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집 <렉싱턴의 유령>에 실린 소설 중 하나이다.
토니 다키타니의 진짜 이름은, 정말로 토니 다키타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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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더미를 완전리 정리해버리고 나자, 토니 다키타니는 이번에야말로 진짜 외톨이가 되었다.
소설의 처음과 끝을 반복해 읽어 보았다.
토니 다키타니는 그저 토니 다키타니. 삶은 그저 고독과 외로움.
그 사실은 변함없고 피해 갈 수 없다는 단호한 말로 들렸다.
영화를 먼저 보았다.
흑백영화에 안개가 더해진 느낌의 뿌연 화면은 원작의 쓸쓸함과 고독함이 실감 나게 전달되었다.
무엇보다 무채색 화면 사이로 흐르는 잔잔한 피아노의 선율과 삶의 소리들이 유난히 큰 소리로 다가왔다.
기차소리, 발걸음 소리, 문 닫는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소리, 사각거리는 연필 소리, 자전거 페달 돌리는 소리, 휘파람 소리..............
누군지 알 수 없는 내레이터의 음성은 소설을 그대로 읽어주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과 영화는 일치했다.
토니 다키타니
그가 태어나고 사흘 만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미국식 이름 때문에 어려서부터 놀림을 받으며 세상에 마음의 문을 닫았고,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의 잦은 연주여행으로 혼자일 때가 많았다.
그는 그런 사실을 특별히 괴롭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혼자 있는 건 그에게 있어서는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며, 굳이 말하자면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일종의 전제 조건이라고까지 생각하기도 했다.
습관으로 고독에 익숙해진 토니 다키타니.
소설의 주인공이기에 특별한 인물처럼 보였지만 한참을 생각해보니 나의 모습, 우리의 모습이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나마 상황이 나쁘지 않아 보인다. 성공한 일러스트레이터가 되어 부와 명성을 얻게 된다.
외롭고 고독해 보이지만 나름대로 성공적인 인생을 살고 있었고, 본인의 선택대로 그저 그런 인간관계를 맺고 지냈다.
그러나 다른 누군가와 현실적인 레벨을 넘어서는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로서는 아무리 해도 할 수 없었다.
깊이 있는 인간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또한 알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사무실에 온 거래처 직원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다섯 번째 만남에서 그녀에게 청혼을 하지만 오래된 남자 친구가 있는 그녀는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한다.
그녀의 결정을 기다리며 토니는 처음으로 고독이라는 것을 느낀다.
고독이 돌연 알 수 없는 무거운 압력으로 그를 짓누르며 고뇌에 빠지게 했다. 고독이란 감옥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날마다 자신을 둘러싼 벽의 두꺼움과 차가움을 절망적인 눈으로 바라보았다. 만약 그녀가 결혼하지 않겠다고 하면 난 이대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공기처럼 따라다녔던 고독을 잊고 지냈던 그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이후 고독했음을,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그녀와 결혼을 하고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며 고독은 막을 내린 듯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작스러운 그녀의 교통사고로 그는 또다시 고독한 방에 갇히게 된다.
이따금 그는 그 방에 들어가, 무엇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멍하니 있곤 했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방바닥에 주저앉아 물끄러미 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거기에는 죽은 사람의 그림자의, 그 그림자가 있었다. 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지나감에 따라 그는 차츰 예전에 그곳에 있었던 것들을 떠올릴 수 없게 되어갔다.
기억은 흔들리는 안개처럼 서서히 그 모습을 바꾸어가며, 모습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희미해져 갔다. 그것은 그림자의 그림자의, 또 그 그림자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리고 손에 만져지듯 느껴지는 것이라곤 예전에 존재했던 것이 뒤에 남기고 간 상실감뿐이었다.
잃어버린 소중한 것들의 그림자의 그림자, 그 그림자의 그림자, 또 그 그림자의 그림자.............
시간이 흐르며 기억은 안개가 서서히 걷히듯 희미해져 갔다.
토니의 아버지는 고독을 잊기 위해 떠돌이 트럼펫 연주자가 되었을까.
토니의 아내는 고독을 잊기 위해 수많은 고급옷과 구두를 사들였을까.
죽은 아내의 옷을 입고 근무를 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그녀는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 명품 옷들을 입어보며 자신의 인생이 초라하고 고독했다는 것을 깨닫고 울음을 터트렸을까.
그가 아내를 만나며 느끼고, 아내를 잃고 느꼈던 고독처럼...........
우리는 '고독이 밀려왔다'라는 표현을 흔히 사용하지만, 고독은 어쩌다가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늘 그 자리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고독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 아니고, 고독하지 않다는 착각의 시간들이 가끔 밀려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텅 빈(사실은 고독으로 가득 찬) 푸른 방에 제아무리 살림살이를 들여놔도 그 방의 빈틈들을 완전히 채울 수는 없으리라.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_신형철>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것이 인생이라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억지로 그것을 떼어놓으려 하지도, 뭔가로 채우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이.
순간순간 고독이 밀려나는 찰나를 즐기며 그냥 사는 것이다.
토니 다키타니는 진짜 토니 다키타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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