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다.

 

산타클로스와 하늘을 나는 레인디어 그리고 엘프 요정을 믿지 않는 초등학생들도 받을 선물에 한껏 들떠있다. 부모들도 이날을 핑계 삼아, 평상시에 잘 사주지 못했던 선물을 심사숙고하며 준비한다. 

 

유치원마다 매년 이맘때쯤 부모를 초대해 발표회를 연다.

산타모자를 쓴 선생님들의 지도 아래, 화려한 옷을 입은 아이들은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고, 악기 연기로 화음을 맞추거나 연극을 하며 솜씨를 뽐낸다. 자신의 아이를 찾으려는 부모와 부모를 찾으려는 아이들의 고갯짓이 한없이 아름답다.

 

반짝거리는 트리, 빨강과 초록이 적절하게 섞인 소품들로 장식된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가족들은 저마다 가볍고 즐거운 이야기들을 하며 한 끼를 즐긴다.

 

아이들과 함께 집 안 한 구석에 트리를 세우고 약간의 오너먼트로 장식을 하며, 문 앞에 리스를 걸어 분위기를 낸다.

요리하는 엄마나 아빠가 솜씨 발휘 한 음식을 식탁에 차려 두고 가족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정겨운 풍경들이다.

 

군대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아들, 기숙사에서 연말을 보내는 딸.

아이들이 없는 크리스마스는 예전 크리스마스의 추억을 강하게 불러와 마음을 짠하게 했다.

 

 

 

 

 

Bakery Cafe

URBANRI ST.

 

 

 

둘만 남은 크리스마스지만 추억을 남기고자 동탄에 있는 대형 베이커리 카페를 다녀왔다.

소설 속 근사한 성의 문을 여는 듯 무거운 갈색 문을 열고 들어서니 마법의 세계처럼 다른 세상이다.

 

 

 

 

 

위로 막힌 천장이 없다면 카페 거리를 걷는 듯한 느낌, 혹은 놀이공원에 놀러 온 기분마저 들었다.

 

 

 

 

 

 

넓은 공간 곳곳에 통 크게 마련된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무척 화려하고 예뻤다.

 

 

 

 

 

각 코너마다 제각각 다른 분위기를 연출해 내고 있었는데, 다양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마음에 드는 공간을 선택해 앉을 수 있어 인기가 있어 보였다.

 

핑크빛이 도는 철제 천장에 홀려 2층으로 올라가 보니 이곳은 NO KIDS ZONE이다. 코너 특색에 맞게 조용한 분위기에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었다.

 

 

 

 

 

1층은 다양한 부대시설과 수족관 코너로 어린이들이 많았지만, 젊은 연인들과 우리처럼 나이 지긋한 부부들도 많이 보였다. 이층에서 내려다본 카페는 낭만적인 거리 같다.

 

 

 

 

 

베이커리 코너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종류의 화려한 빵들이 크리스마스 시즌 장식을 올린 채 진열되어 있었다.

언젠가 먹어보았던 팡도르와 바스크 치즈케이크도 있었고, 이름을 기억하기도 어려운 색다른 빵들이 정말 많았다.

 

 

 

 

 

키오스크에서 음료 두 잔을 주문하고 자리를 잡았다. 카페를 선택하듯 신중하게 자리를 고르고 창가 자리 편안한 소파에 앉았다.

 

 

 

 

 

커다란 선물주머니를 메고 벽을 막 넘어가려는 거대한 산타 모형을 보니 미소가 지어졌다. 

음료는 맛있었고 자리는 매우 편안했다. 

 

1층은 음악소리, 어린이들 소리, 사람들의 분주함도 크게 느껴졌지만 넓은 공간이라 그런지 오히려 방해받지 않는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처음으로 아이들 없는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느낀 여러 가지 감정들은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뿌연 안개가 사라지며 서서히 걷히듯 희미해질 것이다. 다음 해 또 그다음 해 그리고 그다음 해의 다음 해가 되면 익숙해질 것이다. 어쩌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의 성탄을 보내게 되면, 이번 해는 특별하다 색다르다 하게 될 것이다.

 

세월은 그렇게 지나간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외식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공간 넓은 한 식당을 예약하려 하니 그날은 예약이 되질 않는다. 다른 패밀리 레스토랑도 마찬가지.

물론, 황홀하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은 비싼 가격을 치르고 예약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코로나 확진자 수가 줄지 않는 연말.

북적거리는 좁은 식당에 들어가기도 꺼려지고, 한두 시간 기다리며 원하는 식당을 차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대형 베이커리 카페는 예약 없이도 자리를 잡고 간단한 요기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답사격으로 찾아간 카페다.

 

 

 

 

Bakery Cafe

르디투어

 

 

파란 하늘 아래 감각적인 3층 건물은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곽희수 건축가의 작품이다.

헤이리의 한 거대한 카페 생각이 났다.

 

 

 

 

 

은은한 색감의 넓은 공간에 군데군데 초록 식물이 도드라져 보였고, 위로 막힘없이 올려다보이는 계단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베이커리 카페답게 빵을 만드는 작업 공간이 한쪽에 넓게 자리했고, 중앙에 진열된 빵들은 예사롭지 않았다.

 

 

 

 

 

다양하고 화려한 빵들도 궁금했지만, 독특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 구경이 먼저다.

올라가는 계단에는 신을 벗고 편하게 올라 커피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좌식 좌석이 마련되어 있었다.

