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향민들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1972년 3층으로 세워진 임진각에 다녀왔다.

군사분계선에서 7km 남쪽,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이곳은 6.25 전쟁의 비극의 남아있는 곳이자, 평화와 통일을 열망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임진각

 

 

임진각 일부가 공사 중이었지만 전망대는 올라갈 수 있었다.

 

 

 

 

3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동전을 사용해 볼 수 있는 망원경이 있었지만 굳이 이용하지 않아도 시야가 트인다.

고향 잃은 슬픔을 달래는 망배단과 노래비, 국군과 유엔 포로들이 건너온 자유의 다리, 피폭된 임진강 철교, 민간인 통제구역이 한눈에 보인다. 

 

자세히 보기 위해 내려가 보았다.

 

 

 

 

실향민들이 고향을 향해 제사를 드리는 추모제단 망배단.

 

 

 

1983년 이산가족 찾기의 배경음악 <잃어버린 30년>의 노랫말이 새겨져 있는 망향의 노래비.

당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 노래는 기네스북에 기록이 되었고, 북한에도 알려졌다고 한다. 

 

 

 

 

잔인한 철책 아래로 색색의 리본들이 흔들리며 가족과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의 슬픔이 너울댄다.

 

 

 

전쟁 중 군수물자를 실고 가던 이 증기 기관차는 장단역에서 피폭된 열차이다.

열차를 사이에 두고 미군과 중공군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셀 수 없이 뚫린 구멍들과 떨어져 나간 열차의 파편들을 보며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민통선을 허가없이 유료(2,000)만으로 건너갈 수 있는 독개다리. 

폭격으로 파괴된 교각을 이용하여 전쟁 전 철교를 재현한 공간이다.

 

 

 

정면 사진 촬영은 가능했지만 좌우측은 금지되었다.

민간인 통제 구역이라 군사 요지 노출 등을 염려하는 듯했고 이는 관광하는 이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객차 재현구간 양 옆으로는 영상이 지나치듯 흘러갔다. 

 

 

 

객실을 빠져나오니 철로 재현 구간이 나온다.

단단하게 덮은 매직글라스 아래로 전쟁의 파편이 모여있다.

 

 

 

 

더 이상 갈 수 없는 끊어진 철로를 홀로그램 영상이 생동감 있게 이어준다. 

 

 

 

 

2층 전망대로 올라가 보았다.

끊어진 철길끝에서 바라보니 단단해 보이는 기둥에 새겨진 총탄 자국이 선명하다.

 

 

 

임진강이 닿을 듯 하고 저 넘어 땅이 보일 듯하다.

옆으로 부지런히 움직이는 곤돌라를 타고 임진강을 넘어 북한과 더 가까이 다녀오는 사람들도 보였다.

 

 

 

 

베이글 맛집으로 알고 있던 Cafe 4B 가 있다 해서 찾아가 보았다.

철책 옆 소초처럼 덩그러니 놓여있는 카페에는 냄새를 풍기는 베이글은 볼 수 없었고 커피 음료만 가능했다. 

 

이 자리는 원래 임진각을 찾은 실향민들이 간단한 안주와 막걸리를 기울이던 민속주점이었다. 

카페로 리모델링된 지금, 체인점의 특징을 과감히 버린 이 공간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며 통일과 화해를 기원하는 또 하나의 장소인 듯했다.

 

 

 

 

 

평화누리 공원

 

임진각과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위치한 공원은 넓은 잔디 언덕과 수천 개의 바람개비로 유명한 곳이다.

분단의 상징인 임직각을 화해와 상생, 평화와 통일로 전환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조각구름 떠 있는 부드러운 색의 하늘 아래, 바람을 맞으며 평화의 메시지를 돌리고 있는 색색의 바람개비들.

수상 야외공연장 뒤로 꽂힌 빨간 압정을 시작으로 통일을 이루겠다는 다짐.

대나무로 만든 거대한 사람 형상 뒷모습에서는 화해를 기원하는 엄숙함이 묻어났다.

 

 

 

 

통일의 꿈을 바라며 만든 다리 내부 벽에는 수많은 아이들의 꿈이 그려져 있다.

 

 

 

어린 나의 아이들과 이곳 언덕에서 연을 날렸던 기억이 있다. 바람의 언덕답게 연은 누가 날려도 훨훨 날았다.

그날 사진 속, 깔깔거리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아이들과 흐뭇하게 바라보는 나의 모습을 보니 그리움이 사무친다.

정성스레 준비한 김밥을 먹는 모습도 남아있다.

 

 

 

 

오늘 우리의 점심은 샌드위치다.

나무가 무성한 그늘에 자리를 잡고 돗자리를 펼쳤다. 두 겹으로 꽁꽁 쌓인 샌드위치를 꺼내니 두툼하고 푸짐했다.

 

 

 

 

 

 

Cafe

Doppio

 

 

돌아오기 전 수상 위에 지어진 카페에서 시원한 음료를 마셨다. 가을답지 않은 더운 날이어서 갈증이 났다.

이층 창가에 앉아 더위를 달랬다.

