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

 

 

 

영국 펭귄 출판사가 창립 70주년을 기념하며 만든 70권의 작품 선집 중 70번 째의 책이다.

카뮈, 카프카, 피츠제럴드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 가운데 마지막이 알랭 드 보통의 책이라니 대단하다.

 

그의 책 중 '젊은 베르테르의 기쁨'과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읽으며 위로를 받고, 기발한 발상에 신선한 느낌도 가졌었다. 특히 그의 박식함과 유머에 놀라며 재미있게 책을 읽은 기억이다.

 

이 책은 작고 얇지만 아홉 편의 에세이나 실려있다. 이전 여러 작품들의 조각을 선별해 새롭게 엮은 책이다.

소제목 <진정성>에서는 소설 속 주인공 클로이가 나와서 반갑기도 했다.

 

 

 

원제는 <On Seeing and Noticing>.

<동물원에 가기>는 절판되고 제목과 표지를 바꿔 나온 책이 <슬픔이 주는 기쁨>이다.

 

아홉 편의 에세이 중 시작이 <슬픔이 주는 기쁨>이다.

이 편에서는 에드워드 호퍼의 고독한 그림들을 소개받았다.

 

 

자동판매기 식당 (에드워드 호퍼,1927)

호퍼의 [자동판매기 식당]이다.

우리가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듣고, 슬픈 책을 읽고, 슬픈 영화를 보며 한바탕 울음을 털어내면 위로를 받는다.

외로울 때 기차역이나 카페에 앉아 홀로 있는 사람들을 보며 위로를 받는다. 아이러니하다.

이처럼 호퍼의 그림 안에 느껴지는 빛의 고독은 우리를 위로해 준다.

 

 

 

 

다섯 번째가 <동물원에 가기>이다.

 

사실, 나는 어린이도 아닌데 동물원 가끔 한 번씩 간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자주 갔던 곳이지만 지금도 여전히 재미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안쓰럽기도 하고 동물원 폐지 의견도 공감하지만 동물들의 모습과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흥미롭다. 

얼마 전 동물원에 갔을 때 동물행동 풍부화라는 푯말을 발견했다. 

 

"동물원 동물에게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주어 자연스러운 동물의 행동을 보여주도록 하는 동물 복지 프로그램입니다."

 

동물원 측에서 먹이에 정성을 들이고 인지, 감각, 사회성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적절한 환경을 마련해 주고 있었다.

 

 

동물원은 동물을 인간처럼 보이게 하는 동시에 인간을 동물처럼 보이게 하여 마음을 어지럽힌다. "원숭이는 인간의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 비슷한 점이 몇 가지나 보이는가?" 물론 너무 많이 보여 마음이 편치 않을 정도다.  

 

1842년 5월 빅토리아 여왕은 레전드 파크 동물원을 방문한 뒤, 일기에 캘커타에서 온 새 오랑우탄 이야기를 적어 놓았다. "아주 멋지다. 차도 만들어 마신다. 하지만 고통스럽게도 또 불쾌하게도 그는 인간적이다."

 

 

 

 

수천 킬로그램의 무게가 나가는 하마, 크고 튼튼한 뒷다리를 가진 캥거루,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앵무새, 활짝 핀 목련 아래 우아하게 휴식을 취하는 얼룩말 모습 위로 사람을 입혀보면 묘하게 어울린다.

 

 

 

 

이번 동물원 방문에서는 독수리가 인상적이었다.

3m에 달하는 날개를 펼쳐 날갯짓 하나 없이 기류를 타는 독수리의 크기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한 참을 넋 놓고 바라보다 구역을 빠져나오며 본 독수리의 뒷모습은 다리까지 망토를 걸친 사람의 모습이었다.

누가 동물이고 사람인지 모를 일이다.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할 일 없이 자신들을 구경하러 온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인간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희귀종이 되고 우세한 동물들이 살아남아, 인간을 우리에 가두어 놓고 풍선들고 나들이 올 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기괴한 짓들이 기본적으로 단순한 동물적 욕구-- 먹이, 서식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진 후손의 생산 등을 향한 욕구-- 의 복잡한 표현이라고 보게 되면 마음이 편해지기도 한다. 이러다 레전드 파크 동물원의 1년 자유입장권을 끊을지도 모르겠다.

 

 

 

"인간도 사랑을 추구하고, 장래 파트너가 될 사람과 카페에서 잡담을 나누고, 아기를 가지고, 두더지나 개미와 비슷한 선택의 과정을 겪으며 그런 생명체보다 별로 더 행복하지도 않다."-쇼펜하우어

 

인생에 많은 것을 기대하고 행복 사냥에 목숨을 걸기엔 우리의 육체는 너무 나약하고 삶은 짧다.

겸허하게 욕심을 내려놓고 살아가야 한다. 

 

 

 

그의 작품이 궁금하다면, 이 책으로 입문이 딱이다. 부담 없이 그의 핵심을 알아챌 수 있다.

 

 

 

 

 

 

 

 

 

 

사람들이 활기차 보인다.

내 맘대로 되지 않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들은 내려놓고 꽃구경으로 마음을 달랜다.

 

22년의 봄은 특별하다.

지속된 추위 덕에 봄꽃들의 개화가 늦어졌다.

덕분에 산수유와 매화꽃이 사라지기도 전에, 목련의 송이가 완전히 떨어지고 개나리의 노란빛이 초록의 잎으로 바뀌기도 전에, 하얗고 여린 분홍빛의 벚꽃들이 탐스럽게 만개해 있다. 어디를 가던 꽃 천지다.

모든 봄꽃이 공존하다 함께 지워지려나 보다.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이 영면해 계신 국립묘지이자 호국추모공원인 현충원.

몇 해 전 이곳의 벚꽃은 특별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꽃이 만발하는 올해, 위드 코로나가 실현되고 있는 지금, 이곳을 다시 찾았다.

 

 

 

 

이른 아침 도착했을 때는 성능 좋은 줌 카메라를 들고 전문가 포스를 풍기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화보 촬영을 하는 사람들, 인생 사진을 건지려 작정하고 한껏 멋을 낸 사람들이 화려한 꽃 아래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수양벚꽃 덕이다.