마루 위도, 폭신한 매트 위도 좋을 것 같았다. 

 

 

 

 

 

2층 벽면에 설치된 스크린에서는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고, 부드러운 곡선의 테이블과 의자들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마음 놓고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계단참 한 구석과 2층 실내에 놓인 두 개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색감을 달리 장식해 다른 느낌을 선사해 주고 있었다.

 

 

 

 

 

창을 내다보니 어제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아 바닥에 남아 있었다. 푸르름과 화려함이 살아나는 계절이 돌아오면 통유리로 보이는 경치가 더 예쁠 것 같다. 

 

 

 

 

 

3층으로 올라오니 몇몇 테이블에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우리는 앙증맞은 트리 소품이 올려진 긴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넓은 창으로 해가 정말 잘 들어 나중에는 커튼을 칠 정도였다.

 

 

 

 

 

주문을 하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가지런히 진열된 다양한 종류의 빵들은 아무거나 집어 들어도 후회 없을 정도로 다 맛있어 보였다.

 

 

 

 

 

 

차가운 온도로 보관되고 있는 케이크 종류와 생크림이 들어간 빵들도 고급스럽고 깔끔했다.

 

 

 

 

 

너무 단 빵을 고르기보다는 사과파이 (7.5)와 담백한 베이컨 더치 브레드(6.2)를 골랐다.

함께 마실 음료는 따뜻한 아메리카노(5.0)와 카푸치노(5.5)를 주문했다.

 

 

 

 

 

잘 구워진 저민 사과 아래 부드럽고 달콤한 커스터드와 바삭한 파이의 조화는 정말 맛있었고, 치즈와 베이컨이 올려진 속이 꽉 찬 바케트도 브런치로 적당했다. 빵과 잘 어울리는 커피맛도 좋았다.

 

 

어느새 긴 테이블 옆으로 젊은 친구들이 인스타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카페를 나오려는 데 그 많은 좌석들이 대부분 차 있었고, 계단에 마련된 좌식 좌석은 이미 가족이나 친구들의 편안한 놀이터가 되어 있었다. 

크리스마스에 이 좌석을 잡기 어려울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이 스쳤다.

 

 

한 번의 검색으로 왔지만, 유명한 건축물, 근사한 분위기, 청결하고 단정한 매장, 고급스럽고 특별한 빵과 음료 모두가 마음에 들었던 카페다. 

 

 

 

 

 

 

 

12월, 연말이 되니 어김없이 크리스마스 장식들이 눈에 띈다.

연말 분위기 물씬 나는 Cafe를 딸과 함께 다녀왔다.

 

 

 

Cafe

두레브

 

 

 

1층에 들어서니 살짝 어두운 실내조명, 중앙 오픈 키친, 한쪽 벽면에 진열된 와인병들, 고소하고 달콤한 냄새를 풍기는 베이커리 코너가 눈에 들어왔다.

 

카페라기보다는 와인바 같은 느낌의 독특한 분위기다.

 

음료와 베이커리뿐 아니라 수플레, 파니니, 버거, 샐러드 등 다양한 브런치 메뉴가 있었는데 여느 레스토랑보다 식사 종류가 많아 보였다.

 

 

 

 

 

곳곳에 놓인 크리스마스 소품들이 차가운 느낌의 카페 분위기를 따뜻하게 녹여 주었고, 연말 분위기가 느껴져 살짝 마음이 들뜨기도 했다.

 

 

 

 

 

2층으로 올라가니 넓은 공간임에도 거의 만석이었고, 조금 소란스러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 창가 자리 높고 넓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창밖으로 널찍한 야외 테라스 좌석이 좋아 보였지만, 봄이 오기를 기다리며 파라솔을 내리고 있었다.

 

 

 

 

 

텀블러 느낌의 아메리카노 잔이 독특했고, 따뜻한 음료는 넉넉한 양이 맘에 들었다.

옆 테이블에 앉은 손님들은 푸짐한 식사를 주문해 먹고 있었지만, 우리는 저녁 약속이 있어 간단한 빵과 음료를 주문했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12월...... 후회보다는 아쉬움이 크다. 

코로나로 아직 되돌리지 못한 사람들의 일상, 대학 캠퍼스를 마음껏 활보하지 못한 딸의 새내기 일 년이 마음 저리게 아프다. 

 

드라마 정주행하며 순삭되는 시간처럼 세월은 흘러가고, 사람들은 예기치 않은 사건들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며 살아 간다.

 

일 년을 알차게 후회 없이 지냈다는 딸의 말을 그대로 믿고 대견한 맘이지만, 허락되지 않았던 상황에 안타까움과 짠함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좋은 쪽으로 달라질 내년을 기다려보는 수밖에.

 

 

 

 

 

 

 

민음사

 

 

 

각 권 마다 상당한 두께의 책을 정말 오랜 기간 붙들고 있었다.

올해가 가기 전, 3권의 마지막 장을 읽을 수 있어 다행이다.

 

너무도 잘 알려진 소설의 내용과 소피 마르소, 키이라 나이틀리 주연의 영화도 본 적이 있어서인지 책을 예전에 읽은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읽고 나니 내가 알고 있었던 내용은 정말이지 일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1948년 제작된 오래된 영화는 책의 내용을 좀 더 담고 있을까 싶어 찾아보았지만,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맡긴 비비안 리의 슬픈 얼굴 그리고 비극적인 결말과 함께 흑백 영화의 엔딩 크레딧은 올라갔다.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안나의 비극적 죽음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지 않는다. 마지막 장에 레빈을 중심으로 한 주인공들의 소소한 삶이 새롭게 이어진다. 