 

 

 

 

독개다리 끊어진 철로 끝에 서서 멀리 북쪽을 바라보시던 노인분들의 슬프고 안타까운 시선이 기억난다.

나 또한 그런 시선이었을까? 철책 아래서 나라를 지키고 있을 아들의 소식이 간절하다.

 

과거의 역사가 대물림 되고 있는 이 아픈 시간의 끝이 잔디언덕이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처럼 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추석 연휴 마지막 날 아침, TV 프로그램 히든싱어 김광석 편 재방을 보던 중이었다.

남편이 갑작스레 대학로 갈래? 해서 나선 길.

 

 

하늘 좋은 날 마로니에 공원이라니! 예상치 않았던 행운이다. 

 

대학로에 오는 이유는 다양하다.

연극이나 공연을 보기 위해서, 예쁜 소품을 사고 싶을 때, 젊은 기운을 느끼고 싶을 때 이곳을 찾는다.

 

 

 

 

학전 Blue

 

무엇보다 이곳에는 김광석의 1000회 공연을 보았던 학전 소극장이 있다. 

학전의 벽을 쓸쓸히 지키고 있는 그의 흉상을 연중행사처럼 찾는다.

 

 

 

 

이 날 학전 Blue에서는 어린이들의 연극 <우리는 친구다>가 공연되고 있었다.

 

 

 

 

수없이 들었고, 지금도 여전히 나의 플레이 리스트 대부분을 차지하는 그의 아름다운 노래와 노랫말들은

듣고 있어도 그립다.

 

 

 

 

소바의 온도

 

이름이 마음에 들어 눈여겨 두었던 곳이다.

 

 

 

아점으로 김치우동과 일반우동을 주문해 나누어 먹었다.

일본풍의 크고 단단한 대접에 담긴 뜨끈한 우동은 생각했던 것보다 맛있었고 양도 푸짐했다.

 

 

 

 

 

Cafe

Taschen

 

 

 

거리를 거닐다 비가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우산 없이 나온 길이라 비를 피해 갈 장소를 찾았다. 그렇게 많던 카페가 찾으니 보이지 않는다.

아슬아슬하게 찾은 외관이 괜찮아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다.

 

 

 

수없이 왔던 대학로인데 이곳은 처음이다. 대형 북카페다.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책들은 디자인, 건축, 사진, 영화 등 예술 관련 서적이었다.

독일 출판사 타센의 협력으로 운영되고 있는 이 카페는 넓은 실내와 야외 좌석이 있는 근사한 카페였다.

 

 

 

 

책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몇 권 꺼내 보니 고급스러운 커버의 아트북이 대부분이었다. 그 사이에 꽂혀있는 예쁜 동화책을 발견하고 내심 기분이 좋았다.

 

 

 

 

공간이 넓었지만 이미 이곳의 매력을 알고 있는 손님들로 붐볐다.

음료 외에도 빙수나 다양한 햄버거 메뉴도 있었는데 다음에는 수제버거를 먹으러 와도 좋을 것 같다.

 

 

 

 

남편은 시원한 에이드, 나는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고급 서적 사이에서 분위기를 잡아 보았다.

 

 

 

 

아트 박스에서 몇 가지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집으로 돌아왔다.

바람같이 다녀온 대학로 나들이. 연휴의 마무리를 잘 한 느낌이 들어 뿌듯하다.

 

시작되는 일상을 또 잘 살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짧게 지나가는 가을을 최대한 느끼고 기억하고 싶다. 오늘은 종로 나들이다.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 이른 점심을 먹고, 돈의문 박물관 마을을 둘러본 후, 창경궁과 서울역사박물관 관람까지 야무진 하루 계획이다.

 

 

 

 

허수아비 돈까스. 카레전문점

 

정동점

 

 

 

경향신문사 건너 편 2층에 자리한 돈가스 카레 전문점.

11시 오픈 시간에 맞춰 가니 첫 손님이다. 넓지 않은 공간이었지만 단정한 느낌이었다.

 

 

 

 

식당의 시그니쳐 메뉴인 무우를 갈아 올린 오로시 가스(11.0)와, 돈가스와 생선가스가 함께 나오는 정식(11.0)을 주문했다.

 

 

 

 

처음 보는 비주얼 오로시가스.

곱게 갈아 물기를 뺀 무에 소스를 뿌린 후, 잘 튀겨진 고기와 함께 먹으니 느끼하지 않다.

고기의 두툼한 식감과 튀김옷의 바삭함, 무의 개운함이 입안에서 잘 어우러진다.

 

정식 메뉴에 나오는 정통 돈가스는 그 나름의 매력을, 타르타르소스를 곁들인 생선가스는 고소하고 맛있었다.

 

 

 

 

 

돈의문 박물관 마을

 

 

만족스러운 식사 후, 돈의문 박물관마을로 향했다.

 

한양도성의 서쪽 성문 안 첫 동네, 새문안 동네.

그곳의 역사적 가치와 흘러간 근현대 서울의 삶을 기억하고자 마련된 이 장소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박물관 마을이다.

 

 

 

 

안내소처럼 자그마하게 마련된 공간에서 입장을 위한 팔찌를 손목에 둘렀다. 입장은 무료지만 예약과 요금이 필요한 체험들도 있었다.