수양버들처럼 벚꽃도 유연한 가지를 늘어뜨리고 아래로 꽃을 피우고 있다. 오래되어 큰 나무의 검은 가지들이 하얗고 여린 빛의 꽃과 대비를 이루며 신비함을 더한다.

 

 

 

 

아름다운 꽃 장식을 단 커튼이 내린 듯 고개를 숙인 가지 덕에 눈높이에 맞추어 꽃을 마주할 수 있다.

 

 

 

 

천국이 있다면 이렇지 않을까. 신선놀음을 한다면 이곳이 아닐까. 신비롭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또 하나의 명소인 현충천의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사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감동이다.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벚꽃과 강렬한 개나리꽃 사이로 작은 산책길과 실개천이 있다. 계단을 내려가 우리도 이 길을 따라 걸었다.

하늘하늘한 치마나 작은 꽃무늬의 원피스를 입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모습이 이 봄과 잘 어울렸다. 점점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수많은 벚꽃들 사이 개성 있게 서 있는 나무 한그루가 있다. 홍겹매화다.

백찰 옥수수 사이에서 발견한 한 개의 붉은 옥수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화가 붉다. 잎이 겹으로 풍성하다. 귀한 이 나무 주위에 사람들이 붙어서 꽃을 관찰하기도 사진을 찍기도 했다. 인기 많은 나무였다.

 

 

 

 

수양벚꽃뿐만이 아니라 왕벚꽃나무의 자태 또한 지금이 절정인 듯했다.

 

 

 

 

활짝 핀 벚꽃 여러 개가 모둠을 이루어, 커다란 꽃 한 송이처럼 보였다. 탐스럽고 풍성한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희미하게 남아있는 산수유, 버티고 있는 목련, 보라색 유채꽃인 소래풀까지 벚꽃 절정과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인파로 뒤덮인 꽃 주위를 벗어나 김대중 대통령과 영부인 이희호 여사의 묘소에 들렸다.

앞서 온 두세 팀의 참배가 끝날 때를 기다린 후 버튼을 눌러 녹음된 음성을 따라 분향을 하고 목례를 하고 묵념을 했다.

날은 25도를 넘겨 초여름 더위였고, 내리쬐는 햇살이 강렬했다. 그리운 마음, 아쉬운 마음, 답답한 마음으로 잠시 시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수양벚꽃들이 자리한 곳으로 돌아와 돌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그때였다.

선선한 바람이 불며 꽃잎이 날린다. 눈이 소리 없이 내리는 것처럼, 수백 마리의 나비가 팔랑대며 날아다니는 것처럼.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오전 공기 속 만개한 벚꽃들은 분명 가지에 단단히 매달려 떨어질 것 같지 않더니, 따뜻한 오후 햇살과 잔잔한 바람에 잎을 하나씩 떨구다 수많은 꽃잎을 날려 버린다. 시선을 옮겨 멀리 보니 목련의 커다란 꽃잎은 빠른 속도로 우수수 낙하한다. 

 

벚꽃의 절정과 벚꽃의 엔딩을 동시에 볼 수 있었던 꿈같은 오늘이다.

'지금 이 순간보다 더 좋은 때는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그러하다.

너무 소중한 봄날이다.

 

 

 

 

문학동네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

읽어야 한다는 약간의 의무감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보낸 후 드디어 책과 마주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에 그녀의 친필 사인이 있었다. 마치 뽑기에서 행운권이 당첨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작별하지 않는다.

무엇과 작별하지 않는 걸까?

 

 

 

 

학살과 고문에 대해 쓰기로 마음먹었으면서, 언젠가 고통을 뿌리칠 수 있을 거라고, 모든 흔적들을 손쉽게 여읠 수 있을 거라고, 어떻게 나는 그토록 순진하게 뻔뻔스럽게 바라고 있었던 것일까?

 

1980년 5월, 광주에 대한 그녀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학살로 인해 죽어간 자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과 아픔을 절절하게 그려내고 있는 또 하나의 기록 소설이다. 여러 개의 사적인 작별 후, 유서를 준비하고 있던 경하는 작가의 분신처럼 이야기의 시작을 알린다.

 

인선은 제주 사건으로 가족을 잃고 아슬아슬하게 살아왔던 엄마의 죽음 후, 엄마의 끔찍했던 시절과 가족의 유골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사실을 알게 된다. 경하와 인선은 믿을 수 없는 이 사건에 대한 피할 수 없는 고통과 연대를 느끼게 된다. 광주와 다르지 않은 잔인한 역사에 대한.

 

 

 

 

제주 4.3 사건.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이어진 7년 이상의 길고도 긴 지옥 같은 세월이었다.

동서로 긴 타원형의 섬, 한라산을 포함해 해안선 5km 안쪽 해당지 통행자들을 폭도로 몰아 이유 불문하고 사살했다.

 

젖먹이 아기도? 

절멸이 목적이었으니까. 

무엇을 절멸해?

빨갱이들을.

 

 

그 겨울 삼만 명의 사람들이 이 섬에서 살해되고, 이듬해 여름 육지에서 이십만 명이 살해된 건 우연의 연속이 아니야. 이 섬에 사는 삼십만 명을 다 죽여서라도 공산화를 막으라는 미군정의 명령이 있었고, 그걸 실현할 의지와 원한이 장전된 이북 출신 극우 청년단원들이 이 주간의 훈련을 마친 뒤 경찰복과 군복을 입고 섬으로 들어왔고, 해안이 봉쇄되었고, 갓난아기의 머리에 총을 겨누는 광기가 허락되었고 오히려 포상되었고, 그렇게 죽은 열 살 미만 아이들이 천오백 명이었고, 그 전례에 피가 마르기 전에 전쟁이 터졌고, 이 섬에서 했던 그대로 모든 도시와 마을에서 추려낸 이십만 명이 트럭으로 운반되었고, 수용되고 총살돼 암매장되었고, 누구도 유해를 수습하는 게 허락되지 않았어. 전쟁은 끝난 게 아니라 휴전된 것뿐이었으니까. 휴전선 너머에 여전히 적이 있었으니까. 낙인찍힌 유족들도, 입을 떼는 순간 적의 편으로 낙인찍힐 다른 모든 사람들도 침묵했으니까. 골짜기와 광산과 활주로 아래에서 구슬 무더기와 구멍 뚫린 조그만 두개골들이 발굴될 때까지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고, 아직도 뼈와 뼈들이 뒤섞인 채 묻혀 있어.