 

다양한 인간 감정의 묘사와 사회구조에 대한 문제, 정치, 철학, 종교를 아우르는 거대한 서사를 한 편의 영화로 제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럼에도 톨스토이의 원작 소설을 토대로 수많은 영화가 제작된다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이리라.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21세기인 지금도 완벽하게 공감되는 첫 문장이다.

소설 속 등장하는 세 쌍의 부부인 안나와 카레닌, 스티바와 돌리, 레빈과 키티 그리고 안나와 브론스키의 관계를 통해서 개인의 삶과 세상은 어떻게 움직이는지,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갈망했던 톨스토이의 고뇌를 느낄 수 있었다.

 

'선'을 인지하는 농민의 말에 자극을 받아 신의 존재에 대한 깨달음으로 나아갔던 레빈은 깨달음 후에도 현실과의 충돌로 괴로워한다. 그러나 자신을 너절하게 만드는 현실은 그가 찾은 평온을 잠시 가렸을 뿐 그 정신적 평온은 그의 안에 오롯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난 여전히 마부 이반에게 화를 내겠지. 여전히 논쟁을 벌이고, 여전히 내 생각을 부적절하게 표현할 거야. 나의 지성소와 다른 사람들 사이에는, 심지어 아내와의 사이에도 여전히 벽이 존재할 거야. 난 여전히 나의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비난하고 그것을 후회하겠지. 나의 이성으로는 내가 왜 기도를 하는지 깨닫지 못할 테고, 그러면서도 난 여전히 기도를 할 거야. 하지만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모든 일에 상관없이, 이제 나의 삶은, 나의 모든 삶은, 삶의 매 순간은 이전처럼 무의미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선의 명백한 의미를 지니고 있어. 나에게는 그것을 삶의 매 순간 속에 불어넣을 힘이 있어!

 

 

첵의 첫 문장에 공감했다면, 마지막은 나에게 적잖은 위로를 주었다.

 

우리는 잘 살기 위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며 살지만, 뒤돌아서면 전혀 달라지지 않은 자신, 욕심과 시기로 불행하며 불안정한 나를 발견하기 일쑤다. 

 

그러나 삶에 '선'을 위한 방향성을 유지하고 있다면, 피해 갈 수 없는 그늘들에 절망하고 자책만 할 것이 아니라 걷어내며 지혜롭게 반응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삶에 정답은 없고 완벽하게 선하고 온전히 평온한 삶은 없을 테니, 선을 향해 나아가는 그 방향성을 가지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이 책을 언제 다시 꺼내 들지 모르겠지만 다시 읽을 때는 꼭 정독해보고 싶은 책이다.

 

 

 

 

 

 

 

 

 

 

황금 코다리

헤이리점

 

 

생선을 정말 좋아하지만 자주 먹게 되지는 않는다. 나 먹자고 생선을 손질해 구워 먹기도, 조려 먹기도 다 귀찮고 어려운 노릇이다. 가끔씩 맛있고 도톰한 생선이 정말 먹고 싶다.

 

파주에 볼 일이 있어 오게 되면, 늘 그냥 돌아가기 아쉬워 이벤트를 생각해 둔다. 남편의 계획이다. 

 

 

 

 

 

정갈한 밑반찬들은 셀프코너에서 더 가져다 먹을 수 있었다.

코다리&시래기 조림과(소, 26.0) 공깃밥을 주문했다.

 

 

 

 

 

커다랗고 도톰한 코다리가 직사각형의 큰 접시에 담겨 나왔다. 한 점 발라 먹으니 정말 너무 맛있다.

마른김에 커다란 살을 올리고 시래기와 콩나물 조금, 장에 있는 고추를 하나 넣어 돌돌 말아먹으니 담백한 맛이 최고다.

짜지 않고 심심한 양념에 푹 무른 무와 쫄깃한 가래떡까지 나무랄 데 없었다.

 

 

 

 

 

 

Cafe

GINO

 

 

파주 외진 곳에 있는 이 유럽풍 건물은 드라마 <도깨비>의 촬영 장소이다.

 

 

 

 

 

 

크림색의 건물로 들어서면 신발장이 있다. 실내화로 갈아 신고 입장하니 마치 가정집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깨끗한 마루바닥과 이국적인 분위기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음료 메뉴는 만원으로 동일했고, 몇 가지 디저트류와 식사도 가능했다. 초코음료가 유명한 듯 BEST 별을 걸고 있었다.

솔티카라멜초코와 녹차라테를 주문한 후 내부를 둘러보았다.

 

 

 

 

 

1층은 드라마에서 퀘벡 레스토랑으로 나왔던 곳이다.

그리 넓진 않았지만 고풍스러운 엔틱가구와 소품들 그리고 벽을 채운 다양한 인물의 초상화들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드라마뿐 아니라 뮤직 비디오 촬영도 했는지 한 아이돌 그룹의 사진도 액자에 담겨 있었다.

 

 

 

 

 

TV에 나왔던 피아노도 그대로 있었는데 윤기 나는 그랜드 피아노를 오랜만에 본 듯했다.

