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최은영 작가의 장편을 한 서점에서 발견하고 꼭 읽어야지 했었다. 집 책꽂이에서 꺼낸 책도, 중고서점을 헤매다 구한 책도, 도서관 바코드가 붙은 책도 아닌 새 책으로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았다.
그녀의 소설을 읽으면 마음이 아리다. 눈시울이 붉어진다. 나의 감정을 묘하게 휘감아 울리는 감동이 있다.
판타지도 로맨스도 추리극도 자극적인 내용도 아닌데, 읽는 내내 빠져들었다.
일제 강점기와 전쟁을 겪으며 현재까지 이어져 온 100년의 세월 속에서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나에게까지 이어지는 그 서사는 눈물겹게 애틋하고 슬프다.
나의 경우 고조할머니와 증조할머니의 낡은 흑백사진을 본 적도, 이야기를 들은 기억도 나질 않는다.
어린 시절 강화도에 가면 걸어서 채 오분이 되지 않던 거리에 위아래로 사시는 두 할머니 댁을 마음대로 드나들었다.
작고 조용하고 모든 일을 천천히 하셨던 윗집 친할머니와, 씩씩하게 한복집을 운영하시며 유쾌하셨던 그러나 어렸던 나에게도 친손주만 예뻐한다는 느낌을 강렬하게 주셨던 아랫집 외할머니.
지금은 뵐 수 없는 두 분과 많은 추억을 간직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열 살, 희령 바닷가 근처 할머니 댁에 며칠 머물렀던 지연.
엄마와 할머니 사이가 좋지 않아 연락이 끊기고, 그녀의 결혼식장에도 올 수 없었던 할머니를 잊고 살았다.
서른두 살, 이혼 후, 생채기 난 마음을 부여잡고 현실을 피해 희령으로 온 지연은 우연히 할머니를 재회하고, 의지할 곳 없었던 그녀는 할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열게 된다.
나는 우리 사이의 난감함, 어색함, 어려움이 나쁘지 않았고 그런 감정들의 바닥에 깔린 엷디 엷은 우애가 신기했다.
할머니로부터 듣게 된 이야기들로 이 책은 채워진다.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어려운 시대를 지나오며 삶을 이어온 사람들의 고단함이 안타깝다. 남성은 남성대로, 여성은 여성대로 말이다. 백정의 자녀이기 때문에 당했던 멸시,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받았던 박해, 전쟁으로 무참히 희생된 사람들, 먹고살기 위해 피난길에 나선 사람들, 일본 히로시마에서 원자폭탄에 희생된 사람들,................
그리고 하찮은 존재로 여겨졌던 여성들에 대한 인식은 억압된 여성들의 울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나 역시 여전히 그런 잔재들이 남아 있는 시기에 결혼을 했고 아픈 시간들이 없진 않았다.
남편은 나의 고통에 관심이 없어. 그녀는 생각했다. 일말의 관심조차 없어. 그런데 왜 그랬을까. 왜 내가 군인들에게 잡혀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을 수 없다고 말했던 걸까. 그것이 그녀의 평생의 의문이었다.
허영심의 힘이 얼마나 센지 그녀는 알지 못했다.
할머니는 기대하고 실망하는 대신 그 안에 주저앉아 포기하는 편을 선택했다. 그 편이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었다. 남편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고 체념하고 나니 그런 삶도 견딜 만했다.
'맞서다 두 대, 세 대 맞을 거, 이기지도 못할 거, 그냥 한 대 맞고 끝내면 되는 거야.' 나는 그 말을 하던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지는 게 이기는 거다.' '너를 괴롭힌다고 똑같이 굴면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그냥 너 하나 죽이고 살면 돼.' 패배감에 젖은 그 말들. 어차피 맞서 싸워봤자 승산도 없을 거라고 미리 접어버리는 마음. 나는 그런 마음을 얼마나 경멸했었나.
증조할머니 삼천이, 할머니 영옥, 엄마 미숙 그리고 나 지연에 이르기까지 나의 감정을 표현하고 권리를 주장하며 존엄한 삶을 누리지 못한 채, 한계를 넘어서면서 까지 인내했던 세월은 대물림되고 있었다.
누구의 잘못인지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원망하면서..........