 

 

 

 

책의 공간적 배경은 눈과 추위 그리고 어둠이다.

 

눈(雪)

가벼운 눈에도 무게가 있다. 육각형의 결정이 있다. 따스함과 보드라움이 있다.

 

물이 순환한다면,

과거 학살당했던 사람들의 차가운 얼굴 위에 내려 녹지 않던 눈이, 경하와 인선의 머리와 얼굴 위에 떨어져 녹아내리고,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의 손등에 살포시 내려앉는 눈과 다르다는 법이 없다. 

 

바람과 해류도 순환한다면,

베트남에 있는 한국군 성폭력 생존자의 집 마당에 쏟아지는 비와, 열여섯 나이 눈 덮인 만주 벌판을 통과해 독립군 캠프로 돌아가던 중 동상으로 발가락 네 개를 잃어버린 치매 노인의 시선에 흩날리는 눈과, 제주의 우듬지에서 빛을 받아 반짝이는 눈 그리고 서울 천변에 내리는 눈이 그때의 그 눈이 아니라는 법이 없다.

 

 

 

 

섬을 떠나 있던 십오 년 동안 아버지가 저 건너편을 지켜봤다고 그날 엄마는 말했어. 어떤 밤에는 환하게 달이 뜨고, 그 빛을 받는 동백 잎들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게 아니다. 제주, 광주, 서울, 대한민국 그리고 온 세계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다. 순환하는 바람처럼 눈처럼 비처럼, 지구 상에서 벌어졌던 일들, 일어나고 있는 일들은 한 개인의 얼굴에도 불고 내리고 때리고 쌓인다. 

 

몰라서도, 간과해서도, 잊어서도, 체념해서도 안 되는 사실들이 있다. 알아야 하고, 알려야 하고, 함께 아파해야 하고, 반성해야 하고, 사과해야 하고,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들이 있다.

 

제목 <작별하지 않는다>는 이 사건을, 이 만행을, 무고하게 희생된 자들의 아픔을 잊지 않겠다, 잊지 말자는 결의에 찬 호소로 들렸다.

 

 

 

 

책상 한 구석, 4월 16일에 노란 리본이 인쇄되어 있는 달력을 본다.

벚꽃 소식에 들렸던 현충원, 김대중 대통령 묘 입구 비석에 새겨진 문구를 생각한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자유가 들꽃처럼 만발하고, 통일에의 희망이 무지개같이 피어오르는 나라를 만들 것입니다."

 

 

 

부디, 우리 모두 그 무언가와 작별하지 않기를............

 

 

 

 

 

 

 

 

 

 

만물이 깨어나는 성실한 계절, 

하늘과 닿아있는 키 큰 벚나무의 잔 가지들이 붉은빛을 띠며 개화 준비를 하고 있다.

한쪽에선 이미 색을 드러 낸 하얗고 노란 그리고 분홍빛의 꽃들 사이로 연초록의 잎이 더해져 여리디 여린 초봄의 기운이 온 세상을 물들인다.

 

봄다운 따스함을 느낀 오늘, 왕과 왕비들의 신주를 모셔 둔 종묘를 찾았다.

 

 

 

 

하마비와 외대문

모두를 말에서 내리게 했던 하마비는 예를 갖추어야 할 장소임을 일깨워 주었고, 화려하지 않은 종묘의 정문은 경건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다.

 

 

 

 

199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종묘와 더불어, 2001년에는 제례와 종묘제례악 역시 인류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고 하니 그 옛날 선조들의 지혜와 업적이 놀라울 뿐이다.

 

 

 

 

봄의 시작은 여리고 은은하다. 만개한 꽃, 푸르른 나무의 향연에 앞선, 소중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다.

잎 보다 먼저 꽃을 피우는 진달래의 연분홍 빛을 군데군데서 만날 수 있었다.

 

 

 

 

신로를 중심으로, 왼편 세자의 길과 오른쪽 왕의 길이 신비롭게 이어져 있었다.

먼저 정전 쪽으로 향했다.

 

 

 

 

종묘 정전

정전은 태조의 신주를 비롯해 공덕이 있는 역대 왕과 왕비 49분의 신주를 모셔 둔 장소이다.

올 하반기까지 공사 예정이라 일부 출입이 제한되어 있었다. 

 

 

 

 

종묘 정전

다행히도 남신문을 통과해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박석이 촘촘하게 깔린 장대한 월대, 가로로 끝없이 이어진 듯한 지붕, 그 아래 소박하게 단청을 입힌 이어진 기둥들. 정전의 모습에 압도당하는 순간이었다.

 

 

 

 

배향공신당과 칠사당

월대 아래쪽 마당에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배향 공신당과, 신에게 제사를 지냈던 칠사당 건물이 동서로 자리한다.

배향공신 신주 봉안도를 들여다보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학자 이황, 이이 등의 이름도 쓰여 있었다.

 

 

 

 

악공청

영녕전으로 가는 길에 기다란 정자처럼 보이는 곳이 있어 발걸음을 멈춰 보니, 종묘제례시 음악을 담당하는 악공과 무원들의 대기실 같은 곳이었다.

 

 

 

 

영녕전 일대

길을 돌아 마주한 영녕전은 태조의 4대조와, 왕과 왕비의 신주 총 34위가 모셔져 있는 별묘이다.

산수유와 닮아있지만 더 풍성해 보이는 꽃 뭉치의 생강나무가 아름다운 영녕전 앞으로 자라 있었다.

파란 하늘, 따뜻한 기운이 도는 온도, 은은한 봄의 빛깔, 새소리가 크게 느껴질 정도로 고요한 사위는 왕과 왕비들이 편히 쉬기에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녕전

따스한 햇살을 등으로 받으며 건물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고요한 분위기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곳, 거칠고 단단한 박석 사이로 끈질긴 초록의 생명들이 자라고 있었다. 

 

 

 

 

영녕전 건물 옆, 악공청을 지나가던 중, 무리를 지어 자라는 노란 개나리가 눈길을 끌었다. 작은 잎이 네 개 달린 꽃은 스케치북에 그리기에도 색을 입히기에도 무척 쉬워 보였다. 

 

 

 

 

정전의 동문과 수복방

정전과 맞닿아 있는 전사청 일원은 제례에 필요한 음식을 마련했던 곳이다.

