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더위는 아직이지만 아침저녁 서늘한 기운과 공기는 가을이다.

계절과 함께 본격적인 나들이도 시작되었다.

 

일산에 볼일이 있어 잠시 들린 후, 돌아오는 길에 서울 북악팔각정으로 향했다. 

 

 

 

북악팔각정

 

 

 

굽이굽이 난 북악 스카이웨이를 오르다 보면 양 옆으로 무성한 나무들이 숲을 이룬다. 계절마다 변하는 산의 모습이 아름다울 거라 잠시 생각했지만, 높은 고도와 커브길을 도는 자동차의 흔들림에 살짝 멀미가 나기도 했다. 

 

가파른 도로에는 산악 바이크를 즐기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건강한 구릿빛 피부에 몸에 딱 달라붙는 방수 방풍의 옷을 입고 부지런히 페달을 돌리는 모습에서 젊고 활기찬 기운이 느껴졌다. 그리 넓지 않은 차로에 차와 바이크가 함께 달리는 것이 위험해 보였다.

 

70, 80년대 이 도로는 신혼여행지로 유명했다고 한다.

택시를 타고 북악 스카이웨이 길을 올라 팔각정 휴게소에서 쉬어가는 여행. 소박한 허니문이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전부터 명소였는데 오늘에서야 알게 된 것도 신기한 일이다.

 

 

 

주차장에 주차 후 계단을 오르니 팔각모양의 정자가 보인다. 휴게소에서는 음료나 라면, 스낵 등을 판매하고 있었고 별도로 마련된 카페와 레스토랑도 있었지만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어젯밤 야경을 본 사람들 중 일부의 소행인지, 빈 맥주캔과 먹다 남은 음식 쓰레기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고, 카페의 것인 듯 보이는 테이크 아웃 잔도 군데군데 세워져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이 훌륭한 관광지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 무척 안타까웠다. 

 

 

 

자욱한 안개 때문에 파란 하늘 아래 도드라진 산너울을 볼 수 없는 게 아쉬웠지만 서울 한복판에서 이런 전망을 보다니 믿기지 않았다. 조망 명소에 서서 내려다보니 북한산의 여러 봉우리들과 그 앞의 평창동 주택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북한산과 북악산 사이 호수처럼 보이는 이 마을은 공기도 뷰도 좋아 고급 주택들이 많은가 보다.

 

 

 

크기와 색이 다른 우체통 두 개가 뜬금없었지만 카메라에 담으니 특별해 보인다.

허니문을 온다면 이곳에 사랑의 메시지를 적어 넣어두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팔각정 위로 올라가 보았다.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리니 남산 타워가 흐린 하늘 가운데서도 우뚝 서있다.

남산 아래 서울 도심의 모습도 성냥갑으로 세운 모형처럼 모여있었다.

 

북악산에 서서 남산과 북한산을 조망하다니 너무 멋진 일이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오늘이기에 다시 한번 올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차창밖으로 단풍을 보며 스카이웨이를 올라 파란 하늘 아래 서울의 풍경을 내려다보거나, 혹은 노을로 물든 후 어두워지는 하늘 아래서 도심의 화려한 불빛을 감상하거나.

관리하시는 분들의 부지런함과 여행객들의 시민 의식으로 청결함도 기대해 본다.

 

 

 

 

Cafe 더숲 초소 책방

 

 

 

북악산에서 인왕산으로 이어진 도로로 5분이 좀 더 걸렸을까? 이내 도착한 카페는 주차장이 협소했다.

다행히 안쪽으로 안내를 받았다. 

 

 

 

비 오는 봄날, 좋은 느낌이 남았던 cafe라 남편도 다시 와보고 싶었나 보다.

 

 

 

못 보던 액자가 걸려있었는데 한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는 중이었다.

Cafe, Bakery, 책방, 그리고 갤러리까지 운영이 되다니 이 동네의 명소인 이유가 있었다.

 

 

 

오늘은 에어컨이 시원한 1층 실내에 자리를 잡았다.

플랫 화이트(5.5), 아몬드 브리즈 라테(6.0)와 공주 밤빵(6.5)을 주문했다.

 

 

 

작은 하트가 앙증맞은 Flat White는 라테의 우유 양을 줄여 진한 커피의 맛을 더 느낄 수 있는 음료다.

시럽을 넣지 않고 마시니 쌉쌀한 커피의 맛이 나쁘지 않았다. 남편이 마신 아몬드 브리즈 라테는 시중에 나와있는 아몬드 음료의 맛일 거라 예상이 되었다.

 

공주 밤빵은 여느 베이커리의 그것과는 달랐다.

밤을 거칠게 으깨어 빵 사이사이 푸짐하게 넣었고, 달지 않고 고급스러웠다. 겉에 울퉁불퉁한 소보루와 견과류가 식감과 달달함을 더해주었다. 

 

 

 

가을답지 않은 더운 날씨로 야외 좌석을 포기하고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반대로 아직 남아있는 커피를 들고 야외로 나가 보았다.

3층 파라솔 아래 앉으니 더위 사이사이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야외 풍경을 보는 것도 좋았다.

 

들어오려는 차와 나가려는 차, 출차를 돕기 위해 키를 들고 나온 사람들로 주차장은 북적거렸다. 이미 너무 유명세를 탄 카페라 산 중턱에서 고요하게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는 아쉬울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느 요일, 어느 시간대에는 그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곳곳에 마련된 야외 좌석중 마음에 드는 자리를 잡고 테이블 위 책 한 권과 펜 하나, 디저트는 없어도 따뜻한 음료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다. 

 

 

나만이 알고 싶은 카페다.

 

 

 

 

 

 

 매화나무 (7월, 경복궁)

 

 

나무

 

김윤성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는 나무를 보며

황금색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

또 기다리지도 않는다.