 

 

 

 

계단을 오르니 마을 전체가 추억의 공간이다. 그야말로 어제와 만난 오늘이다. 

 

 

 

 

TV 드라마에서 본 듯한 서양식 클럽 돈의문 구락부.

 

 

 

 

역사관은 사전 예약이 마감되어 입장할 수 없었다.

 

 

 

 

 

1960~80년대 사이의 극장을 재해석해 놓은 새문안 극장.

극장의 손간판과, 상영 시간을 붙여놓은 매표소, 추억의 웬디스 햄버거 메뉴가 있는 매점에는 다정함이 넘쳐났다.

실제로 하루 4번 영화 상영도 이루어진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쉬어가는 중)

 

 

 

어린 시절 만화가게를 드나들며 누가 빌려가지 않았기를 아슬아슬한 마음으로 찾아보았던 불새의 늪.

지금은 내용이 기억도 나지 않지만, 그때는 수십 번을 읽고도 또 읽었던 책이다.

 

 

 

 

좁은 골목골목마다 아이들과 젊은 부모들이 정겹게 다니고 있었는데, 다양한 체험 활동들이 있어 초등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장소인 듯했다. 과거를 기억하고, 추억을 공유하며, 역사를 알리는 이 공간은 생기가 넘쳐 보였다.

 

 

 

 

 

Cafe

Heyda

 

 

경희궁서울역사박물관을 둘러본 후, 정동 1928 아트센터 1층에 있는 카페로 향했다.

Heyda, 헤이다. 이름이 예쁘다.

빨간 벽돌의 근사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돈의문 박물관의 연장선인 듯했다.

 

 

 

 

 

초록 식물과, 책들, 서양 느낌이 물씬 나는 벽난로와 소품들 사이로 고급스러운 자개로 뒤덮인 테이블이 독특하게 느껴졌다.

 

 

 

 

2층으로 올라가니 벽면을 채운 책장과 색을 맞추어 꽂아 놓은 책들이 눈길을 끈다. Cafe 같지 않은 분위기 때문인지 좌석이 비어있다. 근사한 이곳 창가에 자리를 잡았다.

 

 

 

 

오늘도 많은 곳을 둘러보았다.

 

봐도 봐도 끝이 없는 여행지와 역사적인 장소들 박물관들, 개성 있는 메뉴와 분위기로 손님들을 사로잡는 수많은 맛집들과 근사한 카페들은 줄지 않는 곳간처럼 무진장이다. 

 

달달한 카페인과 함께 잠시 숨을 고르고 하루를 마무리했다.

 

 

 

 

 

 

 

 

 

경희궁에서 나와 서울역사박물관 쪽으로 걸었다. 박물관 뒷마당은 자연스레 궁과 연결되는 동선이다.

무료로 관람할 수 있고, 온라인 예매를 해두면 편하다.

 

 

 

서울 역사박물관

 

인상적인 색감의 건물과 역사가 담긴 조형물들이 고풍스러운 나무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후문으로의 출입이 통제되어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온라인 예매를 해 두어 QR 체크 없이 체온계의 울림을 듣고 입장했다.

넓은 계단과 높은 천장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탄성이 절로 났다.

해외여행 시 방문했던 한 박물관 느낌이 나기도 했다.

 

 

 

 

야외마당과 4층 건물 안에는 다양한 전시와 볼거리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한 두 가지만 둘러보기로 했다.

1층 로비에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거대한 작품들이 눈길을 끌었다.

 

 

 

같은 층에서는 '여의도'라는 주제의 기획 전시가 진행 중이었다.

'국회의사당과 63 빌딩, KBS가 있는 한강 사이의 섬' 정도로 알고 있었던 곳.

높은 빌딩 구경과 방송사 견학을 어린 나의 아이들과 갔었고, 높은 건물 아래층에서 시댁 식구들과 근사한 코스요리를 먹은 기억도 있다. 

 

서울의 다른 지역과 다르지 않았던 여의도의 역사를 되짚고 전시를 하니 의미가 있다. 특별하고 다시 보인다. 

사람이던 사물이던 자세히 들여다 보고, 의미를 부여하고, 생각하면 그럴 것 같다. 

 

 

 

 

기증유물 전시 5실에서는 '정범태의 결정적 순간'이라는 타이틀의 사진 전시를 볼 수 있었다.

오십여 년 동안 서울의 현장을 목격하고 담은 한 사진작가의 흑백사진들이 따뜻한 색의 벽면에 걸려있었다.

 

 

 

 

또 다른 기증유물 전시실에서는 단체나 개인에게서 받은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를 보다 보니 집에 버리지 않고 모아 둔 물건 몇 가지가 생각났다.

참 옛날 사람이구나........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야외 전시에는 흥선대원군의 조부와 아들, 손자의 신도비가 세워져 있었고, 마지막 전차 381호의 모형과 다양한 전시물들도 볼 수 있었다.

 

 

 

 

가을과 함께 탐스럽게 익어가는 감나무의 열매는 언제 보아도 예쁘다. 단순하지만 화려하다.

