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권 마다 상당한 두께의 책을 정말 오랜 기간 붙들고 있었다.
올해가 가기 전, 3권의 마지막 장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너무도 잘 알려진 소설의 내용과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도 본 적이 있어서인지 책을 예전에 읽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니 내가 알고 있었던 내용은 정말이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1948년 제작된 오래된 영화는 책의 내용을 좀 더 담고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맡긴 비비안 리의 슬픈 얼굴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흑백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올라갔다.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 레빈을 중심으로 한 주인공들의 소소한 삶이 새롭게 이어진다.
다양한 인간 감정의 묘사와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 정치, 철학, 종교를 아우르는 거대한 서사를 한 편의 영화로 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럼에도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수많은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이리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21세기인 지금도 완벽하게 공감되는 첫 문장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세 쌍의 부부인 안나와 카레닌, 스티바와 돌리, 레빈과 키티 그리고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를 통해서 개인의 삶과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갈망했던 톨스토이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선'을 인지하는 농민의 말에 자극을 받아 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갔던 레빈은 깨달음 후에도 현실과의 충돌로 괴로워한다. 그러나 자신을 너절하게 만드는 현실은 그가 찾은 평온을 잠시 가렸을 뿐 그 정신적 평온은 그의 안에 오롯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첵의 첫 문장에 공감했다면, 마지막은 나에게 적잖은 위로를 주었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지만, 뒤돌아서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자신, 욕심과 시기로 불행하며 불안정한 나를 발견하기 일쑤다.
그러나 삶에 '선'을 위한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피해 갈 수 없는 그늘들에 절망하고 자책만 할 것이 아니라 걷어내며 지혜롭게 반응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삶에 정답은 없고 완벽하게 선하고 온전히 평온한 삶은 없을 테니, 선을 향해 나아가는 그 방향성을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 책을 언제 다시 꺼내 들지 모르겠지만 다시 읽을 때는 꼭 정독해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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