 

한결같은 망각 속에 

나는 구태여 움직이지 않아도 좋다.

나는 소리쳐 부르지 않아도 좋다.

 

시작도 끝도 없는 나의 침묵은 

아무도 건드리지 못한다.

 

무서운 것이 내게는 없다.

누구에게 감사받을 생각도 없이

나는 황홀을 느낄 뿐이다.

 

나는 하늘을 찌를 때까지

자라려고 한다.

무성한 가지와 그늘을 펴려고 한다.

 

 

 


 

 

 

김광석 3집에 담긴 노래 중 하나.

나무.

 

담담하게 말하는 듯한 김광석의 목소리. 

"한결같은 빗속에 서서 젖은 나무를 보며 눈부신 햇빛과 개인 하늘을 나는 잊었소"  

요즘 무한반복 듣고 있는 이 노래의 가사는 김윤성 님의 시다.

 

엊그제는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하루 종일 쏟아졌다.

온몸으로 비를 맞고 있는 나무를 한참 올려다보았다.

끄떡없이 서서 누구의 시선에도 상관없이 묵묵히 가지를 뻗고 있는 나무.

 

어제는 바람 한점 없는 눈부신 가을날이었다.

길을 걷는데 이름 모를 나무에서 갑자기 열매가 똑 떨어진다.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열매를 품더니 인내의 끝에 성숙한 결실이 떨어진다. 

 

나무는 눈이 부시고 빛난다. 

황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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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시공사>

 

 


 

매끈한 고무 느낌이 나는 책 표지의 그립감과 은은한 파스텔톤 색감의 삽화. 별과 섞여 고요히 내리는 눈과 하얀 옷을 입은 나무. 눈이 소복이 내려앉은 지붕과 들판. 두툼한 겉옷을 입고 다정히 같은 곳을 내려다보는 연인의 모습.

분명 추운 겨울인데 따뜻한 느낌이 든다. 

 

이 책을 읽은 느낌은 표지와 다르지 않았다. 

 

기록적이었던 매서운 한파는 슬그머니 찾아온 봄기운에 자리를 내어준다.

유난스럽게 고통스럽고 아팠던 상처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희미해지고 새 살이 돋아난다.

추위와 고통의 절정의 순간에도 가슴 벅차게 따스했던 느낌이 들어 안심하고 읽을 수 있었던 책이다.

작년,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보다 다시 꺼내 본 지금 더 좋은 느낌이 든다.

 

 

 

시골 낡은 기와집을 개조해 '굿나잇 책방'이라는 독립서점을 만들어 운영하는 은섭.

서울 미대입시학원에서 일하다 이모가 운영하는 '호두 하우스'라는 펜션으로 돌아온 해원.

그녀가 '굿나잇 책방' 매니저로 일하게 되면서 두 사람의 오래된 인연(해원은 알지 못했지만)은 다시 다음 이야기를 채우게 된다. 

 

나의 미래의 로망 북카페와 닮은 독립서점, 소란스럽지 않은 소박한 시골의 풍경, 따뜻하고 검소하며 정의로운 캐릭터 은섭 등등 모든 설정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삶의 고단함에 대한 위로와 치유를 얻기 위해 시골로 온 해원은, 더 큰 상처를 가슴에 새긴 채 다시 서울로 떠나게 되지만, 버팀목이 되어 주었던 은섭의 사랑과 이웃들의 따스한 온기는 또다시 그녀의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다.

 

 

 

* 해원

두 사람은 나를 돌보고 키웠어도 내가 둘 사이에 낄 수 없게 이상한 소외감을 느꼈던 건, 둘이 나를 보호하려던 마음들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는 걸 이제 알겠어. 그럴 필요 없었는데. 내게도 함께 아파할 권리를 주었더라면 좋았을걸. 

 

 

사람들을 알 수 없다.

그 속내가 어떤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의도가 선하더라도 드러난 사실은 우리를 분노케 할 가능성이 높다. 

해원의 이모가 그날의 비밀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이미 지난 일이니.

아니, 해원의 엄마가 처음부터 사실을 말했으면 어땠을까? 솔직하게.

어떤 상황이여도 해원은 상처 받고 아픈 세월을 지나야 했겠지만, 진실을 마주했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 은섭 

그 말에 숨은 다른 뜻은 없어. 그 말 그대로라고. 그 말 그대로야. 항상 너한테는.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사실대로 정직하게 말할 수 없는 상황들도 있다. 해원의 엄마와 이모의 상황을 그려보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배려라는 이유로, 상처 받을까 걱정돼서, 너무 많은 생각 탓에 참고, 돌려 말하고, 다르게 행동한다. 

결과가 어떨지, 올바른 판단인지 확신도 없이. 사랑하는 대상에게 '아파할 권리'를 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자신의 희생과 고통은 이쪽도 마찬가지다.

 

 

 

# 은섭 

한 때는 살아가는 일이 자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평화롭게 안착할 세상의 어느 한 지점. 내가 단추라면 딸깍 하고 끼워질 제자리를 찾고 싶었다. 내가 존재해도 괜찮은, 누구도 방해하지 않고 방해도 받지 않는, 어쩌면 거부당하지 않을 곳. 그걸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어디든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라는 것, 내가 나 자신으로 살아간다면 스스로가 하나의 공간과 위치가 된다는 것. 내가 존재하는 곳이 바로 제자리라고 여기게 되었다. 

 

 

내가 머무는 곳이 내 자리. 내가 존재하는 곳이 제자리. 

이 말은 나에게 많은 위로를 주었다.

 

 

 

* 해원 

꽃들은 무심하고, 의미는 그들이 알 바가 아니었다. 그저 계절 따라 피었다 지고 사람들만 울고 웃는다.