 

 

 

 

 

도깨비와 은탁이가 앉았던 테이블에 앉고 싶었으나 어린아이와 함께 온 젊은 부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나올 때까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드라마의 엄청난 팬임에 틀림없을 정도였다. 그들이 잠시 다른 자리로 가 있을 때 사진은 남길 수 있었다.

 

 

 

 

 

나무 계단을 오르면 윤 회장의 집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인 2층이다.

계단과 계단참 벽에도 다른 모양 다른 크기의 액자들은 마찬가지였다. 그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생생한 인물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도대체 이런 수많은 그림을 어디서 구하는 건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열린 문으로 들어가니 이곳도 입이 떡 벌어진다.

주말이지만 아직 이층에는 손님이 없어 마음껏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파노라마에 담긴 카페 2층의 모습은 다른 나라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이국적이다.

 

 

 

 

 

 

 

따스한 햇살을 받은 창가 소파 자리는 감히 앉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고급진 커버의 책들을 정리해 놓은 책장 앞에서는 액자에 담긴 작은 그림들을 판매하기도 했다.

 

 

 

 

 

 

드라마에 나왔던 장소를 직접 찾아와 보는 것은 의미 있고 재미나다. 

반대로, 왔던 장소를 다시 드라마나 영화에서 봤을 때의 기분은 또 새롭다.

이런 재미에 드라마 촬영지는 인기가 넘치나 보다.

 

 

 

 

 

 

녹차라테는 달달하고 맛있었지만, 남편이 주문한 초코음료는 너무 짜다고 했다. 이름이 솔티에 히말라야 핑크 솔트를 더한 것임을 알고도 달달함을 기대했던 남편의 착각이었다.

고급스러운 잔과 받침, 서비스로 나오는 바삭하고 얇은 쿠키가 분위기를 더해 주었다.

 

다른 나라에 온 듯한 느낌이 들어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실내 분위기, 편안한 자리, 아늑한 공간이 매력 있었던 카페다.

 

 

 

 

 

 

 

 

 

노들 서가에서 로맹 가리의 책을 발견하고 꼭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은 <일러스트, 자기 앞의 생>이다.

마누엘레 피오르의 따뜻한 색감의 그림이 더해진 이 아름다운 책은 청소년 코너에서 만날 수 있었다.

 

 

 

먼저 말해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칠 층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모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되는 소설의 첫 문장에서 소외되고 어려운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임을 짐작할 수 있다. 흑인, 유태인, 아랍인들이 모여 사는 프랑스 한 구역에 자리 잡은 로자 아줌마와 모하메드(모모)의 이야기이다.

 

 

 

 

 

 

사람들은 그녀가 냉정하다고들 했지만, 세상에 그녀를 돌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 육십오 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견디어 왔으니 때로는 그녀를 용서해줘야 한다.

 

유태인인 로자 아줌마는 젊어서는 몸으로 벌어먹고 살았고, 전쟁 중 아우슈비츠를 경험하고 살아 돌아왔다.

그 후 양육권을 박탈당한 창녀들의 아이를 돌봐주며 생계를 유지해 간다.

 

그곳은 내가 무서울 때 숨는 곳이야. 뭐가 무서운데요? 무서워하는 데에 꼭 이유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니란다. 
나는 그 말을 결코 잊은 적이 없다. 왜냐하면 내가 들어본 말 중에 가장 진실된 말이기 때문이다.

 

히틀러에 대한 공포심으로 자신만의 지하 대피소를 비밀스럽게 가지고 있는 그녀는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음이 분명하다.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아랍인 모모는 세 살 때 로자 아줌마 집에 왔다. 돈을 받고 자신을 돌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커다란 슬픔을 느끼게 된다. 의지할 곳 없었던 두 사람은 소란스러운 삶을 살면서도 끈끈한 정과 사랑으로 삶을 이어나간다.

 

로자 아줌마가 늙고 병들어 칠 층 계단을 더 이상 오르내리지 못하게 되자, 아이들은 입양되거나 하나 둘 떠나고 그녀 곁에는 모모만 남게 된다.

 

조물주가 세상 모든 것을 다 잘 만든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물주는 아무에게나 무슨 일이든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조차 모르기도 한다. 꽃이며 새를 만들기도 하지만 이젠 칠 층에서 내려가지도 못하는 유태인 노파를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세상과 생을 고통 없이 디자인할 수 있었을 거란 한탄은 책 곳곳에서 모모의 표현으로 드러난다.

오지 않을 엄마, 똥오줌 못 가리는 로자 아줌마를 떠나지 못했던 열네 살 모모의 외로움과 고독, 생에 대한 불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 구경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은 그들 모두가 실제 인간이 아니라 기계들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고통받지 않고 늙지도 않고 불행에 빠지지도 않으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네 인간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 그것은 정말 별세계였다. 나는 너무 행복해서 죽고 싶을 지경이었다. 왜냐하면 행복이란 손 닿은 곳에 있을 때 바로 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모는 화려한 백화점 진열장에 마련된 서커스 모형을 보며 즐거워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영원한 행복은 인간에게 없고, 행복은 순간이며 이내 생은 고통으로 돌아갈 거라는 것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모모가 한없이 슬프다.

 

 

 

 

 

 

 

그럼에도 모모와 로자 아줌마를 도왔던 이웃들이 있었다. 그들 역시 힘없는 사람들이었지만 말이다. 양탄자 행상을 하는 하밀 할아버지는 모모에게 글도 생각도 인생도 가르쳐주셨던 분이었다. 