동문 옆 수복방은 종묘를 지키는 관원들이 사용했던 공간이고, 그 앞에 너른 찬막단은 제사에 쓰일 음식을 상에 올리고 검사했었던 곳이다.

 

 

 

 

전사청과 제정

제사용 우물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는데, 들여다보니 우물 바닥이 보였음에도 꽤 깊다고 느껴졌다.

 

 

 

 

전사청 일원

전사청을 등지고 나오는데 근사한 산사나무가 그늘을 내리고 있었다. 이제 곧 하얀 꽃을 피우고 가을에 붉은 열매를 맺을 이 나무의 생이 아름답기도 슬프기도, 화려하게도 고통스럽게도 느껴져 한참을 바라보았다.

 

 

 

 

재궁일원

재궁은 임금과 세자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며 제사를 준비했던 공간이다.

준비를 마친 왕과 세자는 정전으로 향했을 터였다. 관람 동선도 이곳부터 시작했어야 했나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다.

 

 

 

 

향대청 일원 (망묘루와 공민왕 신당)

제례 용품을 보관하고 제관들이 대기하던 장소인 향대청 남쪽에 자리한 망묘루는 임금이 잠시 머물며 앞선 임금들의 공덕을 기리던 곳이다. 뒤쪽으로 공민왕 신당이 있었는데 조선의 왕들을 모신 종묘에 고구려의 왕이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향대청 일원 근처에 연못 하나가 더 있었다. 임금의 혼을 모신 종묘의 연못에서는 생물을 기르지 않는다고 한다. 

외대문 앞에서 만난 연못도 왠지 썰렁한 느낌이 들었었는데 그런 이유에서였나 보다. 

 

 

 

 

 

연못 근처, 하얗고 탐스런 목련이 송이 하나 땅에 떨구지 않은 채로 가지에 매달려 있었다.

하얀 장미 혹은 풍성한 튤립인 듯도 보이는 꽃의 수백 송이를 거대한 꽃다발로 만들어 파란 도화지에 그려놓은 작품 같았다.

 

 

 

 

어느 고궁보다 더 고요했던 종묘는 고인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절제되어 있는 모든 것이 신비롭고 엄숙하다. 

연못에 생물을 키우지 않는 그 마음이라면 종묘는 겨울이 가장 잘 어울릴까?

활엽수의 잎들이 다 떨어지고 가지만 남아 있는 황량한 겨울은 너무 쓸쓸할 것 같다. 눈이라도 소복이 쌓여 정전과 영녕전을 감싼다면 모를까.

 

 

여리고 은은한 오늘의 종묘가 참 좋다.

생기로 가득 찬 이 성실한 봄은 선조들이 후손들에게 남기는 응원의 메시지처럼 느껴진다.

다음 방문 시에는 매년 5월과 11월 봉행된다는 제사의 경건한 모습을 종묘제례악과 함께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은행나무

 

 

 

 

 

이 소설은 '행복'에 대한 이야기다. 완전한 행복에 이르고자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려 '노력'한 어느 나르시시스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_<작가의 말 중>

 

나르시시스트, 자기애성 성격장애.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자신의 부와 명예, 권력을 손에 쥐고 살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재산을 불리기 위해 위해 범법을 일삼는 기업들, 명예를 얻기 위해 학력을 위조하는 유명인들, 권력을 얻어 보겠다고 타인의 생을 파탄 내는 정치인들................. 

 

내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잘못된 욕심이 끔찍하고 비상식적인 세상을 만들고 있다.

 

자기애와 자존감은 살아가며 꼭 필요하다.

그것을 지키기 위한 한 개인의 고통스러운 투쟁 또한 시시각각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중요한 만큼, 타인의 행복과 안전 또한 보장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주인공 신유나의 행복 공식은 뺄셈이었다.

 

아니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 나는 그러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어.

 

아내의 대학시절 남자와 유학 시절 남자와 아버지와 전남편, 그리고 노아, 행복은 가족의 무결로부터 출발한다고 믿는 아내의 신념. (.........)
남자 넷은 어떤 이유로든 아내를 불행하게 만든 사람들이었다. 변심, 해고, 이혼, 그 어떤 이유로든 간에.

 

그녀의 완전한 행복을 향한 노력에 타인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도, 행복도, 목숨도 중요하지 않았다.

행복이 뺄셈이라면,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라면 답은 정해져 있을 것이다.

유나의 마지막 선택은 결국 답을 알아냈기 때문이었을까?

 

 

 

 

남편 최은호의 행복은 아내와는 달랐다. 찰나의 행복을 덧셈해서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 그의 행복이었다.

 

행복한 순간은 하나씩 더해가면, 그 인생은 결국 행복한 거 아닌가.

 

알아서 기는 게 최선이었다. 눈먼 밀월이 끝났음을 인정하나, 두 번째 결혼만큼은 망치고 싶지 않은 쪽이. 
실패가 인생의 패턴이 될까 봐 두려운 인간이. 언제나 모든 일에서 가장 쉬운 길을 택하는 자가.

 

 

 

 

두 인물 모두 행복을 손에 쥐는 데에는 실패했다.

행복은 덧셈도 뺄셈도 아니었다. 행복은 수학 문제지에 답을 내어 적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제 행복해?" 

아내는 무표정하게 대답한다. 

"아니 나는 참 운이 없어."

 

운이 좋은 사람은 행복을 차지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운이 따르던 그렇지 않던, 소설의 제목 같은 완전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한 순간은 찰나이고 고통은 이내 밀려온다. 완전한 행복을 이루며 살 수 없다는 걸 하루하루 살아가며 알게 된다. 

 

그렇다고 인생은 불행의 연속도 아니다. 인생의 줄에는 행복과 불행이 연달아 지나간다.

슬퍼서 아름다운 순간, 아름다워서 고통스러운 순간, 행복인지 불행인지 모를 감정도 혼란스럽게 우리 마음에 내려온다. 

 

그러니 욕심내지 말기를............ 나의 행복을 위해 타인을 내리치는 행동들을..........

 

 

 

정유정의 소설을 읽으며, 상황을 머릿속에서 그려내는 나를 발견한다.

