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삶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슬픔을 또 공부하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장_ 김훈>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내가 대신할 수 없고, 고통이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 문장은 김훈의 단편을 읽을 때 꽤나 서글프게 다가왔던 대목이었다.
저자의 슬픔에 대한 생각은 세월호 침몰과, 아내의 수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큰 슬픔에 빠졌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고, 우리는 한동안 노란 리본을 카톡 프로필로 공유하고, 목에, 가슴에, 가방에 달고 다니며 유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했다.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건은 희미해졌고 더 이상 노란 리본은 보기 힘들어졌다.
슬픔은 고통과 함께 오롯이 유가족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감동적으로 보았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사 중, 동훈(이선균)과 기훈(송새벽)의 대화가 떠올랐다.
(동훈) "누가 나를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거 같고."
(기훈) "좋아?"
(동훈) "슬퍼."
(기훈) "왜?"
(동훈) "나를 아는 게 슬퍼"
동훈은 지안이 '나를 아는 게 슬프다'라고 했지만, 서로의 슬픔을 알기에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지독한 슬픔을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동훈은 지안이 있어 삶을 다시 살 수 있었고, 지안은 동훈이 있어 비로소 살 수 있게 되었다.
책 표지는 내가 이르지 못할 슬픔을 가졌을 당신의 뒷모습을 그림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한다.
쓸쓸한 슬픔으로 가득한 사람을 알기 위해 우리는 슬픔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소설과 수필로, 영화와 드라마로, 시와 음악으로, 철학으로, 사건으로, 사회와 문화로........
서로 위로하고 공존하며 행복할 수 있게 말이다.
이 책은 꽤 오랜 시간 읽었다. 책을 두 번씩 읽는 습관이 생겼지만 다시 읽을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렵기도, 길기도,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기도 한 책이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좋은 작품을 소개받았듯, 이 책도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이 책은 음악과 영화까지도 거론된다. 평론가이기도한 저자의 작품 해석을 듣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부록으로 소개된 '중장편 소설 목록'과,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 '인생의 책 베스트 5'까지 귀중한 책 목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소제목을 찾아 읽는 식으로 다시 한번 읽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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