잎이 크고 열매가 굵직하며 색감의 대비가 강렬하다.

 

 

 

경희궁의 쓸쓸한 분위기와 서울 역사박물관 마당의 신비로운 모습이 이 계절과 잘 어울렸다.  

 

 

 

 

 

 

 

 

 

 

 

서울 5대 궁궐 중 유일하게 낯설게 느껴지는 경희궁을 다녀왔다.

광해군 때 창건되어 경덕궁이라 칭하다 이름이 바뀌었고, 도성 서쪽에 있어 서궐이라고도 한다.

 

190여 개의 전각과 문이 있었고, 인조부터 철종까지 10명의 왕이 살았던 거대하고 화려했던 궁궐.

숙종이 태어나고 승하했던 곳, 경종과 정조의 즉위식이 있었던 곳, 숙종과 헌종의 가례, 영조와 순조의 승하 등 살아있는 역사와 수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는 곳이다.

 

흥선대원군 때 100여 개의 전각을 경복궁 중건을 위해 옮겼고, 일제강점기 경성중학교가 들어서면서 대부분 헐리고 훼손되어 그 위상을 잃어버렸다.

 

현재는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세 전각이 복원되어 있다. 

 

 

 

경희궁의 정문 흥화문

티켓부스도, 안내하시는 분도 없이 덩그러니 서있어 처음엔 이곳이 궁으로 들어가는 입구인지 몰랐다.

 

이 문은 일제가 이토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건물 박문사의 정문으로 사용되었었다.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 시 다시 옮겨 놓았지만, 원래 흥화문 자리에 구세군 건물이 있어 제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하였다.

 

정문과 정전을 일직선으로 배치한 경복궁과는 다르게 흥화문은 숭정전 왼편에 위치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두 전각이 일직선으로 놓여있지만, 자리를 잃고 어색하게 서있는 단층 지붕 문은 쓸쓸해 보였다.

 

 

 

 

 흥화문 맞은편으로 City 은행 본사가 하늘을 찌르며 서있다.

 

 

 

정문을 지나 길을 따라 걸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옆쪽으로 아담한 공원에 쉬어갈 장소가 군데군데 보였다.

 

 

 

경희문의 정전인 숭정전

복원한 건물이고, 조선 시대의 숭정전은 동국대학교의 법당 '정각원'으로 쓰인다고 한다.

 

 

 

정전 좌우로 배치된 건물들의 기와가 여느 궁과는 다른 느낌을 주었다. 

흐린 하늘 아래 인적이 거의 없는 유적지가 매우 독특했다.

 

 

 

계단을 올라 안을 들여다보니 일월오봉도가 있는 어좌는 다르지 않다.

 

 

 

 

 

문을 지나 마주한 곳은 경희궁의 편전인 자정전이다.

회의, 경연 등 공무를 수행하던 곳으로 역시나 복원한 건물이다. 이곳은 숙종이 승하하였을 때 관을 모셔두었던 빈전이기도 하다.

 

 

 

자정전의 복도로 이어진 곳을 따라 가보니 경복궁 교태전에서 보았던 계단식 정원이 있다.

화계에 꽃은 없었지만 봄이 돌아오면 외로운 궁에 화사함을 줄 것 같다.

 

 

 

영조의 어진이 보관된 태령전과 그 뒤로 기이한 모양의 사암을 보지 못했다.

리플릿만 펼쳐봤어도 놓치지 않았을 텐데 아쉽다. 

 

 

 

 

 

 

 

경희궁 터에 세운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금천교를 만났다. 흥화문 안에 놓여있던 다리이다.

그러니, 원래는 경희궁의 정문이 이 다리 앞 쪽에 있어야 한다. 

 

묻혀있던 금천교를 박물관 건립 시 발견된 석조물을 기반으로 2001년 복원했다고 한다.

인왕산의 물줄기도 끊어지고 보호해주는 문도 없는 금천교는 현대적인 박물관 앞에서 생경하게 보였다.

 

 

 

문화재청에서 관리하는 다른 4개의 궁과는 달리 경희궁은 서울시에서 관리한다.

활발하게 복원을 하고 있는 다른 궁들처럼 이곳도 대접을 받으면 좋겠다. 가장 많이 훼손되어 복원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지킴이 하나 없는 궁궐은 왠지 안쓰럽게 느껴진다.

 

 

넓지 않은 공간에 몇 채 남지 않은 전각을 봤지만 경희궁은 묘한 매력을 주었다.

지친 일상을 떠나 가끔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박력분 사용을 위해 오랜만에 쿠키를 구웠다. 

오늘은 호두쿠키다.

 

 

 

박력분          200g 
버터             150g
흑설탕          100g~110g
베이킹 소다   1/2 작은술
소금             약간

달걀 1개      
호두 적당량   (80~100g)

바닐라 엑스트렉 (없으면 패스)

 

 


 

 

 

 

 

 

1. 버터와 달걀을 실온에 둔다.

2. 호두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프라이팬에 살짝 굽는다.

3. 버터가 말랑해지면 핸드믹서로 풀어준다. 