 

 

다른 이들이 불편해하면 어쩌나, 내가 불편하면 어쩌나 하며 불안과 걱정으로 나의 감정을 숨기고 피하고 표현하지 않는 순간, 나뿐 아니라 오히려 타인들도 불편해질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들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은섭 

사람들은 말과 표정이 일치하니 않으니까, 말을 듣지 말고 표정을 읽어야 한다고 그는 자주 되뇌었다. 하지만 그 역시 절반만 옳았다. 사람들은 표정 또한 자유롭게 바꾸고 지어내면서 살아간다. 그러니 애초에 읽으려 들지 않는 게 나을 때가 있다. 보여주는 걸 보고, 들려주는 걸 들으며, 흘려보내면 그만.

 

 

딸깍하고 끼워지는 인생은 없다. 그 완전하고 평화로운 상황은 인생의 끝일지라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너무 애쓸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 은섭

인생은 그리 길지 않고 미리 애쓰지 않아도 어차피 우리는 떠나. 그러니 그때까지는 부디 행복하기를.

 

 

 

은섭의 굿나잇책방 블로그 비공개 글을 엿보는 재미가 있었다. 사물의 꽃말 사전 아이디어도 굿이다.  쇼트 쇼트 스토리 라는 나뭇잎 소설에 매력을 느끼기도 했다. 진짜 사람을 알아볼 늑대 눈썹 이야기와, 눈물 차 이야기의 동화같은 순수함도 좋았다.

 

작가의 또 다른 책의 인물 '이건'을 떠올려 보았다. 시크한 츤데레 건도 매력 있지만, 은섭의 따뜻함과 솔직함에 더 기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한결같음과 묵묵한 사랑에.

 

두 사람 중 선택한다면 말이다. 행복한 상상이다.

 

 

 

 

 

 

 

 

아들과 함께 분위기 있는 카페에 앉아 맛있는 브런치 먹는 것이 그렇게 하고 싶었다.

군 휴가 이틀을 남기고 기회가 왔다. 남편이 평일 휴가를 내서 얻은 브런치 타임이다.

 

2주 동안 매일 친구들과의 밥약, 술약으로 여유 있는 시간이 없었던 아들.

그나마 코로나로 인한 인원제한, 시간제한 덕에 집에서 야식은 함께 먹을 수 있었다.

 

 

 

 

Brunch Cafe

37.5

 

브런치로 유명한 체인점 37.5

 

광교 호수공원을 산책할 때 보았던 파란 문의 카페. 야외 테라스 테이블에 알록달록 차려진 음식들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좋아 보였었다. 오늘은 신동 카페거리다.

 

 

 

아메리카노 두 잔과, 콜라가 먼저 나오고

 

 

 

아들의 브런치, 알리오 올리오 파스타(13.5)가 카페 문과 같은 색감의 그릇에 담겨 나왔다.

파스타면을 오무라이스 처럼 길쭉하게 모아 놓으니 색다른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파스타는 정말 맛있었다. 적당하게 썰린 편 마늘과 아스파라거스의 식감, 면과 어우러진 담백한 소스가 고급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선명한 색감의 절임 야채는 식욕을 돋구어주는 새콤하고 매운맛이 있었고,

 

 

 

함께 먹으려고 주문한 푸짐한 정통 미국식 브런치(15.5)는 딱 예상되는 그 맛이었다.

오랜만에 먹은 소시지와 해시드 포테이토가 내겐 특별히 맛있었다.

 

 

 

아들이 떠났다.

군복을 갖춰입은 아들에게 폰 카메라를 들이대니 거수경례를 하며 응답한다. 

경례를 하는 표정에 군기가 잔뜩 들어 긴장이 묻어난다. 카메라가 자신의 상관이나 되는 듯이.........

보내는 마음이 좋지 않다. 훈련소로 갈 때와는 다르지만, 그 이상의 무언가 울컥하는 감정이 있다.

휴가를 자주 나올 수도 없겠지만, 또다시 보내야 하는 마음이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모든 게 생각 같지 않다. 아들이 부대로 떠나고 나니 해주지 못한 일들이 생각난다. 챙겨주지 못한 것들도 아쉬움을 남긴다. 이러이러한 일을 계획하고, 저러저러한 마음을 먹지만, 서로 다른 상황과 생각, 감정들의 차이는 원래의 기대나 계획에 부응하지 않는다. 실수나 예상치 못한 일들도 도처에 깔려있다. 우리네 삶은 잘 짜인 대본, 극에 맞게 준비된 배경, 한치의 실수도 없이 연기하는 배우들의 연극 무대와는 다르게 흘러간다.

 

 

올 11월 상병이 되는 아들.

늘 아무렇지 않게 잘 지낸다고, 정말 할 만하다고 얘기하는 아들. 그럼에도 나는 상상 속의 온갖 것들을 끄집어내 걱정을 하며 마음을 졸인다. 6개월 동안 그러했듯이, 남은 1년도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잘 지내리라 믿는다. 최근 소초 환경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잘 적응하며 살아내리라 생각한다. 상처 받지도 주지도 말고 묵묵히 자신의 책임을 하다 보면 시간은 가겠지.

 

걱정은 접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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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제임스 설터

 

 

<2010, 마음산책>

 

 

제임스 설터의 어젯밤.

얼마 전 읽은 책 <나를 견디는 시간>의 작가가 읽으면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소개해 준 책 중 하나이다.

누군가의 위로를 받은 일이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르겠다. 나의 깊숙한 고민들을 거짓 없이 말하기가 쉽지 않다.

진정성 있는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었는지 이 책이 읽고 싶어졌다.

 

총 10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모음집이다.

 

혜성 

스타의 눈

나의 주인, 당신

뉴욕의 밤

포기

귀고리

플라자 호텔

방콕

알링턴 국립묘지

어젯밤

 

 

책 제목으로 선정된 단편은 마지막 부분에 있어 먼저 읽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껴두기로 하고 순서대로 책을 읽었다.

