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

 

 

 

영국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70권의 작품 선집 중 70번 째의 책이다.

카뮈, 카프카, 피츠제럴드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마지막이 알랭 드 보통의 책이라니 대단하다.

 

그의 책 중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과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며 위로를 받고, 기발한 발상에 신선한 느낌도 가졌었다. 특히 그의 박식함과 유머에 놀라며 재미있게 책을 읽은 기억이다.

 

이 책은 작고 얇지만 아홉 편의 에세이나 실려있다. 이전 여러 작품들의 조각을 선별해 새롭게 엮은 책이다.

소제목 <진정성>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 클로이가 나와서 반갑기도 했다.

 

 

 

원제는 <On Seeing and Noticing>.

<동물원에 가기>는 절판되고 제목과 표지를 바꿔 나온 책이 <슬픔이 주는 기쁨>이다.

 

아홉 편의 에세이 중 시작이 <슬픔이 주는 기쁨>이다.

이 편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한 그림들을 소개받았다.

 

 

자동판매기 식당 (에드워드 호퍼,1927)

호퍼의 [자동판매기 식당]이다.

우리가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듣고,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영화를 보며 한바탕 울음을 털어내면 위로를 받는다.

외로울 때 기차역이나 카페에 앉아 홀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호퍼의 그림 안에 느껴지는 빛의 고독은 우리를 위로해 준다.

 

 

 

 

다섯 번째가 <동물원에 가기>이다.

 

사실, 나는 어린이도 아닌데 동물원 가끔 한 번씩 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곳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동물원 폐지 의견도 공감하지만 동물들의 모습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다. 

얼마 전 동물원에 갔을 때 동물행동 풍부화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동물원 동물에게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주어 자연스러운 동물의 행동을 보여주도록 하는 동물 복지 프로그램입니다."

 

동물원 측에서 먹이에 정성을 들이고 인지, 감각, 사회성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동물원은 동물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동물처럼 보이게 하여 마음을 어지럽힌다. "원숭이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비슷한 점이 몇 가지나 보이는가?" 물론 너무 많이 보여 마음이 편치 않을 정도다.  

 

1842년 5월 빅토리아 여왕은 레전드 파크 동물원을 방문한 뒤, 일기에 캘커타에서 온 새 오랑우탄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아주 멋지다. 차도 만들어 마신다. 하지만 고통스럽게도 또 불쾌하게도 그는 인간적이다."

 

 

 

 

수천 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가는 하마, 크고 튼튼한 뒷다리를 가진 캥거루,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앵무새, 활짝 핀 목련 아래 우아하게 휴식을 취하는 얼룩말 모습 위로 사람을 입혀보면 묘하게 어울린다.

 

 

 

 

이번 동물원 방문에서는 독수리가 인상적이었다.

3m에 달하는 날개를 펼쳐 날갯짓 하나 없이 기류를 타는 독수리의 크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 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 구역을 빠져나오며 본 독수리의 뒷모습은 다리까지 망토를 걸친 사람의 모습이었다.

누가 동물이고 사람인지 모를 일이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할 일 없이 자신들을 구경하러 온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희귀종이 되고 우세한 동물들이 살아남아, 인간을 우리에 가두어 놓고 풍선들고 나들이 올 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기괴한 짓들이 기본적으로 단순한 동물적 욕구-- 먹이, 서식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생산 등을 향한 욕구-- 의 복잡한 표현이라고 보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이러다 레전드 파크 동물원의 1년 자유입장권을 끊을지도 모르겠다.

 

 

 

"인간도 사랑을 추구하고, 장래 파트너가 될 사람과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고, 아기를 가지고, 두더지나 개미와 비슷한 선택의 과정을 겪으며 그런 생명체보다 별로 더 행복하지도 않다."-쇼펜하우어

 

인생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행복 사냥에 목숨을 걸기엔 우리의 육체는 너무 나약하고 삶은 짧다.

겸허하게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가야 한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 책으로 입문이 딱이다. 부담 없이 그의 핵심을 알아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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