유머러스하고 과장되기도 한 표현들, 지극히 사실적인 묘사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래서인지 몰입감 최고다. 흥미롭게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전날 종일 오던 비는 여행 당일 11시가 지나서야 그쳤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첫째 날은 양평, 다음 날은 이천으로의 산수유 여행이다. 

비를 흠뻑 머금은 양평 시골길의 산수유와, 이천의 햇살 받은 산수유는 확연히 다른 느낌을 선사해 주었다.

 

 

 

 

 

 

경기 양평

산수유

 

 

 

개군면 산수유길과 주읍리 마을길을 걸었다. 매년 열렸던 산수유 축제는 길고 긴 전염병으로 3년째 취소되었다.

꽃길에서 만난 얼굴들이 반가울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양평의 산수유 길은 고즈넉하다.

잔뜩 젖어있는 땅, 물을 머금은 논, 허름한 집들과 돌담 주위로 여린 노란빛의 산수유가 애처로운 듯 신비롭게 서 있었다.

구름 덮인 하늘 아래, 단풍잎인지 꽃인지 모를 나무는 묘하게 아름다웠다.

 

 

 

 

쌀쌀한 날씨에 완전히 피지 못한 꽃이 진한 갈색 가지에 안간힘을 쓰고 달라붙어 있었다.

꽃마다 매달린 물방울들은 보석처럼 반짝이기도, 눈물이 맺혀있는 듯도 보였다.

 

 

 

 

도심의 혼잡한 거리에선 느끼지 못할 편안한 보행을 했다.

정겹고 고즈넉한 시골길을 걷다 보니, 검은 새의 날갯짓마저도 여유롭게 보였다.

 

 

 

 

시조목으로 지정된 오래된 나무가 빨간 지붕 기와집 옆에서 보호되고 있었다. 출근길에 오가며 봤던 자그마한 산수유나무와는 비교되지 않을 키와 덩치였다.

 

역사를 자랑하는 나무에서 여러 장의 사진을 남기던 중, 동네 분께서 훈수를 두고 지나가셨다.

아직 만개도 아니고 날도 흐려 오늘은 사진이 잘 나오지 않을 거라고, 빛을 받아야 예쁘다고 하셨다.

 

산수유는 보는 것만큼 사진에 잘 담기지 않는다. 송이가 작고 색이 여리서 일테다. 멀리서 보면 꽃의 모양조차 보이지 않는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산수유꽃은 마음씨도 곱다.

 

 

 

 

 

 

경기 이천

백사면 산수유 마을

 

 

 

어제와는 사뭇 다르게 이곳은 입구부터 붐볐다. 11시 즈음 도착했을 때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다. 운 좋게도 출차하는 차가 있어 자리를 얻었다.

 

날이 맑아서인지, 사랑채를 중심으로 주차장과 산책 코스가 정비되어 있어서인지, 이곳은 행사는 없었지만 축제장 분위기였다.

 

 

 

 

작은 절이 눈에 띄어 올라가 보았다.

이곳의 나무들은 크고 풍성했다. 오랜 기간 뿌리를 내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맑은 하늘 아래 햇살 품은 산수유 꽃은 즐겁게 수다를 떠는 아이들 같다.

 

 

 

 

어제 양평에서 만난 동네 분의 말대로 맑은 날의 산수유는 눈에도 사진에도 더 선명하게 담겼다.

 

 

 

 

육괴정이라 불리는 정자는 느티나무 여섯 그루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그중 세 개는 세월을 이겨낸 것이었다.

수 백 년 전 느티나무를 심으며 함께 심기 시작한 산수유가 지금 이 아름다운 풍경의 시작이다.

 

 

 

 

무리를 지어 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연인의 길 쪽으로 걸었다. 이곳은 피크닉을 해도 좋을 장소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간단한 다과를 먹는 가족, 벤치에 앉아 담소하는 부부, 카메라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사진을 찍는 연인들, 노란 꽃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딸의 모습을 사진에 남기는 젊은 엄마의 모습도 벅차도록 아름다웠다. 

 

장관이다. 노란 물감으로 반점을 그려놓은 어느 화가의 작품처럼 노란 물결이 세상을 감싼다.

 

 

 

 

어제보다 하루를 더 산 산수유 꽃은 그만큼 풍성해져 있었다.

며칠이 지나 만개 후, 지워지듯 없어질 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다.

 

 

 

 

매화나무도 운 좋게 만날 수 있었다.

막 터질 듯한 옥수수알 같은 몽우리와, 둥근 잎의 우아한 자태를 드러낸 꽃들이 섞여 있었다.

잠시 마스크를 벗고 향을 맡아보니 은은한 향이 좋다. 어디선가 맡아보았던 향수나 방향제 냄새 같기도 했다.

 

 

 

 

낙수제 쪽으로 올라가던 중 아래를 내려다보니 마을 풍경과 산수유의 노란빛이 어우러지며 꿈같은 풍경을 자아냈다.

산속으로 들어가는 입구라 그런지 바람소리가 매섭게 들리고, 맑던 하늘엔 갑자기 구름이 덮쳤다.

 

 

 

 

고요한 산 절벽에서 떨어지는 물소리는 청량하고 맑았다.

윙윙 바람 소리, 경쾌한 물소리, 새가 지저귀는 소리, 낙엽의 바스락 거리는 소리로 오감 중 청각이 두드러지는 순간이었다. 봄과 여름을 지나며 근처 바위에서 자라는 야생화들이 피어나 시각마저 사로잡을 그때의 낙수제가 궁금해졌다.

 

 

 

 

낙수제를 끝으로 연인의 길로 다시 내려왔다. 다른 시선으로 보는 산수유의 물결 또한 너무 아름답다.

가을에 펼쳐질 붉은 행렬은 또 얼마나 강렬할지.............

꽃과 대비되는 색의 열매를 맺는 나무가 신비로울 뿐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것처럼, 어제의 산수유와 오늘의 산수유는 다르다.

비 온 날과 맑은 날 기분이 달라지듯이, 비를 머금은 산수유와 햇살 받은 산수유도 달라 보였다.

 

어제의 진하고 쓸쓸한 모습, 오늘의 맑고 명랑한 느낌, 둘 다 우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저마다 환경에 따라 다른 가치를 뽐낸다. 

 

 

 

일박으로 다녀온 산수유 여행은 정말 소중한 추억이 될 것 같다.