한 여인이 등을 드러내고 유혹하는 듯한 눈빛의 책 커버, 그리고 책의 내용은 예상했던 내용이나 위로와는 조금 다르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인간의 본능과 나약함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감정과 욕망이 이성을 짓누르는 연약한 사람들의 모습들.

현재를 살지 못하고 싱그러웠던 젊은 나날들을 그리워하며 세월의 흐름에 빛을 잃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래서 슬프다.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과 상황에 대한 지겨움과 환멸로, 행복했던 지난날을 비밀스럽게 꺼내 추억하는 한 남자. (혜성)

,

 

그때는 그게 삶의 시작이었는지, 아니면 삶을 망치고 있는 것인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스타의 눈)

 

 

그녀는 자유로워 보였다. 다른 여자, 젊은 여자처럼 보였다. 바닷가 흙먼지 나는 벌판에서 보는 그런 여자, 비키니를 입고 맨발로 감자를 훔치는 그런 여자. (나의 주인, 당신)

 

 

열정적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한 채 암으로 죽어가는 한 여인의 후회와 눈물. (뉴욕의 밤)

 

 

사랑하는 아내가 있음에도 동성의 시인과 관계를 갖으며 즐거움을 추구했던 한 남자의 포기. (포기)

 

 

단란한 가정과 단정한 아내가 있음에도 아름다운 여인에게 사랑을 느끼는 한 남자. (귀고리)

 

 

그는 그의 인생 한가운데 거대한 방을 가득 채웠던 사랑을 생각했고, 다시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길 위에서 그는 눈물을 터뜨리고 말았다. (플라자 호텔)

 

 

행복은 다른 걸 갖는 게 아니라 언제나 똑같은 걸 갖는 데 있다는 걸 난 그때 몰랐어. 지금 여기 있는 거, 태양과 별과 지구와 바다와 모든 거, 내가 당신에게 품은 감정을 포함해서 말이야. 그날 아침 허드슨 스트리트에서, 창가에서 다리를 올리고 햇빛 속에 앉아 얘기를 했고, 행복했어. 난 그걸 알고 있었어. 우린 사랑에 빠져 있었어. 그 순간 나는 삶에서 바라는 모든 걸 갖고 있었어. (방콕)

 

 

알링턴 국립묘지에 묻힐 수 없는 과오를 가진 한 남자의 짝사랑의 슬픔 (알링턴 국립묘지)

 

 

어떤 기억은 갖고 가고 싶다고, 마리트는 생각했다. 월터를 만나기 전 어렸을 때의 기억. 집, 이 집이 아니고 그녀의 어린 시절, 침대가 있던 원래 집. 그 오래전 겨울 눈보라를 바라보던 층계참에 난 창문, 허리를 굽혀 굿나잇 키스를 하던 아버지, 램프의 불빛에 손목을 비추며 팔찌를 차던 엄마.

그 집뿐이었다. 나머지는 그리 강렬하지 않았다. 삶을 꼭 닮은 장황한 소설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가다 어느 날 아침 돌연 끝나버리는. 핏자국을 남기고. (어젯밤)

 

 

 


 

 

 

누군가를 광적으로 사랑했던 행복한 시절은 지속되지 못한다. 화려한 젊음도 지속될 수 없다.

그러나 그 시절 그 찰나의 감정은 하늘의 아름다운 빛들만 골라 보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런 추억들이 비밀스레 삶을 지켜가는 동력 중의 하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으로 굳어진 단란한 가족과 사랑스러운 아이들과 살아내는 그런 그런 삶도 '사는 척'은 아닐 것이다.

매일매일 절정을 맛볼 수는 없다. 

 

단편 <어젯밤>의 충격적인 결말은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관계의 상실을 단번에 가져다준다.

Last night, 어젯밤, 마지막 밤!

 

어쩌면 전부였던 어떤 것이 아무것도 아닐 수 있고,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무겁던 생각들이 단번에 비워버릴 수 있는 쓰잘데 없는 사건일 수 있다. 지나고 보면 별일 아닌 일에 우리는 너무 많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때 설터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나뭇잎을 들어 올려 햇빛에 비추어 보면 잎맥이 보이는데 그는 다른 건 다 버리고 그 잎맥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어쩌면 이 말이 설터의 스타일을 가장 시적으로 잘 요약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들어 올려 인생을 관통하는, 가장 연약하면서도 본질적인 사실을 설터처럼 그려내는 작가를 만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_ 옮긴이(박상미)의 말 중

 

 

 

처음 접해보는 설터의 책은 적잖은 충격을 줄 정도로 독특한 작품들이었고 간결한 문체와 표현들이 인상적이었다.

사랑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들을 읽은 지금은 이 책이 주는 위로가 무엇인지 알것같다.

 

 

설터의 또 다른 책 <가벼운 나날들>이 궁금해진다.

 

 

 

 

 

 

문화역 284에서 나와 길을 따라 걸었다. 뒤로 고가도로를 개조해 만든 보행공원 서울로 7017이 보인다. 

 

 

 

10분 정도 걸었을까? 서소문 역사공원 팻말과 함께 목적지를 알리는 화살표가 반갑다. 선명하고 강렬한 붉은빛의 벽돌은 이곳이 성지임을 떠올리게 했다.

 

실제로 이 장소는 조선시대 성리학에 반하는 이들과 천주교도들의 공식 참형지였다. 그 아픔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지금의 박물관은 많은 이들에게 치유와 위안을 선사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들어서는 입구부터 심상치 않다. 넓은 길로 들어서자 좁은 길이 나온다. 앞을 볼 수 없게 하는 환한 빛이 네모진 문에 가득하다.

 

 

 

길의 끝가지 와서 돌아보니 다시 반대의 상황이 연출된다. 신비롭다.

