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스무 살 생일.
공부가 우선이었던 중 고등학교 시절, 늘 시험기간에 생일이 있어 맘 편히 즐기지 못했던 날.
대학생이 되어도 이 좋은 계절은 여전히 시험 기간이지만, 그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기대하고 즐기는 딸이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스무 살 생일을 특별하게 축하해 주고 싶어 미리 레터링 케이크를 주문해 두었다.
생일 당일과 다음날 약속이 있는 딸을 위해 우리는 전날 움직였다.
진라이
경기 분당에 위치한 중식당을 찾았다.
룸으로 예약을 해 거리두기를 하고, 딸과 오랜만에 코스요리를 먹었다.
냉채는 입맛을 돋우었고, 따뜻한 해물 누룽지 탕은 속을 달래주었다.
양념이 정말 맛있었던 팔보채와 소스의 부드러움과 달콤함이 마음에 들었던 크림 중새우.
튀김옷이 얇고 고기가 두꺼워 조금 부담스러웠던 탕수육과 간이 진했던 소고기 고추잡채와 꽃빵.
이때부터는 정말 배가 불렀다.
마지막으로 식사와 과일 디저트가 나왔다.
분위기나 맛이 나무랄 데 없었고, 일하시는 분들의 친절함도 편안했다.
점심을 먹고 아울렛 신발매장에 들렸다. 생일 선물로 운동화 한 켤레와 한참 유행하는 뒤축 없는 뮬도 하나 사주었다.
쇼핑이라곤 거의 온라인으로 하는 딸과 함께 돌아다니니 내 생일인 듯 즐거웠다.
집으로 돌아와 케이크를 자르고 TV를 보며 웃고 떠들었다.
생일 0시가 되자 쏟아지는 장문의 축하 메시지들과 쌓이는 모바일로 온 선물들.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배려하고 잘 챙기더니, 정말 많은 축하를 받는다.
홀케이크, 아이패드 파우치, 화장품, 목걸이, 레토르트 식품, 베라, 스타벅스, 치킨, 초콜릿 등등 손가락으로 죽죽 올리며 보여주는 폰 화면에 선물이 그득하다. 우리 때와는 다른 생일 축하다.
여기저기서 오는 문자에 고마움과 감동으로 어쩔 줄 몰라하던 딸은 지인들과 소통을 위해 방으로 들어간다.
새벽 세 네시까지 잠을 자지 못한 듯했다.
생일 아침상.
점심 약속이 있다 했지만 미역국은 먹일 요량으로 먹을 만큼만 아침을 준비했다.
맛있게 먹는 딸을 보며 행복했다.
전보다 편하게 말하고 농담하고 더 많이 시간을 함께 한다.
엄마 아빠랑 노는 게 제일 재미있다며 우리를 으쓱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스무 살의 시작을 본인이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여러 날 즐겼다.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받은 손편지와 선물들, 취향저격인 레터링 케이크들도 선물 목록에 추가되었다.
부모는 역시 부모인가 보다.
기특해하며 안심하면 될 일에 걱정을 보탠다.
너무 배려하고 착하게 살면 안 되는데, 자신을 희생하며 다른 이들에게 맞출 필요는 없는데, 조금 못되게 살아야 편할 텐데.............
후배, 친구, 선배들에게 사랑받는 딸아이가 기특하기도 하지만, 착하디 착한 성품에 짠한 마음을 어쩔 수 없다.
기우이길.
너의 친절을 이용하지 않는 좋은 사람들이 곁에 머물길.
언제나 너를 지켜주는 가족이 있음을 기억하길.
이런저런 시끄러운 생각이 꼬리를 무는 건 부모만.
너는 스무 살의 특별했을 생일을 오롯이 즐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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