  (이 과정에서 믹서 사용이 서툴러 버터가 튀고, 거품기에 달라붙는 등 뜻대로 되지 않았다.

   해서 숟가락으로 으깨가며 한참 섞었다.)

4. 버터가 어느 정도 풀어지면 소금과 설탕을 섞는다. 이때 설탕은 두세 번에 나누어 넣는다.

5. 달걀과 바닐라 엑스트렉 액체를 조금 섞고 다시 섞어준다. 

6. 체에 곱게 친 밀가루와 베이킹 소다를 섞고 고무 주걱으로 가볍게 섞어준다. (너무 많이 치대지 않는다.)

7. 호두를 넣고 가볍게 섞는다. 

8. 오븐 트레이에 종이호일을 깐 후 반죽을 떼어 모양을 잡고 간격을 두어 놓는다.

9. 18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10~15분 정도 타지 않도록 중간중간 살피며 구워 주었다. 

 

 

 

오븐 트레이 두개에 8개씩 나누어 구운 후, 식힘판으로 옮겨 한참을 두었다.

 

 

 

흑설탕을 넣어 진한 색감의 울퉁불퉁한 모양 쿠키가 먹음직스럽다.

 

 

 

한 입 먹어보니 고소한 호두의 식감이 너무 좋다. 버터와 설탕의 양이 어마어마하더니 역시 달고 맛있다.

호두를 더 넣어 입안에 호두가 잔뜩 씹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집에 있던 비닐 포장지에 쿠키를 넣으니 베이커리나 카페에서 파는 것과 다르지 않다. 

선물용으로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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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출판도시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된 파주 출판도시는 출판사, 인쇄소, 제본소뿐 아니라 서점, 도서관, 유통센터, 은행, 심지어 전시장, 박물관, 출판연구소 등 책의 생산과 유통, 문화센터까지 책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마을이다.

 

가을을 느끼기에 충분해 보이는 이곳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딸의 알바가 끝나기를 기다려 픽업 후, 북쪽으로 한 시간 반 남짓 달렸다.

감각적인 건물들 사이를 지나 도착한 목적지.

 

 

 

 

라이브러리 스테이

지지향

 

책과 함께하는 일박이 무척 기대되었다.

이름이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종이의 고향이라는 의미다.

 

 

 

유스호스텔 혹은 콘도 느낌의 복도에 책장을 두니 분위기가 다르다. 책이 주는 효과는 실로 대단하다.

말소리도 발소리도 마음도 고요해진다.

 

 

 

격자무늬 창에 하얀 커튼, 정겨운 마루 바닥에 독서를 위한 책상, 전면에 거울을 둔 화장대, 낮은 턱 위로 마련된 하얀 매트리스와 이불 3세트. 

 

 

 

책상 위에 잘 골라 둔 몇 권의 책들과 TV 없는 방이라는 안내판.

이런 숙소는 처음이다. 모든 것이 참신했다.

 

 

짐을 두고 밖으로 나섰다.

 

 

 

 

지혜의 숲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 1층에 위치한 지혜의 숲은 도서관이다. 나무가 책이 되고, 책이 지혜가 되는 숲.

천장까지 꽉 짜인 책장은 정말 숲과도 같은 느낌이다.

 

 1, 2관은 연결되어 있고, 3관은 숙소 지지향의 로비와 조식을 먹는 장소이기도 하다.

 

 

 

 

지혜의 숲 1,2

 

지혜의 숲 1은 학자, 지식인 혹은 연구소의 기증도서를 모아 둔 곳이다.

한 사람이 읽은 책의 역사를 보며 그, 그녀의 삶을 짐작해 볼 수 있는 신비로운 공간이다.

 

 

 

2관은 출판사가 기증한 도서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서 분류도 분야별이 아닌 출판사별로 되어있다. 하드커버로 된 아이들의 동화책도 눈길을 끌었다.

 

 

 

Cafe 파스쿠찌가 있어 대형 북카페 느낌이 나기도 하는 이곳에 각자 마음에 드는 책을 골라 앉았다.

사실 책에 집중하기보다는 분위기에 매료되었다.

 

근처에 사는지 편한 차림의 젊은 부부들이 자녀들과 책을 읽고 있었고, 테이블 위에 음료를 놓고 담소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홀로 고독한 책 여행을 온 젊은이들도 눈에 띄었다. 

 

 

 

 

지혜의 숲 3

 

지지향의 로비이기도 한 지혜의 숲 3은 출판사들의 책과 기증도서로 둘러싸인 여유로운 장소이다.

조식을 먹는 근사한 레스토랑으로 이용되기도 한다. 인터넷으로 숙소 예약을 한 고객들에게 무료 조식 쿠폰을 제공하고 있었는데 다음 날 아침이 무척 기대되었다.

 

 

 

 

 

북소리 책방

 

지혜의 숲 2 입구 쪽에 마련된 책방 북소리. 서점 이름도, 천장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책도 재미나다.

 

 

 

각자 읽고 싶은 책이나 마음에 드는 굿즈를 골라 보았다.

최은영 작가의 노란 커버 책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책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그녀의 책이라면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단번에 집어 들었다.