 

 

 

박물관 입구 마당에서 볼 수 있는 작품 '순교자의 칼'과 '수난자의 머리'.

시작부터 고개를 숙이게 하는 분위기에 절로 경건해졌다.

 

 

 

건물을 들어서니 조용하고 엄숙한 분위기에 안내하시는 분들마저 차분하시다. 낮은 천장 아래 넓은 홀을 여유롭게 차지한 작품들은 더 고귀해 보였다. 

 

 

 

브론즈에 새겨진 글들을 읽으니 희생과 고난을 감내하는 삶의 무거움이 느껴져 잠시 부끄러운 생각마저 들었다.

 

 

 

이태석 신부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커다랗게 걸려있었는데, 방송에서 보았던 그의 생전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먹먹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세련되고 절제된 인테리어가 멋스럽다. 이제껏 보았던 다른 장소들과는 색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한 층을 내려가 보았다.

 

 

 

특별전시로 정희우 작가의 <풍경이 된 기호>라는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서울 종로거리와 서울역 부근의 풍경을 기록한 이 전시는 주로 탁본으로 이미지를 뜬 작품들이었고 담벼락이나 간판 그리고 표지물들의 이미지를 기록하여 잊혀져가는 시간을 담고 있었다.

 

 

 

서울역 주변의 모습을 담은 수묵채색화도 만날 수 있었는데 정겹고 아련한 느낌이 들었다.

새롭고 특별한 전시였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새로운 공간이 보인다. Consolation Hall로 내려가 보았다.

 

 

 

위로와 위안의 방 답게 어두운 조명이 비추고, 사방을 둘러싼 대형 스크린에서는 아름다운 자연의 영상이 은은한 소리를 내며 상영되고 있었다. 성인 다섯 분의 유해를 모신 곳 위로 빛이 어루만지 듯 비추고 있고 기다란 의자에 앉아 기도를 드리거나 조용히 쉬어가는 사람들이 있었다. 

 

 

 

고요히 앉아 계절이 지나가듯 흘러가는 영상을 보고 있으니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밖으로 야외광장이 보인다. 광장으로 나가보지는 않았지만 서있는 사람들은 순교하신 분들의 형상일 듯 하였다.

 

 

 

같은 층의 상설전시관으로 들어가 보았다. 

 

 

 

미래의 모습을 그린 <더 기버> 같은 영화에나 등장할 법한 공간이다. 역시나 넓은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절제된 전시 내용은 여느 박물관과는 다른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천주교의 역사뿐 아니라 서소문 지역의 이야기 등 다양한 전시 내용을 만날 수 있어 더 흥미로웠다.

 

 

 

검을 중심으로 외벽에 새겨진 년도 1801, 1839, 1866.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를 거치며 목숨을 잃었던 수많은 교인들을 가슴에 새겨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절절한 마음이 느껴진다.

 

한국 천주교 최대의 순교성지인 이곳,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은 한 번쯤 꼭 방문해야 할 장소인 듯하다.

 

 

 

아들의 첫 휴가다.

올 2월 중순 입대 후, 6개월 하고도 며칠이 지났다.

 

아린 마음과 걱정의 시간들을 지나,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일이겠거니 어찌어찌 시간은 가겠지 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중이었다. 길거리를 지나가는 군인들의 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아들의 휴가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군복과 군화, 군모까지 갖추어 입은 아들을 보는 순간 믿어지지 않았다. 

부지런히 퇴근한 우리 부부는 허둥대느라 그 모습을 사진에 담지 못한 것이 내내 아쉽다.

 

많이 달라지지 않기를 소망했었다. 

 

더 의젓해진 것도 같고, 군복을 벗으며 하나하나 정리하고 챙기는 모습이 좀 낯설었다. 아주 짧은 머리카락은 아니지만 고르지 않게 자란 머리 모양도 익숙하지 않았다. 샤워 후 꼼꼼히 로션을 바르며 자신의 몸을 신경 쓰는 모습도 달라 보였다. 다리에 생긴 많은 멍자국은 높은 지형을 오르내리며 총이나 나뭇가지 바위와 계단 등에 부딪힌 상처인 듯 보였다. 

 

 

소파에 앉아 쉬는 아들 옆에 걸터앉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훈련소에서 불었다는 살은 다 어디로 간 건지 빼빼한 모습 그대로다. 환한 웃음과 시커먼 눈썹, 잘생긴 얼굴도 다르지 않다.

태극마크가 새겨진 가방에서 박스 두 개를 꺼내 쇼핑백에 담아 건네며 쑥스러운 듯 미소 짓는 모습도 익숙하다.

휴가 나오기 전, 카톡 메시지로 보내 준 음식 리스트를 보며 먹성이 좋아졌을 줄 알았는데 막상 먹을 때 입이 짧은 것도 그대로다. 동생이 사 온 패밀리 사이즈 아이스크림을 수저로 떠 개인 그릇으로 옮길 때 어설프게 날아가는 아이스크림 파편에 모두 웃음이 터져버렸다.

 

다행이다. 달라지지 않아서........ 아직 1년의 세월이 남아있지만 다를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꿈에 대한 열정이 그대로다. 군내에서도 틈틈이 그 꿈을 향해 무언가 조금씩 하고 있었다.

기특하다. 

 

딸은 방학 중 기숙사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2학기는 비대면 수업으로 집에서 지내게 될 예정이다.

오랜만에 각 방이 주인을 맞이했다. 거실은 TV 소리와 이야기 소리, 웃음소리로 시끌벅적하다.

 

 

 

 

아침에 일어나 싱크대 개수대에 나란히 담겨있는 네 개의 유리잔을 보며 맘 한편이 짠했다.

아들의 편안하고 힐링되는 휴가와, 딸의 행복하고 즐거운 2학기 생활을 응원하는 마음을 소리 없이 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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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서울역사를 개조해 문화의 공간으로 만든 문화역 서울 284를 가보기로 했다.