그런 생각을 강요하는 엄마가 나는 미웠다. 그런 식의 굴욕적인 삶을 원하지 않는다고 저항했다. 하지만 왜 분노의 방향은 늘 엄마를 향해 있었을까. 엄마가 그런 굴종을 선택하도록 만든 사람들에게로는 왜 향하지 않았을까. 내가 엄마와 같은 환경에서 자라났다면, 나는 정말 엄마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내 생각처럼 당당할 수 있었을까. 나는 엄마의 자리에 나를 놓아봤고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할 수 없었다.
시대에 굴복하던 예전과 달리 지연은 그 부당함을 생각했다.
그리고 나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내가 나를 속이는 것만큼 쉬운 일이 있었을까. 이혼 후 내가 겪었던 고통스러운 시간은 남편의 기만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에게 대한 나의 기만의 결과이기도 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돌이켜보니, 그중 나를 더 아프게 한 건 나에 대한 나의 기만이었다.
나는 누구에게 거짓말을 했나. 나에게, 내 인생에게.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알고 싶지 않아서, 느끼고 싶지 않아서. 어둠은 거기에 있었다.
할머니에게 느꼈던 따뜻한 감정과는 다르게, 지연과 그녀의 엄마 미선 사이에는 건조함이 느껴진다.
눈물을 쏟으며 보는 영화나 연극처럼 모녀간의 관계는 끈끈한 무엇이 있다. 그러나 그것도 철이 들어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부모는 아무런 욕심 없이 자식의 존재를 온전히 사랑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닐까?
무수한 세월을 함께 지내며 느끼는 서운함, 미움, 분노 등은 사랑의 마음을 가린다.
나는 엄마를 알지 못했다. 명희 아줌마보다 더, 할머니보다 더, 그리고 어쩌면........... 아빠보다 더.
"나는 미선이가 겪은 일을 몰라. 미선이 말고는 누구도 모를 거야. 그런데 그 애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했으니.........."
비가시권의 우주가 얼마나 큰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수 없는 것처럼 한 사람의 삶 안에도 측량할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할 테니까.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 그 한 사람의 역사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들의 비밀을, 상처를, 아픔을.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할머니에게 벌을 주듯이 희령을 떠난 엄마.
그녀의 태도에 상처받은 할머니의 마음 그리고 분노한 할머니가 지연의 엄마에게 어떤 공격성을 드러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이상한 일이야. 누군가에게는 아픈 상처를 준 사람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정말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달은 우리에게 늘 똑같은 한쪽만을 보여준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의 삶 또한 그러하다.
그들의 삶의 가려진 쪽에 대해서 우리는 짐작으로 밖에 알지 못하는데
정작 단 하나 중요한 것은 그쪽이다.
장 그리니에의 <섬> 중에서
소중한 책 <섬>에 나오는 이 구절은 사람들을 다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각자의 마음 깊이 숨겨진 보석을 나는 볼 수 없기에, 그들을 더 존중하며 연민을 느끼게 해 준다.
할머니와 지연도 알지 못했던 미숙의 상처와 눈물을 보려고 노력하며 그녀를 이해하게 되었을 것이다.
지연은 상처를 잊기 위해 오히려 그녀의 고통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했다. 더 큰 슬픔을 마주하며 그녀는 차즘 회복할 수 있게 된다.
별거 아닌 듯한 그 마음이 때로는 사람을 살게 한다는 생각을 했다. 어깨에 기대는 사람도, 어깨를 빌려주는 사람도. 구름 사이로 햇빛이 한 자락 내려오듯이 내게도 다시 그런 마음이 내려왔다는 생각을 했고, 안도했다.
삶의 회복과 치유는 크고 거창한 것에서 오지 않는다.
나를 귀애하는 누군가의 마음, 나를 바라보는 햇살 같은 미소, 내 이름을 불러주며 잘했다 칭찬해주는 한마디, 함께 있으면 전해오는 그 따스함,..............
나를 향해 내려오는 햇빛 한 자락에 살아갈 힘을 또 내 보는 것이 아닐까.
처음에는 그 크기에 압도되었지만 자주 보고 지내다 보니 바다의 작은 부분들에 정이 들었다. 비가 온 다음날의 바다 냄새, 백사장으로 밀려오는 물의 소리, 하얀 포말, 얇은 조개껍데기 안쪽의 부드러운 감촉, 밀려 나온 해초 더미들, 모래사장을 걸을 때의 느낌, 해가 질 때 변하는 수평선 너머의 색깔............
세대를 넘나들며 겪는 주인공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관계의 어긋남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나는 위로를 받는다.
슬픔을 위로하는 슬픔.
이 책이 가진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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