산수유를 시작으로 앞으로 피어날 수많은 봄꽃들을 기대하며 행복한 봄이다.

 

 

 

 

 

 

 

 

 

매화꽃과 함께 봄을 알리는 노오란 산수유 꽃.

계절이 돌아올 때마다 산수유의 성실함에 매료된다.

 

 

모진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초록의 잎보다 먼저 수수만한 작은 알갱이들을 피워낸다.

 

 

 

 

우산살 모양의 꽃차례에 수십 개의 여린 몽우리가 터질 준비를 하며 매달려 있다.

 

 

 

 

벼랑 위, 아름다운 방화수류정을 가리지 않는 산수유의 배려도 좋다. 서로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따뜻한 남쪽, 산수유가 만발했다는 소식에 당장이라도 떠나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그러나 성실한 꽃들은 이곳에서도 하루하루 계절을 이겨내며 소박하고 신비롭게 피어날 것이다.

 

 

 

산수유는 다만 어른거리는 꽃의 그림자로 피어난다. 그러나 이 그림자 속에는 빛이 가득하다. 빛은 이 그림자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들끓는다. 산수유는 존재로서의 중량감이 전혀 없다. 꽃송이는 보이지 않고, 꽃의 어렴풋한 기운만 파스텔처럼 산야에 번져 있다. 산수유가 언제 지는 것인지는 눈치채기 어렵다. 그 그림자 같은 꽃은 다른 모든 꽃들이 피어나기 전에, 노을이 스러지듯이 문득 종적을 감춘다. 그 꽃이 스러지는 모습은 나무가 지우개로 저 자신을 지우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김훈 <자전거 여행>

 

 

김훈의 시선에 담긴 산수유는 눈물겹게 아름답다.

소박하며 초라하지만 눈부시게 아름다운 우리네 인생과 닮은 듯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꽃이다.

 

노오란 꽃이 무사히 피어나길 응원하며 다시 하루를, 한 주를, 봄을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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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아무런 이유 없이 펑펑 울고 싶을 때가 있다. 난 이것이 메마른 가슴을 적시고 싶어 하는 욕망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에 앞선 '작가의 말'부터 울음은 밀려왔다.

세월이 갈수록 울음이, 설움이, 슬픔이 고여간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이름, 아버지.

이 책은 가족에게 한없는 사랑의 마음으로 희생하며 살지만, 고독과 외로움으로 스러져가는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췌장암.

췌장의 위치가 숨겨져 있어 발견도 치료도 어려운 병. 

 

지금껏 소박하고 성실한 삶이 전부였던 정수는 길어야 5개월, 사형 집행일을 선고받는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절실한 외로움에 더 견딜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그 자체보다 오래지 않아 그렇게 영원히 혼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 남은 얼마간도 어쩌면 영원한 외로움에 대한 연습 일지 모른다는 사실이 지금의 답답함과 혼란함, 그리고 두려움과 무력감의 실체였다.

 

 

 

우리는 매 순간 최선을 다해 보지만 상황이, 가난이, 능력이, 성정이, 불운이, 꿈꾸었던 삶을 살아가지 못하게 한다.

사람답게 사랑하며 살아가려 애를 쓰지만 저마다의 사연으로 내 생각대로 관계가 맺어지지 않는다.

 

정수 역시 하루도 허투루 살지 않았지만 결국, 처참한 처지에서 혼자 두려움에 떨며 외로워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아내, 자식, 형제, 친구, 직장동료, 과거, 이름.......... 심지어는 자신까지, 가졌다는 그 모든 것이 결국은 멍에였다. 그 실타래처럼 엮인 작은 멍에 하나하나가 모두 고뇌와 미련의 시작이었고 화두였다. 후회스러웠다.

 

소중하지만 짧고 허망한 삶 가운데,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하고 멍에를 이고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생은 가엾고 초라하다.

마약과 같은 진통제와 몽롱한 잠으로 고통을 견뎌내면서도 정수는 아내와 자식들 걱정에 가슴이 찢어질 듯 아린다.

 

 

 

인생에는 분명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그 무엇이 있어. 그게 서푼짜리 자존심이 됐든 알량한 오기가 됐든, 그거나마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네 인생이 너무 가엾지 않겠는가? 

 

정수는 결국 의사인 친구 남박사에게 살인 교사를 간절히 호소한다.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 더 이상 가족을 괴롭힐 수 없다는 간절함으로.

 

 

 

그의 진심을 오해하고 그를 외면해왔던 시간들을 후회하며 아내 영신은 얼마나 괴로웠을까? 

 

결국 사랑은 용기였다. 사랑을 얻는 용기만큼 사랑을 보내는 용기도 필요했다. 그것이 영원한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가슴이 트였다. 이제는 보낼 수 있었다. 혼자인 것도 두렵지 않고 고독도 무섭지 않았다. 진정한 사랑이 영원히 있는데 그런 고독이나 두려움이 무슨 두려움이 될 것인가.

 

영신의 생각처럼 죽은 자나 살아남은 자 모두 영원한 사랑을 정말 얻을 수 있는 걸까?

얼마전 사랑하는 아빠와 작별한 나는, 진정한 사랑이 영원히 있음을 느끼며 정말 고독 없이 살아갈 수 있는 걸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노르웨이의 숲>에 나오는 구절이 생각났다.

 

어떤 진리로도 사랑하는 것을 잃은 슬픔을 치유할 수는 없다. 어떤 진리도, 어떤 성실함도, 어떤 강인함도, 어떤 상냥함도, 그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 우리는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 거기에서 뭔가를 배우는 것뿐이고, 그렇게 배운 무엇도 또다시 다가올 예기치 못한 슬픔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노르웨이의 숲>

 

 

 

 

결국 인간은 함께하던 그 누구를 잃어버리는 순간부터 평생을 짊어져야 할 고독의 무게를 느끼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쓸쓸하고 외로운, 죽음마저도 고독한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

 

그를 보내고 난 슬픔은 치유되지 않는다. 세월이 무수히 지나면 잊힐까?

그 슬픔을 다 슬퍼한 다음이 올까? 또 다른 슬픔이 다가왔을 때 그것은 겹이 되어 더욱 진해질 것만 같다.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기쁘면 기쁜 대로, 슬프면 슬픈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아쉬우면 아쉬운 대로.......... 그렇게 소박하게 사는 것, 그렇게 호흡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 그것을 해야 한다.