 

남대문정차장, 경성역, 서울역을 거쳐 지금의 문화공간이 탄생하기까지 100년간의 역사여행이자, 돔 형태의 지붕과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볼 수 있는 건물 투어이며, 현재 전시하고 있는 '익숙한 미래' 관람까지 일석 삼조의 나들이다.

 

 

 

광화문 근처 카카오 T 주차장에 차를 두고 꽤 걸었다. 다음 목적지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까지 고려한 위치다.

 

 

 

붉은 벽돌과 돔이 보이니 목적지다. 먼저 눈에 띈 것은 수많은 노숙인들과 건물 앞에 마련된 코로나 선별 진료소.

화려한 빌딩들과 고풍스러운 건물 사이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다.

 

역시나 오픈 시간(10시) 전에 도착한 우리는 건물 외관을 구경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붉은 벽돌과 청동색 돔은 신비로웠고, 마치 유럽 박물관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파발마'라는 이름의 외부 시계는 한국전쟁 기간 3개월 정도를 제외하고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건물 옆길을 따라 뒤로 이동해보니 경의선 전철을 타는 공간이 나온다. 시간이 오래돼 녹슨 듯한 초록빛 돔은 어느 방향에서 봐도 눈에 띄었다.

 

 

마침 지나가는 KTX와 화물열차를 볼 수 있었는데 혼자 지하철을 타는 것조차 아주 드문 일이 된 지금은 이런 풍경도 새롭고 좋다.

 

 

 

문화공간 바로 옆에서 진짜 서울역을 발견했지만 '서울역' 하면 떠오르는 북적거리고 정겨운 풍경은 연출되지 않았다.

MT로 들떠있는 대학생들, 고향을 방문하려는 사람들, 각각 배낭을 짊어매고 여행을 가려는 커플들, 홀로 기차여행을 떠나려는 낭만객들도 볼 수 없었다. 

 

텅 빈 계단에서 볼 수 있었던 건 근처 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온 노숙인들과 그 앞을 오고 가는 몇 명의 사람들이 전부였다. 

 

 

 

온라인 사전예약을 하고 입장했다. 관람요금은 무료다. 

 

 

 

전시의 방향과 의도를 알 수 있게 해주는 대형 스크린이 눈에 띈다.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 편리한 삶을 위한 디자인, 배려와 협력, 소통과 혁신을 표현하는 디자인?

 

처음에는 확실하게 와닿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를 본 후에는 우리 생활 곳곳 무심코 지나쳤던 많은 시설들과 소품들에 이런 디자인이 숨어있었다.

 

 

 

장애가 있어도 없어도 놀 수 있는 무장애 놀이터. 노인들의 손가락 운동을 담당하는 운동 기구 디자인.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폭염대비 그늘막과, 겨울에는 따뜻하게 여름에는 시원하게 버스를 기다릴 수 있는 벤치들.

 

 

 

걸어서, 수원!

도시 안내 정보 체계를 통합하고 개선해 보행자 중심으로 읽기 쉽고 찾기 쉽게 안내해 주는 안내판.

 

 

 

횡단보도에 설치된 노란 발자국과, 횡단보도 진입부 바닥부터 벽면까지 노란색의 원뿔 형태로 설치되는 옐로 카펫.

 

 

 

조도를 높인 가로등과, 마을 진입로 안전 에티켓 사인, 골목에 설치된 안전 비상벨, 친근한 담장 철장 디자인. 

 

 

 

이동하는 시민들을 안내해 주기 위한 안전 색체와 정보 디자인 등 배려가 담긴 공공 디자인.

 

 

 

버려지는 페트병을 재활용해 친환경적이고 패셔너블한 디자인의 가방을 만드는 플리츠 마마.

 

이 외에도 수많은 아이디어들은 실제로 우리 생활 곳곳에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놀랍다.

누군가의 배려와 따뜻한 생각이 기발한 아이디어와 수많은 고민으로 결과를 맺는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더 행복하고 안전한 삶을 누릴 수 있다. 감사한 이들이 많은 살만한 세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공 디자인에 관한 다양한 전시들 뿐 아니라, 그 내용을 담고있는 신비로운 건물 구석구석을 보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두 개의 박물관을 동시에 구경하 듯 눈과 생각이 바쁘게 움직였다.

 

 

 

중앙홀 내부의 대형 시계.

 

 

 

중앙홀 천정 스테인드글라스.

 

 

 

최초의 양식당으로 운영되었던 그릴.

높은 천장 아래 매달린 샹젤리제와 은촛대, 은그릇의 화려함이 있었다던 식당이다.

 

 

 

1,2등 대합실을 이용하는 손님들 중 여성 고객들을 위해 따로 마련된 부인 대합실.

작지만 고급스러웠다.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와 거울이 있는 이곳은 귀빈실이다.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 지방 출장 시 그리고 덕혜옹주가 일본으로 갈 때도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근처에 자주 왔지만 건물 내부를 들어온 것은 처음이다. 서양식으로 지어진 고풍스러운 건물을 늘 차창 밖으로 아니면 다리 위에서 내려다보며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오늘 뭔가 큰 일을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관람의 끝에서 설문조사를 하고 얻은 굿즈, 스티커와 배지.

별 기대 없이 간 전시는 그 어느 관람보다 의미 있었다. 전시기간이 얼마 안 남았다.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뿌듯한 마음으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을 향해 걸었다.

 

 

 

 

 

 

 

더위의 절정이다. 이른 아침부터 강렬한 태양이 부담스러웠지만 계획대로 몸을 움직였다.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초의 인공 정원, 궁남지를 찾았다. 

 

 

 

들어서니 사방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펼쳐진다. 푸르른 하늘 아래 넓은 잎을 자랑하는 연의 물결은 바다와 같다.