 

하밀 할아버지는 빅토르 위고도 읽었고 그 나이의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았는데, 내게 웃으며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다. "완전히 희거나 검은 것은 없단다. 흰색은 흔히 그 안에 검은색을 숨기고 있고, 검은색은 흰색을 포함하고 있는 거지." "오래 산 경험에서 나온 말이란다. 하밀 할아버지는 위대한 분이었다. 다만 주변 상황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을 뿐.

 

하밀 할아버지 역시 자연의 공격을 받아 눈은 흐려지고, 치매에 걸리고, 오줌을 누러 가는데 부축을 받는 신세가 된다. 그러나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늘 손에 쥐고 있었던 그는 위대한 사람이다.

 

 

 

 

 

 

그녀는 유태인 대 학살 전인 열다섯 살 적 사진을 한 장 가지고 있었는데, 그 사진의 주인공이 오늘날의 로자 아줌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로자 아줌마가 열다섯 살의 사진 속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역시 믿기 어려운 일이다. 그들은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 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이가 들고 아이들이 독립할 즈음이 되니 나의 노후는 어떨까 생각하게 된다. 지금 그 시기를 겪는 나의 부모님들에 대한 생각도 고통스럽다. 생이 나를,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짓밟고 있다.

 

 

 

 

 

 

 

한 가지 말해둘 게 있다. 이런 일은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내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 엄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는 가능한 안락사가 왜 노인에게는 금지되어 있는지 말이다. 나는 식물인간으로 세계기록을 세운 미국인이 예수 그리스도보다도 더 심한 고행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십자가에 십칠 년여를 매달려 있었던 셈이니까. 더 이상 살아갈 능력도 없고 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의 목구멍에 억지로 생을 처넣는 것보다 더 구역질 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

 

유시민의의 책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는 행복한 삶은 잘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은 잘 죽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내가 바라는 끝을 줘요"

조조 모예스의 소설 <미 비포 유>에서 교통사고로 사지마비가 된 주인공 월이 했던 말이다. 인간은 삶과 마찬가지로 죽음에 대한 존엄성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아줌마는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사람이에요. 의사들을 즐겁게 해 주자고 아줌마를 식물처럼 살게 해서 세계 챔피언이 되게 할 생각은 없어요. 내가 불쌍한 사람들 얘기를 쓸 때는 누굴 죽이지 않고도 하고 싶은 얘기를 모두 다 쓸 거예요. 그건 누굴 죽기는 것과 같은 힘이 있대요. 선생님이 인정머리 없는 늙은 유태인이 아니고 심장이 제 자리에 붙어 있는 진짜 유태인이라면, 좋은 일 한번 해주세요. 로자 아줌마를 고통스러운 생에서 구해주세요. 생이란 것은 아줌마를 엉덩이로 걷어차버렸어요. 그놈의 알지도 못하는 하느님 아버지란 작자 때문이에요. 그 작자는 어찌나 잘 숨어 있는지 낯짝도 잘 안 보여요. 그 낯짝을 재현시키는 것조차도 안 된대요. 붙잡히지 않으려고 마피아들을 풀어서 막잖아요.......... 로자 아줌마를 도와주지 않는 더럽고 멍청한 의사들은 비난받아야 해요. 그건 범죄라고요.......

 

모모는 로자아줌마를 병원에 들여보내 식물처럼 생명을 연장하는 대신, 그녀의 비밀 장소인 지하실로 데려간다.

히틀러를 피해, 대학살을 피해, 동정심 없는 이 세상을 피해 말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숨을 거두게 된다.

그녀는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지만 모모는 숨을 쉬지 않아도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있어 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도 살 수 있나요? (.......)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

그의 얼굴이 속에서부터 환하게 밝아졌다. 그래, 그래, 정말이란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다. 더 두고 봐야 알 것이다. 나는 로자 아줌마를 사랑했고, 계속 그녀가 그리울 것이다.
(............) 
사랑해야 한다.

 

시체와 함께 지하실에서 여러 날을 보낸 모모는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구급차에 실려간다. 그의 주머니에 친절한 나단 아줌마의 연락처가 남아 있었기에 그는 다시 삶을 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정말 특별하다.

한 편의 그림동화 같기도, 청소년 성장 소설 같기도, 철학 도서 같기도, 장편의 대하드라마 같기도 하다.

로맹 가리란 이름을 감추고 가명 에밀 아자르로 책을 내야 했던 사연과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그의 인생이 스며들어서일까.

 

삶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내 앞에는 주어진 삶.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한강 중심에서 백사장과 스케이트장으로 이용되었던 중지도는, 6-70년대 한강 개발 계획 이후 잊혔었다.

2012년 문화공간으로 복원하기 위한 고민을 시작으로, 2019년 9월 '음악을 매개로 한 복합 문화 기지'인 노들섬이 개장되었다.

 

서울 그리고 한강 한가운데 있는 섬이라니 무척 궁금해졌다.

 

 

 

 

이촌한강공원 4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지난주와 다르게 맑은 하늘 아래 드러난 강과 도심의 모습에 숨통이 트인다.

 

 

 

 

한강대교를 걷다 보면 머지않아 강 한 복판에 떠있는 자그마한 섬이 보인다. 