 

 

 

기념품이 주는 즐거움은 생각보다 크다.

독서도 하고, 책도 샀으니 이제는 예쁜 Cafe를 갈 차례다.

 

 

 

 

Book Cafe

NOON

 

단지 곳곳에는 수많은 출판사들과 함께 개성 있는 카페들도 많이 있었다.

테라스에 초록 식물들이 넘쳐나고, 차양과 파라솔의 색이 그것들과 닮아있는 한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음료를 주문하고 야외로 나왔다.

시원한 밀크티, Tea의 한 종류인 배러 댄 쵸코, 나는 쌉쌀한 에스프레소에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얹은 아보카도로 사치를 부려 보았다.

 

 

 

선선한 가을바람을 맞으며 하나 둘 조명이 들어오는 해 질 녘 조용한 분위기에 취해 평상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다. 이런 잔잔한 여행이 서로에게 신뢰와 사랑을 더해 주는 것 같다.

 

카페를 나와 차를 타고 프로방스 쪽으로 이동했다. 남편이 정해 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작은 프랑스 마을을 다녀왔다. 

 

 

 

어둠이 내린 지지향은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다음날, 일찍 깬 나는 조식 전 홀로 산책을 나섰다.

 

 

 

어제 들어가 보지 못한 인쇄박물관은 이른 아침 여전히 잠겨 있었다.

 

 

 

나무와 어우러진 근사한 조형물들도 보였고,

 

 

 

주말이라 사원들 없는 효영 출판사와 민음사 건물이 한적해 보였다.

 

 

 

이름부터 사랑스러운 어린이 북카페 밀크 북.

 

 

 

가을이 왔음을 알리는 붉은 담쟁이 옆, 세월의 흔적이 담긴 폐자동차. 앞 차창에 흰 글씨로 새겨진 이육사의 시 '광야'가 묘하게 어울렸다.

 

 

 

정조시대 상류층 가옥도 볼 수 있었는데, 정읍에 있던 김명관 고택 중 별채를 옮겨 놓은 것이었다.

세련된 현대식 건물들 사이 한옥은 한옥마을에서 보던 것보다 더 독특하고 운치 있었다.

 

 

 

규모가 꽤 커 보이는 9 Block Cafe.

체인점인 이곳은 파주 여행 중 정말 자주 볼 수 있었다.  

 

 

 

 

 

문발 살롱

지지향 조식

 

 

 

여유롭게 책에 둘러싸인 공간, 넓은 창, 널찍하게 배치한 낮은 테이블과 세련된 색감의 소파,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이런 공간에서 아침식사라니 정말 환상적이다.

 

 

 

 

배식대에 정갈하게 마련된 음식들은 아침메뉴로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았다.

토스트 두쪽이 담긴 푸짐한 남편의 접시, 야채 중 토마토만 집어온 딸. 

삶은 달걀이 있는 나의 아침식사에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시리얼을 더해 먹으니 충분했다. 

간소하지만 럭셔리한 블랙퍼스트다. 

 

 

딸이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마음 쓰는 게 보인다. 

계절과 함께 달라지는 자신과, 세월과 함께 나이 드는 부모의 상황이 눈에 보이나 보다.

기특하다가 이내 짠한 마음이 든다.

 

 

이번 여행은 우리에게 너무 특별했다. 

짧은 여행이라 책 읽는 시간을 많이 가지지는 못했지만, 책과 함께한 소중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2018, 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

 

 

 

 

책이 출판된 2018년부터 궁금했던 책이다.

당시 도서관 검색대에서 여러 번 자판을 눌러봤지만 매번 대출 중. 대기자도 있어 예약도 포기. 잊고 있었던 책이다.

 

코로나로 도서관을 가지 않은지 오래였다. 최근 방문하니 충분한 거리두기를 하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쯤은 대출이 가능할까 검색해보니 그동안 책의 수가 늘어 4권이나 대출 가능이다. 책을 뽑아 들고 자리를 잡았다.

 

 

 

어두운 면을 드러내는 건 내게 자유로워지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것 또한 나라는 걸 내 소중한 사람들이 꼭 알아주면 좋겠다.

 

 

속표지 글을 보면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임을 알 수 있다.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 증상이 지속되는 상태)를 앓고 있는 저자와 정신과 전문의의 대화를 녹취하여 쓴 글이다. 

책을 읽으며 이렇게나 리얼하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라면 용기내지 못했을 것 같다. 자유로워지려고 나의 속을 보여주는 순간 또 다른 무언가가 나를 옥죄어 버릴 것만 같다. 곱지만 않은 세상의 눈도 두렵다. 그녀의 용기가 대단해 보인다. 

 

 

 

굳이 뉴스를 켜거나 포탈 검색을 하지 않더라도, 주변에 우울감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코로나로 일상이 파괴된 요즘은 정도가 더 하다.

 

존재 차체로도 힘든 일이 많은데 세상의 기준은 잔인하리만치 높다.

우리는 이상화된 기준에 도달하고자 안간힘을 쓰지만 늘 실패하곤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을 내리거나 죄책감을 느끼며 우울해하는 것이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으란다.

업무 능력이 좋으며 싹싹하란다.