 

 

 

 

 

 

 

 

 

 

 

 

 

<나보다 어렸던 엄마에게>

 

노들 서가에서 발견한 이 책은 제목만 보고 홀린 듯 꼭 봐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밀리의 서재에 검색해 보니 행운처럼 책의 표지가 떴다.

 

 

 

 

1. 끝

 

대필작가로 생계를 이어가던 범우는 자서전을 대필해 주었던 HT기업 나 회장의 도움으로 홍보실에 스카우트된다.

그는 입사 전 건강검진 과정에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나락으로 떨어진다. 

 

갑작스러운 대장암 판정은 세월에 묻어두고 살았던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시 소환했다.

 

 

무능력하고 술에 찌든 남편, 극심한 생활고, 말썽을 피우다 가출한 동생은 그렇게도 엄마를 고통스럽게 했었다.

냉탕과 온탕을 오갔던 엄마는 그 스트레스를 범우에게 매질하며 풀었고, 그런 엄마를 그는 원망하며 살았다.

 

엄마의 자살 이후, 그는 그 잔인했던 이별을 잊으려 안간힘을 썼다. 살기 위해서.

 

슬픔을 느낄 새도, 위로를 받을 새도 없었다. 그날 이후, 나는 남은 사람들의 일상을 제자리로 돌리기 위해 빠르게 어머니의 흔적을 지워야 했다.

 

어머니를 향한 연민보다 원망이 커질수록 괴로움이 크기도 줄어들었다.

 

 

 

 

2. 기억

 

HT 나 회장은 범우에게 회사에 입사해 치료에 필요한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돕는다. 그는 AI 음성 인식 기술을 연구하는 곳에서 경선의 도움을 받아 엄마를 AI로 구현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경선은 AI의 궁극적인 목표는 인간과 자연적으로 소통하고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이라도 말했다. 이는 인간의 인지, 감정, 기억, 학습 등을 담당하는 두뇌 신경망을 기술로 구현했을 때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 엄마에 대한 다양하고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해야 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더듬을수록 그녀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진한 후회의 감정을 느끼게 된다.

 

 

 

 

3. 기록

 

범우는 어머니가 자살한 옛 집, 오래된 벽장 안에서 엄마의 일기를 꺼내 읽게 된다. 그는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엄마의 젊은 시절과 마주한다.

 

좋아하는 남자가 있어 마음 태웠고, 무능력한 아버지와의 결혼을 후회하며 살았지만 그를 사랑하며 기다렸고,  몸이 불편했을 때조차 시어머니의 병시중을 들어야 했었고, 예쁜 옷을 입고 싶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어 했던 평범한 사람이었고, 돈이 없어 첫 아이를 인큐베이터에 넣어 보지도 못하고 떠나보낸 후 한없이 괴로워했었던 엄마.

자신에게 모질게 굴었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던 일기장.

 

 

나는 어머니가 그런 당연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해보지 못했다.

 

나는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어머니의 진심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눈물이 일기장 위로 떨어져 번졌다.

 

기댈 언덕이 모두 사라진 어머니는 홀로 시들어갔을 것이다. 가족 누구도 어머니가 시들어가는 줄 몰랐다. 나는 끝까지 방관자였다.

 

가진 건 많지 않아도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정을 꾸미는 것. 일기에 드러난 어머니의 희망은 소박했다.

 

 

세상을 자유롭게 훨훨 날아다니고 싶었던 어머니는 결국 자신만을 위한 결정을 하게 된다. 죽음으로 고통에서의 해방을 꿈꾸었던 것이다.

 

 

 

 

4. 고백

 

범우는 어머니를 가장 많이 기억하고 있는 아버지의 출장지로 발길을 돌린다.

 

남산에서 처음 만난 엄마에게 한눈에 반해 구애했던 아버지.

아무 대책 없이 동거를 시작했지만, 아빠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았다. 자신만을 믿고 따라온 어머니를 배려하지 못한 아버지는 무책임했다.

 

그러나 아버지 또한 철없고 무지했던 시절을 후회하며 엄마가 죽은 공간에서 홀로 세월을 이겨내고 있었다.

범우의 대장암 소식에 그의 마음은 무너진다.

 

 

 

 

5. 증언

 

범우는 어머니의 어린 시절을 찾아 이모와 막내 외삼촌이 계신 곳으로 떠난다.

 

사 남매 중 가장 똑똑하고 영리했던 엄마,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수재, 그림을 잘 그려 전국 미술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충격적인 사실로 다가왔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돕기 바랐던 부모님의 강경함은 엄마에게 초졸이라는 초라한 학력만 허락했다. 그녀는 결국 집을 나와 서울로 달아나듯 떠난다.

 

엄마의 초등학교에서 발견한 그녀의 우승 트로피를 안고 범우는 무너진다.

" 엄마.........., 참 잘했어요............ 정말 잘했어요..............."

 

 

 

 

6. 시작

 

어머니의 기일, 산소에서 범우는 비욘드 앱을 실행한다.

AI로 구현된 엄마와 범우는 각자 외롭게 보냈던 그 시간들을 서로 어루만져 주고 아픈 곳을 쓰다듬어 준다.

 

그는 삶의 끝에서 삶의 시작을 꿈꾸게 된다. 소설 밖에서 그는 대장암 치료를 적극적으로 하며 삶을 향해 몸부림치지 않을까?

 

 

"만남만큼 중요한 게 이별이야. 이별을 소홀히 하지 마" 

내가 어머니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정은 과거의 어머니와 제대로 이별하는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정립하는 과정이 아니었을까.

 

 

저는 그 당연한 것을 모르고 살았어요. 죽은 사람의 흔적을 뒤늦게 끌어모으며 그리워하는 일보다, 산 사람과 직접 만나 속에 담아둔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오해를 푸는 게 훨씬 쉬운 일이더라고요. 그걸 이제야 깨달았어요.

 

 

 

 


 

 

나의 부모님의 어린 시절, 십 대와 이십 대의 젊은 나날들, 결혼과 출산 육아로 먹고살기 바빴을 삼사십 대.

나는 그때 그분들의 삶에 대해 시간을 들여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나의 큰 아이가 태어나고 오십 대 초반에 딸을 위해 손자를 돌봐야 할 상황이 되셨던 엄마. 