섬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감각적인 건물이 들어서 있어 마치 호화 유람선처럼 보였다.

 

 

 

 

Nodeul Island

섬을 알리는 알파벳 철자들은 길쭉하게 서있는 63 빌딩과 다른 모양과 높이를 뽐내는 건물들과 함께 배치된 감각적인 건물 같았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라 섬은 한적했다.

'음악을 매개로 한' 섬이라더니 라이브 하우스, 리허설 스튜디오, 버스커 스튜디오, 뮤직 라운지 류, 노들 오피스 등이 마련되어 있었다. 

 

 

 

 

11시 혹은 12시에 문을 여는 입주사들이 대부분이어서 먼저 섬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우리는 달빛 노들이 있는 곳부터 시작해 맹꽁이 습지를 지나 돌아오는 방향을 택했다.

 

 

 

 

한강에 뜬 거대한 달 '달빛 노들'이다.

잔잔히 흐르는 물결 위 인공 달이 둥글고 크게 불을 밝히면, 도심의 화려한 불빛들과 함께 장관을 이룰 것 같았다.

한강 철로 위로 지나가는 열차가 있다면 더 근사할 것이다.

 

 

 

 

야경이 궁금하기도 했지만,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윤슬을 볼 수 있어 행운이었다.

반짝이는 잔물결이 일렁일 때마다 불꽃이 터지듯 번쩍거렸다. 이렇게 아름다운 윤슬은 처음이다.

다리 아래 강의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물에 발을 내린 거대한 한강대교의 기둥이 단단해 보였다.

영화 괴물의 촬영 장소가 아닐까 잠시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괴물이 등장했던 그곳은 원효대교라고 한다.

 

 

 

 

노들섬의 매력은 강과 맞닿아 있어 더 가까이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강 건너로 보이는 아파트 단지들과 도심의 고급스러운 건물들이 환영처럼 희미해 보였다.

 

 

 

 

어딜 가나 눈에 띄는 여의도의 63 빌딩과 하늘빛의 한강 철로 앞으로 마련된 글자 조형물을 배경으로 사진도 남겼다.

거대해 보이는 한 그루의 나무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온갖 작품들을 초라하게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

 

 

 

 

강가를 여유롭게 돌아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만, 넓은 잔디마당에 돌아왔을 땐 앉아있던 몇 쌍의 연인들은 떠나고 없었다. 따뜻한 날 초록의 잔디가 깔리면 이곳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웃음이 넘쳐날 것이다.

겨울에는 스케이트장으로 활용된다고 하는데 그 모습도 궁금했다. 

 

 

 

 

도서 열람과 구매뿐 아니라 한 잔의 커피도 즐길 수 있는 노들 서가.

오기 전부터 1순위로 기대했던 곳이다.

 

 

 

 

1층은 행사 관계로 입장할 수 없었고 내려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많이 아쉬웠다.

 

 

 

 

책문화를 생산하는 분들의 큐레이션 도서와, 도서 이면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스토리텔링형 매대가 새로웠고,

책꽂이에 놓인 책들은 커버가 예쁘고 내용도 따뜻한 것들로만 구성되어 있는 듯, 골라 드는 책마다 마음에 들었다.

 

 

 

 

서가 곳곳 한 아티스트의 작품이 액자에 담겨 전시 중이어서 색감이 예쁜 식물 그림을 실컷 감상할 수 있었다.

 

 

 

 

2층 입구에 마련된 카페 붘, 옆 테이블에서는 GOODS POP UP 행사도 진행되고 있었다.

 

 

 

 

달밤 라테와 초코 라테를 주문해 잠시 앉아 출출함을 달랬다.

 

 

 

 

문화 예술 공간인 스페이스 445에서는 노들섬의 지난 시간들을 담아낸 사진전 <노들 기록>이 진행 중이었다.

 

 

 

 

노들섬이 복합 문화시설이 되기까지의 건축 현장의 사진들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었는데, 공사장의 비계 구조물에 걸린 사진들은 현장의 느낌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만들어 주었다.

 

 

 

 

공간을 여유롭게 사용한 전시는 흥미로웠다. 한 코너에서는 두 개의 채널로 상영되는 영상도 볼 수 있었다.

 

 

 

 

타원형의 노들섬은 한강대교에 의해 동서로 나뉘어 있다.

다리 위에 다리, 보행다리가 생긴 후 양쪽을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오후 일정이 있어 더 둘러보지 못하고 섬을 빠져나왔다.

이름 하나, 이벤트 하나, 공간 하나, 인테리어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 아기자기하고 정성이 들어간 느낌이다. 

해 질 녘 노을과, 불 밝힌 야경이 잔잔한 강과 어우러지면 근사할 것 같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다른 계절, 다른 시간에 다시 오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곳이 있다.

이곳도 마찬가지다.

 

 

 

 

 

 

한겨레 출판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삶을 살아가면서 필연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슬픔을 또 공부하다니.....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졌다.

 

 

아내가 두통 발작으로 시트를 차내고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때도, 나는 아내의 고통을 알 수 없었다.

나는 다만 아내의 고통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고통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장_ 김훈>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내가 대신할 수 없고, 고통이란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것이라는 이 문장은 김훈의 단편을 읽을 때 꽤나 서글프게 다가왔던 대목이었다.