착하고 얼굴도 예쁘란다.

식생활을 잘 하고 살도 찌지 말란다.

바쁘게 살고 정리정돈도 잘하란다.

예의도 바르고 인기도 많으란다.

좋은 학교에 가니 장학금도 받으란다.

군대 가니 적응도 잘하란다.

육아도 잘하고 돈도 벌란다.

 

애초에 어그러진 기준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 기준을 다시 설정해야 한다.

우리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게는 될 수 없다.

 

SNS 상에 올라오는 완벽한 비율의 몸매와 그린 듯한 얼굴. 한 번쯤 가져보고 싶었던 옷과 신발 액세서리들.

낙원에서나 먹을 듯한 비주얼의 음식들과 그림으로만 봤던 해외 유명 장소들.

사람들은 비교하며 우울해진다. 화려함에 감추어진 그들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으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매일이 즐겁고 행복할 수는 없다.

어느 날 어느 순간은 우울하고, 다른 날 다른 순간은 또 행복하다. 그것이 인생이다.

그러니 우리 모두는 어느 정도는 우울한 사람들이다. 너무 호들갑스럽게 반응하지 않으면 좋겠다.

저자의 고백도, 주변의 일들도, 학교나 사회에 부적응한 이들도 다 그럴 수 있는 우리 자신의 문제라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 감기가 걸리면 병원에 가듯이 손 붙잡고 병원 가서 치료받고 필요하면 약도 먹고 덤덤하게 용기를 주면 좋겠다.

너무 높은 이상을 들이밀며 왜 그것도 못하냐고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를 정확히 알고, 소중히 하고, 표현하자.

실수나 실패해도 괜찮고, 하고픈 일에 새롭게 도전도 해 보면서 우울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도 해보자.

인생을 큰 문제없이 살아내는 이런 과정을 어려서부터 수학이나 영어보다 더 중요하게 가르치면 좋겠다. 

우리 모두의 일이니 말이다.

 

 

 

저자의 치료는 계속되고 있다. 책은 그녀가 완치되며 끝나지 않는다. 하루아침에 뚝딱 우울증이 없어지진 않는다.

그러나 병원에 다니며 자존감을 높이려는 노력, 직장을 다니고 책을 내는 그녀의 행보는 계속되고 있다. 

'솔직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 이 책도 노력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같은 제목의 책 2편에서는 더 이상 병원에 다니지 않아도 되었을까? 

저자도, 나도, 나의 소중한 사람들도, 현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도 너무 많이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울이 고개를 들 때, 너그러운 마음과 웃음으로 털어버리고 행복한 하루를 더 많이 간직했으면 좋겠다. 

우울감보다는 행복감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나날들을 보내기를___________.

 

 

 

 

 

 

 

 

<2020, 알에이치코리아(RHK)>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가끔 TV 채널을 돌리다 보면 볼 수 있었던 얼굴. 타일러 라쉬가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제대로 본 적은 없다. 방송인 정도로만 생각했던 그의 환경 관련 출판 소식이 생소했다.

 

검색해 보니 현재 WWF(세계 자연 기금)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이다. 미국 시골에서 태어나 자란 그는 어려서부터 피부염증, 알레르기, 천식 등을 앓으며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온갖 종류의 나무와 꽃, 동물의 털과 깃털, 특정 음식 등을 멀리해야 했던 그가 오히려 자연의 소중함을 더 느끼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따뜻한 물이 나오는 집, 계절에 상관없이 쾌적한 쇼핑몰,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사무실... . 우리가 갇혀 있는 작은 상자들은 편하지만, 그 상자를 감싸고 있는 것은 자연이고 지구이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갇힌 작은 상자가 편하고 쾌적하기 때문에, 지금 지구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잘 보지 못하는 듯하다.

<두 번째 지구는 없다_타일러 라쉬>

 

그는 우리의 무지를 안타까워 한다.

지구가 줄 수 있는 양 이상으로 소비하고 있는 현실과, 집이 물에 잠기거나, 불타 사라지거나, 전염병에 노출되어 죽게 될 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역사를 왜곡하고 감추려하는 일본에 분노하듯이 환경 문제도 역사 문제와 마찬가지로 민감하게 반응해야 한다.

환경파괴를 일삼는 기업들에 관해서는 제재나 처벌을 요구해야 한다. 

개인적인 노력도 중요하지만 사회, 기업, 국가, 전 세계가 하나가 되어야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임은 자명하다.

자연은 국경없는 우리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방송인의 책은 이해하기 쉽고 잘 읽혔다. 

단 하나 뿐인 지구의 위험천만한 현실을 다시 한번 직시할 수 있었다. 진정 두 번째 지구는 없다.

 

그의 개인적인 실천은 이 책에도 담겨있다.

콩기름 잉크와 FSC인증 재생지 사용, 종이 손실을 최소화한 판형과 디자인의 간소화, 띠지 생략 등은 치열한 노력끝에 얻은 결과이다.

 

두껍고 어려운 용어 투성이의 환경 책이 꺼려진다면, 타일러 라쉬의 작은 책으로 시작해도 좋겠다.

