 마음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하는 못난 자식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끌어안는 우리들의 어머니에 대해 새롭게 깊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정진영의 작품인 것이다. _ 장경렬 (작품 해석)

 

 

 

 

이 책을 읽는 중,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이별했다.

이 책 때문일까?

나에게 남아있는 아빠에 대한 기억과, 장례 과정에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나를 몇 배로 힘들게 한다.

그의 인생의 낭만과 따뜻함, 외로움과 슬픔 모두가 그립다. 

 

나도 나의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다.

 

"아빠.......... , 참 잘했어요........... 정말 잘 살았어요..........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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