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나무

 

 

 

 

 

이 소설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_<작가의 말 중>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손에 쥐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위해 범법을 일삼는 기업들, 명예를 얻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는 유명인들, 권력을 얻어 보겠다고 타인의 생을 파탄 내는 정치인들.................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잘못된 욕심이 끔찍하고 비상식적인 세상을 만들고 있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살아가며 꼭 필요하다.

그것을 지키기 위한 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 또한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행복과 안전 또한 보장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주인공 신유나의 행복 공식은 뺄셈이었다.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아내의 대학시절 남자와 유학 시절 남자와 아버지와 전남편, 그리고 노아,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아내의 신념. (.........)
남자 넷은 어떤 이유로든 아내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이었다. 변심, 해고, 이혼, 그 어떤 이유로든 간에.

 

그녀의 완전한 행복을 향한 노력에 타인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도, 행복도, 목숨도 중요하지 않았다.

행복이 뺄셈이라면,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면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유나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답을 알아냈기 때문이었을까?

 

 

 

 

남편 최은호의 행복은 아내와는 달랐다. 찰나의 행복을 덧셈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의 행복이었다.

 

행복한 순간은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알아서 기는 게 최선이었다. 눈먼 밀월이 끝났음을 인정하나, 두 번째 결혼만큼은 망치고 싶지 않은 쪽이. 
실패가 인생의 패턴이 될까 봐 두려운 인간이. 언제나 모든 일에서 가장 쉬운 길을 택하는 자가.

 

 

 

 

두 인물 모두 행복을 손에 쥐는 데에는 실패했다.

행복은 덧셈도 뺄셈도 아니었다. 행복은 수학 문제지에 답을 내어 적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운이 좋은 사람은 행복을 차지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운이 따르던 그렇지 않던, 소설의 제목 같은 완전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은 찰나이고 고통은 이내 밀려온다. 완전한 행복을 이루며 살 수 없다는 걸 하루하루 살아가며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인생은 불행의 연속도 아니다. 인생의 줄에는 행복과 불행이 연달아 지나간다.

슬퍼서 아름다운 순간, 아름다워서 고통스러운 순간,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를 감정도 혼란스럽게 우리 마음에 내려온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기를............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내리치는 행동들을..........

 

 

 

정유정의 소설을 읽으며,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나를 발견한다.

유머러스하고 과장되기도 한 표현들,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인지 몰입감 최고다. 흥미롭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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