분명 무언가를 하고 싶어질 것이다.

 

 

 

 

 

 

 

<돋을새김>

 

 

 

월플라워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스티븐 크보스키

 

 

 

청소년 성장소설인 이 책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함께 거론되기도 한다.

막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 주인공 찰리와 고등학교 친구들의 생활을 보면 담배와 술, 마약, 성관계, 동성애, 왕따 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미국에서 이 책에 대한 도서 검열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2개 학군에서는 금서로 정해졌다고 하니 아무리 문화 차이가 있더라도 일반적인 상황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미국 고등학생과 대학생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책과 영화의 행보로 보자면 덮거나 피해 갈 수 없는 문제들임에는 확실해 보인다.

 

Wallflower

벽 틈에서 자라는 꽃.

비격식으로는 무도회에서 파트너가 없어 벽 쪽에서 보고 있는 여자를 지칭하는 말.

일반적으로는 집단에서 소외된 사람을 가리킬 때 쓴다.

어쩌면 왕따.

 

 

 

주인공 찰리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집단생활에 소극적이며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이다.

하나뿐이었던 친구의 자살, 사랑하던 이모의 죽음과, 어린 시절 자신도 모르는 채 당한 성폭력은 그를 더욱더 안으로 숨게 만드는 트라우마였다. 월플라워에 불과했던 그의 혜택 (The perks)은 무엇이었을까?

 

이름 모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그는 편지를 통해 생활과 생각 고민 등을 나누며 우울하고 아슬아슬한 시기를 버텨간다. 또한 찰리의 곁에는 친구 샘과 패트릭, 빌 선생님 그리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다.

친구들의 공감과 우정, 선생님의 안목과 칭찬, 가족의 묵묵한 지지와 사랑은 그를 세상에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자신의 존재를 인정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네가 이야기도 잘 들어주고 또 누군가에게 기댈 어깨가 돼준다는 건 훌륭한 일이야. 하지만 기댈 어깨가 필요한 게 아니라 어깨를 둘러줄 팔이 필요할 때는 어떻게 할 건데? 구석에 가만히 앉아 너의 인생보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앞세우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돼. 그렇게 해선 안된다고. 너도 어떤 행동을 해야 해."

_샘의 말 중

 

"난 너를 위해 죽을 수는 있지만 너를 위해 살진 않을 거야." 그 말은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 후에는 타인들과 인생을 공유하기 위해 선택해야 한다는 뜻인 거 같아. 어쩌면 그런 태도가 사람들로 하여금 '참여'하도록 만드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 분명하게는 모르겠어. 내 경우에도 잠깐 동안이라도 '샘을 위해' 살 수 있을지는 모르겠거든. 다시 말해, 샘도 내가 그렇게 사는 걸 원치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바람직한 일일 것 같아. 어쨌든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

_찰리의 편지 중

 

'참여'와 '행동'이라는 단어가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월플라워였던 찰리는 본인의 생각을 표현하며 행동하고 참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소외된 삶으로 많은 진통을 겪었지만 결국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깨달으며 견고하게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그래서 <The perks of being a wallflower> 였을까.

 

 

 

 

그런 걸 보면 현재의 우리가 되는 데에는 아주 많은 원인들이 있는 것 같아. 우리들은 그런 원인들에 대해 대부분 전혀 알 수가 없을 거야. 하지만 비록 우리들이 어디에서 태어날 것인가를 선택할 능력은 없다 해도, 태어난 곳에서부터 어디로 갈 것인가를 선택할 수는 있어. 우린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도 있어. 그리고 우리의 행동에 대해 만족하도록 노력할 수도 있어.

_찰리의 편지 중

 

하지만 내가 눈물을 흘렸던 건 얼굴 위로 부딪쳐오는 바람을 맞으며 터널 속에 서 있는 것이 바로 나라는 걸 갑자기 깨달았기 때문이었어. 시내를 보든 안 보든 아무런 문제가 되질 않았어. 그것에 대해선 생각도 하질 않았어. 내가 그 터널 속에 서 있었기 때문이야. 내가 그곳에 존재하고 있는 거지. 그것만으로도 영원함을 느끼기엔 충분했거든

_찰리의 편지 중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 내가 존재하는 곳이 제자리.

이도우 님의 책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에서 나의 마음을 두드린 구절.

나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이 말을 요즘 반복해서 되뇌고 있던 중이었다.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제대로 바라보기. 그곳에 머물러 그 일들을 느끼기.  그리고 그 일들에 있어 자기 자신으로 남아 있기............  내가 그곳에 존재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이다. 

 

 

 

같은 제목의 영화를 먼저 보았다. 책을 읽으니 작가가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의 깊이가 더해진다.

로건 레먼, 엠마 왓슨, 에즈라 밀러 세 배우의 연기도 좋았다. 그중 패트릭 역, 에즈라 밀러의 개성 있는 외모와 연기는 단연 인상적이었다. 

 

성장의 과정을 겪고 있는 모든 청소년들이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삶의 순간순간의 선택에서 최선을 다하기를.

후회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를.

자신의 인생을 살며 다른 이들과 함께 공유하고 참여하기를.

 

그래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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