 

 

저자의 슬픔에 대한 생각은 세월호 침몰과, 아내의 수술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2014년 4월 16일 대한민국은 큰 슬픔에 빠졌다.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났고, 우리는 한동안 노란 리본을 카톡 프로필로 공유하고, 목에, 가슴에, 가방에 달고 다니며 유가족들의 슬픔을 함께 했다.

시간이 흐른 어느 시점부터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건은 희미해졌고 더 이상 노란 리본은 보기 힘들어졌다.

 

슬픔은 고통과 함께 오롯이 유가족들의 몫으로 남아있다.

 

 

감동적으로 보았던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대사 중, 동훈(이선균)과 기훈(송새벽)의 대화가 떠올랐다.

 

(동훈) "누가 나를 알아. 나도..... 걔를 좀 알 거 같고."

 

(기훈) "좋아?"

 

(동훈) "슬퍼."

 

(기훈) "왜?"

 

(동훈) "나를 아는 게 슬퍼"

 

 

동훈은 지안이 '나를 아는 게 슬프다'라고 했지만, 서로의 슬픔을 알기에 그들은 혼자가 아니었다. 지독한 슬픔을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었다. 동훈은 지안이 있어 삶을 다시 살 수 있었고, 지안은 동훈이 있어 비로소 살 수 있게 되었다.

 

 

책 표지는 내가 이르지 못할 슬픔을 가졌을 당신의 뒷모습을 그림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한다.

쓸쓸한 슬픔으로 가득한 사람을 알기 위해 우리는 슬픔을 제대로 공부해야 한다. 

소설과 수필로, 영화와 드라마로, 시와 음악으로, 철학으로, 사건으로, 사회와 문화로........

서로 위로하고 공존하며 행복할 수 있게 말이다. 

 

 

이 책은 꽤 오랜 시간 읽었다. 책을 두 번씩 읽는 습관이 생겼지만 다시 읽을 엄두가 쉽게 나지 않는다. 그만큼 어렵기도, 길기도, 깊은 사색을 필요로 하기도 한 책이다.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에서 좋은 작품을 소개받았듯, 이 책도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이 책은 음악과 영화까지도 거론된다. 평론가이기도한 저자의 작품 해석을 듣는 것도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

 

부록으로 소개된 '중장편 소설 목록'과, '추천사 자선 베스트 10', '인생의 책 베스트 5'까지 귀중한 책 목록들이 수록되어 있다.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소제목을 찾아 읽는 식으로 다시 한번 읽으려 한다.

 

 

 

 

 

 

문래창작촌을 둘러본 후 드라마 <나의 아저씨> 촬영 장소였던 땡땡 거리로 이동했다. 

서울 한복판 남아있는 추억의 기찻길 그리고 드라마 속 후계동 사람들이 지나다녔을 거리가 무척 기대되었다.

 

 

 

 

땡땡 거리 근처에 기다란 은행나무 여러 그루가 눈에 띄었다. 노란 은행잎들은 가지 아래쪽부터 단단히 붙어있어 여간해선 떨어지지 않을 듯 보였다.

 

 

 

 

 

높다란 빌딩들 사이에 남아있는 낮은 지붕의 집들과 허름한 건물들 그리고 여기저기 좁은 골목들이 문래동의 모습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땡땡 소리와 함께 나타난 기찻길!

경의. 중앙선과 경춘선 화물열차가 지나다니는 철로다.

하루에 수백 번 열차가 지나간다는 이 길목에서는 연신 '땡땡'하며 경고음이 울렸다.

 

 

 

 

열차는 수시로 빠르게 지나쳤고, 건널목을 통과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 사람들의 물결도 끊이지 않았다.

여유로운 상황은 정말 잠시 뿐이었다.

 

 

 

간신히 담은 기찻길 멀리로 높은 아파트와 세련된 빌딩들이 보인다.

빌딩 숲 사이로 뻗어있는 철로가 마냥 신기할 뿐이다.

 

 

 

 

이 철로 위를 KTX도 ITX도 지나갔다. 

 

 

 

방송에 소개되었던 방앗간과, 철판에 찍어내는 습판 사진의 추억을 간직할 수 있는 등대 사진관도 길 아래로 있었다.

 

 

 

 

길을 따라 조금 더 걸어  단일 철로 구간인 백빈삼각 건널목 쪽으로 가보았다.

이곳은 지나가는 기차도 드물고 관리원도 없다.

 

 

 

 

미세먼지로 뿌연 하늘이지만 노란 은행잎이 화려하고 곱게 드러나 있었다.

 

 

 

 

환상적인 위치에 자리한 방앗간에서 영양찰떡과 모시송편, 옥수수차를 구입해 골목을 빠져나왔다.

정겨운 가게가 인상적이었고, 소문대로 떡은 맛있었다.

 

 

 

 

Cafe

 LALA 

 

 

땡땡 거리 근처 몇 군데 소박하고 자그마한 카페가 있었는데, 그중 하얀 건물에 불을 밝힌 카페로 들어갔다.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은은하고 감각적인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창과 연결된 테이블, 그 위로 놓인 작은 소품들, 그리고 높은 의자 두 개.

 

 

 

 

네모진 창가에 키를 맞추어 꽂아 둔 몇 권의 책들과 따뜻한 색감의 등.

 

 

 

 

심플하게 출력된 메뉴판과 카운터 뒤로 단정한 잔과 머신들, 쇼케이스에 담긴 에그타르트.