그때부터 부모님에 대한 나의 기억은 두 아이의 할머니, 할아버지 모습으로 강하게 기억되었다. 

 

어머니의 삶과 마음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지만 이에 아예 신경을 쓰지 않은 채 어머니는 지극히 당연한 현존재- 즉 과거가 없이 오로지 현재적으로만 나에게 의미를 갖는 존재 - 로 여기는 인간들이 우리 시대의 자식들이 아닐지. _ 장경렬 (작품 해석)

 

 

우리들이 아무런 의문도 없이 너무도 당연한 우리네들의 현재적 삶의 일부로 여기는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간단한 말조차 마음 따뜻하게 해드리지 못하는 못난 자식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이고 끌어안는 우리들의 어머니에 대해 새롭게 깊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 정진영의 작품인 것이다. _ 장경렬 (작품 해석)

 

 

 

 

이 책을 읽는 중,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와 이별했다.

이 책 때문일까?

나에게 남아있는 아빠에 대한 기억과, 장례 과정에서 들은 수많은 이야기들은 나를 몇 배로 힘들게 한다.

그의 인생의 낭만과 따뜻함, 외로움과 슬픔 모두가 그립다. 

 

나도 나의 아버지에게 말하고 싶다.

 

"아빠.......... , 참 잘했어요........... 정말 잘 살았어요.......... 사랑해요............."

 

 

 

 

 

 

 

 

 

 

밝은 세상

 

 

기욤 뮈소의  <사랑하기 때문에>.

 

짧은 시간 안에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소설을 찾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몰입감 최고, 이야기의 반전, 감동과 사랑이 있는 소설이다.

 

플래시 백.

주인공들의 회상 장면들은 마치 영화 시나리오처럼 느껴져 흥미를 더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과거의 상처가 있다. 

자기 파괴의 충동은 과거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상처받은 영혼을 시시때때로 괴롭힌다.

 

소설이나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는 어두운 세계의 이야기, 우리와 관계없어 보이는 이야기들도, 이 지구 상 어딘가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광주 인화학교의 장애아동 성폭행 사건을 고발한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는 실제 사건보다, 같은 제목의 영화는 소설보다 수위가 낮게 표현되었다고 하니, 현실은 상상 못 할 일이다.

 

세상은 점점 야만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복수와 용서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위탁가정에서 어렵게 삶을 이어가고 있던 커서는 이름도 모르는 마약 딜러들에 의해 삶을 파괴당했다.

단지 공부를 하고 싶었던 사려 깊은 소년은 몸 절반 이상의 화상으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2년여의 시간을 보낸다.

병원에서 퇴원 후, 처절한 복수를 실행한 커서는, 이후 성공적인 정신과 의사가 되어 많은 이들을 도우며 살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안에 머무는 상처와, 복수에 대한 죄책감은 그의 영혼을 고통 속에 살아가게 한다. 형사의 눈을 피해 살아가는 장발장처럼 말이다.

그의 친구 마크에게 말했던 신념 '아무리 절박해도 우리가 가진 이상과 가치만큼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돼'라는 말을 그 자신이 저버렸던 것이다.

 

복수를 꿈꾸던 또 다른 소녀 에비.

엄마를 죽음에 이르게 한 의사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던 가난한 소녀.

 

커너의 고통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마크는, 복수로 엄마가 살아 돌아오지도, 그녀의 괴로움을 없애지도 못할 것이며 인생이 망가질 수도 있다고 간곡히 이야기한다. 

 

용서하라는 것이지 무조건 잊으라는 뜻은 아니야. 죄 자체를 없었던 일로 하자는 뜻도 아니야. 복수는 증오심을 키울 뿐이지만 용서는 널 자유롭게 해 줄 거야.

 

용서하는 건 너 자신을 위해서야, 에비.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찾기 위해.

 

 

 

그렇다면 용서가 정답일까?

 

인화학교에서 벌어진 그 끔찍한 사건을 용서할 수 있을까?

이유 없는 폭행으로 피해자를 신체장애인으로 만들고 아무렇지 않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까?

달리는 자동차로 나의 가족을 죽게 만들고 뺑소니를 감행한 사람을 실수로 벌어진 일이라고 용서할 수 있을까? 

돈과 명예에 눈이 멀어 부조리한 일을 일삼으며 약자들을 짓밟는 사람들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다.

 

피해자들 누구라도 마음속으로 그들을 죽이는 처절한 복수를 수없이 실행할 것이다. 실제로 그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들 누가 돌을 던지며 비난할 것인가.

 

그러나 두 사람을 불태워 죽인 커너의 복수는 결코 그를 편안하게 만들지 못했다. 동기가 어떠했던 올바른 방법이 아니었던 것이다.

 

만약 가해자들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았다면, 복수는 개인적으로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도움을 받기엔 세상의 법과 질서가 돈 있고 빽 있고 명예 있는 사람들 편이다.

 

 

 

그러니 용서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에비의 복수를 대신해 주겠다며 총을 꺼내 든 커너.

 

커너는 이제 자신의 운명이 에비의 두 손에 달려있다고 생각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 분쯤 지났을까. 에비가 난간에 기대 서있는 그에게 다가왔다. 그녀가 한마디 말도 없이 살짝 커너의 손에서 권총을 빼앗아갔다. 그의 인생에 깊은 상처를 남긴 사건의 마지막 증거물을........

 

에비는 총을 허드슨 강에 힘껏 던짐으로 자신을 구함과 동시에, 커너 역시 살릴 수 있었다.

에비를 새로운 삶으로 이끌었던 건 바로 커너의 사랑 덕분이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책을 읽은 후, 이 제목은 내용과 어울리지 않은 옷을 입은 듯했다. 제목에 대해 생각하며 다시 읽어보니 나름대로의 해석이 생긴다.

 

딸을 잃은 마크와 니콜, 무절제한 삶을 살았던 재력가의 딸 앨리슨, 의사 커서 그리고 에비.

그들 모두 용서와 사랑의 힘으로 과거의 삶을 딛고,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용서와 화해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고, 소중한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삶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사랑 덕분에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할 힘이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 덕분에, 사랑을 위해서 말이다.

 

 

 

잘 살아라 그게 최고의 복수다. - 탈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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