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새내기 한 한기를 비대면 수업으로 마무리하고, 여름 방학부터 기숙사 생활이 허용됐다.
딸을 데려다 주기 위해 송도로 향했다.
집에서 한 시간 남짓 멀지 않은 거리지만, 딸이 고등학교 시절 기숙사 들어갔을 때와는 다르다.
완전한 독립은 아니지만 왠지 그쪽에 가까운 느낌이 드는 게 기분이 이상하다.
송도는 매우 낯설었다. 내가 생각했던 예전 그 모습이 아니다.
깨끗하고 정비된 거리, 세련되게 솟아있는 아파트들, 서울 중심가처럼 번쩍이는 건물들. 국제도시로 충분해 보였다.
이곳이 딸에게는 금방 익숙해지겠구나. 다행이다. 좋은 동네라서....
점심도 저녁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지만 밥을 먹여 보내기로 하고 찾은 곳. 맛있지만 건강에도 좋고 든든하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주꾸미 볶음이다.
신복관
쭈꾸미세트(12.0) 3인분을 주문하니 밑반찬과, 넓은 목기 그릇에 담긴 샐러드, 나누어 먹을 수 있는 시원한 묵사발 한 대접이 나왔다. 셀프 코너에서 밑반찬은 더 가져다 먹을 수 있다. 여기에 볶은밥까지 포함이다.
주꾸미를 찍어먹을 수 있는 퐁듀와 볶은밥에 추가되는 통치즈 사리 중 고민하다 퐁듀를 선택했다.
퐁듀에 찍어서 한 번, 깻잎에 싸서 한 번, 쌈무에 싸서 또 한 번, 어떻게 먹어도 맛이 있다.
콩나물이나 파채와 어우러지는 그 맛도 일품이다.
무엇보다 두툼한 주꾸미의 부드럽게 씹히는 식감이 우리를 만족스럽게 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볶음밥. 통치즈를 얹어 녹여먹지 않아도 남은 퐁듀와 함께 먹으니 아쉽지 않았다.
적당한 식사에 모두 만족하며 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캠퍼스로 향했다.
캠퍼스가 모두 평지다. 오르막길이 없다.
내가 가 본 대학 캠퍼스들은 어김없이 오르기 힘든 구간이 있었는데 말이다.
해질 무렵 선선한 날씨와 공기, 높은 담이 없는 학교 교정, 옷을 맞추어 입은 듯 어울리게 서 있는 건물들을 보니 시원하고 뭔가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학생들이 북적거리지는 않았지만 단단히 포장된 상자나 캐리어를 곁에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입사 절차를 받으러 가는 학생들, 기특하게 혹은 아쉽게 그 모습을 지켜보며 기다리는 부모들을 보며 우리도 그 대열에 자연스레 합류했다.
시간이 오래 걸려 유리문으로 복도를 들여다보니, 깨끗하고 시설 좋은 복도로 학생들이 오가는 모습이 보였다.
부모들의 입장은 허용되지 않으니 그 많은 짐을 혼자서 나르고 정리해야 한다.
필요한 서류를 내고 확인받은 후, 방 키를 받고, 카트를 대여해 기숙사 방까지 두 번 왔다 갔다 하며 짐을 내려놓으니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았다.
마침내 땀을 뻘뻘 흘리며 내려온 딸.
마지막 포옹 그리고 잘 지내라는 인사와 함께 헤어졌다.
집에 돌아와 텅 비어 보이는 딸과 아들의 방을 보니 기분이 이상하다.
이미 수없이 있었던 일인데..... 유난스럽다.
최근 늦은 밤 딸의 귀가에 자는 시간이 맞춰져 있었는데, 고장 난 시계 덕에 일찍 자리에 누웠다.
가족.
부모와 자녀.
머릿속에 시끄러운 생각들이 떠다니다 최은영의 책 쇼코의 미소 중 한 단편이 생각났다.
딸이 태어난 후로는 그늘진 마음에도 빛이 들었다. 마음속 가장 차가운 구석도 딸애가 발을 디디면 따뜻하게 풀어졌다.
있는 마음 없는 마음을 다 주면서도 그 마음이 다시 되돌아오지 않을까 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저 그 마음 안에서, 따뜻했다.
아이는 저만의 숨으로, 빛으로 여자를 지켰다. 이 세상의 어둠이 그녀에게 속삭이지 못하도록 그녀를 지켜주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저들 부모를 지키는 천사라고 여자는 생각했다.
<최은영_미카엘라 중>
내 안에 품고 있을 때부터 계속 나를 지켜주었던 두 자녀. 나의 삶의 동력이 되어주었던 그들.
엄마란 존재가 그들에게는 신과 같이 절대적이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뭐든 스스로 감당해야 하는 성인이 되어 부모의 배려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질 지금까지도,
그들은 나의 소중한 천사들이다.
온 마음과 신경이 그들에게 향해 있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주었고 줄 그 마음이 되돌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내가 나의 부모를 완전히 헤아릴 수 없듯이.....
그럼에도 따뜻할 것이다.
이제 모두가 새롭게 출발이다.
따뜻한 온기를 마음 밑바닥에 장착하고.
각자의 위치에서 가치 있는 인생을 향하여.
찬란한 끝을 위하여.
파이팅!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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