천장에 매달린 샹젤리제를 대신하는 철제등까지....... 있을 건 다 있는 작은 카페였다.

 

 

 

 

입구부터 광고한 에그타르트는 적당히 구워져 정말 먹음직스러워 보였다. 마카오에서 줄 서 사 먹었던 그 바삭한 타르트 생각이 났다. 

 

 

 

 

라테 두 잔을 놓고 편안한 시간을 보냈다. 

 

 

 

 

주차해둔 한강공원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한강대교를 건너갔다. 미세먼지는 아직도 끔찍하다. 

이 다리와 연결된 노들섬은 다음 주에 오기로 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래된 거리는 낡아 불편하고 연신 땡땡거리는 소음을 참아내야 하는 고충이 있겠지만, 화려한 도시 사이 옛 모습이 남아있는 동네는 정겨워 보였다.

좋아하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와 잘 어울리는 동네였다. 걷다 보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걸어가고 있을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성인이 된 아이들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전통있는 사진관에서 습판 흑백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고, 어두운 밤 환하게 불 밝힌 소박한 식당에서는 튀긴 닭 한 마리와 술 한 잔 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돌아오는 길, 검은 봉지 가득 담긴 맛있는 떡은 필수다.

 

 

 

 

 

 

 

아침부터 미세먼지에 안개가 더해져 온통 뿌옇다. 

계획된 서울 나들이를 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오후에는 사라질 먼지를 기대하며 조심스럽게 길을 나섰다.

차창 앞 멀리 높다란 건물들은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드러날 정도로 희미하다. 영화 속 재난상황과 흡사했다.

 

 

문래 근린공원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리니 늦가을로 가득 찬 아담한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다행히 우리 자리는 있었다.

 

 

 

 

 

영일 분식

문래동

 

쓸쓸한 날 잘 어울리는 칼국수로 메뉴를 고르고, 방송 꽤나 탄 맛집이라 이른 시간이지만 먼저 식당으로 향했다.

낮고 허름한 집에 밖에까지 나와있는 냉장고와 주방 도구들을 보니 시골 한 구석에 방문한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온돌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편안했다. 

단출한 메뉴 중 칼국수(6.0)와, 칼 비빔국수(7.0)를 주문했다. 가격도 착하다.

만두를 놓고 좀 고민했지만, 양이 넉넉해 보였고 카페도 갈 예정이라 자제했다.

 

 

 

 

테이블에 놓여있는 겉절이는 방금 버무린 듯 싱싱했고, 매운 국수와 짝꿍인 육수도 담백했다.

 

 

 

 

다른 색과 온도의 국수는 커다란 은색 그릇에 담겨 나왔다. 따뜻한 국수는 시골 할머니가 해주시는 듯한 고향의 맛이 소환되었고, 매운 양념을 한 국수는 쫄깃한 식감에 짜지 않은 적당한 양념이 너무 맛있었다.

먹고 나올 때쯤에는 거의 자리가 없어 보였다. 만족스러운 식사 후 문래창작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래창작촌

 

1960년대 이후 철강 제조사업이 활발했던 문래동은, 90년대 산업의 하락세를 겪으며 많은 철공소들이 빈자리를 남기고 떠나게 되었다.

 

 

 

 

반면 홍대나 대학로 등 예술가들의 아지트였을 장소들이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임대료나 집값이 올랐고 그곳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저렴한 문래동의 빈자리로 하나 둘 옮겨오게 되었다. 

2000년대 초 많은 예술가들이 유입하며 문래창작촌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한 것이다.

 

 

 

 

키가 작고 허름한 집들 사이의 좁은 골목, 세월의 흔적이 새겨진 벽과 지붕들, 예전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이 거리는 익숙하지만 낯설었다.

 

 

 

 

철공소, 거주공간, 카페나 식당, 예술가들의 작업실 등이 공존하고 있는 이곳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곳곳에 매너 있는 사진 촬영을 요구하는 안내가 있었는데, 삶의 터인 이곳이 관광객들로 인해 소란스러워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인 듯 느껴졌다. 

 

 

 

 

문래창작촌이라는 이름과는 다르게 처음에는 작가들의 아지트가 많이 눈에 띄지 않았다.

동네를 거닐다 보니, 곳곳에 애매모호한 이름의 작은 간판들이 걸려있었고, 건물 2층에 자리한 곳이 많이 있었다.

 

 

 

 

문래동에 터를 잡은 오랜 철공 장인들은 떠난 동료들과, 그 자리를 채운 예술가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어떠했을까?

결이 다른 문화가 유입하여 생계의 위협을 느끼고, 관광객들이 드나들며 임대료가 오를까 걱정도 했을 터이다. 

 

가난한 예술가들은 낯선 환경에서 불편하게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또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속에서 편치 않은 생활을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불편한 두 관계가 상생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 이어져가고 있는 듯해 보였다.

삭막한 철공소 철문에 칠해진 감각적인 색의 페인트, 골목 담벼락에 그려진 벽화, 곳곳에 예술가들이 설치했을 사진 촬영 매너 표지판과, 예술가들의 디자인으로 장인들이 용접했을 조형물들이 수줍게 손잡은 그들의 공존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어울리지 않는 철공 장인들과 예술가들의 만남. 이제 이 둘은 꼭 필요한 파트너인 듯하다.

 

여전히 먼지로 뒤덮여 흐리고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지만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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