색색의 연꽃과 수련, 다양한 수생식물과 난생처음 보는 이름 모를 꽃들.

 

세미원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수련, 가시연, 홍수련, 열대수련, 빅토리아연, 노랑어리연, 호주 수련....... 수련의 종류도 넘쳐난다.

주간 개화, 야간개화, 멸종위기 수련까지 제각각 특징들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수련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은 더 많아진다.

 

 

 

물양귀비

양귀비꽃 모양을 닮은 물양귀비도 처음 보았다.

초록의 잎들 사이 은은하게 핀 노란빛 소박한 꽃이다. 진짜 양귀비와 모양은 비슷하지만 느낌은 다르다. 

 

 

 

천국으로 통하는 길인 듯, 이어진 다리를 건너면 포룡정이 있다. 백제 왕궁의 연못이였으니 오래전 조경기술에 놀라울 따름이다. 신을 벗고 정자에 앉아 쉬어가는 두어 팀이 있어 우리는 머뭇거리다 사진만 남기고 돌아 나왔다.

 

 

 

버드나무로 병풍을 치고있는 연못과 물 위에 지어진 정자의 모습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워 보인다. 

연이 모여있는 밭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홍련, 백련, 천판연, 향백련, 묘련, 황연....... 다양하기는 연꽃도 마찬가지.

 

 

 

만개한 연꽃들이 남아 있었지만, 꽃잎을 떨구고 연밥을 드러낸 것들이 더 많았다. 8월이 지나면 아름다운 연꽃도 내년을 기약해야 할 듯하다.

 

 

 

궁남지에는 수생식물이 많다.

고급 물감을 칠한 신비로운 꽃들이 물 위에 떠 하늘거리고 있었다.

 

 

 

물 무궁화도 볼 수 있었는데 무궁화 꽃보다 진하다. 물양귀비와 수련을 내려다보며 품어주고 있었다.

 

 

 

마침 오리 가족들이 나들이를 가고 있었다. 공원과 공존하는 식구인가 보다.

엄마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한눈파는 아이는 어느 집에나 존재한다.

 

시간은 아직 정오 전이지만 햇살은 이미 견딜 수 없을 정도다. 온라인으로 예약한 박물관에서 에어컨 바람을 쐬면 좀 나아지리라 생각하고 근처 국립 부여박물관으로 이동했다.

 

 

 

 

국립 부여박물관

 

 

더위에 머리가 지끈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박물관 관람은 평소처럼 할 수 없을 듯했다.

이곳에 오면 꼭 봐야 하는 것. 그것만 보기로 했다.

 

 

백제 문화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백제금동대향로.

우리나라 국보다.

 

 

 

아래는 용

동체는 연꽃 봉우리

뚜껑은 산

정상엔 봉황

 

산에는 나무와 낙하하는 폭포, 시냇물, 산길, 호수도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37마리의 상상의 동물과 악사 5인, 17인의 신선이 산다. 그야말로 신선들의 별천지다. 산 중턱에 12개의 연기가 빠져나가는 구멍이 뚫려 있다.

 

향로를 짊어지고 있는 용과, 연판에 새겨진 신선과 수중동물들, 비상할 준비를 하는 봉황에도 수십 가지 사연과 의미가 있었다.

 

잘 알려진 세기의 화가, 조각가들을 알고 그들의 작품을 칭송하지만, 7세기경 제작된 백제 향로의 제작자는 그 얼마나 대단한가.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정교하고 정성스러운 작품을 한참 들여다보았다.

 

 

 

편의점에서 얼음컵과 바삭거리는 패스츄리 한 통을 샀다. 가져온 음료를 채우고 달콤한 간식을 먹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두 시간 남짓 걸리는 부여여행은 종일이나 일박이 자연스러웠지만, 우리가 집으로 돌아온 시간은 오후가 좀 지난 시간이었다. 

 

아침 겸 점심인지, 점심 겸 저녁인지 모를 밥을 배불리 먹었다.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편안한 하루가 감사했다.

 

 

 

 

 

 

휴가 마지막 날!

 

타는 듯한 여름, 밖으로 돌아다니기 어려워 생각한 것이 박물관 투어다.

코로나로 인원 제한이 있어 홈페이지에서 미리 예약 후, 오픈 시간에 맞추어 방문했다.

 

프랑스의 루브르, 영국의 브리티쉬 뮤지엄, 이탈리아의 바티칸 박물관 등 해외여행 시 그 나라나 도시의 주요 박물관을 꼭 가봐야 하듯이, 우리나라에는 국립중앙 박물관이 있다. 세계적으로도 상당한 규모라고 하니 자랑스럽다.

 

방대한 박물관 투어로 오늘은 다른 일정도 잡지 않았다. 늦은 점심도 집에서 먹을 예정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지하 주차장부터 규모가 장난 아니다.

이곳을 왔었던가? 기억해보니 오래전 솜사탕 같았던 나의 아이들과 어린이 박물관에 다녀 갔었다.

입장요금을 지불하는 특별전시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상설전시 관람이다.

 

 

 

횡으로 긴 계단을 오르니 멀리 기준처럼 솟아있는 남산타워 앞 건물들과 경관을 조망할 수 있었다.

계단에 앉아 입장을 기다리는 가족, 하늘 아래서 인생 샷을 위해 카메라를 든 연인, 삼삼오오 정겨운 모습들이 좋아 보였다. 아직 전시 오픈 전이라 전망대에서 이어지는 계단으로 내려가 보았다.

 

 

 

이게 웬일인가? 예쁜 정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배롱나무의 선명한 꽃색이 참 예쁘다 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들여다볼 수 있다니. 그것도 예상치 않은 장소에서 말이다. 사방형의 아담한 연못 위 예쁜 수련은 덤이다. 이런 게 행운이다.

 

 

 

경복궁 꽃담을 떠올리게 하는 예쁜 담장과 수련이 담긴 연못, 초록의 푸르름 사이 유독 선명하게 꽃을 피운 배롱나무가 너무 아름다웠다. 사이로 난 오솔길을 지나가며 여러 장의 사진을 남겼다.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이기고 피어난 주름 접힌 꽃이 마냥 신기했다.

 

 

 

QR체크와 손 소독 그리고 예매 확인 앱을 제시한 후 전시관으로 입장했다.

대규모의 뮤지엄 샵과 서점이 문을 달리 하고 연결되어 있다. 세련되고 의미 있는 기념품들이 많이 있었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이제 본격적인 투어다.

 

전시관 복도에서 만난 AI 로봇, 큐 아이.

편의시설이나 전시품의 상세 정보를 알려주고, 전시해설도 해준단다. 게다가 한국어, 영어, 일본어, 중국어가 가능하다고 하니 정말 똑똑한 아이다.

 

 

 

경천사 십층석탑

복도에서 만난 우리나라 보물이다.

날카롭게 높이 솟아있는 탑이 신비로웠다. 탑 전체의 모습을 한 화면에 담는 것이 쉽지 않았다. 

 

너무 방대한 전시품들이 있기에 리플릿에 나와있는 '층별 꼭 봐야 할 추천 동선'을 따라다니기로 했다.

처음엔 따라 이동했지만 어느 순간 내 발길 닫는 대로 보게 되었다. 

 

 

 

주먹도끼

박물관의 시작을 알리는 구석기시대 대표주자인 뗀석기, 주먹도끼.

 

 

 

독널

무덤으로 이용되었던 신석기 토기, 독널

주로 구덩이를 파서 묻거나, 동굴을 이용했지만 뼈만 추려 토기에 넣어 보관하기도 했다.

 

 

 

농경문 청동기

농사짓는 모습이 정교하게 새겨진 종교의식과 관련된 의기인 청동 후기의 농경문 청동기.

하반부는 떨어져 나가고 없다.

 

 

 

금 새날개모양 관꾸미개와 고깔모양 관

 

신라실에서 본 화려한 관과 꾸미개.

 

 

 

청동거울

고려시대 다양한 무늬의 청동거울.

 

 

 

달항아리

조선시대 대표 백자 달항아리.

커다란 대접 두 개를 이어 만든 백자는 이름 그대로 하얗고 둥근달이 연상된다. 

 

 

 

남편은 지치지도 않고 수많은 작품들을 사진으로 담아내고 있었지만, 나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1층 구석기실을 시작으로 중. 근세관까지 관람하고 2층으로 올라갔다.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프다. 점심을 먹으려면 까마득하다. 2층 '기증관'을 제외해도 '서화관'이 있고 3층엔 '조각 공예관', '세계 문화관'이 남아있다.

게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데는 한 시간 남짓 걸리니 뭔가를 충전해야 했다.

 

 

 

으뜸홀 카페

마침 2층에서 만난 카페다. 우리가 한 박자씩 빠르게 이동하고 있어서인지 아직까지는 손님이 별로 없다.

야외가 내려다보이는 창가 자리, 높은 의자에 걸터앉았다.

 

 

 

배를 채울만한 메뉴는 머핀과 베이글이 전부였다. 샌드위치를 기대했던 나는 라테 한잔을, 남편은 아몬드가 박힌 머핀과 아메리카노를 골랐다. 

차를 마시며 다음 동선을 짜 보기도 하고, 창밖을 내다보기도 하며 잠시 쉬었다.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자리를 양보하고 나오는데 외부에 마련된 테이블 좌석도 빈틈이 없다. 부지런한 우리가 대견하게 느껴졌던 순간이다.

 

 

 

2층 서화관에서는 다양한 서화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서화에 은은하게 입힌 색이 과연 무얼까 궁금했었는데 흙이나 돌, 동물, 식물 등에서 채취한 안료들로 비롯된 색이었다. 광물에서 나온 색은 깊은 색감을, 식물에서의 그것은 밝고 투명한 느낌을 준다고 하니 예술가들의 안목은 참으로 대단하다.

 

 

 

나전 칠 봉황 꽃 새 소나무무늬 빗접

3층 조각 공예관에서 본 조선의 나전칠기.

빗이나 빗솔 등을 넣어 보관하는 혼수품 중 하나인 빗접이다.

 

 

 

조각공예관은 보물들의 창고였다.

 

고려, 칠보무늬 향로 (국보)

  

 

고려, 매화 대나무 학무늬 매병 (보물)

 

 

조선, 분청사기 상감 인화 구름,용무늬 항아리 (국보)

 

 

조선, 분청사기 상감 물고기무늬 매병 (보물)

 

 

조선, 백자철화 매화, 대나무무늬 항아리 (국보)

보물들은 대부분 눈에 띄게 마련인가 보다. 많은 작품들 중 특별해 보인다.

주요 동선에 배치해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보물은 보물이다. 

 

 

 

3층 세계 문화관은 의외로 볼거리가 많았다.

이집트, 중앙아시아, 인도, 동남아시아, 중국, 일본 등의 문화를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관심 있는 나라 한 두 개를 정해 꼼꼼히 본다면 하루도 족히 걸릴 이 공간을 우리는 건너뛰기도 하며 대충대충 지나쳤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많은 것을 보았지만 흥미로웠다.

사람들에게 인기있었던 신비로운 이집트관은 다음에 다시 와 보고 싶다.

 

 

 

코로나로 근처 식당에서 식사를 못 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집에서 해 먹을 점심도 기대가 되었다.

웅장한 시설 안에 담긴 역사 저 편의 신비롭기만 한 수많은 작품들과, 야외에서 우연히 마주친 배롱나무 연못은 나의 하루를 근사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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